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뇌피셜과 갈리아 전기 Recipes Project: 사후약방문

고대 브리튼 사람이 "대청"이라는 식물의 염료로 몸을 염색했다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컨대 YOKL님의 사실에 약간 근거를 둔 내멋대로 켈트족 포스팅.)

그런데 고고학계와 최근 역사학계에선 이 "대청 염료설"에 회의적인가 봅니다.
제가 좋아하는 레시피 프로젝트(Recipes Project) 합동 블로그에서 읽은 게시물을 번역해 소개합니다. 


필자 소개

조디 리브스 아이어(Jodi Reeves Eyre)는 엑세터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아리조나 주립대학에서 CLIR/DLF 데이터 큐레이션 펠로우로 있었다. (2013-2015). 조디는 또한 연구, 편집, 디지털 큐레이션 컨설팅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Eyre & Israel, LLC사의 공동창립자다. 그녀는 문화유산 보존을 돕고 과거에 대한 인식과 사회적 기억을 탐구하고 있다. 다른 고고학자들과 함께 인류학 연구를 했으며, 고대 그리스 베틀 모형으로 베를 짜보았고, 인체를 파란색으로 칠해본 경력이 있다.

트위터: @thejodiree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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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느덧 뇌피셜(post-truth)의 시대에 살고 있다. 결정을 내리거나 입장을 정하는데 대안적 팩트가 "팩트팩트"만큼이나 영향력을 갖는 시대인 것이다. "대안적 팩트"라는 개념은 팩트 대신 감정적이거나 편향된 주장을 내세우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역사적인 전례가 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갈리아 원정을 기록하면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Al the Briton doe dye themselues wvth woade, which setteth a blewish color vppon them: and it maketh the more terryble to beholde in battell.
현대어역: All the Britons do dye themselves with woad, which sets a bluish color upon them: and it makes (them all) the more terrible to behold in battle.

"모든 브리톤 사람은 대청으로 몸을 물들이는데, 이로써 몸이 푸른 빛을 띤다. 그리고 이는 브리톤인을 전장에서 더욱 무시무시하게 보이게 한다."[1]

대청이 그토록 흔하게 쓰였다면 대청을 사용했다는 그럴싸한 고고학적 근거가 있을 법하다. 대청이 발견된 것은 드래건바이(Dragonby)의 철기시대 유적 한 곳이 있다. 이 유적에서는 대청이 씨와 껍데기 형태로 발굴되었는데, 철기시대 후기의 구덩이(pit)의 침수된 유물군(waterlogged assemblage)의 일부였다. 이 구덩이를 판 정확한 목적은 밝혀지지 않았다. 씨앗과 껍데기는 대청 식물을 재배하기 시작한 이유가 염료 때문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정황상 근거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염색에 필요한 재료인 대청 잎은 씨앗이나 껍데기만큼 잘 남아있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고학적으로 대청 이파리를 찾기 어렵다는 것은 우리가 드래건바이에서 대청 식물이 염료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탐색하는데 간접 증거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카이사르는 자신을 실력있는 군인으로 보이게 하고 승리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로마인이 갖고있던 사나운 야만인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을 불러일으켰을 수도 있다. 푸른색은 그리스-로마 문화에서 부정적인 색감을 갖고 있었다.
유령, 죽음, 그리고 보다 더 끔찍한 야만인과 연관짓는 색이었다. '푸른' 브리톤인이라는 편견이 담긴 묘사를 포함시킴으로써 카이사르는 풍속학적 서술 이상을 한 것이었다. 그는 기존의 선입견을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이용했다. 그러나 이 편견 담긴 묘사가 사회적 기억과 정체성에 끼칠 유구한 영향을 카이사르가 의도했는지는 의심스럽다. 오늘날에도 고대 브리톤 사람이 푸른 칠을 한 채로 묘사되는 것은 흔하다. 제한된 식물-고고학적 근거와 가능한 증거가 여기에 상반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푸르게 색칠한 전사의 이미지는 20세기 초부터 흔히 찾을 수 있다. 일례로는 "고대 브리톤인의 국가(National Anthem of Ancient Britons)[2]가 있고, 또다른 예로는 영화 브레이브하트[3]의 시대착오적인 묘사가 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묘사하는 것일까?

아무래도 전통적으로 그래왔기 때문이다. 위에서 인용한 카이사르의 갈리아전기의 1565년 영역본은 vitrum이라는 라틴어를 대청(woade, 학명: Isatis tinctoria)이라고 번역했다. 이 번역은 아서 굴딩(Arthur Goulding)이 한 것인데, 내가 찾아낸 가장 이른 사례다. 길리언 카(Gillian Carr)와 몇몇 다른 번역가는 "유약을 발라 몸을 염색했다" 혹은 "유리로 물들이다" 등의 다른 번역안을 제시했다. 그렇다면 vitrum이 이 맥락에서 대청이라고 흔히 번역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청은 중세시기에 몇몇 영국 수도원이 재배하던 중요한 작물이었고 16,17세기에는 영국의 핵심작물이었다. (국내 시장을) 잠식하는 외래 상품에 대항하는 방법으로, 자랑스러운 "토종" 대안 상품의 문화적 중요성을 강조하기 만큼 좋은게 또 있을까? Vitrum을 대청이라고 번역하는 것이다.

카이사르는 (브리톤인이 대청으로 몸을 치장했다는) 서사를 형성하는데 역사적인 독점권을 주장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심지어 카이사르는 자기자신을 둘러싼 서사를 형성하는데조차 독점권을 주장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대 영국에서 대청을 사용했다는 근거가 한정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vitrum을 대청이라고 번역한 역사적 흐름을 설명할
이유에 뒷받침할만한 근거도 한정되어있다.
[4]

오역의 위험과 고고학적, 문헌적, 회화적 근거의 부족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진짜 대청으로 몸을 칠할 수 있나?"라는 질문에 관심을 갖는다. 

