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왜군은 얼레빗, 명군은 참빗"의 원출처...? 창작물의 원형을 찾아서~

역사관심 님께서 대략 3년 전 포스팅에서 임진왜란 당시 조선인 사이에서 유행한 표현이 몇 십년 뒤 중국에 그대로 전해져 회자되는 기록을 확인하신 바 있습니다. 바로 아래의 두 기록이죠.

1593(임진왜란) - 유성룡, <징비록>
사헌(역주: 명나라 장수, 형개)이 또다시, "내가 들으니 조선사람들은 왜적은 얼레빗(梳子)같고 명나라 군사는 참빗(篦子)같다고 말한다니 사실입니까?" 하기에 내(역주: 유성룡)가 대답하였다. "옛부터 군사가 주둔하는 곳에는 가시덤불이 난다고 하였는데, 소소한 피해 정도야 어찌 없을 수가 있습니까. 역시 형편 상 없을 수 없는 일입니다. 참빗이라는 말은 천만 그럴 리가 없으니, 틀림없이 중간에서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든 것입니다. 원하건대 노야(역주: 형개)께서는 이런 말을 믿지 마십시오." 또 몇 마디를 하고 파하였다.

1629~1644(이자성의 난) - 심덕부, 만력야획편
유적(역주: 이자성의 군사)이 놀리길, 우리 (역주: 명나라) 백성의 말에 따르면 "우리들이 오면 얼레빗에 불과한데, 저 토사병(역주: 낭병)은 참빗이로다. 그들이 긁어내는 것이 더 촘촘하다고 몰래 비난한다"고 하였다.

다시 말해, 적 세력(왜군이나 이자성의 군대) 보다 진압군(명나라 군대, 특히 낭병/원병으로 불리는 특수부대)가 더 민간인에게 큰 피해를 준다는 것을 시사하는 말입니다. 

다만 이 얼레빗-참빗 비유가 조선에서 중국으로 전해진 것인지 확정할 수는 없겠습니다. 시기 상의 전후관계나 낭병이 임진왜란과 이자성의 난에 모두 진압군으로 참전했다는 맥락을 감안했을 때, 조선 => 중국으로 추론할 수는 있겠지만 말이죠.

그래서 역사관심 님도 
"물론 여기서 아주 중요한 것은 저러한 표현 '즉 얼레빗 - 참빗'의 비유나 속담이 중국에 원래 전하는 고유어구인지의 여부가 될 것입니다"라고 적으신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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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여기까지가 서론이고, 그렇다면 본론으로 들어가보겠습니다. 
시를 한 편 읽어봅시다.

얼레빗 빗질하고 참빗으로 빗질하니 / 木梳梳了竹梳梳
난발 처음 가르자 머릿니 절로 사라졌네 / 髮初分蝨自除
어찌하면 만장 길이 큰 빗을 얻어다가 / 安得大梳長萬丈
백성들의 머릿니를 남기잖고 쓸어낼꼬 / 盡梳黔首蝨無餘

어떤가요? 위의 얼레빗 참빗 이야기와 비슷한 말을 하고 있죠?
얼레빗과 참빗을 가리키는 한자가 다르긴 하지만, 시에 등장하는 얼레빗(木梳梳)참빗(竹梳梳)과 마찬가지로 형개가 전해 들은 얼레빗(梳子) 참빗(篦子)은 각각 나무 목, 대나무 죽 부수를 사용해서 두 종류의 빗의 주재료가 각각 나무와 대나무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는 임진왜란이나 이자성의 난 같은 특정한 시대배경을 드러내고 있지는 않습니다.
일반적인 해석은 백성을 착취하는 탐관오리를 머릿니에 빗대어 비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시는 허균의 성소부부고(1612-13 추정)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몽인의 어우집(1621-22)에도 등장하죠. 
그리고 우복룡(1547-1613)의 동계잡록에도 나옵니다. 
조여적의 청학집(1648)에도 기록되어있죠. 

그럼 기록들을 하나씩 살펴봅시다.

