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홍련st한 조선시대 외직 호러물, 그리고 조선전기 순흥 안씨 족보정리 ~창작물의 원형을 찾아서~

조선전기 인물 성현(成俔, 1439-1504)이 집필한 용재총화(慵齋叢話) 중 흥미로운 기록이 있어서 소개해보렵니다.
사실은 성현이 자기 외가집 자랑하는 내용입니다.^^ 

○ 우리 외가 안씨는 문성공(文成公 안향(安珦))의 후예다. 거란의 난리 뒤로 학교는 폐허되고 문교는 땅에 떨어졌는데, 문성공이 학교를 수축하고 녹봉과 그 노비 백여 구를 바쳤으니 지금까지도 성균관에서 부리는 자는 모두가 문성공의 노비이다. 공은 이 공로로 문묘에 배향되었다. 공은 우기(于器)를 낳고, 우기는 목(牧)을 낳고, 목은 원숭(元崇)을 낳고, 원숭은 원(瑗)을 낳고, 원은 우리 외조를 낳고, 외조는 구(玖)를 낳고, 구는 지귀(知歸)를 낳고, 지귀는 아들 호침(瑚琛)을 낳았다.[1] 지금까지도 장자(長子)가 서로 이어 과거에 합격하니 사람들이 문성공의 도움이라 한다.
○ 파주(坡州) 서교(西郊)는 황폐하여 사람이 살지 못했는데, 정당(政堂) 안목(安牧)이 처음으로 넓게 밭을 개간하고 큰 집을 짓고 살았다. 정당이 시를 잘하여 한구(句)를 짓기를,
목동의 피리 소리 긴 포서 밖에 들리고 / 牧笛一聲長浦外
고깃배의 두어 점 등불이 낙암 앞에 보이도다 / 漁燈數點洛岩前
하였다. 그 손자 원에 이르러 지극하게 창성하였는데, 안팎으로 차지한 밭이 무려 수만 경(頃)이나 되고 노비도 백여 호나 되었다. 늙은 고목 천여 그루가 10리에 그늘을 이루고 거위와 황새가 그 사이에서 울고 떠들었다. 공은 매를 팔 위에 올려놓고 누런 개를 데리고 매일 왕래함을 낙으로 삼았다. 지금도 남은 땅을 나누어 차지하고 사는 사람이 백여 명이나 되는데 모두 그 자손이다.
○ 유후(留後) 안원(安瑗)은 성품이 매와 개를 좋아하였는데, 글 공부하던 젊을 때부터 이미 이 버릇이 있었다. 처가에 있을 때에 왼팔에 매를 올려놓고 오른손으로 책장을 넘기며 책을 읽으니[2], 장인(丈人)이, “책을 읽으려면 매를 그만두던지 매를 좋아하려면 책을 그만둘 것이지 어찌 번거롭게 두 가지 일을 다 행하느냐.”[3] 하니, “글은 조상 때부터 내려오는 직업이니, 폐할 수 없고, 성질이 매와 개를 좋아하니, 또한 폐할 수 없습니다. 두 가지를 행하더라도 어긋나지 않으면 어찌 이치에 해가 된다 하겠습니까.” 하였다. 어려서부터 늙을 때까지 한결같이 이것으로 스스로 즐겼다. 하루는 쌍매당(雙梅堂 이첨(李詹)의 호)이 낙하(洛河 임진강)를 건너 한양으로 향하다가 길 옆 산골짜기에서 책읽는 소리를 듣고, 그 종에게, “이는 반드시 안 노인 일 것이다.” 하였는데, 가서 보니 왼쪽 팔에 매를 올려놓고 오른손으로 《강목(綱目)》책장을 넘기며 나무에 의지하여 책을 읽고 있으므로 서로 보고 크게 웃었다. 공의 사람됨이 너그럽고 느릿느릿하여 평생에 빨리 말하지 않고 바쁜 기색이 없었다. 왜구가 승천부(昇天府)를 함락하였는데도 공은 오히려 집에서 책만 읽고 있으므로 종이, “왜구가 닥쳐 왔습니다.” 하였으나, 공은 “아직은 활쏘는 것을 익히고 황급하게 굴지 말라.” 하더니, 얼마 있지 않아 왜구가 물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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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순흥 안씨는 한 세대 씩 건너서 구슬 옥 변(玉)이 들어가는 이름을 쓰는 것 같다. (아래 가계도 참조.)
[2] 핸드폰이 없다고 공부할 때 딴짓을 안 하는게 아니다.
[3] 처가살이하면서 장인어른한테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듣는걸 보면, 조선전기의 혼인문화에 대해 알 수 있다.

여기서 잠시 성현 외가 쪽의 가계도를 정리해보죠.
위에 언급되어있는 장자 위주로 그렸고, 형제가 여럿 있는 경우에도 대부분 생략했습니다.

