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예수회, 너희는 노오력이 부족하다! - Saris 선장 일본항해기의 여러 판본 HELLO! VENUS?

영국식 불교 - 홍차 같은걸 끼얹나?에서 사리스 선장의 일본항해기를 소개했습니다.
mori님 께서는 신교도 영국인이나 네덜란드인은 "가톨릭에 대해 미개하다는 식의 태도를 취했을텐데"라고 덧글을 달아주셨는데요.
저도 이쪽으로 호기심이 동하기도 하고, '사료읽기'를 이야기하고 싶어서 추가 포스팅을 올립니다.

우선 바로 아래 있는 것이 지난 포스팅에서 소개드렸던 원문입니다. 
아주 야하게(very lasciviously)라고 밑줄그은 부분이 중요합니다.
므흣해서 중요하다는건 아니고요...

"신분 높은 여인 여럿을 선장실에 들어오도록 했다. 캐빈 내부에는 굉장히 야하게 그려진 비너스 그림이 커다란 액자에 담겨 걸려있었는데, 그 여인들은 그 앞에서 경건하게 엎드려 기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그림을 성모상으로 여긴 것이었다. (신자가 아닌, 그들의 동행이 듣지 못하도록) 자신들이 기독교도라고 내게 속삭여 말했는데, 이로써 우리는 이들이 포르투갈인들이 만든 교황쟁이(portingale-made papestes)들이라는걸 알 수 있었다."
이게 존 사리스 선장이 직접 일기에 적은 '원문 그대로'라고 거의 확정짓다시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유는 메이지 일본으로 파견된 최초의 영국 외교관 어네스트 새토우(Ernest Satow)가 1900년에 사리스 선장의 일기를 출판하면서 영국 동인도회사 아카이브에 있는 "원본(original journal)"과 일일히 대조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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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토우(사토)가 등장하는 다른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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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저 원본과 다른 본도 있다는 말이겠죠?

아래는 Samuel Purchas(1577? – 1626)의 Purchas, His Pilgrimes (퍼채스 여행기)입니다. 당시의 여러 여행기를 엮어서 만든 여행기 모음집인데, 사리스 선장 항해기가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는 계기가 되죠. 
아, 하지만 프랑스어-네덜란드어-일본어... 로 번역되는 책은 이 책이 아닙니다.^^ 
아래를 보시죠. 
원본의 verye lascivious(몹시 음란한)이 somewhat wantonly(다소 난잡한)으로 톤-다운되어있군요.
하지만 그 뿐만이 아니죠. 비너스 그림에 어느새 아기 큐피드(her son Cupid)가 등장했네요.
이렇게 하니까 왜 비너스를 성모 마리아로 오해했는지 (아기를 안고 있으니까?) 상상하기는 쉬워지는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Purchas의 덧붙임이라는 것!

왼쪽 여백에 주석에는 "우상숭배의 위험함을 보아라! 심지어 가톨릭이더라도 성상을 섬김으로써 우상숭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네... 가톨릭 혐오가 나타나기 시작하죠? 
사리스의 항해(1613) 이후로 12년 밖에 지나지 않은 때 출간된 퍼채스 여행기(1625)인데도 불구하고 드문드문 편집의 손길이 나타납니다.

다음 세번째 자료는 1745년 "A New General Collection of Voyages and Travels"입니다. 마찬가지로 여행기 모음집입니다. 
밑줄 친 부분만 보더라도 Purchas의 표현을 따라가면서도, 또 문장구성이 살짝 바뀌었어요.
이미 원본은 참조 안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 자료를 소개하는 이유는 바로 이 책이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서 지구 한 바퀴를 돌고 일본으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어, 네덜란드어 판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직 확인을 안 해보았지만, 벌써 영어만으로도 (있지도 않던 자식이 등장하는 등...) 이미 원문에서 꽤나 멀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판본은 가장 이상합니다.
John Harris(1667?-1719)가 1705년에 출판한 Navigantium atque itinerantium bibliotheca(항해기와 여행기의 도서관)입니다.
시기 상으로는 자료2와 자료3 사이에 해당하는데...
원문에서 멀어지는 정도가 거의 분노 조절 장애 급이라서 말이죠;;

'내 선실에 불러들인 일본 귀족 여인들 몇 명이 신앙 문제에 있어 이상한 오해를 일으켰는데 기록할 수 밖에 없다. 이 여인들은 포르투갈 예수회의 선교 대상이었는데, 예수회 신부들로부터 약간의 기독교를 배워서 옹알이 같은 기도문 몇 마디를 외거나, 성상이나 그림 앞에서 웅크릴 줄은 알았다. 
선실에 들어온 선량한 여인들은 벽에 걸려있는 비너스와 큐피드 그림에 우연히 눈길이 갔다. 그림을 보자마자 여인들은 갑자기 발작하듯 신앙심에 경도되어 망설임 없이 무릎을 감싸안더니, 예수회 신부들에게서 배운 종교[기도문]를 아는대로 내뱉는 등, 눈 앞에 그려진 두 분의 점잖은(modest) 신을 대하는데 몹시 열성적이었다. 사건의 진실은, 이 여인들이 비너스와 큐피드 모자(母子)를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와 그 아들로 오해한 것이었다. 예수회가 성모자에 대해 아주 얄팍한 지식만을 전달한 나머지, 큐피드, 비너스 모자와 차이를 몰랐던 것이다. 참으로 이상한 노릇이다. 이 [일본] 지역에서 거룩한 기독교의 씨를 뿌리는 자들이, 설교의 태반을 그림을 가지고 하면서도 일을 이토록 허술하게 했다니. 복된 동정녀 그림을 (하다못해 천박한 창부의 그림과) 알아보는 중요한 부분에서 신도들을 완벽하게 가르치지 않았다니. [비너스는] 항상 헤프고 정숙하지(immodest) 못한 분위기로 그리는 만큼, 한눈에 발견할 수 있는데 말이다. 두려워할지어다. 성상에 대한 기초교육조차 받지 못한 이 일본 기독교인들은 종교 교리에 해박한 학자가 아닌 것이다. 또한 예수회는, 비너스와 동정녀 마리아의 차이조차 가르치지 않은 만큼, 교리 교육에 애써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이다.

분명 원문은 이랬습니다만...
"신분 높은 여인 여럿을 선장실에 들어오도록 했다. 캐빈 내부에는 굉장히 야하게 그려진 비너스 그림이 커다란 액자에 담겨 걸려있었는데, 그 여인들은 그 앞에서 경건하게 엎드려 기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그림을 성모상으로 여긴 것이었다. (신자가 아닌, 그들의 동행이 듣지 못하도록) 자신들이 기독교도라고 내게 속삭여 말했는데, 이로써 우리는 이들이 포르투갈인들이 만든 교황쟁이들이라는걸 알 수 있었다."
편집자(John Harris) 자신의 의견을 마치 사리스 선장이 1인칭으로 적어놓은 것 같이 해놓았군요.
존 해리스라는 동명이인이 너무 많아서, 이 사람이 가톨릭이나 예수회에 어떤 원한을 가졌는지는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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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포스팅에는 여기에 이어서 쓰겠습니다.
예고를 하자면, 이렇게 다양한 판본이 있으니 그에 따른 '비판적 사료읽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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