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제국과 결혼한 남자들 - Matt Matsuda의 Empire of Love 인도차이나 ~Indochine~

타국의 "전통"을 존중하는 것은 왜 나쁜가 - Matt Matusda의 Empire of Love 에서 생략한 중간 부분에 나온 사례들은 따로 번역합니다.
여기선 프랑스 남자와 인도차이나 여성의 결혼을 우선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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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치하에서, 이런 (인종 간) 결혼은 사랑의 행위인 만큼이나 정치적인 행위였고, 그렇기 때문에 하노이에 위치한 총독부는 여기에 큰 관심을 보였다. 민사 기록은 총독부 사무실이 (특히, 행정 관료나 군인) 프랑스인과 베트남인 사이의 연애와 결혼을  허가하고 불허하는데 어떻게 직접적으로 연루되어 있었는지 보여준다. 통킹과 안남의 주민들은 주기적으로 총독부 사무실로 "식민지에서 혼인서약을 하고자 하는 프랑스 시민"의 존재를 알리는 보고서와 함께 "므슈 졸리(M. Jolly)와 마드모아젤 호앙-티-끼엣(Mlle. Hoan-Thi-Kiet)" 또는 "므슈 리베리로(M. Riberiro)와 루시(Lucy)라고 불리는 원주민 여성, 응우옌-티-릴리(Nguyen-Thi-Lily)"의 요청을 상세히 서술한 서류뭉치를 보냈다. 이런 경우, 미래의 배우자를 "알아간다는 것"은 대개 경찰 조사 보고서를 읽는다는 것을 의미했다.[1]
합법적 혼인은 정해진 범주를 따라야만 했다. 1918년에 데레파스 대위(Captain Derepas)와 마담 즈엉 티 모(Duong Thi Mo)의 혼약의 경우, 하노이 법원은 "데레파스가 즈엉 티 모와 10년 간 사실혼(maritalement) 관계를 유지했으며, 둘 사이에서 4명의 자녀를 두었다"는 점을 감안해서 이 결혼에 호의적으로 찬성하는 보고서를 법무상(Attorney General)에게 보냈다. 이 보고서는 부부 간에 각자 지켜야할 의무를 중심으로 서술되었는데, 바로 아내의 정숙한 몸가짐과 평판 그리고 남편의 재정적 지원이었다. "즈엉 티 모의 정숙함에 관한 최상의 정보가 수집되었으며, 참고로 그녀는 매월 250프랑[2]의 보상을 받았습니다." 이런 정황 상, 법원이 결혼에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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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감히' 제국을 사랑한 남자들 - Kimloan Hill의 Strangers in a Foreign Land의 주석[4] 참조.

[2] 100 프랑 = 금 29 그램 = 현재 한국에서 약 132만 원

        250 프랑 = 330만 원


출처: Matt Matsuda, Empire of Love: Histories of France and the Pacific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5), chapter 6, “Indochina,” 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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