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악어(鱷魚)와 전근대 베트남사의 침몰 인도차이나 ~Indochine~

Liam Kelley 교수님의 Crocodiles and the Sinking of Premodern Vietnamese History
를 번역합니다.

제가 알기로 전근대 인물의 이름은 한자의 한국어 발음 그대로 표기해도 되고, 현대 인물은 현지 발음으로 표기해야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학자들의 이름은 모두 현대의 현지 발음대로, 응우옌 투옌(
阮詮)은 고전 원문에서만 한국식 한자음으로 표기하고 나머지는 베트남 발음대로 표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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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최선을 다해서 벤 키어넌(Ben Kiernan)의 근간 Việt Nam: A History from Earliest Times to the Present에 대해 평을 안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계속 음침한 호기심에 이끌려 이 책을 펼쳐보고 만다. 그리고 매번 펼쳐볼 때마다 내 눈을 믿을 수가 없다. (이 책은 2017년 옥스포드 대학 출판사에서 펴낸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예를 들자면 나는 얼마 전에 책을 펼쳐 다음의 내용을 읽었다. (pg. 173):
"현전하는 최초의 베트남어 문헌은 놈(nôm, 喃) 문자로 쓴 1282년의 저술이다. 저자인 응우옌 투옌(원전, 阮詮)이 홍하(紅河)의 로 지류에 나타난 악어에게 쓴 시인데, 쩐 왕조의 인종(仁宗) 황제는 악어를 쫓아내고자 이 글월을 강에 던지도록 명령했다."

다음으로 키어넌은 시를 번역하고, "이 시는 옛 '훙왕(Hùng kings, 雄王)'에 대한 언급을 하는 최초의 베트남 문헌"이며 "또한 베트남인이 그들의 땅을 느억 비엣(nước Việt, 직역하자면 '비엣의 수역')이라고 표현한 것이 확인된 최초 사례"라고 말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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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느억"은 물/액체를 총칭하는 말. 베트남어에서는 국토/영토/나라를 의미하는 표현으로도 "느억"을 사용한다. 이 단어를 통해 베트남 민족이 예로부터 물과 수역(水域)을 중시했다는 일반론이 있고, 키어넌은 이런 일반론을 무비판적으로 답습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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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가 정말 많다. 현전하는 최초의 베트남어 문헌, 옛 "훙왕"에 대한 베트남 문헌 최초의 언급, 베트남인이 그들의 땅을 느억 비엣이라고 표현한 것이 확인된 최초 사례.

나는 스스로를 전근대 베트남을 연구하는 역사가라고 여기는데, 이 "최초"들 중 하나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 문제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대월사기전서(大越史記全書)는 이 사건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 가장 오래된 문헌인데,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 때[1282] 악어가 있어 로강(瀘江)에 이르니, 임금()께서 형부상서 원전(阮詮)에게 명을 내리시길 글을 지어 강에 던지니 악어가 절로 물러갔다."
(時 有鱷魚至瀘江 帝命 刑部尙書 阮詮 爲文投之江中 鱷魚自去)

"임금께서는 이 일을 한유(의 사례)와 비슷하다고 여기시고 성()을 하사하시어 (원전의 이름은) 한전()이 되었다."
(帝 以基事 類韓愈 賜姓 韓詮)

대월사기전서는 이어서 쓰기를, "(원전은) 또한 국어로 부(賦)와 시()를 짓는데 능했는데, 우리나라 부와 시에 국어를 많이 쓰게 된 것은 참으로 여기서 비롯되었다."
(又能國語賦詩 我國賦詩 多用國語 實自此詩)


이 구절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첫번째 점은 악어에게 글을 바쳤다는 것과 응우옌 투옌이 베트남 구어로 시를 지었다는 사실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 구절은 악어에게 쓴 글이 베트남 구어로 작성되었다고 밝히고 있지 않다.

또한 악어에게 쓴 글이 현전하고 있다는 증거도 없다.

19세기 초, 유학자 관료 판 휘 쭈(潘輝注, Phan Huy Chú)는 역조헌장유지(Lịch triều hiến chương loại chí 歷朝憲章類誌)에 기록하기를 한전()의 시집(피사집, 披沙集)이 있었다고 하며 베트남 구어로 된 여러 시가 실려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 시집은 현전하지 않는다.


20세기 들어 여러 베트남인 학자가 베트남의 민중 문자(demotic script)가 언제 처음으로 등장했는지 알아내려고 할 때, 학자들은 모두 응우옌 투옌이 "국어로 부와 시를 짓는데 능했"다는 구절을 인용하였지만, 악어에게 쓴 글을 베트남 구어로 작성했다는 명확한 증거로 보지는 않았다.

