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몽골제국, 그리고 1221년의 개기일식! 뇌법! 鬼를 울리는 천둥소리

▲ 1221년 5월 23일의 개기일식 지도. 몽골 위에 표시된 본영(本影, 달 그림자가 지표에 닿는 부분) 지점에 주목.


지난 포스팅에서 소개드린 적 있는 장춘진인서유기 이야기를 좀 더 해보겠습니다.

구처기 일행이 원정중이던 칭기즈칸을 만나러 사마르칸트를 지나 아무 강(아무다리야 강. 다리야는 강이라는 뜻.)을 건넜다고 언급했는데요.  
막상 건너려고 했더니, 아무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도적떼(아마도 반-몽골 저항 세력)에 의해 무너져있었습니다.
뇌법맨이 또오...

또 한겨울인 날씨를 감안했을 때, 다리가 안 놓인 강을 건너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한 구처기 일행은 사마르칸트에서 1221년의 겨울을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구처기는 사마르칸트의 천문학자(!)와 교류하기도 합니다.

적륜님께서 마라게 천문대의 밤에서 언급하신 것처럼, 야율초재가 서아시아 천문학의 가치를 알아본 덕분에 이들이 살아남은 거라면...
야율초재가 살려놓고간 학자를 야율초재의 친구인 구처기가 만난다는 것은 생각만해도 굉장합니다.
(두 친구의 사이는 이후 크게 틀어져서, 야율초재는 오직 구처기의 서유기를 디스하는 목적으로 책을 내기도 합니다...) 

사마르칸트 
음력 11월 18일~ 윤 12월 30일 
(양력 1221년 12월 3일~1222년 2월 12일)

漢人往往來歸依。時有算曆在旁,師因問五月朔日食事,其人云:此中辰時食至六月止。師曰:前在陸巨河時,午刻見其食。既又西南至金山,言已食至七分。此三處所見,各不相同。按孔穎達春秋疏:月體映日則日食。以今料之,蓋當其下既見日食。既在旁者,則千里漸殊耳。正如以扇翳燈,扇影所及,無復光明。其旁漸遠,則燈光漸多矣。

한인들이 스승님의 처소로 왕래하며 전진교(全眞敎)에 귀의하였다. 언젠가는 산력가(算曆家)가 옆에 있어, 스승님께서 그에게 오월 삭일(음력 5월 1일, 양력 5월 23일)의 일식에 대해 물어보셨다. 그 사람이 말하길, 그날 진시(辰時, 오전 8시)에 일식이 6할에 다다르는 것으로 그쳤다고 했다. 스승님께서 말씀하시길, 전에 케룰렌 강(陸巨河)에 있을 적에 오시(午刻, 정오)에 같은 일식을 보았다. 또 금산(金山, 알타이 산)의 서남쪽에 이르르자 사람들이 말하길 그곳에서는 사시(已, 오전 10시)에 일식이 칠할에 이르렀다고 했지. 이렇게 세 곳에서 보았는데 서로 같지 않구나. 생각컨대 공영달(孔穎達)[1]이 춘추(春秋)의 주석()에 이르되, "달의 형체가 해를 비추는 것이 곧 일식이다(月體映日則日食)."[2]라고 하였다. 이번 사례로 보면, 해와 달이 겹치는 곳 바로 아래에 있어야만 개기일식을 볼 수 있었다. 조금씩 옆으로 빗겨난 것이 곧 천리 씩이나 차이가 나는 것이다. 바로 부채로 등불을 가리는 것과 같아서, 부채 그림자가 미치는 곳에는 광명이 없지만, 그 옆으로 움직일수록 불빛이 점점 커지는 것이다. 
--------------------------------------------------------------------------------------
[1] 수, 당시대의 유학자. 574~648. 
[2] 이는 공영달의 주석을 글자그대로 옮긴 것은 아니고, 요약한 것이다. 바로 다음에 언급되는 부채와 등불의 비유는 흥미롭게도 주희(1130-1200)가 일식과 월식을 설명하면서 사용하였다. (아래 참조)

▲몽골 제국을 여행한다는 것은, 
지구의 곡면을 경험한다는 것!

위 지도가 칭기즈칸 시대의 몽골제국 범위를 잘 보여줍니다. 북경(대도, Dadu)에서 사마르칸트 너머까지 갔으니 제국의 동쪽 끝과 서쪽 끝을 왕복한거죠...
그런데 1206년부터 시작하는 모든 정복전쟁의 군사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어서 조금 산만하죠?^^


이렇게 1250년대 지도에 비춰보는 것도 도움이 되는데, 구처기의 길이 카르피니, 루브룩 등의 행정(점선)과도 대체로 일치한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칭기즈칸이 정복해나가면서 닦은 길이 동서를 잇는 "진정한 의미의 실크로드"가 되는 것이죠. 
(카간 님 쓰시던 축지법, 오늘은 (수)도사님 쓰신다)

그리하여, 사마르칸트에서 후한 대접을 받으면서 겨울나기를 한 구처기 일행은 이듬해 봄이 되자 아무 강을 건너 드디어 칭기즈칸을 만날 수 있었답니다~



안돼애~~!!


