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중세의 만들어진 전통, 경양왕(涇陽王) 인도차이나 ~Indochine~

Liam Kelly 교수님의 Kinh Dương Vương as a Medieval Invented Tradition를 번역합니다.

경양왕의 이야기는 베트남의 건국/시조 설화라고 부를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현대 베트남의 민족주의를 구성하는데 한 축을 차지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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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양왕(涇陽王, Kinh Dương Vương)은 재미있는 역사적 인물이다. 중국 사료에는 경양왕에 대한 기록이 없다. 그러니 그는 온전히 베트남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대월사기전서(大越史記全書, 1479)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태초에, 염제신농씨(炎帝神農氏)의 3세손 제명(帝明)은 제의(帝宜)를 낳았다. (제명은) 일찍이 오령(五嶺)으로 남순(南巡)을 갔다가 무선()의 딸을 만나 (아내로) 얻었고, 왕을 낳았다. 왕께서는 성지총명(聖智聰明)하시어, 제명이 기이하게 여기고 그에게 제위를 잇게 하고자 하였다. 그러자 왕께서는 그 형(제의)에게 양위하고 (제명의) 명을 감히 따르지 못했다. 제명은 그리하여 제의가 (제위를) 이어 북방을 다스리도록 하고, 왕을 경양왕으로 봉하여 남방을 다스리게 하였으니, 적귀국(赤鬼國)이라 불렸다. 왕께서는 동정군(洞庭君)의 딸, 신룡(神龍)을 아내로 들여, 락룡군(貉龍君)을 낳았다. (당기唐記에 따르면 경양왕 때 양치기 여인이 있었는데 스스로 말하길 동정군의 어린 딸이라고 했다. 경천의 둘째 아들과 결혼했다가 버림받았다. 유의柳毅에게 편지를 맡겨서 동정군에게 올렸다. 즉, 경천과 동정 간의 세대를 걸친 혼인은 예로부터 전해진 것이다.)  

壬戌 元年。初,炎帝神農氏三世孫帝明,生帝宜。既而南巡至五嶺,接得婺僊女,生王。王聖智聰明,帝明奇之,欲使嗣位。王固讓其兄,不敢奉命。帝明於是立帝宜為嗣,治北方,封王為涇陽王,治南方,號赤鬼國。王娶洞庭君女,曰神龍,生貉龍君。(按唐紀,涇陽時有牧羊婦,自謂洞庭君少女。嫁涇川次子,被黜。寄書與柳毅,奏洞庭君。則涇川、洞庭世為婚姻,有自來矣。)




이 기사의 정보는 문제가 많으며, 오사련(吳士連)[1]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여기서 오사련이 언급하는 사건들은 "경양왕 때" 일어나지 않았다. 심지어, 아마도 실제로 일어난 적이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동정군" 같은 인물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조위(李朝威)가 쓴 유명한 당나라 전기소설 유의전(柳毅傳)에 등장하는 동정용군(洞庭龍君)이 있을 뿐이다.[2]

오사련은 당기(唐記)에서 이 정보를 찾았다고 주장했다. 당기(唐記)는 사마광의 자치통감 중에서 당나라를 다루는 부분이다. 필자는 당기(唐記)에서 위와 같은 정보를 찾아내지 못햇다. 누군가 사고전서에서 해당 내용을 검색할 수 있다면, 필자가 놓쳤는지 확인해주기 바란다.

"유의전"은 당 고종 의봉 연간(676-78)을 배경으로 한다. 유의(柳毅)라는 젊은 유생이 과거시험에 떨어진 뒤 산서성 경양(涇陽)부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가는 이야기다. 도중에 그는 양을 치는 여인을 만나는데 말을 걸어보니 동정(호수) 용군의 딸이었던 것이다. 부모는 그녀를 경천군(涇川君)에게 시집보냈는데, 경천군이 그녀를 못살게 굴었고 결국 내쳤다.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인 동정용군에게 보낼 편지를 유의에게 맡긴다. 유의는 용군의 수중 궁궐에 갈 방법을 몰라서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동정용군의 딸이 어떻게 해야하는지 설명해주고, 유의는 편지 배달에 성공한다. 그리고 빨리 결말을 짓자면 유의는 결국 용왕의 딸과 결혼한다.

나는 당나라의 소설과 대월사기전서에 실린 정보 간의 유사성을 진지하게 다룬 베트남 학자를 알지 못하다. 1950년대에 다오 주이 아잉(Đào Duy Anh)은 이에 근접한 말을 했다. 다오 주이 아잉에 따르면, 오사련이 "당기"를 언급한 것을 비추어 볼 때 경양왕에 대한 정보는 중국 문헌을 모방(bắt chước)했다고 주장한 사람들이 있었다. (누구를 딱 지명하지는 않았다.) 다오 주이 아잉은 이 주장을 부정하고 다른 설명을 내놓았다.

다오 주이 아잉은 동정호가 위치한 양자강 근처 지역은 예로부터 형(荊, Kinh/Jing)과 양(楊, Dương/Yang)이라는 지명으로 알려졌다고 지적했다. 이 두 지역을 가리키는 한자는 경양(Kinh Dương)왕의 한자와 발음이 같으나 글자가 다르다.

