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탈역사적 소비심리 (pp. 58-59) 雜同散異 Superfluous Things

장물지(長物誌)에서 지역에 따른 구별을 하는 대표사례로는 이국풍 물건, 즉 중화제국의 경계 너머에서 오는 공예품을 들 수 있다. 이는 중국이 수백, 수천년간 이국의 원자재를 수입해 온 것과는 다른 문제였다. 16세기 말에서 17세기에 걸쳐 일어난 공예품 수입이라는 새로운 현상은 때때로 어쩌다 생긴 호기심의 발로가 아니었고, 오히려 체계적으로 수입된 사치품 소비 경향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이언공(李言恭, ?-1599)과 학걸(郝杰, 1530-1600)이 쓴 일본고(日本考)에 기록된 만력제(萬曆帝) 시기의 '조공품' (명대 국가 이데올로기로 포장된 국제 무역) 목록을 보면 '금을 뿌린 부엌장(灑金廚子), 금을 뿌린 책상(灑金文臺), 금으로 그린 화장품 갑(描金粉匣), 금을 뿌린 작은 상자(灑金手箱), 금칠한 그림 병풍(塗金粧彩屏風)'[1][2] 있다. 집합적으로 볼 때, (여러 나라 물건 중에서도) 일본산 사치품이 명나라 국내 유행을 선도했다는 것은 명대 문화가 단순히 '국수주의적'이거나 상대적으로 외국 문화에 배타적이었다는 평가에 대한 강력한 반증이다. 

(일본인 두목 아래에서 일하는 다수의 중국 실향민으로 이뤄진) '왜구(倭寇)'가 중국 연안과 부유한 강남 지역을 16세기 내내 노략질하다시피 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부자들은 일본산 물건을 집에 두는 것에 대해 반감을 갖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최근까지 미국 대학의 중국사 수업에서 흔히 읽힌 어느 교재에서, 명대 엘리트들이 "(몽골) 이민족의 통치를 겪었기 때문에 이국적인 물건 전반에 대한 적대심을 갖게 되었고, 이 관점은 점차 중화 문명의 경계 너머의 것들에 대한 무관심으로 굳어졌다"[3]는 서술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문진향은 신대륙에서 온 애완용 칠면조, 말레이 반도에 위치한 포르투갈령 말라카의 양탄자, 조선의 붓과 종이 (이 세가지는 모두 공예품이라기보단 반 가공품에 가깝다) 뿐만 아니라, 고급 일본산 수입 공예품에 상당한 관심을 보인다. 이 관심은 특히 칠기(漆器)와 금속공예 분야에 집중되어있다. 문진향이 일본도(日本刀)[4]를 언급하면서 송대 학자 구양수(歐陽脩, 1007-1072)의 글을 인용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도는 유서깊은 문학 소재였고, 조선산 종이 등롱[5]에 대한 찬사 또한 동천청록집(洞天淸錄集)에서 연원을 찾을 수 있다. 한편 (물론 읽을 수는 없지만 불교 학자스러운 고상한 분위기를 더해주는) 티벳 문자로 적힌 불교 경전은 당대 유행을 따른 것일 가능성이 더 높다. 일본산 청동 손난로, 동척(銅尺), 쇠로 된 종이칼과 가위, 향을 담는 칠기함, 손목 받침, 벼루 상자, 화장품 보관함, 식탁, 찻장, 진열용 선반 (일본의 '다나棚')도 마찬가지다.

출처: Craig Clunas, Superfluous Things: Material Culture and Social Status in Early Modern China (Honolulu: University of Hawai'i Press, 2004), 5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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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고(日本考)의 해당 부분

釜山雲水海門頭。百丈爭廻對馬舟。
부산의 구름낀 물가는 바닷길의 시작이라
백 길 넘는 대마도의 배들이 앞 다투어 맴돌고,
金桼箱籠紅桼傘。紙香油臭撲津樓。
금칠한 상자와 바구니, 붉은 칠한 우산에
종이향기, 기름냄새가 나룻가 누각을 뒤덮네

[3]"Instead of the ideal of progress, which Westerners today have inherited form the nineteenth century, the Chinese of the Ming and Ch'ing saw their ideal models in the past.
This turning back for inspiration to the great ages of Han, T’ang, and Sung was also accompanied by a deep resentment against the Mongols. Alien rule had inspired hostility toward alien things in general. Gradually this view hardened into a lack of interest in anything beyond the pale of Chinese civilization. This turning away from the outside world was accompanied by a growing introspection within Chinese life."
(John Fairbank & Edwin Craig Reischauer, East Asia Tradition and Transformation, Houghton Mifflin Company, Boston, 1973. 178.)

[4] 조선의 일본도 수입에 대해서는 적륜님의 19세기의 부산 - 조선의 니우암스테르담?? ([2]와 동일 포스팅) 참조.
"뭐 일본도 차고 다니는 게 유행이더라는 얘기는 잘알려져있는 데, 다시로 가즈이 선생의 "왜관"에도 왜관에서 도난당한 칼이 흘러나가 조선측 군관이 차고 있는게 들켜 소동을 일으켰다는 예도 있고, 이학규도 일본도 차는 것을 快事라고 표현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5]조선의 등에 관해서는 역사관심 님의 주등 관련 포스팅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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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존다리안 2017/06/25 09:07 # 답글

    좀 다른 이야기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임진왜란 후 장비 개편 과정에서
    아예 일본도를 생각없이 완전히 베끼기도 했다고 하네요.
  • 남중생 2017/06/25 14:45 #

    따로 저작권 같은게 있는 시절도 아닌데다가... 예술품도 아니고 무기니까 베끼는게 권장되었겠죠? "홍이포"나 "불랑기" 같은 화포는 외국 디자인을 따라한 것을 아예 이름으로 삼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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