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이곳에 상산(象山)이 있는데 이것 참 더욱 신기하군요" 인도차이나 ~Indochine~

적륜재의 조생 완벽이 바다 건너 다녀온 이야기, 기억하시나요?
MessageOnly 님의 원조 베트남 한류스타 이수광은요?

진주 선비 조완벽이 일본 상선을 타고 베트남에 가봤더니, 
아래와 같은 이수광의 시가 크게 유행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만 리나 떨어진 장기 낀 나라에서 와서(萬里來從瘴癘鄕)
멀리 중역을 통해 군왕을 알현하니(遠憑重譯謁君王)
한나라 때 새 동주가 세워진 지역이며(提封漢代新銅柱)
주나라 때 조공바치던 옛 월상국이라오(貢獻周家舊越裳)
"기묘한 모습의 산에서 코끼리 뼈가 많이 난다 (山出異形饒象骨)"
땅은 영기를 뿜으니 용향이 생산되도다(地蒸靈氣產龍香)
지금 중국에서 신성한 군왕을 만나니(卽今中國逢神聖)
천년토록 바람 잠잠하고 큰 파도 없으리(千載風恬海不揚)


이수광의 문집인 지봉집에 보면 이 시가 특히 히트를 친 이유가 나와있습니다. 
 
"또 그 시 중에서 기묘한 모습의 산에서 코끼리 뼈(註: 상아)가 많이 난다 (山出異形饒象骨)라는 한 구절을 가리키며 이곳에 상산(象山)이 있는데 이것 참 더욱 신기하군요 서로 더불어 칭송하기가 끊임이 없었다." 

그러면서 이 "상산"을 설명하기를 "코끼리는 로과(老撾)지방에서 난다, 그래서 상산(象山)이라고 한다."

로과(老撾)라고 하면 지금의 라오스입니다. 바로 "청동북을 두드리는 노자(獠子, Lão)"의 땅이죠.
그렇다면 과연 안남국 사람들이 이수광의 시를 읽으면서 떠올린 "상산"이 라오스였을까요...?

여기에 해답을 찾아서, 
Liam Kelley 교수님의 Elephant Mountain and the Erasure of Việt Indigeneity를 번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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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산(象山)과 비엣 토속성의 소멸


필자는 버마(Burma)의 인레 호수 근처에 있는 동굴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 동굴 속에는 유황천이 있어서, 들어가면 열기가 느껴지고 유황 냄새가 났다.


동굴에 들어가면서, 동굴 입구에 있는 작은 단상(platform) 위에 사는 불교 승려를 지나쳤다. 그리고 동굴 속에는 링가가 있었다. 


그 링가는 정말 잘 만들었는데, 유황천이 링가의 끄트머리에서 샘솟으면서, 필자의 가이드에 따르면 "매직 워터"라고 하는 물줄기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도록 만들었다. 

불교 승려와 링가가 그곳에 있다는 것은 곧 사람들이 이 동굴을 오랜 역사 동안 성지로 여겼다는 뜻이었다. 링가는 브라만교 신자와 힌두교 신자가 중시하는 것인데, 링가가 이 동굴에 있다는 것은 과거 어느 시점에서, 아마도 어느 브라만 승려가 그곳에 링가를 설치했다는 것이다.

필자가 방문했을 때 동굴에 불교 승려가 있었다는 것은, 버마에서 불교가 브라만교를 대체하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변화는 여러 세기 전에 일어났다.)

이렇듯, 브라만교와 불교가 이 동굴에서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지는 알기 쉬웠으나, 이와 같은 "외래" 종교가 도착하기 전에는 어땠을까? 분명 지역 주민은 인도에서 나온 종교들이 도착하기 전부터 그 동굴에 대해 알고 있었고 무언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이들은 동굴에 대해 뭐라고 생각했을까? 동굴을 뭐라고 불렀을까?   

지금은 알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어떤 "토속적인" 사상과 믿음이 있었건 브라만교와 불교의 사상이 결국 이 지역에 자리잡으면서 지워졌기 때문이다. 적어도 상류층 사이에서는 그렇다. 


필자는 최근에 베트남의 산에 대한 글을 보고 있었는데, 여기서도 같은 현상이 벌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날 베트남 북부에 안자산(安子-山, Yên Tử, 옌 뜨)이라고 불리는 산이 있는데 불교와 관련이 깊다. 이런 불교와의 연관성은 쩐 왕조 시대에 발달한 것이다. 


그러나 그 전까지 안자산은 도교와 연관성이 있었다.

레 딱(Lê Tắc)이 1335년에 펴낸 안남지략(安南志略), 15세기 명나라 지방지인 안남지원(安南志原), 19세기 응우옌 왕조가 주문한 대남일통지(大南一统志)는 모두 이 산이 과거에는 진(秦)나라 때 신선 안기생(安期生)과 관련이 있다고 했다. 

사실, "안자(安子)"는 "안 선생님"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산의 이름은 "안 선생님의 산"이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당나라 말기에서 오대십국 시대 초기에 걸쳐 활동한 두광정(杜光庭)이라는 도사는 동천복지기(洞天福地記)라는 글을 썼는데, 여기서 안자산을 도교 사상에서 일종의 성지에 해당하는 복지(福地)라고 언급했다.

송나라 때 도사 이사총(李思聰)이 쓴 해악명산도(海岳名山圖)가 있는데, 여기서도 안자산을 "복지"라고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도교적 심상이 뚜렷한 시를 싣고 있다. 

跨鸞仙子修真處
고란선자수진허
時見金龍戲碧潭
시견금룡희벽담

난새 위에 걸터앉은 신선이 진정한 허()를 수행하고 
때로는 금빛 용이 파아란 못에 노니는 곳 [1] 



안자산은 쩐 왕조 때 도교의 "복지"에서 불교의 성스러운 산으로 탈바꿈했다. 이 시기는 동아시아 전역에 걸쳐 식자층 사이에서 선불교가 대단한 인기를 누릴 때다. 

