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석면은 어떻게 맘모스 털이 되었나? 용은 환골하고 뱀은 탈태한다

이전에 이선생 님 블로그의 화광수(火光獸)를 읽고 든 생각입니다. 

"정작 화광수 자체보다는 화광수의 털로 만든 옷이나 옷감이 더 많이 등장합니다.(실제로 한국이나 일본의 고전문학에는 가죽만 등장한다.)"고 소개해주셨는데,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화광수 털로 만든 옷감을 본 사람은 있어도, 화광수를 본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엄연히 존재하는) 불에 타지 않는 직물을 설명하기 위해 화광수라는 동물을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죠.

무슨 말인지 설명하겠습니다.
화완포라고 불리는 "불에 타지 않는 직물"은 예로부터 중국인들의 관심을 사로잡은 귀한 수입품이었습니다.
대체로 로마, 혹은 로마와 교역한 서역 국가들을 통해 수입한 석면(石綿, abestos)이죠.
(네, 얼마전까지 건축에 쓰였던 그 발암물질이 맞습니다...)
석면은 불에 넣어도 석면 자체는 타지 않고, 석면에 묻은 이물질이 타없어지기 때문에 깨끗해집니다.

또한 섬유조직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기름을 빨아들여서,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램프 심지(!)같은 걸 석면으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무려 최근까지도,
사실 인체유해성분에 대한 정의는 과학기술의 발전[견]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관련해서 얘기하던 중 80년대 학번이신 선생님께서 대학 때 "석면"슬레이트에 삼겹살을 구워먹으면
기름을 쫘-악 빨아드려 맛있게 먹었다는 웃픈 말씀까지 들었다ㅎㅎ

(Jiselle님의
생리대에 관한 빠르고도 느린 잡담)

"그 토지에선 많은 금옥(金玉) 보물과 명주(明珠), 대패(大貝)가 산출되며, 야광벽(夜光璧)과 해계서(駭雞犀, 물소뿔)와 화완포(火浣布)도 있고, 또한 금루(金縷)로 자수를 놓거나 실로 비단과 융단을 제조하는 일에도 능숙하다." 

유라시아 대륙 서쪽에서는 이 석면을 이용한 직물을 한참 옛날부터 사용했습니다. 이집트에서 미이라를 감은 붕대도 석면 붕대였죠. 그러나 실크로드 상황이 어떠냐에 따라 (혹은 중국이나 유럽 정세가 어떻냐에 따라) 이런 교역은 끊겼다가 또 재개되곤 했죠. 그렇기 때문에 중국사람들에게 불에 타지 않는, 불에 넣으면 오히려 더 깨끗해지는 직물의 존재는 "믿기 어려운 것"의 대명사가 되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견직물 수입국에 해당하는 로마에서는 비단이 (솜 처럼) 식물에서 자란다고 생각했고,
화완포(석면) 수입국인 중국에서는 석면이 (비단이나 모직물 처럼) 동물성 소재로 만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건 그렇다쳐도, 화광수의 설명이 너무 구체적이라고요?
"화광수"라는 이름, 이 짐승의 서식지, 생김새... 이 모든게 100% 상상력 만으로 나온 것은 아닐겁니다.

신이경(神異經)
“남방에는 화산(火山)이 있는데, 길이가 사십 리이고 폭이 4~5리인데, 다 타버리지 않는 나무가 자라니 밤낮으로 불이 타오른다. 심한 바람에도 더 타오르지 않고, 폭우에도 꺼지지 않는다. 불 속에는 쥐가 있는데, 무게는 100근이고, 털은 길이가 2척이 넘고 가늘기는 비단 같은데, 항상 불 속에서 거주한다. 때때로 밖으로 나오는데, 색깔은 백색으로 물에 젖으면 즉시 죽는다. 그 털로 실을 만들어 포를 만드는데, 사용하다 더러워졌을 때는 불에 넣어 태우면 깨끗해진다.”
南方有火山, 長四十里, 廣四五里. 生不燼之木, 晝夜火然, 得烈風不猛, 暴雨不滅. 火中有鼠, 重百斤, 毛長二尺餘, 細如絲, 恆居火中, 時時出外, 而色白, 以水逐沃之卽死. 績其毛, 織以作布. 用之若汙, 以火燒之, 則淸潔也.

확실히 말할 수 있는건, 신이경(神異經)에 나오는 "희한한 쥐"는 이 녀석이 유일한게 아니란겁니다.  
불쥐가 있다면, 얼음쥐도 있습니다!!

‘북방에는 두꺼운 얼음 밑에 큰 쥐가 있어 그 무게는 천 근이나 되고 이름은 분서(鼢鼠)로 땅속을 뒤지고 다니며 해와 달만 보면 즉사한다.’ 
北方層冰之下有大鼠,肉重千斤,名為鼢鼠,穿地而行,見日月光即死。

음,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화광수 
- 남방
- 화산(火山)
- 불 속에는 쥐가 있는데,
- 무게는 100근이고, 털은 길이가 2척이 넘고 가늘기는 비단 같은데,
- 때때로 밖으로 나오는데, 색깔은 백색으로 물에 젖으면 즉시 죽는다. 

분서 
- 북방
- 두꺼운 얼음
- 큰 쥐가 있어
- 무게는 천 근이나 되고
- 해와 달만 보면 즉사한다.

불쥐와 얼음쥐는 아주 똑 닮은 거울상입니다 그려. @@

그런데 저 얼음쥐, 분서라는 녀석... 어딘가 낯익지 않나요?
네, 바로 적륜 님께서 아라사의 거대 얼음 두더"쥐"(鼢鼠).......믿거나 말거나!!!에서 소개한 적이 있죠.

이 쥐는 빙서, 분서, 마문탁와 등 여러가지 별명을 갖고 있는데, 특징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고 합니다.

1. 얼음 땅 속에 산다. (그래서 빙서 즉 얼음쥐 또는 분서 즉 두더지 "쥐"라고 한다) 그런데 해와 달을 보거나 또는 바람을 맞으면 죽는다. 다시 말해 땅위로 나오면 죽는다.
2. 모양이 코끼리같고 상아가 있으며 크기가 만 근이나 될 정도로 크며, 털이 여덟자 길이로 베를 짤 수도 있다.
3. 고기는 무척 차갑지만 먹으면 괜찮다.
4. 이름이 "마문탁와"라고 한다.


마문탁와(摩門橐窪)의 중국어 음은 "모먼투어와
이는 러시아어의 Мамонты (마몬뜨의) 중국식으로 받아적은 건데,
바로 우리가 맘모스, 매머드라고 부르는 녀석이죠.

그러니까 "화광수"라는 생명체가 탄생하게 된 경로가 논리적으로 재구성됩니다.
1. 우선 북방의 맘모스 사체를 발견한 시베리아 사람들이 중국인들에게 이걸 보여주거나 이야기해줬겠죠.
2. 중국인들은 얼음 속을 파헤치고 다니는 거대 코끼리-두더지-쥐 (코더쥐?) 마문탁와/빙서/분서를 기록합니다.
3. 서역인들이 석면 직물을 가지고 중국으로 옵니다.
4. 중국인: "와 불에 타지 않는 직물이라니...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불 속에서 사는 동물의 털로 직조하면 불에 안타겠지...? 아하! 북방에 얼음쥐가 있으니 남방에는 불쥐가 있나보다. "

그러니까 중국인들의 상상 속에 석면은 남방의 화산에 사는 맘모스의 털이 되어버린 겁니다.
그냥 맘모스에 추가 설정이 보태져서 화염 맘모스(Fire Mammoth)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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