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장 고양이 이전에 박물관장 고양이 ~창작물의 원형을 찾아서~

Purr 'n' Furr의 Black Jack, Mike and the British Museum을 번역한 글입니다. 

추모시를 제외한 거의 모든 내용을 번역했습니다. 복제금지된 사진은 원문 링크를 따라가서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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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잭, 마이크, 대영박물관

런던에 위치한 대영박물관에는 고양이에 관련된 역사가 있다. 최초의 고양이들은 세월의 안개에 가려졌지만... 1828년에서 1866년까지 필사본과 직원 관리직을 역임한 프레드릭 매든(Frederick Madden) 경은 고양이 두 마리를 길렀다. 두 마리 모두 프랑스에서 수입한 고양이였는데, 프레드릭 경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자유로이 거닐 수 있었다. 보다 상세한 기록이 남아있는 고양이는 블랙잭이다. 블랙잭은 실제로 주인이 있었는지는 불확실하나, 박물관을 지낼만한 곳으로 여겼고 자주 방문했다. 굉장히 잘생긴 고양이였는데, 수염이 몹시 길고, 흰 털이 난 가슴과 발을 제외하고는 새카만 녀석이었다. 독서실 책상에 앉는 것이 블랙잭의 버릇이었는데, 나가고 싶을 때는 항상 독서 중인 방문객에게 접이식문을 열어달라고 요구하곤 했다.


덜미 잡힌 잭

어느 일요일, 블랙잭은 실수로 신문 보관실에 갇혔고, 심심해지자 신문을 묶은 책에다 발톱을 갈아대는 바람에 상당한 피해를 입혔다. 그를 옹호해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블랙잭은 도서관 출입을 금지당했고, 심지어 박물관 수리 담당 직원은 블랙잭을 없애라고 지시받았다. 그러나 블랙잭은 은밀하게 자취를 감췄다. 2인의 지지자가 그를 안전한 곳으로 운반해서 음식과 우유를 제공한 것이다. 공식 발표 상으로는 블랙잭이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나왔다. 신문은 복구되었고 시간은 흘렀다. 그러나 몇 주 뒤에 블랙잭은 다시 나타났다. 모두들 블랙잭의 귀환을 기뻐하는 듯 했고, 추가 질문은 없었다. 


마이크와 만나다

1909년의 이른 봄 [1908년이나 1910년이라고 하는 기록도 있다. — 편집자주] 당시 이집트 유물 관리인으로 대영박물관의 이집트 고양이 미이라를 관리하던 어네스트 월리스 벗지(Ernest Wallis Budge) 경은 아침에 집을 나서던 중 입에 무언가를 물고 있는 블랙잭과 마주쳤다. 현관 계단을 올라오더니, 물고있던 물체를 벗지 경의 발치에 내려놓고는, 담담하게 아무말 없이 걸어갔다.  (왼쪽 만평 참조). 어네스트 벗지 경에게 블랙잭이 갖고온 것은 자그마한 새끼 고양이였다! 벗지 경은 새끼 고양이에게 마이크라는 이름을 붙였고, 데려다 키웠다. 다행스럽게도 마이크는 벗지 경이 이미 집에서 키우고 있던 고양이 두 마리에게도 인정받았다. 이 사건으로 블랙잭은 역사적 사명을 다했고, 이후 그의 행적에 대해 알려진 것은 없다.














박물관에서의 삶

일을 계기로 마이크는 대영박물관 역사상 가장 유명한 고양이가 될 뿐 아니라, 어네스트 벗지 경과 평생 친구가 될 운명과 마주친 것이다. 자라나면서 마이크는 박물관 정문 수위들과도 친분을 맺고 수위실에 자주 들리곤 했다. 수위실에서 그는 언제나 환대받았기 때문에 두집살림을 하는 셈이었다. 집 고양이 덕분에 마이크는 한 가지 흥미로운 게임을 배웠는데, 주로 일요일 아침에 주변에 몰려다니는 비둘기떼를 이용한 놀이였다. 마이크가 강아지가 그러하듯이 '지목'을 하면, 그의 '파트너'가 비둘기들을 조금씩 구석으로 몰아갔다. 두 마리 고양이는 각자 혼란에 빠진 비둘기를 한 마리 씩 덥친 뒤 안 다치게 해서 집으로 갖고 들어가면, 집사가 비둘기를 건네받고는 포상으로 약간의 우유와 작은 고기를 주었다. 비둘기는 옆 방에 두고는, 약간의 옥수수와 물을 먹였다. 평형감각을 회복할 즈음 열린 창을 통해 날아갔다. 고양이들은 더럽고 먼지투성이 깃털이 달린 비둘기를 먹는 것보다 익힌 고기를 먹는 것을 선호했다!