=================================================================================================
P.S.1
[주희가 설명하는 일식과 월식]

日月道之說 所引皆是 日之南北雖不同 然皆隨黃道而行耳 月道雖不同 然亦常隨黃道 而出其旁耳 其合朔時 日月同在一度 其望日 則日月極遠而相對 其上下弦 則日月近一而遠三(如日在午 則月或在卯 或在酉之類 是也) 故合朔之時 日月之東西雖同在一度 而月道之南北或差遠于日 則不蝕 或南北雖亦相近 而日在內 月在外 則不蝕 此正如一人秉燭 一人執扇相交而過 一人自內觀之 其兩人相去差遠 則雖扇在內 燭在外 而扇不能掩燭 或秉燭者在內而執扇者在外 則雖近 而扇亦不能掩燭 以此推之 大略可見 此說在詩十月之交篇 孔疏說得甚詳 李迂仲引證亦博 可幷檢看 當得其說 

 “해와 달이 움직이는 길에 관한 설명은 인용한 것이 모두 맞습니다. 해가 남쪽에 있기도 하고 북쪽에 있기도 하여 비록 같지 않지만, 모두 황도를 따라 움직일 뿐입니다. 달이 운행하는 길도 비록 같지 않지만, 또한 항상 황도를 따라 해의 곁으로 나올 뿐입니다. 초하루에는 해와 달이 같이 하나의 도(度)에 있습니다. 보름에는 해와 달이 극히 멀어져 서로 마주 보고 있습니다. 상현과 하현에는 해와 달의 위치가 가까운 쪽은 4분의 1이 되고 먼 쪽은 4분의 3이 되는 것입니다.예컨대 해가 남쪽에 있을 때 달이 동쪽에 있거나 혹은 서쪽에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초하루〔合朔〕에 해와 달이 동서로 비록 같은 도에 있더라도 달길〔白道〕이 혹 남북으로 해로부터 조금 멀어지면 식(蝕)은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또 남북으로 비록 서로 가깝더라도 해는 안쪽에 있고 달이 바깥쪽에 있다면 식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는 바로 촛불을 든 사람과 부채를 든 사람이 서로 교차하여 지나가는데, 안쪽에 있는 사람이 볼 때 그 두 사람 간의 거리가 조금 멀다면 비록 부채가 안쪽에 있고 촛불이 바깥쪽에 있더라도 부채가 촛불을 가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 촛불 든 사람이 안쪽에 있고 부채 든 사람이 바깥쪽에 있다면 비록 서로 가까워도 부채는 역시 촛불을 가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추측해 보면 대강 알 수 있습니다. 이 설은 《시경》 〈시월지교〉에 있습니다. 공영달의 소에 말한 것이 대단히 자세합니다. 이우중이 인증한 것도 또한 넓으니, 아울러서 검토하여 보시면 마땅히 그 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朱子大全 卷45 答廖子晦》 《주희, 주자대전 권45, 주자대전 번역연구단 옮김, 전남대학교 철학연구교육센터, 2010》

P.S. 2
[아서 웨일리의 장춘진인서유기 영문 번역 中]
A number of Chinese came to pay their respects, an they once had an astronomer with them. He asked this astronomer about the eclipse on the first day of the fifth month. The man said: "Here the eclipse was at its full at the hour of the Dragon, when it covered three-fifths of the sun."
"We were by the Kerulen River", said the Master; "the eclipse was total towards mid-day. But when we came south-west to the Chin Shan, the people there said that at the hour of the Snake it reached its greatest extent, covering seven-tenths. Thus in three places it was seen in three different ways. K'ung Ying-ta (574-648 A.D.), in his commentary on the Springs and Autumns says that when the moon comes between us and the sun, there is an eclipse of the sun. In the present case only those who were in a direct line with the sun and the moon, experienced a total eclipse. By those away from this line the eclipse is seen differently, the gradual change becoming considerable at a distance of a thousand li. It is just as though one covered a candle with a fan. In the direct shadow of the fan there is no light, but the further one moves to the side, the greater the light becomes."
(The Travels of an Alchemist - the Journey of the Taoist Ch'ang-Chu'un from China to the Hindukush at the summons of Chingiz Khan. Translated by Arthur Waley. London, George Routledge & sons, Ltd., 1931. Rpt. by Routledge, 2004, pp. 94-95)

P.S. 3
1221년 5월 23일의 일식은 고려의 기록에도 간락하게나마 남아있습니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