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리(Rhee), 도라에몽, 그리고 창경궁 기타


"동물원 식구는 1936년 192종 675마리가 됐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식량 부족으로 굶어 죽는 동물이 속출했다. 1945년 7월 25일, 도쿄(東京)에서 무서운 명령이 창경원으로 긴급 전달됐다. "미군이 창경원을 폭격하면 맹수가 우리에서 뛰쳐나올 수 있으니 미리 죽여 없애라." 사자·호랑이·곰 등 21종 38마리의 맹수에게 독약을 섞은 먹이를 먹였다. 그날 밤 창경원 일대는 맹수들의 스산한 울부짖음이 밤새도록 가득했다. 동물원 직원들도 모두 함께 따라 울었다."

맹수도 울고, 사육사도 울고, 전미가 광광 우럭다....
(이미지: 聖冬者 님의 심각하게 생각하실 거 없습니다.에서) 



心月 님의
<1950년 5월, 창경원 임시 폐문 조치에 대한 이승만 대통령 담화>
 
"어느 나라고 국민이 신성하게 생각하는 지경(地境)이나 고적이 있는 것으로써 미국 같은 나라도 로버트 리 장군의 저택을, 혹은 무슨 저명 인사의 서재까지도 보존하여 신성한 것으로 만들고 있으며, 패전국 일본에서도 궁성(宮城) 만큼은 그대로 개방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놈들의 신사만을 거룩하게 여기었으니 한심한 일이다. 우리나라의 신성한 장소라면 창경원이요, 덕수궁이요, 그리고 경복궁 등이다. 그런데, 미국인들이 들어가 놀면 말려라 할 터인데도 그들을 오히려 끌어들임에 만족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관습을 교정하고, 우리의 우수한 고적을 보존하기 위해 관할 경찰서장에게 [명령을] 행하여 폐쇄시킨 것이다. ...도대체 창경원에다 동물원을 들여 넣고, 경복궁에다 중앙청 건물을 건축한 것은 일인들의 우리의 신성 침해인 것이니 각성이 필요하다."



心月 님의 

"적게나마 예산도 서서 이들의 사료를 사먹이는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박영달은 틈을 내서 비원과 종묘 숲에 나가 그물을 쳐서 밀화부리 ・찌르레기 ・방울새 따위 산새들을 잡아다 빈 새장을 하나하나 채우기도 했다. 1947년부터는 사회 질서도 어지간히 잡히고, 원내(苑內)의 시설과 정원도 차츰 정비 단계에 들어갔다. 전문 직원이 없어 어려움이 많았으나, 바로 이웃한 성균관 대학과 서울대학교 수의학부 교수들의 지도와 협조를 받을 수 있었다. 동물과 식물이 부족했던 대신 각종 전람회, 연예 단체들을 유치해 행사도 치뤘다. 당시 구(舊) 황실의 유지는 거의 창경원 수입에 의존하는 실정이었는데, 특히 매점 임대료는 세입원으로 큰 몫을 감당하고 있었다. 정부가 수립된 후에도 예산이란 명목 뿐이었고, 관리 운영과 직원들의 부족한 생계 보조비도 이 잡수입으로 상당 부분 보충하는 실정이었다."

(...)

"서울 탈환에 안도의 숨을 돌이킬 틈도 없이 전황은 역전되어 1.4 후퇴를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직원들은 다투어 피란 짐을 싸고, 나도 이때만은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엄동설한에 아무도 돌봐주는 이 없이 우리 안에 갇힌 동물 가족들을 남기고 발길을 돌리기란 차마 어려웠지만, 백번 궁리 끝에 떠나기로 했던 것이다. 나는 앵무새 한 마리만 장에 넣어 가지고 떠났다. 정들었던 앵무새를 마지막으로 보고 문을 나서려는데, 'こら, こら! ばか, ばか!'하며 욕소리를 외쳐대는 이 오랜 친구만은 두고 갈 수가 없었다.

