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누구의 바다, 누구의 섬일까? (續) - 셀든 씨의 중국 지도 (1) 인도차이나 ~Indochine~

티모시 브룩의 저서, Mr. Selden's Map of China 中 일부를 번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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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든 지도, 1608년 제작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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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 펼쳐진 섬 수 천 개의 주권을 두고 모든 동아시아 해양국가와 분쟁상태에 놓여있다. 가장 잘 알려진 사례는 대만 동북쪽 바다의 조어도(釣魚島)와 남중국해의 파라셀 군도, 스프래틀리 군도인데, (이 섬들에 대해) 가장 시끄럽게 영토주장을 해왔기 때문이다. 셀든 지도
[1]는 19세기 이전에 중국에서 이 해역을 상세하게 다룬 유일한 지도이기 때문에, 이웃국가와 벌이는 외교전을 중국의 승리로 이끌 수 있는 히든카드가 되지 않을까 기대하는 이들도 있다. 본서를 통해 필자는 지도의 이런 측면에 대해 회의를 내비치고, 셀든 지도가 위와 같은 주제에 대해서 주장할 수 있는 바가 전혀 없다는 것을 보이고자 한다. 그러나 애국심과 국익은 순수한 지식을 거스르는 강력한 역풍이다. 그러니 누가 감히 단언할 수 있겠는가?
(xxii)

베트남에서는 남중국해를 동해라고 부른다. 베트남이 특별히 관심을 가는 것은 유럽인들이 파라셀이라고 부른는 삼십여 개의 작은 섬이다. (파라셀이라는 단어는 포르투갈인들이 브라질 남부에서 가져온 것인데, 그곳 지역 원주민이 방파제 역할을 하는 연해의 암초를 일컫는 말이었다.) 베트남인은 이를 황사(黃沙) 군도라고 부르고, 중국인은 서사(西沙) 군도라고 부른다. 그렇게 부르는 이유는 서사 군도에서 700 해리 남동쪽(보르네오 섬 북서쪽)에 더 넓게 흩어진 또다른 군도가 있기 때문이다. 이 군도는 남사(南沙)라고 부른다. 중국인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 암초군을 (1843년 이곳을 항해하고 런던에서 항해기록을 출판한 영국인 리처드 스프래틀리 선장의 이름을 따서) 스프래틀리 군도라고 부른다. 이 해역의 군도는 수 천 개를 헤아릴 수 있는데, 만조 때 물 밑으로 잠기는 돌부리를 몇 개까지 섬이라고 부를 것인지에 따라 바뀐다. 이 군도에는 역사적으로 주민이 없으며, 외부로부터 지속적인 지원 없이는 살 수 없는 곳이다. 
(4)

흥미롭게도, 혹은 현명하게도, 중국은 단 한 번도 남중국해 전체를 아우르는 권리를 법정에서 주장한 적이 없다. 중국 측은 발견을 통해 얻은 역사적인 주권이라고 일방적으로 주장해왔다. 이 주장에 따르면, 중국인 항해사가 남중국해의 섬들을 처음 발견하였으니 그 결과 섬과 그 주변 바다 전부가 중국의 소유가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주장을 일컫는 라틴어 법률 포현으로 테라 눌리우스(terra nullius, 비어 있는 땅)라는 것이 있다. 다시 말해, "임자 없는 땅을 내가 제일 먼저 찾았으니 내 땅"이라는 말이다. 이는 1492년 이래로 유럽인들이 정복을 정당화하기 위해 전지구에 걸쳐 내세워온 유서 깊은 주장이다. 그런 주장이 적용된 땅은 대체로 유럽인이 도착했을 때 전혀 비어 있지 않았는데, 유럽법은 대뜸 기존 주민을 야만인으로 명명함으로써 주권을 행사할 국가가 부재한 것으로 보았다. 그 땅에 사람이 있었을지언정, 그 땅의 소유주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지구상에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는 곳이 더 이상 없다시피 한데도 불구하고 테라 눌리우스는 여전히 법적 주장으로 유효하다. 만약 중국이 이 주장을 국제 중재 재판을 통해 해결하고자 한다면 다소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이 작은 땅덩어리들은 확실히 비어 있었지만, 테라 눌리우스 주장을 하려면 그 땅을 지배해야 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중 몇 개 섬 근처에 중국이 해상활주로를 짓기 전까지 이 섬들은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았다. 또한 14세기 중국 측 기록을 보면 남중국해상의 작은 섬들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그 섬을 발견했다는 증거라기 보다는 해당 지역에서라면 누구나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을 기록했다는 증거가 아닐까?
(9)

셀든 지도에 몇몇 섬이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해안 항로에 영향을 주는 경우에만 표시했다. 홍콩 근처의 프라타스 암초가 그려져있고, 남오기(南澳氣, 마카오 남부의 암초)[2]라고 적혀 있다. 파라셀, 즉 서사 군도 또한 두 부분으로 표시되어 있다. 파라셀 군도 북부에 해당하는 암피트라이트 군(Amphitrite 群)은 배에 달린 돛 모양이며, 일만 리나 펼쳐진 돛 모양의 모래톱(萬里長沙 似船帆樣)이라고 적혀있다. 여기서 바로 남쪽에는 붉은 색으로 칠한 섬 하나에 붉은 섬(㠘紅色)이라고 적혀 있다. 파라셀 군도에서 이 붉은 섬을 집어내려고 하는 것은 증거가 부족한데도 불구하고 견강부회하는 셈일 것이다. 붉은 섬 바로 밑으로는 유성처럼 꼬리를 그리며 남쪽으로 향하는 가는 선[3]이 여러 개 그려져 있다. 이것은 파라셀 군도의 남부에 해당하는 크레센트 군(Crescent 群)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만리석당(萬里石塘) 즉, 항해할 때 우회해야 하는 위험 요소라고 써 있다. 스프래틀리 군도라고 불리는 남중국해 동쪽의 수 백 개의 암초와 환초는 그 자리에 없다. 이곳을 지나는 항로는 없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어느 열성적 애국자가 셀든 지도를 통해 이 바다의 어느 섬에 대한 주권을 증명할 수 있다고 한다면 이는 지나친 주장일 것이다. 17세기 동아시아에서 뱃사람과 지도제작자가 하는 일은 주권을 주장하는 일이 아니었다. 이 군도는 아무도 원치 않는 것이었다. 
(166-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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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7세기 초 동아시아 항해 지도. 동아시아에서 만들어진 이후, 영국인 변호사 존 셀든(1584-1654)이 취득함.

[2] 오문(澳門, 마카오) 남쪽의 암초라는 뜻.

[3] 별똥별을 묘사할 때처럼 섬 뒤로 넓게 펼쳐지는 띠가 있다는 말.

이후 베트남과 서양의 지도가 파라셀 군도를 점과 선(점선)으로 표시하는 것이 셀든 지도에서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닐까?


출처: Timothy Brook, Mr. Selden's Map of China, (New York: Bloomsbury Press,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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