1. 우복룡, 동계잡록

1581년 10월 11일~1582년 8월 22일
○호남에 유호인(劉好仁)이라는 사람이 있다. 나이는 80을 넘었다. 산에 들어간지 이미 30년이 되었다. 책상 위에 다른 물건은 없고, 그저 서책이 있다. 항상 시를 읊기를,
얼레빗 빗질하고 참빗으로 빗질하니 / 木梳梳了竹梳梳
난발 처음 가르자 머릿니 절로 사라졌네 / 
髮初分蝨自除
어찌하면 만장 길이 큰 빗을 얻어다가 / 安得大梳長萬丈
백성들의 머릿니를 남기잖고 쓸어낼꼬 / 盡梳黔首蝨無餘
라 하였다.
심의겸(沈義謙, 1535 -1587)이 (전라)관찰사로 부임하여 말몰이꾼은 전혀 없이 홀로 필마를 타고 가서 선물을 바쳤는데 사양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유(호인)은 정경달(丁景達)의 외삼촌이라고 한다.
○湖南有劉好仁者。年過八十。入山已三十年。案上無他物。只有書冊。常有詩云。木梳梳了竹梳梳。乱髮纔分虱未除。安得大梳千萬尺。盡梳黔首虱無餘。沈義謙為方伯。盡去騶率。只以匹馬跪進。筐篚亦不辞云。劉即丁景達之表叔云。


2. 허균, 성소부부고 (1612-13 추정)

2a. 성소부부고 中 성수시화(惺叟詩話)에 수록된 일화
윤 사문 면(尹勉)이 사명을 받들고 호남으로 떠나 어느 산을 지나가는데 산 속에 초가집이 있었다. 거기서 한 늙은이가 나무 아래에서 다리를 뻗고 앉아 있었고 책상 위에는 책 한 권이 놓여 있었다. 펴 보니 늙은이가 다가와서 빼앗으며,
“되지 않은 작품이라 남의 눈에 보여 줄 수가 없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겨우 첫머리에 쓴 빗을 읊은 시(詠梳詩)만을 보았는데 다음과 같았다.
얼레빗 빗질하고 참빗으로 빗질하니 / 木梳梳了竹梳梳
빗질 천 번 쓸어 내려 이는 벌써 없어졌네 / 梳却千回蝨已除
어찌하면 만장 길이 큰 빗을 얻어다가 / 安得大梳長萬丈
백성들의 머릿니를 남기잖고 쓸어낼꼬 / 盡梳黔首蝨無餘
그 이름을 물었더니 대답을 하지 않고 도망가 버렸다고 한다.
(혹은 말하기를 전주 진사 유호인(兪好仁)이라고도 한다.)

2b. 성소부부고 中 학산초담에 수록된 일화
근세 어떤 선비지리산(智異山)에 유람갔는데, 한 외진 숲에 이르니, 폭포는 이리저리 흐르고 푸른 대 우거진 가운데 한 띳집이 있는데, 한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섰다가, 선비를 보고는 몹시 반기며 손을 맞아 솔 아래 앉혀 놓고 막걸리에 나물국으로 대접하고는 말하기를,
“이 늙은 것이 평소에 머리 빗기를 좋아하여 하루에 꼭 천 번은 빗어내린다오.”
하면서 쪽지를 내어 놓는데, 그 속에 든 것이 바로 머리를 빗는다는 소두시(梳頭詩)였다.
얼레빗으로 솰솰 가려 낸 다음 참빗으로 훑되 / 木梳梳了竹梳梳
천 번이나 훑어내니 이는 벌써 없어졌네 / 梳却千廻蝨已除
어떻게 하면 만 길 되는 큰 빗 구하여 / 安得大梳長萬丈
백성의 머릿니 모조리 훑어 없앨꼬 / 盡梳黔首蝨無餘
선비가 자신도 모르게 뜰 아래 내려가 절하고 그 이름을 물으니 숨기고 알려주지 않았다. 이튿날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하고는 두세 사람이 같이 다시 찾아가보니 집은 그대로 있었으나 사람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3. 유몽인, 어우집


4. 조여적, 청학집 (1648)

이 처사 유(李愈)의 자는 퇴부(退夫)요 호는 소두자(梳頭子)라 하였으며, 지리산 자초동(紫草洞)에 은거하였는데 이는 이곳의 천석(泉石)이 아름다운 까닭이었다. 날마다 천 번씩 머리를 빗으며 지냈는데 그의 시에,

얼레빗 빗질하고 참빗으로 빗질하니 / 木梳梳了竹梳梳
빗질 천 번 쓸어 내려 머릿니는 벌써 없어졌네 / 梳却千回蝨已除
어찌하면 만장 길이 큰 빗을 얻어다가 / 安得大梳長萬丈
백성들의 머릿니를 남기잖고 쓸어낼꼬 / 盡梳黔首蝨無餘

 비록 일사(逸士)라 하나 경세의 재주가 있어서 대추꽃이 열매 맺고 뽕잎 먹은 누에가 실을 뽑는 데에 비해 손색이 없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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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기록을 정리해보겠습니다.