1941년 월남문학사요(越南文學史要, Việt Nam văn học sử yếu)에서 즈엉 꽝 함(Dương Quảng Hàm)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악어를 내쫓기 위해 던진 문서에 대해서, 역사서는 이 문서가 어떤 양식으로 쓰였으며 한문(漢文)으로 쓰였는지 월문(越文)으로 쓰였는지 기록하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문서가 놈(nôm, 喃)으로 쓴 제문(祭文)이었다는 통상적인 의견 같은 성급한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될 것이다. 원문을 찾아야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나, 현재로서는 그 어느 곳의 그 어떤 책에서도 찾을 수 없다."

Về bài văn ném xuống sông để đuổi cá sấu này, sử không chép rõ là viết theo thể văn nào và làm bằng Hán văn hay Việt văn; vậy ta cũng không nên vội cho – như ý kiến thông thường rằng bài ấy là một bài văn tế và viết bằng tiếng nôm. Chỉ khi nào tìm thấy nguyên bài văn ấy mới giải quyết được vấn đề ấy, mà hiện nay thì bài ấy không thấy chép ở sách nào cả.


그리고 나서 1959년에 쓴 글에서 응우옌 딩 호아(Nguyễn Đình Hoà)는 악어에게 쓴 글이 "쯔 놈으로 쓴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allegedly written in chữ nôm)"고 했다. [“Chữ Nôm the Demotic System of Writing in Vietnam,” Journal of the American Oriental Society Vol. 79, No. 4 (1959): 270-274.] 참조.

누가 이를 "인정"했는지, 혹은 누가 1940년대의 "통상적인 의견"을 뒷받침했는지 필자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즈엉 꽝 함과 응우옌 딩 호아가 남긴 의견에서 우리는 20세기 중반에 악어에게 쓴 글이 베트남 구어로 쓰였다는 것을 주장하려는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사적인 근거가 없었고, 악어에게 쓴 글을 실은 역사 기록이 없음에도 말이다. 


그러나 결국 근거도 필요 없어졌고 원문을 찾을 필요도 없어졌다. 1960년대에 "반-떼 까-서우(Văn-tế cá-sấu)"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키어넌은 1966년에 즈엉 딩 쿠에(Dương Đình Khuê)의 프랑스어로 된 베트남 문학 번역집을 인용한다. 이 책에서 악어제문은 불월대역으로 나와있다.

즈엉 딩 쿠에는 자신이 이 글을 어디서 가져왔는지 밝히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제문(祭文, văn-tế)"[2]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점은 흥미롭다. 이 표현은 대월사기전서에 기록되었다시피, 황제가 응우옌 투옌의 악어 퇴치를 한유의 악어 퇴치에 비유했다는 내용과 연결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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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반-떼(văn-tế)"는 한자를 그대로 옮기자면 문제(文祭)가 된다. 베트남어는 한국어나 한문의 어순과 반대로 수식한다. (예: 꽃-예쁜, 사과-빨간)
한편 "까-서우(cá-sấu)"는 악어라는 단어인데, 까(cá)가 물고기라는 뜻이다. 즉, "반-떼 까-서우"는 "문제어악(文祭魚鱷)인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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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기 초, 당나라의 관료 한유는 오늘날 광동성 동부에 해당하는 조주(潮州)에서 악어를 추방하기 위한 의식을 행했다. 그는 양과 돼지를 악어에게 바치고는 물에 "악어문(鱷魚文)"이라는 글을 물 속에 놓았다. 

그리하고 나니, 악어들이 떠나갔다.

이후, 이 "악어문"이 유명한 17세기 문집(고문관지, 古文觀止)에 포함되었을 때는 "제악어문(祭鱷魚文)"이라고 재명명되었다.[3] 

베트남에서 수 년 간 아무도 못 찾던 글이 갑자기 다시 "등장"했을 때 새 제목이 붙어서 나왔을 뿐더러, 그 제목이 한유의 글의 "최근" 제목(제악어문)과 닮은 이유는 무엇일까? 누가 그런 제목을 붙였을까? 대월사기전서에는 그렇게 불리지 않았던데?

이 글이 근대의 창작물일 가능성이 있을까? 그렇지 않다면, 즈엉 딩 쿠에가 국어(國語, quốc ngữ)로 옮기고 불어로 번역하기 전의 원문은 어디에 있는가? 그 원문을 찾아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고로 "반 떼 까 서우"는 후대의 조작일 가능성이 높으며, 필자는 최근(20세기)의 조작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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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문학을 장르로 구분하고 배열하면서 제목에 그 장르를 확실히 하는 경향이 있어 보인다. 즉, 악어문을 "악어"이라고 재명명하면서 "제문"이라는 장르성을 강조한 것이다.

한편, 
기문(記文)이라는 장르와 세부 장르에 대해서는 역사관심 님의 7일전 발견한 고려시대 정이오 친필문서 내용 공개 포스팅 참조.

