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항쟁이 특기인 프렌즈구나! 인도차이나 ~Indochine~

Liam Kelly 교수님의 The Chinese as “Fighting Friends” of the Vietnamese를 번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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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역사는 전부 "중국 침략에 대한 저항" 뿐일까? 1954년, 베트남 민주 공화국(DRV)의 학자인 밍 짜잉(Minh Tranh)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되려 그는 베트남과 중국 사람이 항상 "전우(bạn chiến đấu)"였다고 주장했다. 밍 짜잉은 "중국 인민은 월남 인민의 역사적인 전우"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이런 주장을 했다. 

밍 짜잉은 남쪽의 응오 딩 지엠(Ngô Đình Diệm) 정부를 가리키며 글머리에 다음과 같이 썼다. "최근, 불미귀축의 지령을 받은 매국노(bọn bán nước)들이 온갖 수를 써서 역사를 왜곡하고, 월남 항전의 최대의 우방은 중국 인민이라는 것을 일시적으로 점령된 지역의 우리 동포들이 못 알아차리게 하려 들고 있다."

밍 짜잉이 이어서 말하기를 매국노들은 기념 행사를 통해 중국 침략에 대한 베트남의 저항을 강조한다고 했다. 밍 짜잉에 따르면, 이런 행사의 목적은 월남 인민과 중국 인민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밍 짜잉에 의하면 역사의 진실은 매국노들이 틀렸음을 보여준다. 역사적으로 월남 인민과 중국 인민은 공동의 적에 맞서 싸워왔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쯩(Trưng) 자매[1]가 봉기를 이끌었을 때, 중국 농민들도 들고 일어나서 봉건 집권층에 대항하는 반란을 일으켰다. 게다가 이 민중 봉기는 "(쯩 자매 반란 세력이) 침략군을 상대로 승리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으래? 나는 마원馬援이 졌는지 처음 알았네...)

리 본(Lý Bôn,李賁 503-548)과 찌에우 꽝 푹(Triệu Quang Phục, 趙光復 ?-571)의 의거(khởi nghĩa) 역시 중국 농민 반란이 같은 시기에 일어난 덕분에 도움을 받았다. 예를 들어, 롱 비엔에 배치되었던 중국군 사령관이 북쪽의 농민 봉기에 대응하도록 불려갔기 때문에 찌에우 꽝 푹은 롱 비엔을 점령할 수 있었다.)

몽골(의 침공)의 경우에는, 몽골 민족은 중국인과 베트남인의 공동의 적이었으며, 둘 다 함께 싸웠다.

레 러이(Lê Lợi, 黎利 1385-1433)가 명나라를 패퇴시킨 것은... 그러하다. 명 제국 내의 다른 지역 농민 봉기를 잠재우느라 손발이 묶였기 때문에 수월했다.[2]

마지막으로, 응우옌 후에(Nguyễn Huệ, 阮惠 1753-1792)가 동 다(Đống Đa, 埬栘)에서 청나라 군사 20,000명을 격파한 것은, 몽골과 마찬가지로, 청 역시 이민족(만주족)이었고, 중국인들도 이들과 싸웠다.

밍 짜잉은 베트남 민주 공화국이 당시에 중화 인민 공화국과 동맹이었고 1차 인도차이나 전쟁의 막바지에 중화 인민 공화국으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이런 평을 내린 것이 뻔하다. 그럼에도, 그가 여기서 주장한 것 중에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다. 밍짜잉이 하는 말은 the 베트남인이 the 중국인을 저항하기 위해 항상 단결해왔다는 주장 보다는 여러 측면에서 역사적으로 더 정확하기 때문이다. 밍 짜잉의 주장은 너무 나갔지만, "외세 항쟁" 담론 보다는 그의 주장에 역사의 복합성이 더 담겨있다. 

결론적으로, 이 기사가 흥미로운 이유는 "외세 항쟁" 담론을 역사 속에서 맥락화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베트남인들이 항상 "외세 항쟁"을 해왔다는 것은 만들어진 전통이고, 굉장히 최근에 만들어진 전통이다. 이 글이 보여주는 것은 1954년에는 이 전통이 아직 만들어지기 전이라는 것이다. 물론 사람들은 이미 베트남인의 "전투 민족 기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외세 항쟁" 패러다임이 아직 완전히 형태를 갖추지는 않았다. 

