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 제가 갖고 있는 영문 번역들을 그대로 따라해서 こころわるい를 '마음이 악하다'로 번역했는데,
다시 찾아보니 '기분나쁘다'는 표현으로 더 흔히 쓰는 것 같습니다. 수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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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포스팅 시리즈에서 사리스 선장의 일본항해기를 다뤘는데,
눈길이 가는 일화는 또 있습니다.
히라도에 상륙한 뒤, 사리스 일행은 수도 교토(미야코)를 향해 갑니다.
우선은 규슈 본토부터 밟아야겠죠?
사리스가 '런던만큼이나 대단한 도시'라고 극찬한 후쿠오카(하카타) 주민들은 대부분 '매우 문명적이고 예의바른' 사람들이였지만, 꼭 몇 명이 물을 흐립니다...

(사리스가 '코코레 와레'를 다소 잘못 이해한 면이 있는데, '마음이 나쁘다/못됐다' 보다는 '기분나쁘다'는 혐오발언에 가까운 것으로 보입니다.)
하도 시끄럽게 떠들어서 사리스 일행은 자기들끼리 대화도 불가능할 정도였고, 어떤 곳에서는 난데없이 돌팔매를 맞기도 했다고 합니다...
특히 교토를 찍고 돌아오는 길에 들른 오사카가 유독 심했다고 하는데요.

이곳(오사카)에서 정말 무례한 사람들을 만났는데, 우리를 따라다니면서 "중국놈(唐人), 중국놈"이라고 소리치거나, "고려놈(코레), 고려놈"이라고 부르면서 돌을 던졌다. 이 도시에서 제일 진중한 사람들조차 이들을 말리기는 커녕 되려 부추기고 선동했다.
오사카에서는 다시 배를 타고 히라도로 돌아갔다고 하니, 일본 본토에서는 처음(후쿠오카)부터 끝(오사카)까지 인종차별에 시달렸다는 말이 됩니다. 정작 국제무역항 히라도는 이런 문제가 없었다는걸 보니, 역시 국제적인 경험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저 노래 말입니다.
코레, 코레, 코코레, 와레!
특정 지역방언인지는 모르겠지만, 방언이라기엔 너무 전국적으로 유행한 것 같고...
"코우라이 코우라이 코코로 와루키!"라고 표준 발음을 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각운(라임)을 살렸네요;;
특히 "코코레"는 마음(こころ)의 변형이기도 하지만 고구려 또는 호고려(?)라는 뜻도 가지면서 앞의 "코레- 코레-"의 변주같이 들립니다.
그리피스의 '은자의 나라, 조선'에서는 이런 언어유희도 함께 설명하고 있죠.

"오, 너 이 고려 놈, 고려 놈, 고구려 놈"
동요, 동심이라고 하면, 아이들은 무조건 착하고 친절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나쁜 버릇을 가장 잘 흉내내고, 전쟁이나 폭력을 아주 거울처럼 담아냅니다.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뒤, 초등학생 아이들이 히스패닉계 선생님 교실에 커다란 벽을 그려붙여넣었다는 장난이 마음 편히 웃어넘겨지지만은 않는 까닭입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해드리고 싶은것은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돌아온 술주정뱅이"(1968)라는 영화입니다.
"그 사진"을 흉내내는 놀이를 하고 있네요.

중2병 걸린 소년들이 전쟁을 경험하고는 싶은데, 난 무장해제 당한 일본국민이잖아? 아마 안 될거야...
그러니까 전쟁의, 죽음의 리얼리티에 가장 가까운 흉내를 내고 싶어서 안달이 나있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입니다.
더 자연스럽게, 더 그럴싸하게!
물론 이건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서 일본사회를 비판하고자 하는 오시마 감독의 의도가 다분히 드러나는 장면이죠.
어떻게 하면 죽음을 더 잘 연출해낼까?하는 영화감독의 태도를 자조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과연 베트남 전쟁 당시 일본 아이들은 정말 저러고 놀았을까? 아이들의 놀이를 보고 오시마 감독이 영화에 담은걸까?"하고 스스로 되묻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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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임진왜란/정유재란 당시 포로로 잡힌 조선인을 가리킨 말에 대해서는 明智光秀님의 [편지] 왜군들의 우리말 - 아빠의 출장 선물... 080429 포스팅도 소개드립니다.
같은 사료가 hansang 님의 서평 그들이 본 임진왜란 - 김시덕 : 별점 2점에도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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