이 아래 이어질 내용은
등 에서 여러 번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위 포스팅들에서는 해당 기록에서 개별 요괴/귀신을 특정짓거나, 퇴마법을 찾아내는 등 
옛 기록에서 특정 '요소'를 뽑아내는 방향으로 소개되어왔죠. 
(오해는 없으셨으면 합니다. 저는 이렇게 읽는 것도 몹시 좋아하기 때문이죠!!)
다만, 하나의 이어진 줄거리로 읽히는 경우가 적어서 아쉬웠습니다. 

위 가계도를 참조하면서 아래 내용을 계속 읽어나가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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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외삼촌 안공[1]은 성질이 엄하고 굳세어 12주 현을 역임하였으나 추호도 남의 것을 범한 일이 없으니, 관리들은 두려워하고 백성들은 따랐다. 또 귀신의 형체를 잘 보았는데 일찍이 임천(林川) 군수가 되었다. 하루는 이웃 관리들과 술마시고 있을 때에, 사냥개가 원중(苑中)의 큰 나무를 향하여 매우 짖어댔다. 공이 돌아다 보니 어떤 괴물이 고관대면(高冠大面)으로 나무에 의지하여 서 있다가 안공이 뚫어지게 바라보니 점점 사라져 버렸다. 또 하루는 하늘이 흐리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 공이 변소에 가게 되어 아이 종이 촛불을 받들고 앞을 인도하는데, 대숲 속에 한 여자가 붉은 난삼(襴衫)을 입고 머리를 풀고 앉아 있기에 공이 곧장 그 앞으로 가니 여자가 담을 넘어 달아났다. 또 그곳의 풍속이 귀신을 공경했는데, 관아에 입주하는 자가 계속해서 죽으므로 고을 사람들이 도깨비 숲이라고 버려 두었다. 공이 와서 처음으로 들어가고자 하니 고을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말렸으나 공은 듣지 아니하였고, 민간의 음사(淫祠)도 모두 태워 헐어버렸다. 관청 남쪽에 오래된 우물이 있는데, 고을 사람들은 그 속에 귀신이 있다 하여 앞을 다투어 모여들어 복을 빌므로 공이 명령하여 이를 메우게 하였더니, 우물에서 소가 우는 것 같은 소리가 사흘이나 들려왔다. 고을 사람들이 메우지 말라고 청하니, 공은 말하기를, “우물이 필시 슬퍼서 곡하는 것인데 무슨 괴이한 일이 있겠느냐.” 하자, 이로부터 모든 요해(妖害)가 없어졌다. 공은 마침내 그 공이 최(最)에 올라 다른 데로 영전되었다. 또 공이 서원(瑞原) 별장에 오랫동안 있을 때에 길 옆에 고목 한 그루가 있었는데, 그 크기가 몇 아름 되고 높이가 하늘을 찌를 만했다. 하늘이 흐리면 귀신이 휘파람을 불며 밤이면 불을 켜놓고 시끄럽게 떠들었으며, 공이 매를 놓아 꿩을 쫓다가도 그 숲에 들어가면 찾을 수가 없었다. 마을의 어떤 소년이 용기만 믿고 가서 그 나무를 자르다가 귀신이 붙어 밤낮으로 미쳐 날뛰니 온 동네 사람들이 당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공의 이름만 들으면 빨리 보이지 않는 곳으로 달아나 피하였다. 공이 그 집에 가서 문 밖의 평상에 앉아 사람을 시켜 머리털을 나꾸어 끌어 내도록 하니 소년은 안색이 검어지며 애걸하였다. 공은 꾸짖기를, “너는 마을에 있는 지 2백여 년이 되는데 불을 켜놓고 해괴한 행동을 하며 내가 지나가도 걸터앉아 불경한 짓을 하고 매를 놓으면 숨겨두고 내놓지 않더니, 지금은 또 이웃집을 괴롭히니 무엇을 얻고자 하는 짓이냐.” 하니, 소년이 이마를 땅에 대고 공손히 사죄하였다. 공이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 나뭇가지를 잘라 장도(長刀)를 만들어 거짓 그 목을 베니, 소년이 몸을 굴러 길게 울부짖고 죽은 것처럼 땅에 엎드려 깊이 잠들었다가 3일 만에 비로소 깨어나더니 광태가 갑자기 사라졌다. 해주 목사까지 하고는 벼슬을 버리고 사방을 두루 돌아다녔는데, 매를 팔뚝에 얹고 누런 개를 끌며 어린 종 수십 명과 함께 물고기 그물과 짐승 그물을 싣고 다니며 들에서는 고기를 잡고 산에서는 짐승을 쫓았다. 공이 또 활쏘기를 잘하여 사슴과 멧돼지를 맞히지 못함이 없고, 항상 튼튼한 말을 타고 천길이나 되는 언덕을 달려 내려가도 빠르기가 나는 새와 같았는데 살촉이 서로 연달아 이어져 보는 사람이 탄복지 않은 이가 없었다. 향년이 70으로 졸하였다.
나의 외숙 안 부윤(安府尹 안향(安珦)의 후예[2])이 젊어서 파리한 말을 타고 어린 종 한 명을 데리고 서원(瑞原) 별장으로 가다가 별장에서 10리쯤 떨어진 곳에 이르렀는데 날이 어두워지고 말았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사람이라곤 없더니, 동쪽으로 현성(縣城) 쪽을 바라보니 횃불이 비치고 떠들썩하여 유렵(遊獵)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기세가 점점 가까워지면서 좌우를 삥 두른 것이 5리나 되는데, 빈틈없이 모두 도깨비불이었다. 공이 진퇴유곡(進退維谷)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오직 말을 채찍질하여 앞으로 7, 8리를 나아가니 도깨비불이 모두 흩어졌다. 하늘은 흐려 비가 조금씩 부슬부슬 내리는데, 길은 더욱 험해졌으나 마음속으로 귀신이 도망간 것을 기뻐하여 공포심이 진정되었다. 다시 한 고개를 넘어 산기슭을 돌아 내려가는데 앞서 보던 도깨비불이 겹겹이 앞길을 막았다. 공은 계책도 없이 칼을 뽑아 크게 소리치며 돌입하니[3], 그 불이 일시에 모두 흩어져서 우거진 풀숲으로 들어가면서 손바닥을 치며 크게 웃었다. 공은 별장에 도착하여서도 마음이 초조하여 창에 의지한 채 어렴풋이 잠이 들었는데, 비복들은 솔불을 켜놓고 앉아서 길쌈을 하고 있었다. 공은 불빛이 켜졌다 꺼졌다 함을 보고 큰 소리로, “이 귀신이 또 왔구나.” 하며 칼을 들고 치니, 좌우에 있던 그릇들이 모두 깨지고 비복은 겨우 위험을 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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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외구(外舅)는 원래 장인이라는 뜻인데, 성현의 처가는 이씨다. 이 표현 때문에 '장인'이나 '외삼촌'이라고 국역한 경우가 많은데, 외할아버지 안종약(安從約)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70년을 살았으며, 해주목사까지 벼슬을 했다. 앞에서는 '우리 외조'라고 쓴 다음에 굳이 외구(外舅)라고 돌려쓴 이유는 불명하다.   
[2] 안향의 후예라는 것은 인용문 맨 위에서 이미 언급된 만큼, 쓸데없는 부연설명이다. 당시 '안 부윤'이라는 호칭으로 불린 인물은 성현의 외종사촌인 전주 부윤 안지귀가 있으나, 외숙(삼촌)이라고 명시되어있는 만큼, 검교 한양부윤 안경(安璟)일 가능성이 높다. 
[3] 역사관심 님의 칼을 허리에 찬 선비들 참조! (비록 한직이었지만) 한양부윤에 해당하는 문신도 평소에 칼을 차고 다녔다. 연행길 및 변란 시기 혹은 문신/무신 경계가 애매한 케이스들을 보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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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에서 언급한 번역 문제 때문에 외구(外舅) 안 공(公)-안종약-외숙 안 부윤(府尹)-안경-이 동일 인물로 소개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 둘은 엄연히 부자관계입니다.

