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임진/정유왜란 이전의 조선인 노예 무역, 그리고 동아시아 연합함대 구상 용틀임하는 동아시아 근세

임진왜란, 그리고 특히 정유재란에서 포로가 된 조선인들이 일본, 동남아, 심지어 유럽에까지 간 기록은 더러 접하게 됩니다.

제 블로그의 
서유기 中 76. 고려의 자손

적륜재의
등을 참조!

이런 케이스가 워낙 유명하다보니까, "타의로 해외로 나간 조선인 = 정유재란 포로"라는 식으로 공식화시키기가 쉬운데요...
이런 공식을 깨기 위해서, 조선왕조 실록에 실린 상소문 하나를 읽어봅시다.


선조수정실록 25권, 선조 24년 3월 1일 정유 7번째기사 1591년 명 만력(萬曆) 19년


"신이 삼가 포로로 잡혀갔던 사람들의 말을 듣건대, 왜적들이 우리 나라 사람을 서남만(西南蠻)의 제도(諸島)와 양절(兩浙)에다 팔면 그들이 다시 전매(轉賣)되어 일본으로 되돌아온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객상(客商)들의 왕래가 베짜는 북처럼 누비고 다닌다는 증험인 것입니다. 간교한 오랑캐가 우리에게 답한 글에 이미 자신들의 성세(聲勢)에 대해 극도로 장황하게 늘어놓고 있는데 더구나 남양(南洋)의 제도에야 그들의 위무(威武)를 자랑하여 겁에 질리게 하지 않았을 리가 있겠습니까. 신은 황윤길(黃允吉)의 배가 처음 대마도에 정박했을 때 저들이 먼저 이 사실을 남양의 제도에 전파시켜 조선(朝鮮)과 통빙(通聘)했다고 하면서 제도를 제재하여 복속시키려 했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양절(兩浙) 지방의 장리(將吏)들이 듣지 못했을 리가 있겠습니까. 따라서 황제에게 주문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중국에서 의심하고 있은지 이미 오래입니다. 더구나 이 교사스런 오랑캐는 항상 상대가 방비하지 않고 있을 적에 엄습하는 것을 이롭게 여기고 있으니, 우리의 변장(邊將)이 얼마쯤 수비할 태세를 갖추어 전연 침범하기 어렵게 되면 저들이 반드시 중국을 침범하는 것이 이롭다고 여길 것입니다. 따라서 소주(蘇州)·항주(杭州)에 말을 퍼뜨려 자신들이 이미 조선을 복속시키고 군대를 이끌고 왔다고 할 경우 노포(露布)를 급급히 전한다면 반개월이면 경사(京師)에 도달될 것입니다."



선조실록에 포로(被俘人)라니, 뭐야 평범한 임진왜란 이야기잖아 할 법도 합니다.
하지만 날짜를 다시 보시죠.

1591년, 그러니까 임진왜란 이전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포로"는 도대체...?


1555년 을묘왜변의 포로를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조헌의 다른 글에서도 임진왜란의 발발을 우려하면서 이전의 을묘왜변을 언급하는 내용이 여러번 등장합니다.)

다시 말해, 임진왜란 이전에 이미 16세기 중반의 조선인 포로가 남중국해-동남아시아 상업 네트워크에 연결되어서 동남아시아로 팔려나갔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사실 어쩌면 당연한 말입니다. 임진/정유왜란 이전까지 그 수많은 왜구가 노예 장사를 안 했을리가 없죠...)


상소문을 쓴 조헌은 이런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요?

"전매되어 일본으로 되돌아온" 포로들이 을묘왜변 이후의 조일 관계회복 과정에서 조선으로 본국송환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또 한 가지 가능성은 조헌이 1574년에 사신(조천사)으로 중국을 다녀온 일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중국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수도 있겠죠.

그 덕분인지, 조헌의 세계 인식은 상당히 광범위합니다.


상소문의 다음 내용은 또 어떤가요?

