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또다른 서유기, 도교 테러리스트(?), 그리고 14세기 베트남의 뇌법! 뇌법! 鬼를 울리는 천둥소리

제가 약 2년 전에 번역/연재한 Judith Boltz의 Not by the Seal of Office Alone(, , )이 있습니다. 
도교 특정 종파가 화약을 이용해 타 종파의 사원이나 숭배대상이 되는 커다란 나무 등을 제거했다는 주장을 소개했었죠.

여기서의 흥미로운 점은 성황당에서 향을 피우는 것에 따라 일어난 파괴적인 천둥이다향을 태우는 것이 어떻게 우레 같은 불길을 일으킬  있을까? 19 말에 예수회 신부  베드로(Pierre Huang) 똑같은 의문을 품었다. 그는 호남성(湖南省)에서 출간한 지방지(地方志, gazetteer)에서, 보다 후대에 쓰인 살수견 일대기를 인용하였다. 그에 의하면, 천둥소리와 화재의 근원은 화약의 사용에서 오는 것임에 틀림없다필자는  가설에 뇌법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확신한다.
(Boltz, pp. 285)

뇌법(雷法, thunder rites)이라는 술법이 사실은 화약무기였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과거 연재에 이어서, Judith Boltz가 언급하지는 않지만 관련있다고 여겨지는 두 기록을 소개합니다.
두 기록 모두 도교 전문가가 등장하며, 폭발적인 도술을 사용하지요.


우선 첫번째 소개드릴 기록은 "서유기"입니다. 손오공, 사오정 나오는 서유기도 아니고, 제가 연재하는 타치바나 난케이의 서유기도 아닙니다. 바로 장춘진인서유기(西)입니다. 

은 경지의 도사(道士)로 이름을 날리던 장춘진인 구처기(機, 1148~1227)가 1220년, 칭기즈칸의 부름을 받고 당시 서역정벌 중이던 칭기스칸의 군막까지 찾아갔다가 다시 베이징(연경)으로 돌아오는 여정의 기록입니다. 
(정수일 선생님의 실크로드 사전에는 사마르칸트까지 갔다고 적혀있는데, 아무다리야 강을 건너갔다가 다시 건너오기 때문에 사실 더 멀리 찍고 왔습니다.)

 
자, 그럼 아래 발췌문을 보시죠.
여기서 "스승님"은 장춘진인(人)고, 글쓴이는 그의 제자 이지상()입니다.


1227년 청명절 (양력 3월 29일)

그날 저녁 큰 비가 북쪽으로부터 내려와서 천둥번개가 화난듯이 함께 내리쳐 온세상을 밝게 비췄다. 스승님께서 말씀하시길: "이는 도의 작용이야. 득도한 사람이 위광을 떨쳐 번쩍이니, 도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구나(無乎不在). 이 천둥번개는 평범한 것일 수가 없어."라고 하셨다.
밤이 깊어서 손님을 파하고 스승님께서는 초당에 누워서 쉬고 계셨다. 수유(須臾) 간에 비바람이 들이치고, 한 차례 천둥이 창문을 찢으려는 듯이 흔들더니, 조금 있자 소리가 잦아들었다. 사람들은 모두 이에 놀라, 혹자는 말하기를 "천둥소리란 점점 다가오는게 마땅하거늘 어찌하여 한 번 일고 잠잠한가."하니 누군가 대답하기를 "지인(至人)이 여기 있으니, 뇌사(雷師)가 노여움을 거둔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하였다.       

On the evening of that day heavy rain came up from the north and there was a most alarming thunderstorm which seemed to fill the whole sky with blaze and din. The Master said: "This is an application of Tao. Some man who has obtained Tao is flashing upon us his majestic light. It cannot be otherwise. Ordinary thunder and lighting are not like this."
It was very late before the guests scattered. The Master lay down to rest in a humble thatched room. Presently there was a violent squall of wind and rain, and a clap of thunder so loud that the doors and windows were shaken almost to bits. But in a moment the noise completely stopped. Every one was surprised at this, for thunder usually grows louder and louder, and does not come in one huge clap, only to disappear. But to this someone replied that the presence of a holy man in the place had overawed the God of Thunder.
(The Travels of an Alchemist - the Journey of the Taoist Ch'ang-Chu'un from China to the Hindukush at the summons of Chingiz Khan. Translated by Arthur Waley. London, George Routledge & sons, Ltd., 1931. Rpt. by Routledge, 2004, pp. 146)


떤가요?


