유사역사학 사절



장물(長物), 그 이후의 연구. Post-Superfluous Things (1) 雜同散異 Superfluous Things

작년에 Craig Clunas의 Superfluous Things를 소개한 적이 있는데, 80년대 책이라서 다소 오래된 감이 있었습니다.

(중국학의 떠오르는 메카라고 할 수 있는)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UBC)의 브루스 러스크 교수님 글을 소개합니다. 여러 학자의 글을 모은 공저, Antiquarianism and Intellectual Life in Europe and China, 1500-1800의 6장, "Artifacts of Authentication: People Making Texts Making Things in Ming-Qing China"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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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을 좇다가 길을 잃었으니, 어느 것이 진품인지 누가 알겠는가?"



6장

진품명품:
명청대 사람들이 만든 글이 만든 물건

브루스 러스크(Bruce Rusk)


"물건을 좇다가 길을 잃었으니, 어느 것이 진품인지 누가 알겠는가?" 16세기 중국의 수집가 풍방(豊坊, 1493-1566)은 어느 때보다도 다량과 고가로 나온 골동품, 서적, 예술품 등의 물건을 어느 때보다도 많은 당대 사람들이 손에 넣을 수 있게 된 결과, 이들이 물건에 눈이 먼 것을 애석해 하며 위와 같이 물었다. 명나라(1368-1644) 최후의 백년와 청나라(1644-1911) 최초의 백년[1]사람과 물건의 관계가 움직이면서 사람 사이의 관계도 뒤바뀐, 거대한 사회문화경제적 변화의 시기로 읽힌다. 당시의 변화 양상은 복합적이었고 상충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전반적인 그림은 부를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이 여럿 생겨나고 문화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 상품 경제이 모습이었다. 이 중에는 이전까지 일부 특권층에만 접근이 허용되었던 물건도 있었다. 지역 유지와 관료가 입을 모아 이러한 세태를 개탄하였으나, 이를 조절하거나 멈출 수 없었다. 양자강 유역(강남)[2]과 같은 부유한 지역의 주민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믿는 바로는, 경제 변화가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바꿔버렸고, "물건"의 우위가 높아짐에 따라 사회와 윤리의 질서를 위협했다. 이러한 세태에 합류한 이들에게도 시장은 끊임없이 변동하는 물자의 흐름과 함께 불신과 불확실성을 가져다주었다. 물건은 어디에서나 구할 수 있었으나, 모조 보석, 사이비 의약품, 무게를 속인 저울추, 화폐 가치 하락[3]은 "소비자 부담"이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문화 유물이 가장 믿을 수 없다고 여겨졌다. 서적, 회화, 서예, 기물(奇物, curio) 등 온갖 골동품과 수집품은 위조의 위험이 있었다. 모조품이 아니라면 설명이 잘못 붙거나, 내용을 잘못 베꼈거나[4], 장물일 가능성이 있었다. 

이와 같은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으로는 감정(鑑定)의 언어가 있었다. 감정의 언어란, 물건의 특정 품질을 확인하거나 부정하는 말이나 글을 일컫는다. "이 작품은 오래되었다 (혹은 그래 보일 뿐이다)." "저 물건은 유명한 사람의 작품이거나 소유물이 맞다 (혹은 아니다)."[5] 모든 문화권은 자문화의 유물에 대해서 위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진품이다," 혹은 "진품이 아니다"라고 간주함으로써, 그 유물을 전통에 포함시키거나 제외시킬 수 있는 답을 내놓는다. 이 글은 대략 1500년에서 1700년 사이의 중국 작가들이 물려받거나 발견한 유물에 대해 위와 같은 질문을 어떻게 던졌으며, 누가, 어떤 근거로 판단을 내렸고, 그 결과가 무엇이었는지를 묻고자 한다. 필자는 시황제의 옥새, 우왕의 비문(碑文), 선덕제(1426-35)의 청동 향로라는 세 가지 진품 감별 사례를 검토해보고자 한다. 이 셋은 각각 역사적 중요성이 있다고 주장되었다. 이 세 가지 사례는 연루된 관계자들과 이들이 제작된 문헌군, 방법론, 가정, 목적을 확인하는데 도움이 된다. 세 경우 모두, 각 유물에 대한 평가는 글에 기초했고, 글을 통해 표현했다. 이는 호고주의(antiquarianism) 담론이 스스로 활동하면서 누적되는 과정이다. 흔히 글 또한 유물만큼이나 신빙성이 없었기 때문에, 물건을 감별하는 과정으로 인해 부상하는 여러 문제(신빙성 있는 출처를 확립하거나, 위조를 방지하는 등)는 유물을 뒷받침하는 문헌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다. 

