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용골(龍骨)의 산지(産地)를 찾아서(2) - 다시 한 번 줌해보자꾸나 용은 환골하고 뱀은 탈태한다


분명 "용틀임하는 동아시아 근세" 카테고리는 동아시아의 화석, 용골에 대해 쓰는 카테고리였는데,
어느새 동아시아 해역에서 일어난 흥미진진한 이야기 잡탕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용은 환골하고 뱀을 탈태한다" 카테고리를 따로 만들었습니다. (2018.04.13)



저는 천예록에서 언급하고 있는 "정통주 발견"이 아마 연행노정의 "중절"구간에서 일어났을 것이라고 비정했습니다.




빗물로 만들어진 못에서 만금의 보배를 얻다
천예록天倪錄

한참 전의 일이다어떤 역관이 조천사를 수행하여 연경(북경)길에 올랐다때는 찌는 듯한 여름으로 큰 비가 막 그친 즈음이었다일행은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높은 평야지대를 지나고 있었다. 지나는 곳 여기저기에 빗물이 고여 만들어진 물웅덩이가 이어졌는데 그 중 한 웅덩이가 맑고 얕아보기에 좋았다. 역관은 여기서 더위를 씻어 내고픈 생각이 들었다. 
(역사관심 님께서 소개하신 이상한 구슬류 기담 포스팅 中 천예록의 정통주 이야기)



바로 네이버캐스트의 실학, 조선의 르네상스를 열다 시리즈 중 연행노정 편에서 비슷한 자연환경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었죠.

가장 지루하고 힘들었던 연행노정의 중절구간

연행노정의 중절은 연행노정에서 가장 지루하고 힘든 구간으로 묘사되곤 하였다. 이도정-반랍문-소흑산 구간은 봄이면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으면서 진창을 이루었던 곳이다. 여름철이면 장맛비에 길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물이 넘쳐 사행단의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사행노정에서 가장 고생스럽고 힘겨운 공간으로 인식되었다.




그런데, 밑줄 바로 앞에 나와있는 "이도정-반랍문-소흑산 구간"은 어디일까요?
연행록의 전범이라고 할 수 있는 열하일기가 상세하게 설명해줍니다.



박지원의 열하일기, 성경잡지 中

7월 14일 경인(庚寅)
개다.

백기보에서 소백기보까지 12리, 평방 6리, 일반랍문 12리인데, 일반랍문은 일판문이라고도 한다. 거기서 또 곡산둔 8리, 이도정 12리, 모두 50리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도정에서 은적사까지 8리, 고가포 22리다. 여기서 다리가 다하다. 다시 고정자 1리, 십강자 9리, 연대 6리, 소흑산 4리, 모두 50리다. 이날 1백리를 갔다. 소흑산에서 묵다.

일판문과 이도정은 땅이 움푹 파인 곳이어서 비가 조금만 와도 시궁창이 되고, 봄에 얼음 풀릴 무렵에는 잘못 시궁창에 빠지면, 사람도 말도 삽시에 보이지 않게 되어 지척에 있어도 구출하기 어려우므로, 작년 봄에 산서 장사꾼 20여 명이 모두 건장한 나귀를 타고 오다 일판문에 이르러 한꺼번에 빠졌으며, 우리나라 마부 역시 두 사람이 빠져버렸다 한다. 그리고 당서에 이르기를,
"태종이 고구려를 치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한 채 돌아오는 길에 발착수에 이르러 80리 진펄에 수레가 통할 수 없으므로, 장손무기와 양사도 등이 군정 1만 명을 거느리고 나무를 베어 길을 쌓고 수레를 잇달아 다리를 놓을 제 태종이 말 위에서 손수 나무를 날라서 일을 도왔고, 때마침 눈보라가 심해서 횃불을 밝히고 건넜다."
하였으니, 발착수가 어디인지 알 수 없으나, 요동 진펄 천 리에 흙이 떡가루처럼 보드라워서 비를 맞으면 반죽이 되어 마치 엿 녹은 것처럼 되어, 자칫하면 사람의 허리와 무릎까지 빠지고 겨우 한 다리르 빼면 또 한 다리가 더 깊이 빠지게 된다. 이에 만일 발을 빼려고 애쓰지 않으면 땅 속에서 마치 무엇이 있어서 빨아들이는 듯이 온 몸이 묻혀서 흔적도 없어지게 된다. 지금은 청에서 자주 성경(심양, 션양)으로 거둥하므로, 영안교에서부터 나무를 엮어 다리를 만들어서 진펄을 막되, 고가포 밑에 이르러서 비로소 그치는데, 2백여 리 사이에 한결같이 뻗쳤으니 이는 비단 물력이 그처럼 굉장할뿐더러, 그 나무끝이 한군데도 들쭉날쭉한 것이 없이 2백 리 사이에 두 쪽이 마치 한 먹줄로 퉁긴 듯이 되었으니, 그 일솜씨의 정미로움을 이로써 짐작할 수 있으며, 그러므로 민간에서 항용 쓰는 물건들이라도 이를 본받아서 그 규모가 대체로 같으니, 이는 덕보가 이른바 중국의 심법을 우리로선 당하지 못할 것이라 한 것이 바로 이런 일을 말한 것이리라. 이 다리는 3년 만에 한 번씩 고친다 한다. 그리고 당서의 발착수는 아마 일판문-이도정 사이를 말한 것인 듯 싶다. 


