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근대 엘리트談의 클리셰 - 나카지마 아츠시의 호랑이 사냥 (3) 있잖아, 근대

(나카지마 아츠시 관련 포스팅들이 더러 검색도 되고 조회수 효자노릇을 하는데 아마도 문호 스트레이독스라는 만화/애니메이션에 캐릭터로 등장해서 그런게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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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사냥 이야기 전에 먼저 한 친구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그 친구의 이름은 조대환(趙大煥)이라고 한다.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듯 그는 반도인이었다. 그의 모친은 내지인이라고 모두가 말했다. 나는 그 말을 그의 입으로 직접 들은 것 같기도 하나, 어쩌면 나 자신이 제멋대로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믿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친하게 지냈으면서도 끝내 나는 그의 어머니를 본 적이 없다. 어쨌든, 그는 일본어에 매우 능통했다. 게다가 소설 등도 많이 읽어서 식민지의 일본 소년이 들은 적도 없는 에도시대의 말까지 아는 정도였다. 그래서 언뜻보아 그를 반도인이라고 간파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조와 나는 소학교 5학년 때무터 친구였다. 5학년 2학기에 나는 내지에서 용산의 소학교로 전학 왔다. 부친의 직장 사정 등으로 어릴 때 자주 전학을 다녔던 사람은 기억할 것이다. 다른 학교로 옮긴 초기처럼 괴로운 기간은 없다. 다른 습관, 다른 규칙, 다른 발음, 다른 독본. 게다가 이유도 없이 전학생을 괴롭히는 심술궂은 많은 눈. 뭐 하나를 해도 혹시나 비웃음을 사지 않을까 주뼛주뼛 위축되어버린다.
용산 소학교에 전학 오고 나서 2,3일이 지난 날, 그 날도 국어 시간에 '고지마 다카노리(児島高徳)'가 나오는 대목에서 벚나무에 새겨 넣은 시 구절을 내가 읽기 시작하자 모두 크게 웃었다. 얼굴이 벌게져도 열심히 계속 읽자 모두 쓰러질 정도로 웃었다. 결국 선생님까지 입가에 미소를 띠는 사태였다. 나는 완전히 기가 죽어서 수업이 끝나자 마자 서둘러 교실을 빠져나왔다.
(나카지마 아츠시, 호랑이 사냥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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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박촌(樸村) 박석윤(朴錫胤)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전라도 창평(昌平) 지주의 아들로 동경제국대학을 나온 수재인데, 경도(京都) 삼고(三高) 시대에는 조선인 유학생이면서도 명투수로 유명하여 일고(一高) 대 삼고(三高)의 야구시합 때에는 전 일본의 야구팬을 열광케 하였다. 그 후 영국에 유학하여 케임브리지대학을 나와 영어도 본격적인 소위 ‘킹스 잉글리쉬’를 가장 잘하는 사람으로도 유명하였다. 그는 동경 유학시대에 백작(伯爵)의 귀족원(貴族院) 의원으로 일찍이 [경성일보] 사장을 지낸 소에지마를 알게 되었는데, 소에지마 백작은 근본이 사이토 총독의 상전인 구번주(舊藩主)의 아들로 조선의 자치론자(自治論者)였다. 3ㆍ1운동으로 조선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난 것을 보고 그는, “조선인이 독립을 하려는 것은 당연한 일이나, 지금 당장은 어려울 것이오, 그렇다고 [시사신문]의 민원식(閔元植)이 주장하듯이 참정권을 획득한대도 쓸데없이 일본의 국회만 혼란케 할 뿐, 아무 효과가 없을 것이므로 조선은 애란(愛蘭)이 영국에 대해서 했듯이 차라리 자치를 요구하는 것이 일의 순서요, 또 효과적이라고 믿는다.” 고 하여 각 방면에 크나큰 충동을 준 일이 있었는데, 그 시대에는 일본인의 입에서 ‘자치’라는 말만 나와도 매우 진보적인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에 박촌(樸村)도 그를 존경하여 어지간히 친한 사이가 되었으며, 소에지마는 또 소에지마대로 조선 사람이면서 어쩌면 그렇게 인물이 준수하며, 일어와 영어를 그 나라 사람들보다 더 잘하나 하고 박석윤에 대해서 최고의 경의를 품었던 것이다."
(적륜님의 모순의 인생, 중첩된 인격에서 인용한 김을한, "한국신문사화" (탐구당, 1975)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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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보다도 일본어를 잘하는, 영국인 보다도 영어를 잘하는... 이런걸 두고 근대 엘리트談의 한 클리셰가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이게 근대인물에게만 붙는 이야기라는 것은 아닙니다.
일본 쓰시마 번의 통역사 아메노모리 호슈(1668 ~ 1755)그대는 여러 나라의 말을 다 잘하는데 그중 특히 일본어를 잘한다”이라는 농담 겸 칭찬을 조선통신사 일행으로부터 들었다고 하죠.

한편으로는 소설 "호랑이 사냥"에서 서술자 본인의 이야기를 하는 부분도 흥미롭습니다. 1920년대 당시 일본은 발음도, 교과서도 통일이 되어있지 않았나봅니다. 다른 고장에서 온 학생이 있으면 심지어 고전시를 읽는데도 티가 날 정도였나 보죠? 그런데 저기는 경성입니다. 도쿄 학생이 오사카로 전학을 갔다거나, 후쿠오카 학생이 교토에 간게 아니란말이죠. 그럼 경성의 일본어 발음, 조선반도에서 통용되는 일본어 표준 발음이 있었던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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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함부르거 2017/12/24 19:40 # 답글

    관심이 생겨서 찾아 보니 일본어에는 지금까지도 표준어란 개념이 없군요.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공통어란 개념은 있지만 이게 어떤 말이다 하고 정의된 것도 없구요. 공통어에 가장 가까운 게 도쿄 중심의 관동어지만 도쿄 사투리도 공통어와는 조금 다르다고 하네요. 그러니 지역에 따라서는 상당히 심하게 발음 차이가 날 수도 있겠습니다.
  • 남중생 2017/12/24 19:47 #

    네. 그런데 한편으로는 고전시가를 읽는 법에도 지역색, 지역차가 있었다는 말은 다소 의아합니다.
    제주 출신 학생이 서울로 전학와서 수업시간에 관동별곡을 읽으면 급우들이 재미있다고 느낄까요...?
  • 남중생 2017/12/24 19:50 #

    그리고 사실 조금 더 궁금한것은 “경성 사투리”의 존재여부입니다. 저 소설 내용대로라면 “경성에서 통하는 일본어 발음”이라는게 있었다는 것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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