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네덜란드 풍설서] 항해 전에 바타비아에서 미리 써서 갔을까? (20-26) 아란타 풍설서

지난 포스팅 [네덜란드 풍설서] 에도 막부가 보고받은 프랑스 혁명 中 생략된 제 1장의 내용을 번역합니다. (아래 본문 중 ©참조)

이듬해 1794년의 풍설서는, 제1장에서 소개했듯이 "하나, 작년 말씀드린 프랑스국 전쟁은 아직 평화가 오지 않았으니, (후략)"라고 되어 있는데, 혁명보다는 프랑스 주변 여러 나라와의 전쟁을 주로 삼은 서술 방식이다. 1794년에 프랑스 혁명군의 침공을 받은 네덜란드로서는, 혁명보다도 전쟁 쪽이 중대한 관심사였다.

제1장에서 마츠카타 후유코 선생님은 네덜란드 풍설서를 둘러싼 논란에 대한 의견을 밝힙니다. 미리 바타비아에서 원본을 작성해서 나가사키로 가져가 번역만 하는 것인지, 나가사키에 가서 새로 작성하는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죠. 
빨간 색으로 표시한 부분을 보면 알 수 있다시피, 마츠카타 선생님은 이 "원본 존재 유무" 논란에서 "원본은 없다"고 주장하시는 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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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설서의 초고본

대대로 네덜란드 통사(通詞, 역관)을 맡은 모토키(本木)가문[1] 에는 모토키난문(本木蘭文)이라고 통칭되는 한 무리의 문서가전래되어 내려온다(나가사키 역사문화 박물관 소장). 그 책자 중 하나에 "올 토끼 해 풍설을 올린 서양글(当卯年風説申上候横文字)"이라는 부전(付箋)이 붙은 네덜란드어 문서가 들어있다. 
이 문서는 1795<칸세이(寛政) 7, 묘(卯)>년에 네덜란드선이 가져온 정보라고 인정되고 있다. 붓과 먹으로 썼고 네덜란드어 문법상의 오류가 곳곳에 보이기 때문에 통사가 쓴 글일 것이다. 

디트마르 스미트(Ditmar Smith) 선장이 지휘하는 동인도회사의 선박 웨스트카펠레(Westkapelle)[2]가 바타비아에서 가져온 소식
〔①〕작년 일본에서 출범한 엘프프린스(Elfprins)[3] 호는 1795년 1월 1일<칸세이(寛政) 6년 윤11월 11일>바타비아에 도착했다.
〔②〕이 배 웨스트카펠레 호는 1795년 6월 13일<寛政7년 4월 26일>에 바타비아에서 출범했다.
〔③〕윌렘 알팅(Willem Alting) 총독은 동인도 총독부의 다른 여러 고관(高官)과 마찬가지로 건강하다.
〔④〕러시아인은 터키나 그 밖의 여러 나라와 평화를 지키고 있다. 
〔⑤〕프랑스인은 작년과 마찬가지로 전쟁상태다.
〔⑥〕티칭 각하는 황제폐하(건륭제)께 대사(大使)로 부임해 중국에서 특별한 후대를 받았다.
〔⑦〕선장 슈미트는 일본으로 항해하던 도중 중국의 정크선을 전혀 목격하지 않았다. 그러나 바타비아에서 일본까지 오다가 중국으로 향하는 정크선 한 척을 만나 호송했다. 


말미에 있어야할 날짜 따위가 빠져있기 때문에, 이 사료가 정식으로 제출된 문서의 사본이 아니라는 것은 명확하다. 초고본이라기보다는 번역의 준비를 위한 문서였을 것이다. 원래부터 7개조였다고 생각한다. ⑦의, 일본으로 항해하는 도중에 정크선을 목격했는지 여부는 "통상적인" 풍설서의 말미에 쓰는 것이 통례(通例)이기 때문이다. 당연하지만 항해도중에 정크선을 만났는지 여부는 일본에 도착할 때까지는 알 수 없다. 이것도 "통상적인" 풍설서가 나가사키에서 작성되었다고 생각하는 근거의 한 가지다. 참고로 정크선이란 일본인이 당선(唐船)이라고 부르던 배를 말한다. 17세기에는 샴(태국) 왕실이 마련한 정크선도 있었지만, 주로 화교 자본의 무역선이다. 출항지는, 18세기 전반까지는 중국에서 동남아시아에 걸친 넓은 해역을 아우렀지만, 18세기 중반부터는 중국(특히 장강長江 하류의 사포乍浦)에 한정되다시피 한다.
그렇다면, 같은 해에 작성된 일본어(和文) 풍설서와 대조해보자. 상당히 내용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풍설서
〔ⓐ〕하나, 올해 내조한 아란타(阿蘭陀) 선 한 척, 4월 20일 교류파(口+留吧)를 출항하여, 해상에서는 별일없이, 오늘 이 땅(에) 정박(着岸)했습니다. 그 밖에 함께 온 배(類船)는 없습니다.
〔ⓑ〕하나, 작년 이 땅에서 귀항한 배가 윤11월 11일 해상에서 지체 없이 교류파(口+留吧)에 도착했습니다.
〔©〕하나, 작년 말씀 올린 프랑스국 전쟁은 아직 평화가 오지 않았기에, 인도 주변 여러 상관(商館)에 파견되었던 역인들(役々之者共)이 지금으로써는 그대로 갇혀있다고 합니다.
〔ⓓ〕하나, 이 번에 바다에서 당선(唐船)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 밖에는 변함이 없고 풍설이 없습니다.

