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민중"의 구전 문학은 없다? 인도차이나 ~Indochine~

Liam Kelley 교수님의 Scientific Oral Tales and Cheap Literature를 번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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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인 구전 문학과 3류 통속소설

베트남 역사에서 내가 문제의식을 느끼는 부분은 바로 수 세기 이전에 일어난 사건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 문헌이 있다는 사실이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락룡군(貉龍君, Lạc Long Quân)과 구희(嫗姬, Âu Cơ) 부부의 이야기[1]가 있다. 이 부부는 기원전 1,000년 경이나 혹은 더 이른 시기에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문헌 정보는 15세기에 쓰였다.

우리가 아는 한, 락룡군과 구희의 이야기는 영남척괴열전(嶺南摭怪列傳, Lĩnh Nam chích quái liệt truyện)[2]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이 책은 1489년에 집성되었으나, 이전 시기에 쓰인 자료를 포함한다. 그러나 이 책의 어느 부분도 2,000년 이전에 쓰였다고 믿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락룡군과 구희의 이야기는 어디서 온 걸까?

베트남 학자들은 이 질문을 다음과 같은 답변으로 일축한다. 이 이야기는 "민중" 간에 구전으로 전승되었다는 것이다.

베트남 학계는 "과학(khoa học)"적 학문의 중요성에 대해 끊임없이 말하는데, 위 답변 보다 비과학적인 것은 없다. 쩐 꾸옥 브엉(Trần Quốc Vượng)은 "심리학의 법칙은 잊어버려야 할 것은 모두 잊게 만들고, 민간 전설 속에 남는 것은 심층적인 기억이다"라고 주장함으로써 이런 비과학적인 관점에 과학적인 근거를 제공하고자 했다. 

[“Một quy luật của tâm lý học là cái gì cần quên thì đã quên rồi, cái gì truyền thuyết dân gian còn nhớ, thì đó là kỷ niệm sâu sắc.” 출처: Trần Quốc Vượng, “Về danh hiệu ‘Hùng Vương,’” Hùng Vương dựng nước, vol. III (하노이: 사회과학(Khoa Học Xã Hội) 출판사, 1973), 354.]

난 쩐 꾸옥 브엉이 도대체 무슨 "심리학의 법칙"에 대해 말한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어쩌면 이게 바로 "잊어버려야 할 것"일 수도 있겠다.

공평하게 말하자면, 이 문제는 서구 학계도 최근 몇 십 년 전에야 비로소 깨닫기 시작한 것이고, 이전까지는 마찬가지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옛 자료가 없다고 여겨지는 것이 곧 이 이야기가 구전되었다는 "증거"였다. 물론 과거에도 체코 학자 알베르트 베셀스키(Albert Wesselski) 같은 고독한 선지자는 있었는데, 그는 1930년대 초에 독일 민화 중 일부가 과거의 문헌 기록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밝히고자 했다. 그러나 타이밍이 안 좋았고, 나치 정권은 이 주장이 전파되는 것을 확실히 막았다.[3]

도서관 전자 카탈로그의 생성과 함께 큰 발전이 이뤄졌고, 그 다음에는 인터넷의 발달이 있었다. 이 기술을 통해 학자들은 유럽의 도서관에 "통속 소설"이 가득하다는 것을 보았고, 이 "싸구려 문학 군"을 통해 이야기가 어떻게 등장하고 전파되는지 조명할 수 있었다.

"구전 이야기"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이제 깨달은 사실은, 농사꾼 한 두 명이 지어낸 이야기를 학식 있는 사람이 듣고 적었을 수도 있지만, 절대 다수의 "구전 문학"은 식자층이 만들어 인쇄술을 통해 퍼졌다는 것이다. 

유럽의 도서관에서 "싸구려 문학"을 발견함으로써, 우리가 이제껏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많은 인쇄가 이뤄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인쇄의 대부분은 작은 팜플렛이나 이야기 한 두 개가 들어 있는 몇 장 짜리 저가 품질 인쇄였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야기는 "민중"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식자층이 만들어서 인쇄매체로 전파되고, 전체 과정 상 상당히 늦은 시점에서 까막눈 농민에게 구전으로 전승되곤 했다는 것이다. 

과거 베트남에서의 인쇄술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필사본이 유통되고 필사되었다고 믿지 않을 이유는 없다. 실제로, 오늘날 베트남의 어느 문서보관소에서는 "싸구려" 자료들을 직원들이 지금 살펴보고 있는 중이다. 이 자료들은 수 십 년 전에 수집한 뒤 읽지 않고 목록화되지 않은 채 방치되었다. 왜냐하면 내가 직접 들었듯이, "가치가 적기 때문이다(không có giá trị lắm)".

유럽의 도서과 사서들도 소장 문헌 중에 썩어가는 팸플렛에 대해 그리 생각했을 것이다. 오늘날 그 "싸구려 문학"은 "구전 문학"의 "과학적" 설명의 거짓말을 밝혀냈다. 상당히 가치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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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베트남의 시조 신화에 해당하는 이야기. (베트남 건국신화는 "통속 소설"을 베낀 것일까? 포스팅 참조.)

[2] 한국의 삼국유사와 자주 비교되는 역사서. 박희병 교수님이 "베트남의 신화와 전설"이라는 제목으로 국역함.

베트남의 신화와 전설 - 10점
무경 지음, 박희병 옮김/돌베개

[3] 타이밍 좀...




다시 말해, 이야기는 "민중"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식자층이 만들어서 인쇄매체로 전파되고, 전체 과정 상 상당히 늦은 시점에서 까막눈 농민에게 구전으로 전승되곤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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