"간교한 오랑캐가 우리에게 답한 글에 이미 자신들의 성세(聲勢)에 대해 극도로 장황하게 늘어놓고 있는데 더구나 남양(南洋)의 제도에야 그들의 위무(威武)를 자랑하여 겁에 질리게 하지 않았을 리가 있겠습니까. 신은 황윤길(黃允吉)의 배가 처음 대마도에 정박했을 때 저들이 먼저 이 사실을 남양의 제도에 전파시켜 조선(朝鮮)과 통빙(通聘)했다고 하면서 제도를 제재하여 복속시키려 했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요약: 히데요시가 동남아시아 각국에 편지 써서 "조선이 벌써 항복했으니까 너네도 순순히 따르라"고 뻥카치고 있을거야. (그리고 그 소문이 명나라 황제 귀에 들어가면...ㄷㄷ)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만 타겟으로 삼은게 아니라 정말 세계 정복을 하려고 했던 것인지, 임진왜란을 일으킨 1592년 마닐라에도 편지를 보내 이미 자기가 레쿠오이(류쿠)아코라이(조선)을 이미 정복했으며, 동천축(동남아 국가들)에서도 조공을 바치고 있는데, 여송국은 아직 조공을 바치지 않는다며, 중국을 정복하러 갈 것인데, 그 노정에 마닐라가 조공을 바치고 일본의 무역상들을 수락하지않으면 군선을 몰고가서 쳐부수겠다. 내가 두달 안에 나고야로 내려갈텐데 그때까지 사신을 보내라, 안그러면 처들어간다...그런 편지를 보냅니다."


"만약 성주(聖主)께서 미리 대비하지 않았던 탓으로 포박당하여 끌려가는 형벌이 멀리 유구(琉球)·점성(占城)에까지 미쳐 급기야는 중국에 유전(流轉)되는 지경에 이른다면 천하 후세에서 전하를 어떠한 분이라고 여기겠습니까. 신이 삼가 생각건대 변란을 알리고 토벌할 것을 청하는 주문(奏聞)을 하루 늦게 보내면 결단코 백년의 걱정이 있게 될 것이고 열흘 늦게 보내면 결단코 천년의 화(禍)가 있게 될 것이라고 여깁니다."

요약: 전쟁에 대비 안 하면 조선만 망하는게 아니라, 유구, 캄보디아, 명나라까지 도미노로 먹힐텐데, 조선이 다른 나라에까지 민폐끼치는 꼴이 된 역사의 평가가 두렵지도 않나요?


"신이 삼가 오늘날의 사세를 헤아려 보건대, 국가의 안위와 성패가 매우 긴박한 상태에 있으니 참으로 불안한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속히 왜사(倭使)의 목을 베고 중국에 주문(奏聞)한 다음 그의 사지를 유구(琉球) 등 제국(諸國)에 나누어 보내어 온 천하로 하여금 다 함께 분노하게 하여 이 왜적을 대비하도록 하는 한 가지 일만이 전의 잘못을 보완하고 때늦은 데서 오는 흉함을 면할 수 있음은 물론 만에 하나 이미 쇠망한 끝에 다시 흥복시킬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삼가 성주(聖主)께서는 속히 잘 생각하시어 사람이 못났더라도 말만은 버리지 말고 종사(宗社)의 대계(大計)를 위하여 지체하지 말았으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요약: 일본 사신 목 베서 명나라에 보내고, 사지는 찢어서 동남아시아 각국으로 보낸 다음 동아시아 연합군으로 일본군에 대비합시다.


"해남(海南)의 만리 길을 가려고 하는 사람이 없다면 신에게 절월(節鉞)을 빌려주어 사행(使行)의 말단에 충당시켜 주소서. 그러면 주야로 서쪽으로 달려가 현소·평의지의 머리를 중국 조정에 바치고서 삼가 신포서(申包胥)의 통곡을 본받아 우리 임금의 심사(心事)를 밝히겠습니다. 다행히 황제에게 불쌍히 여김을 받아 호소가 이루어지면 남쪽 국경으로 말을 달려 적의 사지(四肢)를 남양(南洋)의 제국(諸國)에 나누어 보내고 나서 ‘군대를 정돈하고 편리한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가 수길(秀吉)이 서쪽으로 침구하였다는 소식을 들으면 선척을 출동시켜 공격하고 일본에다 격문(檄文)을 전하라.’고 효유(曉諭)한다면, 훼복(卉服) 에서도 무기를 되돌려 수길을 공격할 사람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요약: 동남아시아 사신으로 간다는 사람 없으면 제가 갈래요! 그리고 연합군 체제 만들어놓은 다음 일본 다이묘들에게도 "히데요시 머리를 베어오는 자에게 포상하겠다"고 격문 보내면 적진 내부에서 분열일으킬거임.