유사한 사례로 
왜군은 얼레빗, 명군은 참빗의 원출처...? 포스팅에서,
같은 시의 제목을 어우집에는 영소(詠梳, 빗을 노래하다), 성소부부고 성수시화에는 영소시(詠梳詩), 성소부부고 학산초담에는 소두시(梳頭詩, 머리 빗는 노래)라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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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이쯤 되면 키어넌이 나열한 세 가지 "최초"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명백해진다.

1282년에 베트남어로 쓴 현전하는 최초의 문헌은 없다.
옛 "훙왕"을 최초로 언급하는 글은 1282년에 쓰이지 않았다.

베트남인이 자기 땅을 부르는 표현인 "느억 비엣"이 확인되는 최초 용례는 1282년이 아니다.

이런 팩트 단계에서의 오류를 넘어, 키어넌이 이런 잘못된 정보로 뒷받침하려고 들고 나온 가설 자체가 틀렸다. 키어넌이 책에서 응우옌 투옌이 악어를 없애기 위한 노력을 다루는 이유는 베트남 문화에 오래된 "수중(水中)" 테마가 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함이다. 이는 키어넌이 저술한 베트남사 개괄서를 통해 증명하고자 하는 요점 중 하나다.

그러나 우리가 이 사건을 통해 실제로 볼 수 있는 것은, 문예적인(그리고 중화적인) 접근 방법을 통한 문제 해결이다.

응우옌 투옌이 악어에게 바치는 글을 쓰기 몇 세기 전에, 송나라의 불교학자인 계숭(契嵩, 1011-1072)는 과거에 한유가 글을 써서 악어를 쫓아내려 한 일을 비난했다.

계숭은 "악어는 곤충(昆蟲)에 해당하며 무지한 짐승(物者)이다. 어찌 한유(韓子)의 글을 이해했으리오?"라고 썼다.
(鱷魚乃昆蟲無知之物者也,豈能辨韓子之文耶)[4] 

응우옌 투옌은 계숭보다 글의 힘을 신뢰한 것이 분명하다. 이는 (베트남인이) 무슨 "수중(水中)"이나 "물 속" 세계와 동질감을 느꼈다는 증거가 아니다. 이는 엘리트적이고, 문예적(literary)인, 중화 세계에 깊은 연관성을 느꼈다는 증거다.

마찬가지로, 20세기에 "반-떼 까-서우"가 등장한 것도 엘리트적이고, 문예적인, 중화 세계에 깊은 연관성을 느꼈다는 증거다.

("반-떼 까-서우"는) 비록 현대 베트남어로 작성되었으나, 한유의 글이 (널리 읽힌 "고문관지"를 통해) 당시에 알려진 제목을 모방한다는 사실은 지속된 엘리트적이고, 문예적인 중화 세계와 여전히 연결되어있다는 증거다. (1960년대 남베트남을 감안할 때 이는 놀랍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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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여기서 "곤충"이라는 건 미물이라는 뜻이다. 














▲이런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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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어넌은 너무나도, 지나치게, 과잉으로, 한참 넘겨짚고 있다. 그리고 헤엄치거나 땅짚으며 갈 수도 없는 깊이의 물에 빠짐으로써 그가 만든 책은 베트남사를 과거의 학문적 수준(水準)으로 침전시킨다.

이 책이 가라앉힌 전근대 베트남사를 끌어올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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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역사관심 2018/02/21 00:38 # 답글

    흥미로운 글 감사합니다. 확실히 20세기전반부에 쓰여진 글들은 사료에 대한 접근성부족과 넘겨집기, 그리고 이데올로기투영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들이 많아 지금와서 재검해야 할 것 투성이라는 생각이 다시 듭니다. 또한 마지막 중화세계이야기에 공감이 갑니다.
  • 남중생 2018/02/21 01:07 #

    근현대 베트남은 국민국가를 세우기 위해, "중국"과 대비되는 측면을 부각시키려는 노력이 끊임없이 있어왔습니다. 대륙/동아시아적 중국과 다른 해양/동남아시아적 베트남이라는 구도가 바로 그것이죠.
    리암 켈리 교수님께서는 이런 정치적인 역사관을 경계하시는 분이신데, 어떨 때는 심지어 "베트남 식자층은 스스로를 중국인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같은 강한 주장까지 하십니다. 그리고 이럴 때 유사 사례으로 자주 드는 것이 조선입니다!

    저는 켈리 교수님의 모든 의견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사/조선사를 이해하는데 있어 비교/대조군으로 베트남사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 역사관심 2018/02/21 01:48 #

    언젠가 소중화담론에 대해 글을 한번 쓰고 싶은데 아직 공부중인지라... 확실한 것은 현재국민국가 시각으로 보아선 명확한 한계뿐 아니라 왜곡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는 사실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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