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보이는 대로 믿으면 안 돼! - John Saris 선장의 일본 항해기 HELLO! VENUS?


옛 글은 문자 그대로(sola scriptura) 해석하면 오역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의 문자적 해석이 현대에 들어서 창조과학이 되는 것도 이런 경우고,
사료의 문자적 해석을 하면 현대 지명과 과거 지명이 이동한 교치(僑置)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채 유사역사학으로 번지죠.
셰익스피어 문학을 발표 당시의 영어 발음을 감안하지 않고 읽으면 언어유희가 제대로 읽히지 않습니다.


제인 킹슬리-스미스(Jane Kingsley-Smith)의 '근세 문학과 문화에 나타난 큐피드 인식' (Cupid in Early Modern Literature and Cultur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0))의 Chapter 1은 아래와 같이 시작합니다. 
사리스 선장 항해기를 인용하긴 하는데... 존 해리스(1667?-1719)의 1705년 판 Navigantium atque itinerantium bibliotheca(항해기와 여행기의 도서관)에 나온 대로죠...
지난 포스팅에서 다뤘듯이 저건 각색이 많이 된 버전일텐데요?
-----------------------------------------------------------------------------------------------------------------------

1 장

큐피드, 미술, 우상숭배 (Cupid, art and idolatry)


'내 선실에 불러들인 일본 귀족 여인들 몇 명이 신앙 문제에 있어 이상한 오해를 일으켰는데 기록할 수 밖에 없다. 이 여인들은 포르투갈 예수회의 선교 대상이었는데, 예수회 신부들로부터 약간의 기독교를 배워서 옹알이 같은 기도문 몇 마디를 외거나, 성상이나 그림 앞에서 웅크릴 줄은 알았다. 
선실에 들어온 선량한 여인들은 벽에 걸려있는 비너스와 큐피드 그림에 우연히 눈길이 갔다. 그림을 보자마자 여인들은 갑자기 발작하듯 신앙심에 경도되어 망설임 없이 무릎을 감싸안더니, 예수회 신부들에게서 배운 종교[기도문]를 아는대로 내뱉는 등, 눈 앞에 그려진 두 분의 점잖은(modest) 신을 대하는데 몹시 열성적이었다. 사건의 진실은, 이 여인들이 비너스와 큐피드 모자(母子)를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와 그 아들로 오해한 것이었다. 예수회가 성모자에 대해 아주 얄팍한 지식만을 전달한 나머지, 큐피드, 비너스 모자와 차이를 몰랐던 것이다. 참으로 이상한 노릇이다. 이 [일본] 지역에서 거룩한 기독교의 씨를 뿌리는 자들이, 설교의 태반을 그림을 가지고 하면서도 일을 이토록 허술하게 했다니. 복된 동정녀 그림을 (하다못해 천박한 창부의 그림과) 알아보는 중요한 부분에서 신도들을 완벽하게 가르치지 않았다니. [비너스는] 항상 헤프고 정숙하지(immodest) 못한 분위기로 그리는 만큼, 한눈에 발견할 수 있는데 말이다. 두려워할지어다. 성상에 대한 기초교육조차 받지 못한 이 일본 기독교인들은 종교 교리에 해박한 학자가 아닌 것이다. 또한 예수회는, 비너스와 동정녀 마리아의 차이조차 가르치지 않은 만큼, 교리 교육에 애써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이다.