사실 왜 네이버캐스트에서는 이도정-반랍문-소흑산 순서로 썼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해당 컨텐츠의 저자분께서 열하일기 이외의 다른 연행록을 참고하신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대체로 열하일기의 순서를 따라서 이도정반랍문에서 소흑산으로 가는 길 중간에 있습니다.

*반랍문-소흑산-이도정이 맞습니다. 아래 댓글 참조! (2018.07.15) 


"소흑산"이라는 지명이 지금은 그대로 존재하지는 않는지, 현대에 답사하시는 분들은 흑산현/흑산진 정도에 비정하고 있습니다. 저도 이걸 따르겠습니다. 이도정은 말그대로 우물(井)이기 때문에 지금은 유의미한 지명으로 남아있지 않을뿐더러 지도상에 표기하면 너무 촘촘해집니다. 대신 나무다리가 시작한다는 "영안교"를 표시해보았습니다. 

▲사실 심양 앞뒤로 나있는 구역이라서 초절과 중절에 걸쳐있다.


그러니까 천예록에서 언급하고 있는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높은 평야지대를 지나고 있었"는데 "지나는 곳 여기저기에 빗물이 고여 만들어진 물웅덩이가 이어"진 곳은:

좁게는 반랍문(일판문)-이도정 사이 70리.
혹은 저 날(7월 14일) 움직인 100리.
조금 넓게는 영안교에서 고가포(소흑산 보다 멀다)까지 나무로 길을 놓은 200리.
가장 넓게 보자면 흙이 떡가루처럼 보드라워서 비를 맞으면 반죽이 된다는 요동 진펄 1000리.

로 비정할 수 있겠습니다.


꼭 저런 자연현상이 반랍문~이도정 사이의 좁은 구간에서만 일어났을 것 같지는 않으니, 
굳이 수색망을 좁히지만 않고 넓은 여지를 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한편으로는 네이버캐스트 글에서 연행노정의 기나긴 "중절"을 묘사하는데, 심양을 나서자마자 (즉, 초절에서 중절로 넘어가자마자) 나오는 구간을 위주로 이야기한 것은 아무래도 그만큼 쓸 이야기가 없었던게 아닐까 싶습니다. 말그대로 "가장 지루하고 힘들었던" (그리고 할 이야기도 그만큼 없는)구간인 셈이죠.

하지만 연행사와 조천사의 길이 명청과 조선을 엮는 공시적인 지역으로 자주 읽히는 요즘에는,
"비록 연행사가 가장 큰 흥미를 보인 곳은 아니지만, 여길 지나가면서 화석도 발견하고 그랬대"
하는 식으로 "중절"을 흥미진진한 구간으로 소개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되네요.  

목적지뿐만 아니라 여정도 소중히 하는, 뭐 그런 연행록 풀이도 가능해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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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그나저나 열하일기의 이 묘사는 유사(流沙, 표사漂沙라고도 불림, Quicksand) 그 자체인데...ㄷㄷ
"흙이 떡가루처럼 보드라워서 비를 맞으면 반죽이 되어 마치 엿 녹은 것처럼 되어, 자칫하면 사람의 허리와 무릎까지 빠지고 겨우 한 다리르 빼면 또 한 다리가 더 깊이 빠지게 된다. 이에 만일 발을 빼려고 애쓰지 않으면 땅 속에서 마치 무엇이 있어서 빨아들이는 듯이 온 몸이 묻혀서 흔적도 없어지게 된다."

역시 모르면 용감하구나...
"수면에 큰 구멍이 뚫려 작은 굴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 안을 들여다보니 못바닥에 뼛조각이 하나 보였다. 그 뼛조각을 들어 물 밖으로 꺼내자 수면에 있던 구멍이 없어져 버렸다. 그래서 뼛조각을 도로 웅덩이 바닥에 내려놓자 구멍이 전과 똑같이 생기는 것이었다. 급기야 다시 꺼내 자세히 살펴보니 뼈 안에 구슬이 하나 있는데 모양이 둥글며 푸른색을 띠었다. 매우 애착이 가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구슬의 "방수기능"은 퀵샌드의 성질을 보고 나중에 와전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자연현상이 사람들의 머리속에서 와전을 통해 마법의 성질로 굳어지는 것도 굉장히 좋아합니다.
더 재미있잖아요!

덧글

  • 힘찬 2017/12/31 11:19 # 삭제 답글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
  • 남중생 2017/12/31 11:38 #

    감사합니다^^
  • 역사관심 2017/12/31 20:35 # 답글

    오랜만에 이쪽 글에 흥미가 다시 생기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 남중생 2017/12/31 18:30 #

    사실 만인혈석에 대해서도 나름 조사를 해놓았는데 글로 풀어내기까지 시간이 다소 걸릴듯 싶습니다.^^ 역사관심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천장지구 2018/07/15 21:28 # 삭제 답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남중생님의 글중에 이도정-반랍문은 반랍문-이도정 순서가 맞습니다. 단순오기입니다. 제가 글을 썼는데, 저도 깜짝 놀랬습니다. 그래서 네이버측에 수정요청 했습니다. 꼼꼼한 글에 감탄했습니다. 덕분에 오류를 수정할 수 있어서 감사드립니다.
  • 남중생 2018/07/15 22:12 #

    와! 글쓴이 본인이 제 블로그에 와주시다니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이걸 계기로 네이버 캐스트 상의 오류도 수정이 되다니 정말 다행이네요^^
  • 천장지구. 2018/07/16 16:09 # 삭제

    네이버캐스트 오류 아침에 수정했습니다.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우리역사에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시니 더욱 발전있으시길 기원하겠습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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