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외계인, 성리학, 그리고 언어의 힘 雜同散異 Superfluous Things

Nathan Vedal의 Aliens, Neo-Confucians, and the Power of Language을 번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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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 성리학, 그리고 언어의 힘

▲루이스 뱅크가 외계인의 기호 문자를 해독하고자 한다. “어라이벌” 中. 출처: Paramount

2016년 흥행작 어라이벌(Arrival, 컨택트)은 독특한 공상과학 영화인데, 외계 언어를 해독하는 임무를 맡는 언어학자가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영화 내용을 너무 많이 흘리지 않으면서 이야기하자면, 언어학자 루이스 뱅크스(에이미 아담스 분)는, 외계 종족의 기묘한 문자에 집중해서 그들의 언어를 해독하기로 결정한다. 

외계 문자를 학습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얻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사고방식이다. 비록 관람객은 이와 같은 설정을 믿기 어려워할 수도 있겠으나, 우리가 쓰는 언어가 우리의 생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새로울 게 없다. 명대 (1368-1644) 성리학자도 생소한 문차체계를 해석하는 것이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을 가르쳐줄 수 있다고 믿었다. 16세기 중국의 학자들에게, 기원전 5세기 이전의 고대 문자를 해독하는 것은 옛 문헌의 의미를 파악하는 열쇠일 뿐만 아니라, 옛 성현들처럼 생각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수단이기도 했다. 

16, 17세기 중국의 많은 학자들을 매혹한 서체는 기원전 1천년기의 전서(seal script, 篆書)였다. 특히 이들은 진시황 때 재상으로, 악명 높고 가차없는 성격의 이사(李斯, 몰년 204 BCE)가 주도해 만든 표준형태의 전서(소전, 小)가 아니라,  주 왕조로부터 유래했다고 알려진 전서(대전, 大)에 관심이 있었다. 명대 사상가들이 보기에는, 이사의 개혁 이전의 문자 체계를 회복하는 것이 현재의 타락한 도덕을 개선할 수 있었다. 특히, 위교(魏校, 1483-1543)라는 이름의 16세기 학자가 주장한 접근방식은, 이후 200년간 강한 추종 세력을 끌어모았다. 위교에 따르면, "옛 글자를 감상하면 나와 다른 이의 머릿속에 동일한 것이 떠오른다." 결과적으로, 옛 글자의 구성을 분석하면 "옛 사람의 사고 방식"을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얻을 득(得)의 전서체. 출처: 위교, 육서정온(六書精蘊), 4권, 12a 쪽.

위교는 옛 성현들이 문자를 창제할 때 윤리적 교훈을 새겨넣었다고 믿었는데, 위 방법론은, 글자 하나하나의 구성요소를 살펴봄으로써 그 윤리적 교훈을 계승하려는 행위였다. 예를 들어, 얻을 득(得)은 볼 견 (見)과 손 수(手)라는 두 부분으로 이뤄졌다는 것이 위교의 설명이다. 위교는 옛 글자 형태로부터 이러한 해석을 추론해냈다. 역사상 얻을 득 자에 대한 해석은 각기 달랐다. 어떤 이는 이 글자에 볼 견(見) 대신 조개 패(貝)가 들어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통상적인 해석의 논리는 고대에는 조개껍질이 화폐로 쓰였기 때문에 손에 돈을 넣는다는 것은 "얻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경서를 옛 서체로 위교가 필사한 것. 출처: 위교, 대학지귀(大學指歸), 1권, 1a쪽.

위교는 옛 성현들이 세상을 이해한 방식을 반영했다고 여긴 대안적 해석을 내놓았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가 무언가를 눈으로 보는 것은 오해가 있을 수 있으며, 오로지 우리 손에 쥐었을 때에만 확실히 이해할 수 있다. 앎과 행동이 하나라는 생각(우리가 무언가를 해야만 이해할 수 있다)은 위교가 속한 주자학파의 중심교리였다. 위교에 따르면, 옛 문자체계는 자연스레 이러한 철학적 진리를 담고 있었다. 

오늘날 위교의 해석 방법은 기묘하게 들릴 수 있겠으나, 그 방법은 위교가 죽은 뒤에도 인기가 이어졌다. 그의 제자들은 사전을 편찬할 때, 옛 문자에 옛 가치가 담겨있다는 가설을 유지했다. 다소 기인 성향이 있을지언정, 영향력 있는 사상가였던 고응상(顧應祥, 1483-1565)은 위교의 방법론을 옳다고 봤는데, "오늘날 선비들이 글씨를 쓰면서 길을 잘못 든 마음을 다잡고, 점 하나 획 하나가 모두 선례를 따라 옛 방식을 거스르지 않는다면, 도에 굉장히 가까워질 것이다."라고 썼다. 중국의 문자학에서는 옛 문헌의 내용을 정확하게 필사하고자 오랜 기간 수정을 거쳤는데, 논란의 여지가 있는 옛 기준에 따르는 경우가 많았다. 고응상의 주장은 다르다. 그에 따르면, 옛 글자를 쓰는 행위 자체가 도덕 교육에 해당했다.

구사하는 언어가 사고방식을 구속한다고 주장하는 언어 상대주의(linguistic relativism) 이론은 20세기 동안 언어학계의 흔한 토론 주제가 되었다. 더 강하게 말해, 다른 언어를 배우면 다른 개념과 행동의 영역에 이를 수 있을까? 16세기 중국 학자들은 옛 성현의 글을 연습하며 천천히 젖어듬으로써 도덕적 완성에 이를 수 있다고 믿었다. 영화 어라이벌에 등장하는 칠족류(heptapod)의 언어는 인류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영화를 보고 확인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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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포스21 2018/03/15 15:08 # 답글

    그거 소설 원작 아닌가요? 영화보다 일단 소설부터...
  • 남중생 2018/03/16 19:22 #

    소설은 내용이 다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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