그렇지만, 이 산에 대한 평민의 생각은 어땠을까? 도교나 불교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한문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들은 이 산을 뭐라고 불렀을까? 다시 말해, 이 산에 대한 "토속적인" 사상과 믿음은 무엇이었을까?

필자가 버마에 있을 때 방문한 동굴과 마찬가지로, 이 또한 알 수 없다. 버마의 동굴에 자리잡은 서로 다른 외래 종교를 분간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안자산을 둘러싼 외래 사상을 감지할 수는 있다. 그러나 "토속적인 것"은 사라진지 오래다.

그렇기는 하지만, 중세 문헌 몇 편을 보면 사람들이 이 산을 원래 어떻게 여겼는지 조금이나마 살펴볼 수 있다.

안남지략을 보면 "안자산은 상산(象山)이라고도 불렸다.[2] 한편 안남지원에 따르면 "상두산(象頭山)"이라고도 불렸다.  

이 이름들은 한문으로 쓰였는데, 한문은 홍하유역 일대의 토속 문자가 아니다. 그러나, 현지 용어의 뜻을 번역한 것이었다면 누이 보이(Núi Voi, 코끼리 산)라는 토속적인 개념을 가리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토속적인 것을 가리키는 이름을 찾은 셈이지만, 그 외에 토속적인 것은 도교와 불교의 세계관에 의해 세월과 함께 지워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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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남지략의 안자산 항목에 위의 한시까지 인용되어있다. 다만 마지막 구의 표현이 조금 다르다.
"安子山(一名安山,或名象山,高出雲雨之上。宋皇祐初,處州大中祥符官賜紫衣洞淵大師李思聰,進《海嶽名山圖》並讚詠詩,云:「第四福地在交州安子山。數朵奇峰新登綠,一枝岩溜嫩接藍,跨鸞仙子修真處,時見龍下戲碧潭。」)"

數朵奇峰新登綠
수타기봉신등록 
一枝岩溜嫩接藍 
일지암류눈접람
跨鸞仙子修真處 
고란선자수진허
時見龍下戲碧潭
시견용하희벽담


[2] 대만의 상산과는 관계가 없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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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네... 상산은 라오스가 아니었습니다;;

물론 이수광 본인은 그저 우연의 일치일뿐, 자기가 안남국의 지리를 알고 쓴 시는 아니라고 disclaimer를 걸었죠.

 “내가 연경에 갔을 때 안남국 사신 풍극관을 만나 함께 창수(唱酬)한 시집이 있다. 그중 한 연구(聯句)에, ‘산은 기물을 내니 상골이 넉넉하고, 땅은 영기를 뿜으니 용향이 생산되도다.’ 하였는데, 이는 단지 교지(交趾)에서 상아(象牙)와 용연(龍涎) 따위의 향이 나오기 때문에 이렇게 운운했던 것이다. 나중에 왜적(倭賊)에게 포로로 끌려갔던 조완벽(趙完璧)이란 선비가 왜국(倭國)에서 귀환하여 말하기를, ‘내가 장사하는 왜인(倭人)을 따라 안남에 갔었는데, 그 나라 사람들이 지봉 선생의 시를 칭송하면서 이 연구를 가리키며 이르기를, 「우리나라에 코끼리가 나오는 산(出象之山)이 있으니 이러한 이유로 이 대목을 아름답게 여긴다.」 하였다.’라고 하였다. 내가 이 말을 듣고 의아하게 여겼는데, 그 뒤 《강목(綱目)》의 주(註)를 살펴보니, ‘안남에서 코끼리가 나오는 곳을 상산(象山)이라 한다.’라고 하였고, 또 〈양비외전(楊妃外傳)〉에, ‘교지에서 서룡뇌향(瑞龍腦香)을 진상하였는데 모양이 선잠(蟬蠶)과 같으니 늙은 용뇌수(龍腦樹)의 마디라야 있게 된다.’라고 하였으니, 실로 우연히 부합한 것이다.
[余赴京時, 遇安南國使臣馮克寬, 有唱酬詩集. 其中一聯曰: 山出異形饒象骨, 地蒸靈氣産龍香. 只以交趾出象牙及龍涎等香故云矣. 後有被擄儒士趙完璧者, 自倭中還, 言隨商倭往安南, 則其國人稱誦余詩而指示曰: 吾國有出象之山, 所以爲佳也云云. 余聞而訝之, 後按綱目註, 安南出象處, 曰象山. 又楊妃外傳, 交趾進瑞龍腦香, 如蟬蠶, 老樹節方有之云. 其實偶合也.]” 《芝峯類說 卷14 文章部7 唱和》

그래도 여전히 코끼리 산을 코끼리가 생산되는 산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지만... 넘어가도록 합시다.^^


다시 말해, 이수광이 
"산은 기물을 내니 상골이 넉넉하고" 
혹은
"
기묘한 모습의 산에서 코끼리 뼈가 많이 나고"
라고 노래한 산은,

안남인에게는 
"기이한 산세는 코끼리 뼈 한 무더기"
에 가깝게 읽혔다는 것이죠.

안자산(상산)을 노래한 해악명산도(海岳名山圖)의 "이죽비죽 산 봉우리 신록이 파릇파릇(數朵奇峰新登綠)"을 감안할 때 더욱 그랬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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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진냥 2018/03/08 08:38 # 답글

    매직 워터....(외면)
  • 남중생 2018/03/08 10:50 #

    링가에 대해서도 설명하는 글을 써야하는데... 음, 그렇습니다. 봄이니까 춘정 넘치는 글을 쓰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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