"대소 장사(將士)들로 하여금 다 함께 수길(秀吉)의 죄를 성토하게 하여, 종행(從行)하는 군졸들도 그가 천지 사이에 용납될 수 없는 자임을 알게 하고 그들 중에서 지혜로운 자가 계모(計謀)를 베풀거나 용사(勇士)가 뉘우치고서 기회를 포착하여 목을 베어 바치는 자가 있으면 중국에 주문(奏聞)하여 땅을 나누어 봉하고 국상(國相)으로 삼도록 할 것이며, 도주(島主)로서 한결같이 원씨(源氏)의 구제(舊制)를 따라서 우공(禹貢)의 훼복(卉服) 의 조공을 폐하지 않게 한다면, 완안양(完顔亮)과 팽총(彭寵) 처럼 사악(邪惡)한 자들을 응징하는 칼과 화살이 수길에게 집중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렇게 된다면 남은 병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김히 서쪽으로 건너오지 못할 것이어서 기전·해서가 절로 걱정이 없게 될 것입니다."

요약: 히데요시 목 치는 다이묘한테 중국에서 땅 주고 조공무역 허락해준다고 하면, 히데요시 못 죽여서 안달 날거고 이렇게 하면 히데요시가 쫄려서라도 못 침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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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데요시가 조선, 중국, 천축(동남아시아)까지 정복한 뒤 천하의 황제가 되려고 한건 한국 내에서도 최근에나 조명받는 내용이죠... 이게 단순히 조선의 전쟁이 아니라, 천하의 운명을 가를 세계대전이다라는 인식.

연합군 구상은 조헌의 희망회로가 아니라, 이미 명나라 주도로 여러 번 제시된 계획입니다.

선조실록 27권, 선조 25년 6월 26일 갑인 8번째기사 1592년 명 만력(萬曆) 20년


"당초에 우리 통신사(通信使) 황윤길(黃允吉) 등이 일본을 갔을 적에, 풍신수길(豊臣秀吉)이 우리 나라에 글을 보내어 우리 나라로 하여금 군마(軍馬)를 정돈하여 일본과 더불어 연합해서 곧장 명나라를 침범하자고 하였으나 우리 나라는 의리를 들어 거절하고 바로 그해 4월에 성절사(聖節使) 김응남(金應南)의 사행(使行) 편에 그 사유을 갖추어 주문(奏聞)하였다. 명나라는 먼저 허의후(許儀後)를 통하여 역시 왜적의 음모를 듣고는 우리 나라로 하여금 섬라(暹羅)·유구(琉球) 등과 결합하여 병사를 합쳐 일본을 정벌하여 무찌르도록 하였다."


그러니까, 

임진왜란 희망편: 명, 조선, 여진, (통일 직후 군사력 뽐내고 싶어서 안달난) 태국, 안남, (일본한테 먹히기 전 마지막 기회인) 유구, (중국한테 잘 보여서 정식 조공무역 따내고 싶은) 포르투갈, 스페인 아르마다...의 연합함대.

임진왜란 절망편: (위 나라들에게 참전 요청이 나갔다고 하더라도), 행패부리는 참빗 명군, 일본 눈치 보느라 파병은 커녕 일본군 군량미 제공한 유구, 중국과 도박을 하느니 일본과의 기존 무역관계를 지키기로 한 포르투갈&스페인, 너무 멀어서 별다른 도움이 안 되는 태국&안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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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임진왜란 당시 후금 참전 제안은 을파소 님께서 여러 번 다뤘습니다.


요약하자면 여진은 임진왜란 전부터 조선과 군사충돌이 있어왔을 뿐더러, 여진이 참전했을 시 조선과의 관계에서 더 큰 파이를 요구할텐데... 하고 조선측에서 우려하고 반려했다는 것입니다.

네, 그럼 저 위에 리스트에서 여진은 빼고 나머지 국가들이 연합군을 운용해서 임진왜란에서 상당한 효과를 보았다면?
그리고 명나라가 이 연합군의 효용성을 깨닫고 이후로도 (연합 훈련을 정례화... 까진 아니더라도) 군사적 위기가 있을 때마다 연합 작전을 이어나갔더라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전근대적 동아시아 질서(중화질서)가 어떤 식으로 발전해나갔을지... 재미있는 역사적 상상이 됩니다.

P.S. 2 Luthien 님의 태국의 임진왜란 파병설 관련 질문 포스팅. 

덧글

  • 존다리안 2017/12/24 12:00 # 답글

    문제는 명나라 상태가....ㅜㅜ
  • 남중생 2017/12/24 14:15 #

    네... 만력제의 명나라라는게 좀 문제긴 하지만, 삼국지 세계관에 심취해서 조선침략 이야기를 듣자마자 “맞아, 내 꿈 속에서 나는 유비였고 조선왕은 장비였어!”하는 황제기도 했으니까... 제갈공명과 조자룡 찾으러 유구와 안남왕에게도 러브콜을...?
    연합군 체제를 위해서는, 갑질하는 강한 명나라보다는 외국과의 공조/협력에서 효과를 톡톡히 보는 약한 명나라가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르구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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