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S.O.S.] 일본 책 찾는데 도움을 구합니다. 용틀임하는 동아시아 근세

본인이 속해있는 학교 도서관이나 기관에 아래 책이 소장되어 있다면, 꼭 알려주세요~~


Matsuda Kiyoshi, Yōgaku no shoshiteki kenkyū, 31-38.

松田清、洋学の書誌的研究、31~38 페이지.

가능하다면, 343-44페이지도 부탁드립니다!

================================================================================================

지난 포스팅, 영국식 불교 - 홍차 같은걸 끼얹나? 에서 Ca 님께서, 

"음... 제 생각에는 기독교를 '영국불교로 인식'했다기 보다는 일종의 모자이크 같은 용도 아닐까요?
기독교가 엄격히 금지된 상황에서는 문헌에 기독교라는 표현이 있는 그 자체로도 불안하니 문자 그대로의 자체 검열을 해놓은게 아닐까요...
(알만한 사람들은 어차피 다 눈치채겠거니 하는 식으로...)
"

라고 덧글을 달아주셨습니다. 

위 포스팅에서도 말했듯이 시바코칸의 세줄요약과 별도로, 마츠라 가문에서 만든 정식 일본어 번역본이 있습니다.
제가 이 일본어 원문을 확인해보려고 노력했으나, 아직은 소득이 없습니다;;

(바로 저 위에 서지사항을 달아놓은 책에 인용되어있다고 하니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그러니, 우선은 갖고있는 타이먼 스크리치 영역본으로 만족하겠습니다. ㅠㅜ

그리고 Ca 님께는 이미 오역의 전례가 있는 타이먼 스크리치의 영문 번역을 소개하기가 꺼려져서 그동안 답을 못 드린것이니, 양해바랍니다.

------------------------------------------------------------------------------------------------------

He arranged for relevant sections of Saris’s journal to be put into Japanese for him, engaging the scion of a hereditary translator family, Motoki Ryoei. Among the excerpts culled was the fundamental one of the arrival of the Clove and the viewing of the Venus [and Cupid]. Ryoei did not well understand the painting’s theme, so he resorted to phonetic transliteration, but he got the gist of the story. Following Purchas, he transposed parts of the text into the third person. Ryoei’s rendition: “Saris permitted several women to enter his cabin, where was hanging a painting, Heeniyusukipidou, rendered in a coarse[hiro] way. A mother was cradling her child. The women fell down before it and prayed.”Already flummoxed by the Dutch “Venus en Kupido,” Ryoei was utterly defeated by the laconic phrase used to denote Mary and Jesus: “O. L. V. met haaren Zoon”(Our beloved Lady and her Son). Perhaps in deference to Kiyoshi, Ryoei excised the fact that the blunder was made by the daimyo’s own ladies. He also toned down the reference to Christianity, which by then was proscribed. And Ryoei also added, for safety’s sake, “most of [the women] would have been Buddhists,but perhaps there were some Christians among them

Timon Screech의 "Pictures (The Most Part Bawdy)": The Anglo-Japanese Painting Trade in the Early 1600s. 
The Art Bulletin  Vol. 87, No. 1 (2005년 3월호), 54 페이지. 

[번역]

"마츠라 세이잔은 유서깊은 통역사 집안의 후예 모토키 료에이에게 접촉해서, 사리스 항해기 중 관련부분을 일본어로 번역하도록 명했다. 번역을 위해  모은 부분 중에는  클로브(Clove)호의 도래와 비너스(와 큐피드) 그림 감상에 대한 중요한 발췌문도 있었다. 료에이는 '비너스와 큐피드'라는 그림의 주제를 잘 이해하지 못한 채, 소리나는 대로 음차를 하기로 했지만 이야기의 얼개는 이해할 수 있었다. 퍼채스를 따라서 료에이도 주어를 삼인칭으로 옮겼다. 료에이의 번역은 다음과 같다: “사리스는 여인 몇 명을 선실 안으로 들어오게 허락했다. 선실 안에는 헤에니유스키피도우 그림이 걸려있었는데, 적나라하게 연출되어 있었다. 어머니가 아이를 어루고 있는 그림이었다. 여인들은 그림 앞에서 몸을 낮추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Venus en Kupido라는 네덜란드어에서 이미 당황한 료에이는 성모 마리아와 예수를 지칭하는데 쓰인 약어: O. L. V. met haaren Zoon (우리 사랑받으시는 성모님과 그 아들) 앞에서는 두 손 들 수 밖에 없었다. 마츠라 세이잔의 명예를 생각해서였을까? 착각을 한 여인들이 다름 아닌 마츠라 다이묘의 여자들이라는 내용을 잘라냈다. 또한 료에이는 당시 금지되어 있던 기독교에 대한 언급을 삼갔다. 또한 료에이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여인] 대부분은 불교신자였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몇 명의 기독교 신자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라고 추가했다."

---------------------------------------------------------------------------------------------------------------------------------------------------------------

마지막 문장을 보시면 알 수 있다시피, 모토키 료에이는 기독교를 확실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를 대놓고 언급하더라도, 주군의 조상님들이 기독교도라는 것을 적당히 무마시키는 것을 우선시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키리시탄"이 (말도 꺼내면 안되는) 볼드모트 같은 개념은 아니었다는 거죠.

모토키 료에이의 (주군께 바치는) 공식 번역본에서 기독교를 언급해도 되는데, 굳이 시바코칸이 자기 일기장인 필기(biji) 문학 장르에서 "영국식 불교"()라고 순화할 필요가 있었나... 싶은게 제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 추측을 확정지으려면 정말 저 일본어 원문이 필요합니ㄷr~~~~~~!

지금으로써는, 18세기 말 타치바나 난케이가 에서 "키리시탄 본존(切死丹の本尊)"이라는 표현을 쓴다는 것도 참조해보시기 바랍니다.


핑백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