제조법이나 재현할 수 있는 근거가 없는 이상, (대청을 이용한) 실험은 주로 다른 염료의 제조법과 다른 조건과 상황 하에서 과거에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달려있다. 대청이 염료라는 것은 잘 알려져있다. 또한 피부에 칠할 수 있으며, 착색제에 대청을 넣어서 염료를 만들 수 있다는 것도 알고있다. 몇몇 실험은 대청이 우리가 인식하는 대청의 색깔과 용도에 비해, 신체를 염색하거나 문신하거나 물들이는 식으로 치장하기에는 나쁜 선택지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 연구 결과를 재현하고 싶거나, 자체적으로 연구를 하고 싶다고? 카(Carr)는 자신의 실험을 설명한 논문을 냈고, 내가 시도한 방법론과 제조법은 아래 주석에 링크를 걸어놓았다.[5] 대청과 다른 염료를 이용해서 피부를 파랗게 칠하거나 염색해본 다음 효과가 있는지 직접 확인해보라.[6]

연구와 실험 결과를 공유하는 것은 근거의 비판적인 활요을 통해 (파란 브리톤인 같은) 잠재적인 대안팩트의 유행을 막는 한 방법이다. 제조법이나 물질적인 유물의 부재는 (재현에) 어려움을 주지만, 다른 재료와 방법의 탐색을 부추기는 기회이기도 하다. 혼란스럽고 지저분하다고도 할 수 있는 영국 대청의 역사도, 카이사르 저작의 번역사를 탐구할 기회일뿐만 아니라 정체성과 사회적 기억이 어떻게 식물과 인간의 관계에 반영되는지 탐구할 기회이기도 하다. 동시에 대청의 활용법(혹은 잘못 활용하는 법)을 탐구할 수 있는 흥미로운 맥락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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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aesar, Julius. The Eyght Bookes of Caius Iulius Cæsar Conteyning His Martiall Exploytes in the Realme of Gallia and the Countries Bordering Vppon the Same Translated Oute of Latin into English by Arthur Goldinge G. (London: Willyam Seres, 1565), http://quod.lib.umich.edu/e/eebo/A17521.0001.001?view=toc, Book V.

[2] 영국 보이스카우트 초창기 (1920년대)에 불리던 국뽕 노래. (아래는 가사 중 일부)

Romans keep your armours;
Saxons your pyjamas:
Hairy coats were meant for goats,
Gorillas, yaks, retriever dogs and llamas.
Tramp up Snowdon with our woad on:
Never mind if we get rained or blowed on.
로마인들이여, 갑옷을 그대로 입어라
색슨인들은 파자마를 그대로 입어라
털가죽은 염소랑,
고릴라 야크 리트리버 라마를 위한 것
우리는 대청을 바른채 스노우던 산(웨일즈에서 가장 높은 산)을 올라
비가 오건 바람 불건 상관이 없어

보이스카우트도 시작은 삼족오 유겐트였던 것이다;;

[3] 

[4] 이 문단은 말이 좀 어려우니까 다시 설명하자면,

브리톤인이 대청으로 몸을 치장했다는 서사를 만들어낸건 카이사르 혼자의 작업이 아닐지도 모른다. (당대 로마인들과 후대 사람들이 끊임없이 같은 서사를 재생산했다.) 심지어 카이사르를 둘러싼 영웅서사도 카이사르 본인이 갈리아전기에 쓴 자기자랑 뿐만아니라, 동시대/후대 사람들이 만들어내고 재생산한 것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대 영국에서 대청으로 몸을 염색했다는 근거가 적은 것과 마찬가지로, vitrum을 대청이라고 번역한 것이 영국인들의 신토불이 운동이었다고 주장(필자의 주장)할 근거도 사실 적다.

[5] 조디 리브스 본인의 석사논문(pp. 31-53)

[6] 근대 과학적 사고의 시작은 "지식을 얻는 가장 믿을만한 방법은 고대 텍스트가 아니라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스스로 찾는 것"이라는 생각. (self_fish님의 루터의 유산: 종교 반란은 과학을 탄생시켰을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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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주석은 원래 영문 게시글과 다르게 제가 직접 역주 위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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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해색주 2018/01/20 23:19 # 답글

    픽트족의 경우 그렇게 몸에 색칠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걸 차용한게 아닌가 싶던데 말이죠.
  • 하니와 2018/01/21 08:01 # 삭제

    오히려 그 반대로, 픽트족이란 놈들을 잡고 보니 색칠을 안하고 있어서 개선식 할 때는 색칠을 해서 내보였다는 설이
  • 남중생 2018/01/22 02:20 #

    조디 리브스 아이어 선생님도 일단 파란색으로 몸을 칠한건 부정하지 않고있는것 같습니다. 다만 그 재료가 “대청(woad)”이라는건 팩트체킹 없이 그저 번역과정에서 생겨난 설정이라는것이죠.

    하니와 님의 말처럼, 공식행사에 싱징적으로 보이기 위해 일부러 더 고정관념에 부합하는 모습을 했을 가능성도 있어보입니다. 스코트랜드의 킬트 치마처럼 말이죠.
  • 남중생 2018/01/22 01:07 # 답글

    참고: 갈리아전기의 해당 내용을 직접 찾아보시려면, 라틴어 문법 상 vitro라고 검색하셔야 할것입니다.^^

    위 인용문에 해당하는 라틴어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Omnes vero se Britanni vitro inficiunt, quod caeruleum efficit colorem, atque hoc horridiores sunt in pugna aspectu"

    혹시나 혼란이 있을까 싶어 올려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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