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뒤집힌 일본어, 밀수된 소품? - 이름 없는 별들 (1959) 내가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영화는 1959년 작으로, 1929년 식민지 조선의 전라도 광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촬영 당시 30년 전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죠.

이 게시물의 마지막 사진부터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바로 성진회 모임의 한 장면이었죠. 지난 포스팅에서는 뒷배경에 있는 중국 국민당 포스터의 정체를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화면 중앙에 있는 초점을 맞춰봅시다. 
양초가 세워져있네요. 무슨 상자 위에 올려놓은 것 같은데...
주전자랑 컵에 가려서 잘 안보이신다고요?

이제 보니 양철 상자를 뒤집어 놓았군요.
이미 눈치 빠르신 분들은 알아채셨을지도 모르겠지만, 확실히 하기 위해 화면을 뒤집어서 보여드리겠습니다.


네, 바로 일본의 대표 조미료 아지노모토() 상자였습니다.

기하학적 덩굴무늬(당초문)를 이용한 "직사각형 속 타원" 디자인,
맨 위의 앞치마를 두른 "미인 마크"
큼지막한  로고와 그 위의 AJI-NO-MOTO라고 써있는 알파벳 표기
그리고 그 아래에 기재되어 있는 상호 및 용량(무게) 정보 등등...

디자인 요소가 대체로 일치하는 군요. 

그렇다면 역사적 상황과도 일치할까요?
저런 양철 깡통을 이용한 아지노모토 용기는 1926년부터 도입되었다고 합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광주 학생 항일운동은 1929년!

그리고 근대 화학과 함께 탄생한 일본의 화학 조미료는 그 식민지(조선, 대만)에서도 활약했습니다.

남대문 근처에 위치한 아지노모토 조선 사무소(1931년 8월 20일~1943년 7월). 현재는 건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조선에 많은 냉면집과 설렁탕 집에서 국물을 내는데 많이 사용했다고 하지만, 중국집에서도 많이 썼나봅니다.
분명히 이런 식민지 조미료史가 있으니, 영화도 고증을 하려고 소품을 쓴 것이겠습니다만...

▲서호철 역, 대지를 보라 中 아지노모토 광고

대지를 보라 - 10점
아카마 기후 지음, 서호철 옮김/아모르문디


그.런.데. 

여기에는 옥의 티가 하나 있습니다. 
제가 제목에 "뒤집힌 일본어"라고 쓴 것은 단지 상자가 뒤집혀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무슨 뜻이냐고요? 아래 사진을 보시죠.
 
(사진 출처: http://blog.goo.ne.jp/tetsuro_adachi/e/ef6c2bd7255b5e3cb7afbc4a955726d3)

아지노모토 그룹 연수센터 내에 있는 박물관(AJINOMOTO 食とくらしの小さな博物館)입니다. 
맨 오른쪽에 있는 용기가 "이름없는 별들"의 시대배경과 정확히 일치하는 1929년 것이긴 한데,
누워있어서 잘 안보인다면 서있는 대형/중형 용기(1935년)과 비교해도 좋습니다.

영화 속 아지노모토 통에는,                                     
      
         (좌횡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는 가로쓰기)                               

실제 1920-30년대의 용기에는,
   
    素味     (우횡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는 가로쓰기) 

인 것입니다.

그럼 영화 속 아지노모토 용기처럼 상호표기가 우횡서에서 좌횡서로 변경된 건 언제일까요?
저도 확실하지는 않지만 1940년대(더 정확히는 41년 이후 50년 이전)로 보입니다.

1941년 골판지 아지노모토 용기(좌 50g, 우 200g). 전쟁으로 인해 양철을 구하지 못한 결과다.

1951년 돌아온 양철 캔. 좌횡서가 적용되었음을 볼 수 있다.

제 생각에 영화 "이름 없는 별들"(1953)에 등장하는 아지노모토 깡통은 1943년에 조선 사무소가 문을 닫기 전에 남은 재고품이라기보단, 1950년대에 만들어진 것일 확률이 높다고 봅니다. 아지노모토는 1941년 이후로 "전면적으로" 골판지 용기를 쓰다가 전후에야 다시 양철 깡통으로 포장을 하기 때문이죠. 

그러니 41년 이전의 용기라면 우횡서 표기일 것이고, 41~45라면 골판지 용기였을테니까, 영화 "이름 없는 별들"에 등장하는 아지노모토 깡통 소품은 패전 이후의 제품인 것입니다.

아래 인용문으로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해방이 되었다. 그러나 아지노모도는 여전히 유령처럼 떠돌았다. 부유층은 아무리 비싼 값을 주고라도 밀수된 아지노모도를 찾았다. 1950년대초만 하더라도 아지노모도를 반찬에 뿌리고 왜간장에 밥을 비벼 먹는 것을 특별한 맛내기로 여겼다.
(장원정, 민족21, "화학조미료 : 제국의 맛, '아지노모도' 소금도 설탕도 아닌 이 하얀 가루가 뭘꼬?", 2008년 3월, pp. 147)


과연...

1959년, 항일 영화에 "제국의 맛을 잊지 못한" 밀수품이 소품으로 쓰인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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