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받고 있다...? - 나카지마 아츠시의 호랑이 사냥 (1) ~창작물의 원형을 찾아서~

타카바타케 카쇼(高畠華宵, 1888-1966)라는 일본의 화가, 일러스트레이터의 작품입니다.
소녀화보, 소녀구락부, 소년구락부 등등 다양한 잡지에 수많은 일러스트를 실은 당대의 삽화가입니다.

그런데 이 그림... 진짜 전화 받고 있는 것 같지 않나요?ㅋㅋㅋㅋㅋ 
(21세기 감성이 이토록 해롭습니다.)


진짜로 전화받는 그림은 아래와 같습니다. ㅋㅋ

마찬가지로 타카바타케 카쇼의 "그리운 육성(懐かしの身声)"이란 제목의 그림입니다.


이런 화풍의 그림은 타이쇼로망(大正ロマン)이라고 불립니다. 일본의 타이쇼 시대(1912-1926)의 대중문화를 주름잡은 화풍이기 때문이죠. 시기상 일제시대에 해당하는데, 그렇다면 동시기의 조선에서도 타이쇼 로망 일러스트가 유행했을까요?

식민지 조선을 배경으로 한 나카지마 아츠시(中島敦)의 소설, 호랑이 사냥을 읽어봅시다.


3
그 무렵, 즉 소학교 말에서 중학교 초기에 걸친 시기인데, 그가 한 소녀를 짝사랑하는 것을 알았다. 소학교 우리 반은 남녀 혼반으로 그 소녀는 부반장이었다. (반장은 남학생 중에서 뽑았다.) 키가 크고, 피부색이 대단히 흰 편은 아니지만, 머리카락이 풍성하고, 눈이 길게 찢어진 예쁜 여자애였다. 같은 반 녀석들이 소녀구락부인가 뭔가하는 표지그림인, 카쇼(華宵) 같은 삽화가의 그림을 자주 이 소녀와 비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조(趙)는 소학교 시절부터 그 소녀를 좋아했다고 하지만, 곧 그 소녀도 역시 용산에서 전차를 타고 경성의 여학교로 통학하게 되어, 왕복 전차 안에서 이따끔 얼굴을 마주치게 된 이후로, 더욱 마음이 격앙된 것이다.
언젠가 조는 진지해져서 내게 이 일을 털어놓았다. 처음에는 자신도 그만큼은 아니었지만, 연상의 친구 하나가 그 소녀의 미모을 칭찬하는 것을 들은 뒤로는, 갑자기 참을 수 없이 그 소녀가 고귀하고 아름다운 존재로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그 때 그는 말했다. 입 밖으로는 내지 않았지만, 신경이 예민한 그가 이 일에 관해 다시 새삼 반도인과 내지인이라는 문제로 끙끙 앓았으리라는 것은 추측하기 어렵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확실히 기억한다. 어느 겨울 아침, 남대문역 환승 장소에서 우연히 그 소녀로부터 (아마 그쪽도 얼떨결에 무심코 그렇게 된 듯하나) 정면으로 인사를 받고 당황하여 그것에 응답한 그의, 추위에 코끝이 빨개진 얼굴을. 그리고 다시 같은 시간대에 역시 전차에 우리 둘과 그 소녀가 함께 탔던 때의 일을. 그때 우리는 소녀가 앉은 자리 앞에 서 있었다. 소녀의 옆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녀가 옆으로 몸을 살짝 비켜 조 군을 위해 (그러나 동시에 나를 위한 것임도 부정할 수 없으나) 자리를 비워주었는데, 그때의 조 군이 얼마나 난처해하면서도 기쁜 표정을 지었던가...
내가 왜 이런 하찮은 일을 또렷이 기억하는가 하면 (아니, 전혀 이런 일은 아무래도 괜찮은 것인데), 그것은 물론 나 자신도 역시 은근히 그 소녀에게 애틋한 마음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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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으... 부반장은 민나노 아이도루!
말할 것도 없이, 여기서 조(趙)는 조대환이라는 반도인(조선인) 소년입니다. 그러나 내지인(일본인)들이 다니는 중학교를 다니면서, 내지인 여학생을 짝사랑하는 것이죠... ㅠㅠ

참고: 적륜 님의 '카노'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조선에서 중등학교는 상급학교 진학을 염두에 둔 김나지움계통의 일본인 위주의 중학교와 조선인 대상의 고등보통학교, 여학생을 위한 고등여자학교('고녀'라고 보통 줄여불렀습니다), 그리고, 별개의 시스템으로 진행되던 사범학교가 있었고, 무엇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는 농림학교나 상업학교같은 실업학교가 있었습니다. 종종 이들 실업학교들이 고등농림학교, 고등상업학교, 고등공업학교와 같은 전문학교들과 이름이 비슷해 혼동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당시 사람들에게 만약 경성상업학교와 경성고등상업학교가 같은 곳 아니야 라고 하면 아마 큰 실례였을겁니다."

그러니까 "중학교"를 갔다는 것 자체가 일본인 학교에 갔다는 말이 됩니다.
비록 조대환 군의 짝사랑은 이뤄지지 못하지만, 이와 무관하게 소녀구락부 잡지와 타카바타케 카쇼의 일러스트는 식민지 조선의 청소년(내지인/반도인할 것 없이)의 이목을 사로잡았던 것입니다.


어? 그런데 1920년대 이후에 타이쇼로망 화가들은 어떻게 되나요?
물론 갑자기 활동을 멈추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타카바타케 카쇼 작, 승전의 춤
히노마루와 군함기의 부채를 흔들며 소매도 경쾌히 휘날리는 춤을 추는 소녀의 모습은, 동양평화의 염원, 신국 일본의 존귀하고도 아름다운 자태입니다. 황군의 승리를 기원함과 함께 "반드시 투구의 끈을 묶자"는 속담을 잊지 말도록 합니다.



그만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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