"스승님"께서 직접 "득도한 사람(得道之人)"이 천둥을 일으키고 있고, "이 천둥번개는 평범한 것일 수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목격자도 "천둥소리란 점점 다가오는게 마땅하거늘 어찌하여 한 번 일고 잠잠한가."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고 있죠.
무엇보다도 천둥을 유발하는 "득도한 사람"이 뇌사(雷師)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Judith Boltz의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자면, 이건 타 종파의 도교 테러리스트가 장춘진인이 머물던 초당에 폭탄 테러를 행하려다가 실패한 기록일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해석에 반대하고, 이 사건에서 화약무기가 사용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천둥을 동반한 비바람이라는 자연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죠.
또 이 일화가 수록되어있는 부분을 전후해서 "스승님"께서 날씨를 자유자재로 부린 것으로 언급되는 사례가 여럿 나와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 부분은 책 속에서 "장춘진인이 날씨를 조종한 여러 기적"을 증언하는 부분인 것이죠.

그러니, 화약무기보다는 실제 비바람이 몰아침 밤이라고 보는 것이 더 설득력있습니다.
천둥이 갑자기 조용해지자, 사람들이 장춘진인(至人) 덕분이라고 말한 것이고, 또 이걸 내세워서 스승님의 훌륭함을 자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2번째 기록으로 넘어가봅시다.
이 이야기는 중국이 아니라 베트남을 배경으로 합니다.

목면나무 이야기 (木綿樹傳) - 1330년 (1547년 기록)

(전략)
강가에는 절이 있었는데 절에는 수령이 백년쯤 된 목면나무가 서있었다. 둘의 혼백은 마침내 이 나무에 달라붙어 요괴가 되었다. 나무를 베려고 하면 도끼만 부러질 뿐 꿈쩍도 하지 않았다.
진(陳) 개희(開禧) 2년[1]에 어떤 도인이 나무 옆의 절에 묵고 있었다. 당시 강물은 차고 달빛을 맑고 천지가 고요했는데 두 남녀가 발가벗고 다니면서 웃고 떠들었다. 잠시 후 그들이 절에 와서 문을 두드렸다. 도인은 그들이 봄바람 난 남녀로서 달빛 아래에서 서로를 부르는 것이려니 했으며, 행실을 추하게 여겨 문을 굳게 닫고 나가지 않았다. 다음날 그는 동촌의 노인에게 자기가 본 바를 전부 이야기하고 백성들의 풍속이 천박한 것을 한탄하였다. 

그러자 노인이 말했다.
"아이구. 이 요물이 오래된 나무에 붙어산 지 이제껏 여러 해라오. 어찌하면 사악한 귀신을 베는 칼[2]을 얻어다가 백성들을 위해 악의 근원을 없앨 수 있을지..."

도인이 한참 생각하더니 말했다.
"사람을 구제하는 것이 제 본분입니다. 일이 이 지경에까지 이른 것을 제가 이미 목도했으니 만약 손을 쓰지 않는다면 이는 물을 빠진 사람을 보고도 구하지 않는 것과 같겠지요."

그리하여 마을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제단과 의자를 준비한 다음 세 개의 부적을 써서 하나는 나무에다 붙이고 또 하나는 강에 던지고 마지막 하나는 공중에 불태웠다. 그리고 나서 도인은 엄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요물이 이 나무에 오랫동안 의지하여 방자하게 굴었으니 신병(神兵)의 힘을 빌려 이 요물을 없애 버리고자 한다. 도술은 통하지 않는 곳이 없으니 불길은 빨리 일어나라!" 

잠시 후 구름과 흙비가 몹시 거세게 일어나 지척을 분간할 수 없었고, 큰 파도가 우레치듯 들끓어 천지가 진동했다. 이윽고 바람이 그치고 차츰 구름이 걷히면서 날이 개었다. 목면나무는 뽑혔으며 그 나뭇가지는 부러지고 불타서 갈가리 찢긴 형상이었다. 공중에서는 연신 채찍질하는 소리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머리가 소대가리처럼 생긴 6,7백 명의 신병이 두 사람의 목에 칼을 씌워 잡아가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감사의 표시로 도인에게 많은 재물을 주었으나 도인은 옷을 떨치며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깊은 산으로 들어가 버렸다.
(박희병 譯 전기만록傳奇漫錄, pp. 4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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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문은 陳 開禧 庚午歲. 사실 개희(開禧)라는 연호는 존재하지 않고, 1330년의 연호는 개우(開祐)다. 형태가 비슷한 글자(祐=>禧)로 피휘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후 도울 우(祐)자가 사용되는 연호는 1557년 한 해만 사용된 천우(天祐)라는 연호다. "전기만록"에는 1547년 1월에 쓴 서문이 붙어있지만, 이후의 추가된 내용일 가능성도 있다.