이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일본에서의 선교 사업보다는 근세 영국 신교도가 천주교를 대한 태도를 말해준다. 예를 들어, '옹알이 같은 기도문'은 여인들이 외국어 발음에 난항을 겪는 것 만이 아니라 천주교 전례에서 라틴어가 지역 언어에 비해 갖는 우위를 암시한다. 개신기독교의 핵심 교리 중에는 '말씀'을 번역함으로써 접근이 용이하다는 것이 있었다. 또한 '성상이나 그림 앞에서 웅크릴 줄 알았다'는 것은 성상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가톨릭 전례를 향한 신교도적 혐오를 암시한다. 이같은 전례는 모욕적일 뿐 아니라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사리스가 '약간의 기독교를 배워서 ... 웅크릴 줄은 알았다'고 쓴 부분을 참조.)[1] 그러나 본 연구의 관점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천주교 신자가 비너스와 큐피드 상을 성모자상으로 착각한 이야기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회화에서 성모자(聖母子)와 속모자(俗母子)는 아이가 어머니 무릎 위에 앉은 동일한 포즈로 그렸다. 옷을 안 입은 비너스를 성모와 구별해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넘겨짚기 십상이지만, 비너스가 옷을 입고 있을 때도 있다. 사리스는 가톨릭 신도의 착각을 설명하는데 미술사를 인용하는 대신, 당대의 종교적 논쟁만을 따진다. 사리스는 예수회가 '설교의 태반을 그림을 가지고 하면서도' 제자들이 '복된 동정녀'와 '천박한 창부'를 구분하도록 가르치지 않았다는 것을 보고 놀라는 척을 하는데, 이 거짓 시늉은 천주교가 성인들을 시각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창녀로 만들어버린다는 자주 반복된 주장이 연상된다. '우상숭배의 위험에 대한 강론'(An Homily against Peril of Idolatry, 1563)의 저자는 성상이 '막달라 마리아 보다는 비너스나 플로라에 가깝다. 막달라 마리아에 가깝다면, 죄를 뉘우치며 눈물을 흘렸을 때가 아니라 창녀 노릇을 했을 때다'라고 불평한다. 따지고 보면, 비너스를 동정녀로 착각하는 것은 우상숭배 반대 논쟁(anti-idolatry debate)에서 익히 언급된 일화였다. 8세기 비잔틴 성상파괴 논란에 대응하기 위해 쓰인 샤를마뉴의 서(Libri Carolini)는 '그림을 숭상하는' 사람은 성모 마리아와 비너스를 구별해내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화가가 두 그림에 설명문을 달았을 때 비로소 각 그림에 상응하는 태도를 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 
성모님(Mother of God)이라는 제목이 달린 그림은 드높임, 추앙, 입맞춤을 받았습니다. 다른 그림은 비너스라고 제목이 달렸기 때문에 비방, 힐난, 저주를 받았습니다. 두 그림 모두 형상과 색칠이 동일했고, 똑같은 재료로 만들었으며, 제목 만이 달랐을 뿐입니다.
라틴어 원문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카롤링거 시대 학자들의 텍스트 인용 (타타르키비츠 미학사 : 중세미학, 2006. 8. 30., 미술문화)

사리스는 신성함을 인식하는 것은 그림을 보는 사람에게 달려있다는 데 동의하는 것으로 보인다. 개신교인은 두 이미지를 서로 혼동하지도 않을 뿐더러, 유혹당하지도 않는다. 그러는 한편, 사리스가 선실에 비너스와 큐피드 그림을 둔 가장 뻔한 이유는 일종의 포르노의 용도였다.[2] 큐피드와 비너스는 이탈리아 춘화(큐피드는 줄리오 로마노(Giulio Romano)의 '16가지 체위'(I Modi)와 야코포 카랄리오(Jacopo Caraglio)의 '신들의 사랑'(Gli amori degli dei)에 모두 등장한다)와 연관지어졌을 뿐만 아니라, 비너스의 '헤프고 정숙하지 못한 분위기'라는 언급을 볼 때 그림 속 인물들은 유혹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고 해석할 수 있어보인다. 큐피드는 벌거벗었고 비너스는 침대에 누워있는 그림이었을지도 모른다.[3] 이런 그림을 소유하고 배포하고자 한 사리스의 의도는 당시에도 음란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1614년 12월, 사리스는 동인도회사로부터 징계를 받았다. '음란서적과 회화를 갖고 귀환했고 이를 누출시켰는데 ... 이는 우리 회사에 있어 대단한 스캔들이며 허용하기에는 문제가 지나치게 엄중하다.'[4] 이 스캔들을 통해 사리스가 (이미 사람을 경도시키는 힘을 인정했으면서도) 그림에 관심없는 체 했던 모습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동시에, 앞서 비난한 가톨릭 우상숭배를 자신도 저지른 셈이 되었다. (대개 이탈리아에서 온) 음란 문학 서적의 수입을 개탄한 사람들은 흔히 (이탈리아를) '청녀촌'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것이 '우상숭배와 교황숭배'에 손가락질하기와 마찬가지라고 당연스럽게 생각했으며, 우상숭배와 야설을 읽는 경험은 똑같은 양상을 띈다고 여겼다. 다시 말해, '문란한 육체가 느끼기에 정욕과 간음이 달콤한 만큼, 우상숭배는 타락한 양심과 정신에게 달콤하다.' 그러므로 사리스의 수집품(어쩌면 글에 언급된 바로 그 그림도 포함해서)이 공개 화형당하는 것이 당연한 처사였을 지도 모른다. 음란 수집품들은 엘리자베스 여왕 치세 동안 가톨릭 미술과 조각품과 마찬가지의 운명을 겪어야했다. 
그러나 어쩌면 가장 흥미로운 점은 사리스가 서로 반대되는 '큐피드 읽기'를 통해 신교와 구교의 차이를 강조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 장에서는, 일본 귀족 여성들이 큐피드를 가톨릭교의 숭배대상으로 착각한 것이 반드시 오해는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세시대에는 예수를 사랑(Amor)으로 형상화하는 전통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큐피드가 가톨릭교의 신으로 대체되었다는 것은 근세 개신교에서 (조롱할 목적으로라도) 여러 번 되풀이한 주장이었다. 또한 큐피드의 강력한 매력에 익숙한 남성 개신교도에게 큐피드 그림을 본 여자들의 뜨거운 호응('발작하듯 신앙심에 경도되어 망설임 없이 무릎을 감싸안더니')이 생소했을 리도 없다. 이 장은 다음과 같은 주장으로 시작한다. 큐피드에 대한 무관심의 중세시대가 지난 뒤, 종교개혁기 영국에서 큐피드는 새로이 이교도스러운 그리고 가톨릭스러운 우상으로 정의되었다. 토틀 시화집(Tottel's Miscellany, 1557)과 사랑을 노래하는 다른 여러 싯구를 비판하는 목소리에서 큐피드는 음란하면서도 신성모독적이려 하는 이교도스러운 충동의 현신으로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신교 시인 필립 시드니(Philip Sidney)와 에드먼드 스펜서(Edmund Spenser)는 큐피드와 타협했다고 할 수 있다. 이 둘은 큐피드 주변을 맴돌면서, 큐피드 이미지를 비난하는 만큼이나 큐피드라는 심상으로 시와 미술을 변호할 여지를 남겼다.  
-----------------------------------------------------------------------------------------------------------------------
[1] 여기까지가 영국식 불교 - 홍차 같은걸 끼얹나?에서 mori님의 답글 "재밌는 얘기네요!!! 비너스와 성모라니 ㅎㅎ 오해와 오역을 살펴보는 것도 재밌구요!! 17세기 영국인이나 18세기 네덜란드 사람이나 둘 다 (가톨릭교인이 아니라는 가정 하에) 가톨릭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혹은 미개하다는 색의 태도를 취했을텐데 이런 것도 신기하군요!"에 대답이 되는 부분.
[2] 그럼 그렇지!
[3] 아주 침대에 드러누워있는 그림이었다면 성모상으로 오해하지는 않지 않았을까 싶으면서도... 수태고지...
[4] 이건 실제로 사리스가 받은 징계가 맞다. 이 정도까지 배경조사를 했으면서 맨 처음 인용한 항해기가 원문인지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은 안타깝다.