그나저나 안종약이 임천 군수로 부임하던 시절의 해프닝들만 모아놔도 정말 으스스하지 않나요?
군수가 연이어 죽은 마을에 부임하는데... 숲 속에서 바라보는 가면 쓴(?) 정체불명의 괴인... 붉은 색 옷을 입고 대숲을 뛰어다니는 미친 여자... 우물에서 나는 음울한 소리... 미신적인 마을 주민들은 사사건건 반대만 하고... 

적절하게 소름끼치는 배경음악과 안개를 잘 활용하면서 이 사건들을 영상으로 하나 하나 나열하기만 해도 호러 사극 영화가 제대로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ㄷㄷ

과거 포스팅, 장화홍련이 사또를 찾는 이유는? - Judith Boltz의 Not by the Seal of Office Alone! (上) 에서 다음과 같은 주장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이 글에서 Boltz는 유명한 송대 문인이자 관리인 구양수가 등장하는 이야기를 소개한 뒤, 이것이 어떤 역사적인 실제를 반영하고 있는지 설명하고 있죠. 다시 말해, 새로 부임한 사또에게 장화&홍련 귀신이 찾아오는 이유는 사실 귀신으로 대변되는 토착세력과 중앙에서 파견된 관료의 암투!!를 그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국사학자인 Judith Boltz의 이론이 비단 중국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조선에도 적용시킬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는데요.
조선의 '사례'가 부족해서 장화홍련전(춘향전이나 배비장전도 곁들여서)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용재총화의 안종약 기록을 언급할 수 있게 되어서 마음에 한결 편하네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중앙집권지방자치의 갈등을 보여주는 귀신이야기로 장화홍련전만큼 좋은 사례도 없다고 봅니다.
중국의 사례들보다 더 좋은 사례라고 여겨지는데요.
장화홍련의 아버지 배무령의 직책은 '좌수'로 나오는데, 좌수는 조선 시대의 지방 자치 기구인 향청의 우두머리로, 때로는 고을 수령을 돕지만 때로는 고을 수령의 잘못된 행정을 견제하는 역할을 했거든요.
그러니 장화와 홍련이 배 좌수가 늘그막에 둔 '딸'이라는 설정은 아마 이야기의 개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추가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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