화성군 어느 지경에선가 얼어 죽은 앵무새를 눈속에 장사지내고, 피란 생활을 전전했다. 3월에 서울이 재탈환되자, 나는 잠입하다시피 단신으로 서울에 들어와 우선 창경원에 와보았다. 원내는 적막한 가운데 전각이며, 동물사 등도 예전과 다름없는 듯 했으나, 차례로 살펴보니 살아 움직이는 동물은 새 한 마리도 눈에 띄지 않았다. 누가 그랬는지 동물사는 모조리 문이 열려 있었다. 아마도 다시 내려왔던 인민군들이 잡아 먹었거나, 아니면 미쳐 돌볼 길이 없자 차라리 문을 열어 능력껏 살라며 방면해준 듯도 싶었다. 먹이지 못하고 가둔 채 굶겨 얼려서 죽일 바에야 백번 잘한 일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야생에 익숙하지 못한 동물들이 나아간들 제대로 살아 남았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아닌게 아니라, 조금 더 살펴보니 우선 에뮤 한 마리가 우리 가운데 엎어져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어루만져보니, 푸시시 거친 터럭 속에서 먼지만 일었다. 앙상한 뼈대를 간신히 가죽과 터럭이 덮고 있을 뿐이었다. 견디다 못해 혹한에 굶어서 얼어 죽은 것이다. 이밖에 큰물새 우리의 재두루미 한 마리, 맹금사의 부엉이 한 마리도 그렇게 죽어 있었고, 유일하게 문이 열리지 않았던 소(小)동물사의 여우 ・너구리 ・오소리 ・삵 등은 혹은 굴 속에서, 혹은 돌틈에 끼어 죽어 있었다. 낙타 ・사슴 ・얼룩말들은 발목이며, 머리통만이 우리 안의 여기 저기에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중공 ・인민군이나 굶주린 시민들이] 먹기 위해 제자리에서 도살을 당했음이 분명했다. 박물 표본실과 장서각은 문이 열린 채 소장품들이 흩어지고, 온실 내부의 식물들도 대부분 얼어서 말라 죽어버려 남은 것이라고는 묵은 소철이 한 그루만 있을 뿐이었다[여담으로 해방 직전에 처분된 동물들은 21종 38마리였다고 전해진다].


창경원은 일제 36년의 영욕의 넋두리를 8.15 전야의 맹수 및 대동물 학살이란 제1차 수난으로 끝내고, 바로 이어서 혼란스러웠던 5년을 가까스로 유지해 오다가 민족 상잔의 6.25로 절멸되는 제2차 수난을 당하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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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래서 그 궁전은 시이이이인성해서 동물원으로 쓰면 안되는데, 정작 신성 참트루블러드 킹갓로열패밀리는 그 동물원 매점으로 먹여살렸고요? 실체없고 허상뿐인 민족주의가 이렇게 알기 쉽습니다...

2. 인류가 더 적극적이고 확대된 개념의 인권(=동물권)을 보편 가치로 세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살만하면 동식물 잡아다가 가둬놓고 구경거리 만들다가 못살겠으면 팽하는건 보편적인 원리인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래에서온 "동물-인간-로봇" 인격체가 동물에 대한 과거 잔혹행위를 다루는 건 그럴싸하다고 봐요.

3. 일본어로 조롱하는 앵무새(조롱새?)가 창경원 사육사의 피난길 동지였다는 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네요.

4. 로버트 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 남군이 북군 죽인거에 항의하려고 (워싱턴에 위치한) 로버트 리 장군네 앞마당에다가 북군 전몰자 시신을 묻기 시작
2) 남북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리 장군이 자기집 못 돌아가게 하려는 목적 (실제로 못 돌아감)
3) 리 장군 아들이 소송내서 집을 돌려받나... 싶더니 정작 집에는 관심없고 그냥 돈달라고 해서 돈받아감.
4) 그래서 계속 헌충원 같은 국립공동묘지로 씀.
5) 1955년에야 리 장군 기념관으로 개칭.
6) 그것도 남군 명장이라서는 당연히 아니고, 전쟁 후에 남북화합에 노오력했고 교육과 복지에 이바지 등등을 기려서
7)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은 1950년에 저 말을 하고 있는것이고...

덧글

  • 존다리안 2017/08/21 22:15 # 답글

    그럼 인종차별에 반대한다고 리 장군 동상 부순 건 헛짓이었던 겁니까?
  • 남중생 2017/08/21 23:40 #

    알링턴 묘지(로버트 리 장군 기념관)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남북전쟁 행적은 기념하지 않는 방향이라고 합니다. 1955년 법안 통과 기록에서도 나오지만 로버트 리의 전후 행적(국민화합, 교육, 복지 등에 기여)을 기리는 목적이었습니다.
    샬롯츠빌의 동상은 그저 리 장군을 좋아한 독지가가 1917년에 커미션한 것인데, 샬롯츠빌 시 정부가 투표로 리 장군 기념 공원의 이름을 바꾸면서 동상도 없애겠다는 결정을 내렸죠.
  • sdaf 2017/08/22 20:01 # 삭제 답글

    한국인들은 일제가 패망한지 5년째인 1950년에도 일본신사를 성스럽게 여겼군요
  • 남중생 2017/08/22 20:20 #

    앞에 생략한 문장을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만, 과거 시제로 말한 것으로 보아, 일제 치하에서 신사참배를 하고 한편으로는 고궁을 유원지 삼은 과거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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