당대 사람들이 생각없이 "물건을 좇"는 것을 개탄한 풍방의 걱정은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풍방은 미술 시장과 서적 시장의 내부사정에 정통했으며, 서예 전문가로 특히 유명했고, 감별사였던 그는 의심스러운 신종 물품의 범람을 저지하려 했다. 그러나 풍방은 시장을 기만하기도 했는데, 수집가와 대중 독자를 현혹시킴으로써 중국 역사상 가장 대담하다고 할 수 있는 위조 사건을 일으킨 것이다. 가짜 유물을 만드는 것도 시장을 조작하는 방법 중 하나였으나, 풍방은 실재하는 물건에 그럴싸한 출처나 의미를 부여하는 문헌을 만들어냄으로써 보다 간접적으로 개입하기도 하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위조 문헌은 다시 위조 유물을 증명하는 근거가 될 수 있었다. 이 순환고리는 역사를 조작하는데 일조한 공예인의 세계, 수집 행위, 학술 활동을 하나로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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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시 말해, 1544-1744. "명말청초"라고 부르기보다 영미권 학자의 글을 소개하는 만큼 "낯설게 하기"를 시도하고 싶다.

[2] 위와 마찬가지로 "낯설게 하기."  
한국에서도, 중국을 제외한 다른 지역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는 "양자강 유역" 처럼 지리적으로 중립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인더스 강 유역(Indus valley)나 베트남의 정치/문화 중심지, 홍하 유역 등.
(영미권에서는 이렇게 쓰는 것이 관례화되어 있다. 고대 홍하 유역의 뱀과 의복 문화 참조.)

[3] 환율이 떨어진다기 보다는, 악화(惡貨)가 양화를 구축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 물성(物性)에 결함이 생긴 돈에 대한 동시대 일본의 사례로는, 아케치 님의 두 포스팅 [정리] 영락전(永樂錢)과 에리제니(撰錢)[번역] 화폐유통의 발달 - 침투하는 화폐경제 참조.

[4] "중국의 문자학에서는 옛 문헌의 내용을 정확하게 필사하고자 오랜 기간 수정을 거쳤는데, 논란의 여지가 있는 옛 기준에 따르는 경우가 많았다." (외계인, 성리학, 그리고 언어의 힘 中)

[5] "문진향(文震享, 15851645)이 고동(古銅)을 다루는 방식은 주로 등급을 매기는 것이다. 얼마나 소유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고동인지(desirability of owning them)에 따라 유형별로 분류하는 방식인데, 앞서 말한 '구별 짓기'와 일맥상통한다. 소유주가 누구인지에 중점을 두고있고, 고동이라는 물건 그 자체가 상고시대의 증거물로서 갖는 가치는 관심 밖의 일이다.
(...)
전형적인 사례로는 쑤저우 지역에서 명대 중기에 활동한 작가, 왕기(王錡, 1433-1499)의 필기(筆記)가 있다. 이 청동기에 대한 묘사는, 원나라 말에 명태조와 패권을 두고 겨루다가 밀려난 군벌 진우량(陳友諒, 1320-1363)과의 연결고리 하나로 일원화 되어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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