네... 굉장히 심층적인 분석을 했고, 당시 영국 종교사/문화사와 엮어서 흥미로운 연결고리를 이어나갔지만... 빨간 색으로 칠한 "사리스"는 모두 "해리스"로 바꿔야할 것이고, 그림에 큐피드가 등장한다는 것 역시 항해일지 원본이 아니라 후대에 추가된 내용이라는 걸 지난 포스팅에서 확인했죠.
인용문에 달린 주석을 보면, '이 글을 내게 소개해준 클레어 맥마누스 박사께 감사를 표한다.' (I am grateful to Dr. Clare McManus for bringing this passage to my attention)라고 써있는데, 맥마누스 박사님 역시 근세 영국 문학 전문가입니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근세 영국 문화/문학 전공이라고 해서 같은 분야(저는 이걸 "fellow Shakespeareans"라고 부르겠습니다) 내에서만 교류를 할 것이 아니라, 넓게 학제간(interdesciplinary)의 소통을 해야한다는 거죠.  

옛 글은 문자 그대로(sola scriptura) 해석하면 오역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의 문자적 해석(창조론)이 현대에 들어서 문제가 되는 것도 이런 경우고,
사료의 문자적 해석을 하면 현대 지명과 과거 지명이 이동한 교치(僑置)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채 유사역사학으로 번지죠.
셰익스피어 작품을 발표 당시의 영어 발음을 감안하지 않고 읽으면 언어유희가 제대로 읽히지 않습니다.

"오해에 대한 오역, 오역에 대한 오해"라는 주제로 이어나간 이번 포스팅 시리즈를 이런 맺음말로 묶고 싶습니다.


덧글

  • Fedaykin 2017/08/02 11:02 # 답글

    과연 실제 선실에 걸린 그 그림이 어떤 그림이었을지 궁금해지네요. 큐피드가 있었을까 없었을까...비너스는 벗었을까 입었을까...과거로 들어가볼 수 없어서 아쉽습니다.

    선실에 있는 음란한 그림이라고 하니까 동네 카센타에 있는 누드 달력 느낌도 나네요. 인간들이란 참 변하지 않는것 같습니다 ㄲㄲㄲ
    좋은 글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 남중생 2017/08/03 03:27 #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블로그를 본격적으로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서 많은 소통(과 덧글)을 바랄 뿐입니다.
    운송업 종사하는 사람들의 운전석에 자주 보이는 핀업이나 야한 달력... 참 절묘한 연속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사견으로는 큐피드는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너스를 성모로 착각했다!도 굉장한 이야깃거리지만, 큐피드를 아기예수로 착각했다!가 훨씬 더 먹음직스러운데 사리스 선장은 그렇게 안 썼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후대 창작이 그런 방향으로 덧붙었다는것도 반증이라고 봅니다.)
    한편 비너스는 침대에 반쯤 드러누워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래야 수태고지와 비슷한 느낌도 나니까요... 앗! 어쩌면 혹시 큐피드를 가브리엘로 착각한걸까요?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