카피탄
게이스베루토 헴미이[4]

위의 내용은 선장(船頭) 아란타인이 입으로 말하고, 카피탄이 삼가 전해 드립니다. 일역(和解)하여 올려드립니다. 이상.
통사 메츠케(通詞目付)
토끼 해 6월 6일 (卯六月六日) 
통사(通詞)

(『和蘭風説書集成』)

막부에 제출한 일본어 풍설서(和文風説書)는 4개 조항 밖에 없다. ③, ④, ⑥은 채용되지 않은 것이다.
남은 부분을 보도록 하자. 초고본의 ②가 일본어본의 ⓐ에, ①이 ⓑ에 해당한다. 다만, 바타비아 출범의 날짜는 4월 26일이 아니고 20일로 되어 있어, 날짜계산에 착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현재의 자카르타는  원래 카라파라고 불렸다. 훗날 자카르타라고 개명되고, 거기서 또 네덜란드인이 점령하여 바타비아라고 개명된다. 일본인은 이 마을을 에도시대 동안 카라파(口+留), 또는 쟈카토라, 쟈가타라(ジャカトラ, ジャガタラ, 자야카르타의 와전)이라고 불렀다.
⑤는 일본어의 🄫에 해당한다. 그러나 ⑤의 내용에 더해서 인도의 여러 상관(商館)에 부임한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직원들은 아직 그곳에 갇혀있다고 쓰여있는 점이 주목된다. ⑦은 앞부분만 채용되어, ⓓ의 이번에는 해상에서 당선唐船)을 보지 못했습니다라는 표현이 되었다. ⑦의 후반은 삭제되어, 그 밖의 특별한 풍설은 없습니다, 라는 말로 바뀌었다.
풍설서가 날짜와 서명이 있는 정식의 네덜란드어 원문이 배에 실려(舶載) 와서, 그것을 번역한 종류의 문서라면 이 만큼 커다란 차이가 생겨날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삭제된 조항을 포함해, 내용의 가감 및 수정(加除修正)은 통사(通詞) 혹은 나가사키 부교(奉行)의 판단으로 실행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러한 판단의 근거는 알기 어렵다. 특히 ⑥은、네덜란드가 중국 황제에게 약 100년 만에 정식 사절을 보냈다는 중요한 기사인데, 어째서 번역하지 않은 것인지 알 수 없다. 이전에 일본에서 상관장을 맡았던 이삭 티칭(1744-1812)[5]이 사절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출처: 松方冬子, オランダ風説書, (中公新書, 2010), pp.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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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너스 시리즈 중 가장 최근 포스팅에서도 타이먼 스크리치가 "유서깊은 통역사 집안"이라고 소개한 적이 있죠?

[2] 디트마르 스미트 선장이 지휘한 웨스트카펠레 호 뿐만 아니라 동인도회사의 모든 선박은 VOC 사이트에서 조회할 수 있다. 네덜란드 놈들...ㅂㄷㅂㄷ

[3]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 뜻이 맞다.

[4] Gijsbert Hemmij - 부임 기간: 1792년 11월 13일 - 1798년 7월 8일

[5] 이삭 티칭에 대해서는, 적륜 님의 
를 참조.

또, 타치바나 난케이의 서유기 中 84. 기기 (네덜란드)에 언급된 이사아테츠신키(イサアテツシンキ)와 동일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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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迪倫 2018/01/20 02:33 # 답글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자야카르타 Jayakarta는 켈라파가 바타비아가 되기전 대략 100년간 불리던 이름이고, 자카토라 Jakatra / Jacatra 는 당시 네덜란드어 표기입니다. 자야카루타/자카토라 둘다 자카르타의 역사적 표기 맞습니다. ㅎㅎ
  • 남중생 2018/01/20 02:35 #

    헉, 자야카루타도 있군요;;; 제가 성급해서 생긴 실수입니다.
    일본어로 쉽게 날 수 있는 오타같이 보여서 그만...
  • 迪倫 2018/01/20 02:39 #

    제가 주말에 티칭의 청황제 접견에 대해 글 하나 올려볼게요. 남중생님 이번 글에서 관련부분 인용해도 될까요?
  • 남중생 2018/01/20 02:41 #

    그나저나 이번 번역하면서 "이삭 티칭과 건륭제, 그리고 조선 연행사!!!"가 다시 떠오르면서 두근두근했습니다.
    천문대도 있고, 키르허도 있고, 티칭도 있군요.(헥헥)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남중생 2018/01/20 02:42 #

    앗 맙소사... 말과 생각이 겹쳤군요! (역사는 이런 우연으로 굴러간답니다~)
    네, 물론입니다! 인용해주시면 제 영광이죠.
  • 迪倫 2018/01/20 04:53 #

    티칭은 얘기가 짧으니까 괜찮은데 키르허는 거의 시리즈가 될것같아 손을 어디서 대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포스팅도 하신만큼 티칭 얘기라도 주말에 올려보겠습니다.
  • 3인칭관찰자 2018/01/20 21:11 # 답글

    초고본에 있던 내용 상당수가 풍설서엔 빠져 있군요. 이 경우엔 역관 / 나가사키 행정관이 더 많은 정보를 갖고서 이를 취사선택하여 막각&쇼군에게 풍설서로 제출했단 말이 되려나요...
  • 남중생 2018/01/22 18:09 #

    네, 마츠카타 선생님은, 오란다 통사와 카피탄&선장 간의 (서면이 아닌) 대면 질의 시간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풍설서 작성 => 카피탄은 명목상 서명 => 막부 제출, 이라는 이야기입니다.또 "풍설서만으로 유통되는 것 이상의 해외 정보"라는게 분명히 에도시대 일본사회 내에 존재하기도 했고요. 원본 유무 논란에 대한 나머지 부분도 때가 되면 번역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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