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청동북을 두드리던 사람들은 어디로? (1) 인도차이나 ~Indochine~

Liam Kelley 교수님의 Đông Sơn Headhunters를 번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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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 누가 필자에게 끼에우 꽝 쩐 박사에 대해 말해주면서 끼에우 박사가 캘리포니아에서 동 선 청동북에 대해 흥미로운 발표를 하는 것을 들었다고 했다. 

같은 주중에 또다른 사람이 필자에게 "연구와 발전 잡지(Tạp chí Nghiên cứu và Phát triển)"를 소개하며 베트남의 "주류" 학술지 보다 나은 전근대사 논문을 싣는다고 칭찬했다. 

그리고 우연찮게, 필자는 오늘 "연구와 발전 잡지"를 게재한 웹페이지를 접했다. 그리고 이 잡지에서 끼에우 꽝 쩐 박사가 쓴 "동 선 문화와 머리사냥 풍습(Văn hóa Đông Sơn và tục săn đầu người)"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견했다.  

이 논문에서 끼에우 꽝 쩐 박사는 동 선 청동북에 그려진 형상에서 머리사냥의 증거를 지목했다. 그리고는, 머리사냥 풍습에 권위 있는 전문가들의 저서를 인용하며, 머리사냥이 과거에 널리 행해진 풍습이었다고 주장한다. 

끼에우 꽝 쩐 박사가 제공하는 근거가 100% 결정적이지는 않지만, 이 근거를 통해 오늘날 홍하 삼각주 일대라고 불리는 지역에 기원전 1천년기(기원전 10세기~ 기원전 1세기)에 머리사냥꾼이 있었다는 것은 강하게 추정할 수 있다. 


필자는 이 주장에 완전히 동의한다. 필자는 지난 몇 년간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왔는데, 기원전 1천년기에 양자강 남쪽부터 현재 동남아시아에 살던 사람들은 모두 유사한 생활양식을 보였다는 것이 비로소 확실해졌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100년 전으로 돌아가 보르네오 섬의 다약(Dayak) 인, 수마트라 섬의 바탁(Batak) 인, 대만 고산지대의 여러 선주민 집단을 만나본다면, 이들의 생활양식은 기원전 1천년기 사람들의 공통된 생활양식과 여전히 유사성을 보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유사성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기둥 위에 얹힌 집에 살고, (찹)쌀을 먹고, 화전농법을 행하고, 그리고... 머리를 사냥하는 것이다.

다만, 필자가 이 논문에서 동의하지 않는 점은 기원전 1천년기에 홍하 삼각주에 살던 사람들을 "고대 비엣 민족(Việt cổ)"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우리는 동 선 청동북을 만든 사람들과 우리가 오늘날 비엣(Việt)이라고 부르는 사람들과 어떻게 연관되어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사실, 연결고리가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우리가 최소한 추정할 수 있는 것은 기원후 10세기 이후로 자기 스스로에 대한 정보를 한문으로 기록하기 시작한 홍하 삼각주의 학식있는 상류층이 그 지역에 1,000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과 문화적으로 매우 다르다는 것이다.  

과거에 살았던 저 사람들과 1,000년 후에 살았던 사람들이 같은 혈통이었을까? 아마 어느 정도는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이 1,000년 간의 다양한 인구이동이 혈통과 유전자 또한 복잡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기원전 1천년기에 오늘날 이탈리아라고 불리는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들을 "고대 이탈리아인"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우리는 이들을 "로마인"이라고 부르는데, 이탈리아라는 개념은 훨씬 뒤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기원전 1천년기에 오늘날 프랑스 지역에 살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들을 "고대 프랑스인"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우리는 이들을 "골 족"이라고 부르는데, 프랑스와 프랑스인이라는 개념은 수 세기 뒤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등장은 전혀 필연적인 것이 아니었다. 역사적 전개는 굉장히 다를 수 있었으며, 국가라는 개념과 이탈리아와 프랑스라는 실제 국가가 영영 등장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이런 이유에서라도, 이 국가들이 존재하지 않는 과거에 (현재와의) 연결고리를 투영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기원전 1천년기 홍하 삼각주에 살았던 머리사냥꾼을 "고대 비엣" 민족이라고 부르는 것은 카이사르를 "고대 이탈리아인"이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카이사르는 이탈리아인이 아니었고, 동 선 청동북을 만든 사람들은 "고대 비엣"인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마도 머리사냥꾼들은 실재했을 것이고, 끼에우 꽝 쩐 박사는 이 주장을 훌륭하게 펼쳤다. 그의 논문은 일독을 권할 만 하다.

위 이미지 출처는 gallica.bnf.fr /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이다. (http://gallica.bnf.fr/ark:/12148/btv1b23003686/f10.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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