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감히' 제국을 사랑한 남자들 - Kimloan Hill의 Strangers in a Foreign Land 인도차이나 ~Indochine~

제국과 결혼한 남자들 - Matt Matsuda의 Empire of Love 포스팅에서는 프랑스 남자와 인도차이나 여성의 결혼을 다뤘는데요.
이번에는 반대의 경우를 소개하겠습니다.
1차대전 당시 프랑스로 모병/고용된 인도차이나 군인과 노동자(징집이 아닙니다)와 현지 프랑스 여성과의 로맨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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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ance and Reality
사랑과 현실

인도차이나 출신 노동자와 군인[1]은 프랑스 사람 및 사회와 상당히 교류했다. 인도차이나 사람들은 프랑스 현지 사람들의 집을 방문하고, 프랑스 여성들과 사랑에 빠졌으며(때로는 불륜일 때도 있었다), 그 결과 혼혈아를 낳았다.  그리하여 프랑스에서의 프랑스-인도차이나 관계는 식민지에서와는 정반대의 양상을 띄었다. 남자가 베트남인, 여자가 프랑스인이었던 것이다.  프랑스 정부는 이런 접촉에 대해 끊임없이 우려를 표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프랑스와 인도차이나 사람들이 가진 가정에서 여성의 역할관 차이가 프랑스 여성이 극복하기엔 너무 크다는 것이었다.[2] 이에 따라 당국은 인도차이나 남성과 프랑스 여성이 연애를 하지 못하도록 방지책을 마련하였다. 이미 연애중인 경우에는 프랑스 여성이 인도차이나로 가서 약혼자나 남편을 만나기 어렵게 하였다. 
프랑스 정부 관리들이 프랑스 여성과 베트남 남성이 연애중이라는 것을 발견하는데 주로 쓰인 방법은 우편물 검열이었다.[3] 우편 검열관들이 편지를 읽은 뒤 그 내용을 보고했다. 때때로 검열관들은 양자 간에 소통이 끊기면 관계도 시들해질 것이라는 바람으로 편지를 압수했다. 그러나 연애중인 프랑스 여성이나 인도차이나 남성이나 다들 정부가 자신들의 편지를 열어서 읽어본다는 사실을 알고있었다. 몇몇 커플은 편지 보내기를 중단했고, 다른 인도차이나 출신 남자친구들은 프랑스 이름을 써서 현지(프랑스) 주소에서 편지를 수령하기도 했다. 
해당 지역의 시장(市長, mayor)들은 현지 여성들과 연애하는 인도차이나 남성을 보고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어떤 때는 여자친구의 부모가 자기 딸에게 작업거는 남자를 지역당국에 고발하기도 했다. 시장은 이 남자를 군 당국에 보고해서 다른 지역으로 발령받도록 하였다. 18세 소녀를 임신시킨 한 남성은 그 소녀의 부모가 난리를 피워 투옥되었다. 투옥된 남자친구의 간절한 호소에 못 이겨, 소녀는 애아빠가 "백인"이라고 진술했다. 남자는 군사재판은 면했지만 "감히 프랑스 소녀와 사랑에 빠졌다"는 이유로 15일 간 구금되었다.

베트남 남성과 프랑스 여성 사이에 진정한 사랑이 꽃필 수도 있었다. 쯔엉(Truong)은 여자친구와 결혼하기 위해 부모님의 말을 거역하고 가톨릭교로 개종했다. 어떤 사례에서는 한 남자가 양다리를 걸치기도 했다. 두 여자 중 한 명이 진실을 깨닫자, 남자를 군당국에 신고했다. 또 다른 사례에서는 여자의 부모가 딸의 약혼자를 집으로 초대하고 마치 가족처럼 대했다. 여자의 가족은 나중에야 남자가 유부남이고 인도차이나에 자녀까지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인도차이나 총독이 프랑스 여성과 결혼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의 신원조사를 명령했기 때문에 들통난 것이다.[4]
프랑스 본토 정부가 프랑스-인도차이나 혼인에 대해 방해공작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남녀가 진지한 관계를 갖고 있다고 판단한 다음에는 이들이 꿈꾸던 결혼을 실현해주려고 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공짜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프랑스 여성과의 결혼이 허락된 한 남성의 경우, 프랑스 시민이 됨으로써 기존의 계급장이 떼이고 식민지 군대의 부사관 계급 혜택을 모두 잃었다. 심지어 그는 프랑스 군대에 '알 보병'으로 편입되었다.[5] 그 남자가 친구에게 쓴 편지에는 "며칠 뒤면 내 미래가 사랑하는 약혼녀의 기억으로 가득찰 것이라는 걸 알고, 기쁜 마음으로 카스트르(Castres)를 떠날거야. 그래, 루루(Loulou)는 곧 나의 것이 될거야. 우리가 함께 고생한지도 일 년이 넘었지. '결혼'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싸우면서 우리는 함께 많은 눈물을 흘렸어. 나 때문에 루루는 많이 울었어. [반면에,] 나는 배반자야. [내 조국에 대한]가장 끔찍한 배반자. [하지만] 난 내 사랑에게 충성을 맹세했어. 아, 인종이 달라도 남들이 맹비난을 퍼부어도 나를 그녀로부터 떼어놓을 수는 없었지."
1918년에 이르면 250쌍의 프랑스-인도차이나 부부가 프랑스 국내에서 법적 혼인관계를 맺었다. 추가로, 프랑스 측의 기록에 따르면 231쌍이 동거중이었으며, 1,132쌍은 연애상태였다. 생메다르앙잘(Saint-Medard-en-Jalles)[6]에는 50명이나 되는 혼혈아동이 있었다. 
프랑스-베트남 연애와 결혼 이야기는 베트남 남자들이 다양한 사회경제적 배경 출신의 온갖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형성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들은 상점과 음식점에서 현지 주민들과 거래를 했고, 식사를 하러 주민의 집에 찾아가기도 했다. 그러므로 프랑스 사람 및 사회와 주기적으로 교류한 것이 인도차이나 사람의 눈에서 프랑스 사람을 둘러싼 신비주의를 벗겨내는데 아마도 일조했을 것이다. 프랑스인은 천성적으로 인도차이나 사람에 비해 딱히 다르지도 않고, 더욱이 우월하지도 않은 갑남을녀였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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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차대전 시기 동안 약 99,000 명. 이들 중 극단적인 경우는 1918-1920년 국제전장 시베리아.로 파병되기도 한다.
[2] 참 편리한 베트남 '전통' 여성관은 타국의 "전통"을 존중하는 것은 왜 나쁜가 - Matt Matusda의 Empire of Love 참조.
[3] 21세기와는 달리(!) 연애 얘기를 마음대로 못한다.
[4] 프랑스 남자와 베트남 여자의 경우에도 조사를 받았다. 제국과 결혼한 남자들 - Matt Matsuda의 Empire of Love의 주석[1] 참조.
[5] 그러니까 결혼을 하려면 군대를 두 번 가야한다...
[6] 당시 인구 5000여명 (몇 년 사이에 인구의 1%가 혼혈! 전쟁통에 인구가 감소한 상태도 아니었고 오히려 증가세.)

출처: Kimloan Hill, "Strangers in a Foreign Land: Vietnamese Soldiers and Workers in France during World War I," in Nhung Tuyet Tran and Anthony Reid, eds., Viet Nam: Borderless Histories (Madison: University of Wisconsin Press,2006), 271-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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