시간이 흐르고 마이크는 수위실에서 지내는 것을 선호했다. 밤이나 낮이나 마음대로 오갈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외풍으로부터 보호받는 특별한 선반 자리가 그의 취침용으로 마련되었다. 박물관 순찰 일은 계속했다. 고양이 미이라 관리인 벗지 경은 마이크가 제대로 돌봄 받도록 했다. 세계 1차대전이 한창이던 궁핍한 해에도 마이크가 먹고살수 있도록 주선하였다. 고양이로서 좋은 삶을 살았다. 저녁에는 흔히 다과실 웨이트리스가 주는 우유와 고기 조각을 받아먹곤 했고, 숙직 관리인들과 놀기도 하면서 말이다. 마이크도 그의 선배와 마찬가지로 독서실에 모습을 내비치길 좋아했다. 


마이크의 은퇴


15년 간 근무한 뒤, 마이크는 정식으로 은퇴하고는 1924년 부터 '연금 수여자'로 지정되었다. 은퇴한 뒤로도 박물관 앞마당에서 일어나는 일 큰 관심을 보인 마이크는 특히 이따끔씩 마당에 나타나는 떠돌이 개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곤 했다. 경찰관과 수위를 '비웃는' 개들도 평소보다 2배나 커 보이도록 털을 부풀린 마이크가 덤벼드는 것을 보면 겁에 질려 달아났다.  (왼쪽 만평) 마이크는 친구를 조심스레 사귀었고 낯선 이들을 반기지 않았다. 양산으로 툭툭 건드리는 여성 방문객들의 경우에는 더욱 그랬다. 그리고 사람이 쓰다듬는 것을 마이크가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한 이들에게는 처참한 응징이 돌아왔다! 마이크는 이러한 원치 않는 관심을 벗어나는 방법을 알았다. 풀쩍풀쩍 뛰어서 두 번 만에 사람 손길이 닿을 수 없는 수위실 문틀 위에 올라앉았다. 세월이 흐르고, 문틀은 마이크의 착지로 인해 맨들맨들해졌다고 한다.







건강 악화

어네스트 월리스 벗지 경 본인이 은퇴한 뒤로도 마이크를 만나러 오곤 했고, 매주 마이크 몫인 은화 한닢을 가져왔다. 마이크는 말년에 들어 치아가 썩으면서, 먹이주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다. 세 명의 수위가 마이크를 마치 '한 사람처럼, 형제처럼' 대해서, 교대로 부드러운 고기와 생선을 (격일로) 마련했다. 마이크는 '휘팅(whitting) 보다 가자미를 선호했고, 해덕(haddock) 보다 휘팅을 선호했고, 청어 보다 정어리를 선호했다고 한다. 반면에 대구(cod)는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 결국 마이크의 건강 상태는 밥을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고, 마이크를 '안락사시키는 것'이 인도적인 조치라고 판단되었다. 그리하여 유명 고양이 마이크는 1929년 1월 15일 약 2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많은 친구와 지인들이 '자기 관리에 철저했던' 고양이 마이크를 애도했다. 마이크는 런던 시의 작은 관광명소가 되어있었고 런던을 방문했을 때 마이크를 만난 적이 있는 전세계의 팬들은 마이크의 사망 소식을 듣고 슬픔에 잠겼다. 