이 기사가 보여주는 것은 베트남 민주 공화국과 중화 인민 공화국이 사이가 좋은 상황에서 "외세 항쟁" 패러다임이 형성될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문화혁명이 모든 것을 뒤바꿔놓았다. 문화혁명 시기, 베트남 민주 공화국 정부는 북베트남 사람들이 반중(反中)이 되도록 장려하기 시작했다. 이는 문혁의 광기가 베트남 민주 공화국에 뿌리내리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다. 내가 읽은 한 정치학자의 저술이 있는데, 곧 출판될 것이다. 그는 베트남에서의 사료 조사(archival research)를 통해 동일한 주장을 세웠다.

밍 짜잉의 기사에 대해서 흥미롭다고 느끼는 또다른 점은 베트남인이 역사적으로 중국의 침공에 항쟁하고 있었다는 주장을 남베트남 정부는 1950년대 중반에 밀고 있었다는 것이다. 북베트남과 반대되는 양상이다.

이 모든 것을 바탕으로 우리는 1950년대, 60년대 사상계가 상당히 유동적이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북베트남 사람과 남 베트남 사람은 서로의 주장에 반응하고 있었으며, 베트남 밖의 인물과 사건에도 반응하고 있었다. 참으로 흥미진진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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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나라(漢)의 지배에 저항했다. 이후로 언급되는 사례들도 모두 "베트남"과 "중국" 간의 전쟁/항쟁이다.

[2] 고마워요, 농민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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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진냥 2018/02/23 11:33 # 답글

    역사 학설이 정치적 입장의 영향을 받는다는 참으로 모델케이스적인 사례군요.... 한국도 결코 빠지지 않겠지요...
  • 남중생 2018/02/23 13:58 #

    맞습니다. 사실 제가 쓰는 모든 포스팅은 (베트남 이야기는 특히!) 한국의 이야기라고 보셔도 무방합니다.^^
  • 함부르거 2018/02/23 14:21 # 답글

    이래서 역사는 항상 현재를 다루는 학문인 거죠.
  • 남중생 2018/02/23 18:53 #

    얼마전에 사마천의 "사기"에서 고조선 멸망 부분은 사마천 입장에서 근현대사라는 글을 읽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현대"란 무엇이며, "고대"란 무엇이고, 또 "중세"란 무엇인지에 대한 글을 곧 번역해 올리겠습니다.^^
  • 바람불어 2018/02/23 18:43 # 답글

    결론적으로, 이 기사가 흥미로운 이유는 "외세 항쟁" 담론을 역사화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베트남인들이 항상 "외세 항쟁"을 해왔다는 것은 만들어진 전통이고, 굉장히 최근에 만들어진 전통이다. 이 글이 보여주는 것은 1954년에는 이 전통이 아직 만들어지기 전이라는 것이다. 물론 사람들은 이미 베트남인의 "전투 민족 기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외세 항쟁" 패러다임이 아직 완전히 형태를 갖추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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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부분 살짝 놀랐습니다. 저도 당연히 저렇게 생각하고있었는데.
  • 남중생 2018/02/23 18:58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맞을수록 강해지는" 민족주의 패러다임에 대해서는 제가 이전에 쓴 포스팅이 도움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http://inuitshut.egloos.com/1930008
  • 바람불어 2018/02/23 20:44 #

    링크글에 나오는 "광개토왕의 업적이 부각되기 위해서는 그가 무찌른 적이 허약해서는 안 된다. 가급적 강하고 위협적인 존재여야 좋다. 이에 주목한 것이 '악역'으로 설정된 '왜'의 존재이다 " 같은 얘기를 이성시의 <만들어진 고대사>에서도 본 것 같은데요. 그거 생각하니 링크글도 쉽게 이해됩니다.

    그러니까 단순히 지속적인 외세항쟁일뿐 아니라 '큰 외부의 적에 저항하며 단결해왔던 우리들' 이미지 만들기군요. 허 참 익숙하네요. 정말.

  • 바람불어 2018/02/23 20:48 #

    아 그리고 베트남 진조 글도 잘 보고 있습니다. 아는 게 없으므로 댓글 안달고 그냥 읽고있습니다. 한문관련 전공을 하긴 했는데 우리와 중국과 같은듯 다른듯 베트남 사서 얘긴 참 흥미롭습니다.
  • 남중생 2018/02/23 21:31 #

    잘 읽고 계시다니, 다행입니다.
    피드백이 없으면 혹시 글 선택을 잘못했나...? 싶은 생각이 드는게 인지상정이라서요^^

    가장 최근에 올린 경양왕/락룡군 관련 포스팅은 려(黎) 왕조 때 쓰인 역사서인 대월사기전서(1479)에서 이야기하는 베트남 고대 신화에 대한 것입니다.
    삼국유사/삼국사기의 단군왕검 이야기 같은 느낌으로 읽어주시면 근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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