[2] 14세기 식 "죽창... 죽창이 필요하다!"
조선의 벽사용 검, 삼인검(三寅劍)이 소개된 역사관심 님의 포스팅도 참조.

陳 開禧 庚午歲, 有道人宿樹傍古刹, 時江寒月淡, 萬籟俱寂, 見二人, 裸逐笑移時. 俄就禪關扣門. 道人疑其懷春男女, 乘月相招, 且醜其爲人, 閉門堅臥. 翌日, 就村中老叟, 備言所見, 且嘆民風偸薄. 叟曰: "! 此妖物依憑古樹, 于今有年, 安得斬邪之劍, 爲斯民斷此惡!" 道人沈吟良久, : "我以濟人爲業, 事有至此,已曾面覩, 若不垂法手, 是見溺而不援也." 乃召鄕人, 具嚴壇法椅,書符三道, 一釘之樹側, 一沈之江中, 一則當空焚碎. 宣行畢, 卽厲聲曰: "此間淫崇, 久矣憑陵, 假爾神兵, 翦除凶醜, 法無담滯, 火速奉行!" 有頃, 漲浮, 咫尺不辨; 洪波震蕩, 聲動天地. 俄而風止, 稍稍開霽, 則木綿已拔, 枝枷碎爛, 如裂麻之狀. 繼聞空中有鞭撾泣哭聲, 衆人仰視, 見牛頭駄卒, 可六七百人, 枷二人去矣.

鄕人以財厚贈, 道人拂衣不顧, 竟入深山去矣.



베트남의 기이한 옛이야기 - 10점
완서 지음, 박희병 옮김/돌베개


이번에는 어떨까요?


저는 적어도 Judith Boltz가 묶은 뇌법 문학 군(群)에는 들어간다고 하겠습니다.

명확한 "도사"가 등장하고, 부적을 사용할 뿐만 아니라, 사람을 괴롭히는 나무 귀신을 제거하는 등...

Boltz가 언급한 여러 특성이 잘 부합합니다.



▲Boltz, 280 페이지에 실린 뇌법 부적의 예


그렇다고 해서 이게 폭약으로 목면나무를 날려버린 이야기라고 확신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죠.


무엇보다 저는 이 이야기 뒤에 숨겨진 진위를 밝혀내기 보다는 도사가 이런 나무나 건물을 날려버리는 이야기 군(郡)을 발굴/수집하는 것이 더 의미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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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진냥 2018/01/11 09:03 # 답글

    이거 재미있네요! 훌륭한 관리가 음사를 박살내는 이야기는 종종 봐왔지만, 이러한 이야기 군은 생소하여 저의 과문함을 뼈저리게 느낍니다ㅠㅠ

    ...아, 그다지 상관없는데 지금 읽는 책에 인용하신 서유기 내용을 전거로 들어 칭기스칸이 일생 구처기를 흠모했으며 그가 죽기 직전 말한 '하늘의 사람'이 구처기일 거라는 해석이 있던데 사... 사실일까요..
  • 남중생 2018/01/11 11:10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마 Not by the seal of office alone이라는 제목부터 “유교 관리”의 공권력만으로는 부족할때, 홀연히 도사가 나타나서 도술로 폭파!시키는 이야기 군이 있다고 소개하려는 의도 같습니다.

    칭기즈칸이 구처기를 흠모했다는 것은 사실로 보입니다. 70세가 넘은 노인을 저렇게 멀리까지 불렀으니까요ㅎㅎ 그런데 칭기즈칸의 유언 이야기는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혹시 읽고 계신 책 제목과 유언의 출전을 알려주실 수 있으세요??
  • 남중생 2018/01/11 11:10 #

    일단 “하늘의 사람”이라는 표현만 보고 단편적으로 드는 생각은 텡그리 신앙을 표현한게 아닌가 싶네요.
  • 진냥 2018/01/11 12:20 #

    [조선과 몽골](박원길)입니다! 76페이지입니다 ㅎㅎ
    저도 텡그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 인용한 내용도 전진교도의 기록이라고 하니 그야 자기 교파의 시조에게 딜 넣을 수밖에 없겠지요...
  • 남중생 2018/01/11 15:35 #

    네... 한번 찾아봤는데, 제가 소개한 “천둥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전진교도의 우리 스승님 자랑~이 아닌가 싶습니다.ㅋㅋ

    참고로 76페이지 맨 아래에 인용된 열하일기의 “원나라 세조의 국사”라는 설명은 박지원의 착오입니다. 바로 다음 페이지(77)에 나와있듯이 쿠빌라이 칸은 티벳 불교를 우대했고 전진교는 오히려 대대적으로 탄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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