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성탄절 특집]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불구대천 원수의 목을 따는 밤~ 창작물의 원형을 찾아서~

안녕하세요~ 크리스마스 이브입니다.

그런 고로 크리스마스 특집 "닮은 그림 찾기"를 준비해왔습니다.


(이미지는 클릭하면 커집니다.)

오른 쪽은 네덜란드 화가 아르놀트 호우브라켄Arnold Houbraken(1660-1719)이 그린 신약성서 삽화 中 "목동들의 경배" (adoration of the shepherds)입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경배하러 온 목동들의 그림이죠.

동방박사(adoration of the magi)와는 다른 그림이니까 주의해주세요~!
서로 다른 성경구절에 나오는 내용이고, 목동 3명 + 동방 박사 3명 모두 등장하는 그림도 더러 있습니다.

왼쪽은 "츄신구라(충신장)"로 유명한 아코번 낭인들의 복수도(赤穂義士報讐図)입니다. 
에도시대의 화가 야스다 라이슈(安田雷洲)의 작품이죠.

이 사건에 대해서는 간략하게나마 언급한 적륜님의 포스팅을 소개하면서, "떠돌이 사무라이(낭인)들이 옛 주군의 원수를 갚는 작전!" 정도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쇼군의 명령으로 아사노는 할복했고, 휘하의 사무라이들은 낭인으로 신분이 떨어져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나 이들 낭인들은 막부의 감시에도 불구하고 주군 아사노에 대한 복수를 계획했고, 결국 1년 뒤 기라 요시히사의 저택을 습격하여 안의 사람들을 모두 죽이고 기라 요시히사의 목을 쳐 주군이었던 아사노의 묘지에 가져가 복수를 완성했다. 그리고 순순히 쇼군의 처분을 기다렸다."

"18세기로 막 넘어간 1701년. 전국시대와 임진왜란 같은 전쟁이 이제 사라진 평화로운 에도 시대가 시작된 지도 100년. 사무라이의 칼은 신분과 패션의 상징으로만 남아있던 시대에 충격을 주는 사건이 터집니다. 도쿄의 한복판 에도성에서 칼부림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 사건을 겐로쿠 아코사건(元禄赤穂事件)이라고 부릅니다. 명예와 충성, 의리, 질서와 복수 등의 전근대사회 최고의 패러다임과 도덕률들이 서로 충돌을 하는 초특급의 사건이라 곧 이 사건의 인물들은 레전드가 되어버립니다."

라이슈의 그림이 포착한 장면은 바로 원수(키라 코우즈케노스케)의 목을 베어 나온 뒤, 장작 창고 앞에서 달빛과 촛불에 비춰 실제로 키라의 목을 베어온 것이 맞는지 확인하는 장면입니다.
보통은 베기 전에 확인하지 않나...

(요렇게 크롭하면 조금 더 비교가 용이해질까요...?)

일단은 야스다 라이슈가 아놀드 호브라켄의 그림을 베낀 것이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그림속 판자의 나무결이라던가, 사람 피부의 삐죽삐죽한 느낌이 서양 동판화를 모방한 결과라는 것이죠.

또 그림을 확대해서 아코 낭인들 얼굴을 보면, 도저히 일본인 얼굴이 아닙니다...

(아니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47 Ronin이 있긴 하지만...)
이 영화에서 키아누 리브스는 일본/영국상인 혼혈
트레일러 첫 20초 배경이 데지마입니다... 그 다음에 거인과 결투장 있죠? 저것도 데지마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이 두 그림에서 제일 재미있는 것은 아르놀트 호우브라켄의 그림에서 갓태어난 아기 예수가 야스다 라이슈의 그림에선 갓죽은(?) 적장의 머리...가 된다는 것이죠. 



사실 아코 낭인들의 리더 유라노스케 아저씨가 성모 마리아가 되는 것도 흥미롭습니다만...

이 흥미로운 "뒤바꿈" 때문에 서로 완전히 다른 두 가지 해석이 나옵니다.
(두 가설 모두 당시 일본에서 기독교는 엄격히 금지된 종교였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말이죠.)


1. 코바야시 설
코바야시 요리코(小林頼子) 일본 메지로 대학 교수는 베르메르를 포함한 네덜란드 화가/회화에 대해 여러 편의 책을 쓰셨고, 현재 일본과 서양의 미술교류에 대해 연구하고 계십니다.
코바야시 교수님은 올해 나온 책(The Nomadic Object; the challenge of World for Early Modern Religious Art)의 제6장, "문화교류에서 오해의 가치: 서양에서 일본으로의 기독교 판화 전래"을 집필하셨는데,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코바야시 교수님은 야스다 라이슈가 원작품의 기독교 테마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2. 야스무라 설
 
야스무라 요시노부(安村敏信) 씨는 이타바시 구립 미술관(板橋区立美術館) 관장을 역임하셨고, 현재 사단법인 일본 아트 평가 보존 협회(社団法人日本アート評価保存協会)의 사무국장(事務局長)을 맡고 계십니다.
야스무라 씨는 갓 태어난 예수와 갓 죽은 머리를 뒤바꿨다는 것은 다시말해 "라이슈는 원작 그림의 의미를 알고있었기 때문에, 굳이 뒤바꿨다(雷洲は原図の意味を知っていたからこそ、あえて逆転させた)"고 주장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P.S.
당시 일본에서 나름대로 서양 문화에 해박한 사람들도 기독교 인식에 있어서는 좀 미심쩍다 싶다는 의문을 제기한,
제 과거 포스팅, 영국식 불교 - 홍차 같은걸 끼얹나? 있습니다. 

P.S. 2
호브라켄의 "아코 의인들의 복수도(赤穂義士報讐図)"는 일본 혼마 미술관(本間美術館)에 소장되어있습니다.
적륜 님의 어두운 방, 그리고 빛이 만들어 내는 그림...에 등장하는 시바 코칸(司馬 江漢, 1747 – 1818)의 "미메구리 풍경화(三囲景図)"도 같은 박물관에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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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Co-edited by Christine Gottler & Mia M. Mochizuki, The Nomadic Object; The Challenge of World for Early Modern Religious Art (Brill, 2017), chapter 6, "The Value of Misinterpretation in Cultural Exchange: The Transfer of Christian Prints from the West to Japan" 215-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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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함부르거 2017/12/24 19:31 # 답글

    호브라켄은 자기 그림이 저렇게 변용된 것을 알았으면 기겁을 했겠군요. 좋은 거 알게 되서 즐거운 크리스마스입니다. ^^
  • 남중생 2017/12/24 19:42 #

    나름 독실한 마음으로 성경 삽화를 제작했을텐데... 그죠?^^
  • 로그온티어 2017/12/24 19:47 # 답글

    차라리 패러디작품이라고 말하지(...)
  • 남중생 2017/12/24 20:20 #

    사실 에도시대 일본에서 패러디가 상당히 유행하긴 했지만, 이 경우에는 패러디라면 못된 패러디라고 생각합니다. 오란다설날(크리스마스 파티)에 놀러가던 일본 난학자가 굳이 네덜란드 사람들의 문화를 저렇게 비틀어서 공격적으로 표현했을까 싶습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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