다오 주이 아잉은 베트남 민족이 과거에 중국 남부 지역에서 남쪽으로 이동해 홍하 유역으로 이주했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경양왕 이야기는 베트남 민족이 형, 양 지역에 살 때 나타났으며, 오랜 세월 동안 이야기가 구전되었다고 주장했다. 마침내 이 이야기가 글로 남겨졌을 때, 기록을 담당한 사람이 경양(涇陽)이라는 글자를 고르는 바람에 형, 양 지역과의 역사적인 연결고리가 흐려졌다는 것이다. [Đào Duy Anh, Lịch sử cổ đại Việt Nam (Hà Nội: Văn Hoá Thông Tin, 2005), 206-9. 참조]

정말 멋진 이론이다. 그러나 사실과는 다르다. 우선, 베트남 민족이 남쪽으로 이주해 베트남 지역에 자리잡았다는 주장은 오래전에 언어학자들에 의해 깨졌다. 둘째, 다오 주이 아잉은 오사련의 주석이 나온 출처를 따지지 않았다. 오사련은 분명 잘못된 정보를 갖고 있었다. (이는 놀랄 일이 아닌데, 흠정월사통감강목(欽定越史通鑑綱目)을 읽어보면 편집자들이 계속해서 오사련이 저지른 실수를 고치고 있기 때문이다.) 오사련의 인용문도 틀렸을 뿐만 아니라, 그의 주장도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오사련의 주석이 당나라 전기소설에 출처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경양왕이 베트남 문헌에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지괴(誌怪)" 문학에 속하는 영남척괴열전(嶺南摭怪列傳)이었다. "지괴"라는 문학 장르는 대개 다양한 문헌에서 나온 자료를 종합한 것이며, 역사적 사실성이나 정확성과는 거리가 멀다. 아마 오사련이 경양왕에 대한 정보를 얻은 것도 영남척괴열전을 통해서였을 것이다. 다시 말해, 경양왕은 중세 베트남의 창작물로 보인다. 비록 당나라 전기소설에서 영감을 받았으나, 오사련이 역사서를 쓰면서 포함시킨 것이다. 

반세기 넘게 베트남인들은 역사적인 기록을 최대한 오래전 과거와 연결하려는 노력에 열중해왔다. 이러한 생각은 베트남 문헌 중 일부가 중세에 만들어진 전통이라는 것을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닌데, (중세) 당시 아시아 전역에서 이런 (전통을 만드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고사기古事記)에서 란나[3](까마데비밤사, Camadevivamsa)까지. 베트남이 여기서 예외일 수 있겠는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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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월사기전서의 편저자.

[2] 유의전 원문에는 처음에 "동정용군"이라고 소개했다가, 뒤에는 동정군이라고 줄여 부른다. 그러니 이 비판은 적절치 못하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동정군이 딸이 있을리가 없잖아www

[3] 오늘날 태국 치앙마이 근처에 존재했던 국가

[4] 오사련은 "동정군"이라는 인물명이 겹친다는 점에 착안해서 유의전을 언급한 것이고, Kelly 교수는 유의전에 "경양"이라는 지명이 등장한다는 점에 착안해서 경양왕 이야기 자체가 후대의 창작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야기의 겹친 구조(유사한 서사가 대를 이어 반복되는 형태)를 감안할 때, 후대에 갑자기 창작한 것으로 생각하기는 어렵다.

"국사 고구려 본기에는 이렇게 되어있다.
시조 동명성제는 성이 고씨고 이름은 주몽이다. 이에 앞서 북부여의 왕 해부루가 동부여로 피해 가 살았는데, 부루가 죽자 금와가 자리를 이어받았다. 금와는 그때 태백산 남쪽 우발수에서 한 여자를 만났는데, 그녀는 이렇게 말하였다. 
"저는 하백의 딸 유화입니다. 동생들과 놀러 나왔을 때 한 남자가 나타나 자신이 천제의 아들 해모수라고 하면서 웅신산 아래 압록강가에 있는 집으로 유혹하여 사통하고는, 저를 버리고 떠나가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단군기에서 "단군이 서하 하백의 딸과 가까이 하여 아들을 낳으니 이름을 부루라 하였다"라고 하였다. 지금 이 기록을 살펴보면 해모수가 낳은 아들의 이름이 부루라고 했으니, 부루와 주몽은 이복형제이다) 부모는 제가 중매도 없이 다른 사람을 따라간 것을 꾸짖어 드디어 이곳으로 귀양을 보내 살도록 했습니다."

이 경우에는 어떨까? 일연 스님과 오사련이 함께 유의전을 읽은 뒤 집에 돌아가서 각자의 역사서를 썼다고 할 수는 없다. 
유사한 사례가 반복되었거나, 신흥세력이 (짧은 역사를 보완하기 위해) 덧대었을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보다 가까운 사례로는 용비어천가에서 중국의 유명 인물들과 조선 왕조의 유사한 일화를 대응시킨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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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여기서 궁금증은, 현대인은 대체로 옛 고사와 유사한 이야기를 들으면 (Liam Kelly 교수님이나 다오 주이 아잉 주변 사람들 처럼) "아, 그거 베꼈겠네"라고 즉흥적으로 의심한다는 것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보수적 기독교인들은 처녀 탄생 설화를 아무리 가져다 줘도 믿음에 변함이 없다.)

반면, 과거의 사람들은 저런 비슷한 이야기를 들으면 "와, 똑같은 일이 벌어지다니 이건 신성한게 틀림없어"라고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저런 이야기로 권력을 정당화했겠지...?

"서사"를 대하는 사람들의 인식이 통째로 바뀐걸까??
과연 그렇다면 지금이 과거와 근본적으로 다른, 포스트모던 시대라는 증거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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