추모 행렬

박물관 정문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마이크의 삶을 기념하는 비문이 새겨진 묘비가 세워졌다는 기사가 있었다. 그러나 여러 관계자에게 물어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이 비석은 흔적조차 없다. 일반적인 의견은 비석이 세워졌다는 말은 오보이며 애초부터 비석은 세워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마이크의 죽음 이후에 기록된 디테일의 수준을 보았을 때 다소 이상하다. '그레이트 러셀 스트리트의 박물관 입구 근처에 세워진 작은 묘비'에 다음과 같은 비문이 적혀있었다고 한다.  '1909년 2월부터 1929년 1월까지 대영박물관 정문을 지키는 것을 도움.' 비석이 정말로 세워졌는데 이후에 제거 및 파괴되었거나, 그 뒤로 보수공사를 하면서 덮여버렸다고 보는 것이 더 그럴듯 하다. 그러나 비석 건립을 담당한 대영박물관 인쇄본 부서 부보관사(assistant keeper) F.C.W. Hiley도 훌륭한 추모시를 지었다. 

마이크가 사망한지 50년이 지난 1979년, 샤베르만(R. B. Shaberman)은 한정판 단편 'Jubilee Reminiscence'에서 마이크의 삶을 재연해냈다. 위 두 장의 만화는 이 작품에서 나온 것이다. 작가와 출판사 Arthur Page of The Bookshop, Bloomsbury, London를 명시해 놓는다.


그 뒤를 이은 고양이들

대부분 익명이지만 마이크의 후배 고양이들도 있다. 적갈색 수컷 고양이 이름으로는 흔치 않은 벨린다(Belinda)가 있었다. 인상적인 성격으로 유명했는데, 자동차 뚜껑 위의 온기를 좋아했다. 그 뒤를 이은 것은 숙직실에 이사온 뒤로 박물관 순찰을 한 차례도 놓친 적이 없는 암컷 흑백냥이 수지(Suzie).. 마이크와 달리 수지는 사람을 좋아했고 관람객과 직원 모두가 자주 볼 수 있었다. 수지는 1982년 5월, 16세의 나이로 사망했고, 박물관 측은 관내 게시판에 짧은 부고 기사를 붙였다. 그 뒤로는 메이지(Maisie)와 그녀의 자녀 피핀(Pippin), 포펫(Poppet), 핑키(Pinkie)와 수지 2세(Suzie the Second)가 있었다. 수지 2세는 관리실에서 직원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녀가 너무 나이가 들자 은퇴를 하고 개인 요양소에 들어갔다. 그러나 과거 한때 고양이 영토였던 여러 장소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대영박물관에는 더 이상 고양이가 없다.


 그림은 원문 링크로 가서 보시기 바랍니다.^^

1995년 프란시스 브룸필드(Frances Broomfield) 화백이 아기 고양이 시절 마이크를 묘사한 매력적인 그림을 그렸고, 이곳에 이미지를 게재할 수 있게 허락했다. 마이크가 박물관에 도착한 순간을 보여준다. 선행을 한 블랙잭은 뒷배경에서 사라지려는 참이다. 


위의 마이크 일대기는 그의 삶을 기념하기 위해 1929년 2월 '마이크의 친구들의 부탁을 받고'  어네스트 월리스 벗지 경이 쓴  팜플렛에서 따왔다. 팜플렛의 원 제목은 "마이크 - 1909년 2월부터 1929년 1월까지 대영박물관 정문 경비를 도운 고양이'이다. 출판사는  Richard Clay & Sons of Bungay, Suffolk. 타임(Time) 지는 마이크의 별세를 기록할 만한 사건으로 여기고 1929년 4월 부고를 작성했고, 이듬해 1월에는 벗지 경의 팜플렛 소식도 전했다. (링크는 모두 첫 페이지 몇 줄만을 보여주는 미리보기 화면으로 연결되며, 타임지 구독자는 로그인하시면 전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대영박물관에 대단히 감사를 드리며, 특히 우리에게 팜플렛을 보여주신 고대 이집트와 수단 부서의 명예 기록보관 담당자 패트리샤 우식 박사님 께 감사를 표하고 싶다. 또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마이크의 묘비를 찾으려고 지원을 아끼지 않은 런던시 및 국회의사당 가이드 엘리자베스 체이스(Elizabeth Chase) 박사님께도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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