1. 시의 제목은 어우집에는 영소(詠梳, 빗을 노래하다), 성소부부고 성수시화에는 영소시(詠梳詩), 성소부부고 학산초담에는 소두시(梳頭詩, 머리 빗는 노래)

2. 성소부부고에는 시에 얽힌 일화의 두 버전이 실려있는데,
성수시화노인이 방심하고 있다가 (책을 펼쳐보자) 놀라서 숨기는 버전. (영소시)
학산초담노인이 기꺼이 시를 (쪽지에 적어) 보여주는 버전. (소두시)

3. 시에도 두 버전이 있는데, 두번째 구(句)가
동계잡록과 어우집 기록은 
난발 처음 가르자 머릿니 절로 사라졌네 / 髮初分蝨自除
성소부부고와 청학집 기록은
빗질 천 번 쓸어 내려 머릿니는 벌써 없어졌네 / 梳却千回蝨已除

4. 성소부부고의 학산초담 일화와 청학집에는 노인이 머리를 빗기 좋아해서 하루에 천 번씩 빗는다는 설정이 공통적으로 들어간다. 학산초담에서 소두시(머리 빗는 시)라고 제목 붙인데 이어, 청학집에서는 소두자(머리 빗는 사람)이라는 호까지 붙는다.

성소부부고, 학산초담: 이 늙은 것이 평소에 머리 빗기를 좋아하여 하루에 꼭 천 번은 빗어내린다오.
하면서 쪽지를 내어 놓는데, 그 속에 든 것이 바로 머리를 빗는다는 소두시(梳頭詩)였다.

청학집: "호는 소두자(梳頭子)라 하였으며, 지리산 자초동(紫草洞)에 은거하였는데 이는 이곳의 천석(泉石)이 아름다운 까닭이었다. 날마다 천 번씩 머리를 빗으며 지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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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여기서 제가 내릴 잠정적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조선에서 유래해서 중국으로 넘어간 것이 거의 확실해보입니다.
임진왜란 이전에 이미 얼레빗/참빗을 노래했다는 기록이 다수의 동시대 기록에서 발견됩니다.
임진왜란 직전의 "유행가"였을지도 모르겠네요.
전쟁과 전혀 무관한 맥락의 노래라는 것도 한결 이 결론을 뒷받침합니다.

그리고, 시의 원본은 동계잡록/어우집의 난발 처음 가르자 머릿니 절로 사라졌네 / 髮初分蝨自除 버전으로 추정됩니다.
동계잡록의 기록이 맥락 상 가장 이른 시기(1581-1582)를 가리키고 있죠.

하지만 제가 이 결론에 100% 만족하는 것은 아닙니다.
얼레빗으로 솰솰 가려 낸 다음 참빗으로 훑더니 / 木梳梳了竹梳梳
전쟁(亂髮)이 발발하자마자(初分) 관리(蝨)들은 스스로 종적을 감췄구나(自除)
같은 식으로, 웬지 임진왜란을 언급하는 것 같기도 하단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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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한편 윤면(尹勉)의 몰년은 잘 안 알려져 있는데,
파평 윤씨 대종회 웹사이트에서는 윤면이 1543에 태어나 1592에 죽은 것으로 나와있습니다.
이는 윤면의 딸을 기린 열녀비의 기록과 일치하는 것으로 교차검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시진의 처 파평 윤씨는 임진왜란 때 친부모, 시부모를 모시고 남편과 함께 피난하였다. 당시 왜적들이 친정아버지 윤면을 살해하고 시아버지까지 해치려 하였을 때 남편 이시진이 대신하여 먼저 살해되자, 쓰러진 남편을 끌어안고 왜적을 크게 꾸짖으며 바위에 머리를 부딪혀 유혈이 낭자한 채 쓰러져 왜적이 이를 보고 놀라 물러가면서 가족들은 화를 면할 수 있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시진 부부 [李時振夫婦]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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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진냥 2018/01/08 00:13 # 답글

    오오... 말하자면 '관용구의 역사'일까요? 시간이 지나면서 의미가 완전히 바뀌는 것이 재미있네요!
  • 남중생 2018/01/08 00:21 #

    네, 특히 언어의 장벽을 타고 넘어 중국까지 갔다는건 정말 흥미롭습니다. 아마 임진왜란에 참전했던 사람이 이자성의 난 때도 싸운거겠죠.
  • 역사관심 2018/01/08 07:24 # 답글

    흥미로운 글 감사합니다! 저 포스팅으로 대화한지가 벌써 3년이라니... 세월이 무섭게 빠릅니다;;
  • 남중생 2018/01/08 11:06 #

    역사관심님 덕분에 저도 계속 공부를 하게 되고, 포스팅 의욕이 생깁니다! 앞으로도 3년 그 이상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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