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구원받기 위해서 먹으면 안되는 것 - 텐치하지마리노코토 HELLO! VENUS?



"此ゆへをもつてみいらのくすりのまざる"
"이 까닭에 미이라 약을 먹지 않는 것이다" 


적륜 님께서 2012년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잠복 키리시탄의 경전 "텐치하지마리노코토"를 소개해주셨습니다.
 

위 두 포스팅에서는 아쉽게도 구세주의 탄생 부분만 언급하셨기 때문에, 저는 오히려 이 책의 결말부, 성경의 묵시록에 해당하는 부분을 발췌/번역해보겠습니다. 


此世界過乱之事

一此世界めつきやくにおよふ時ㇵ大日大かせ大あめむしなとあるいㇵさまざまけだい七年の間かわりなく。かるかゆへにしよくもつ大にたらずににしてうとくの人のしよくもつなともむだいに奪取これをしよくしすでにどしぐいのことくなるものといふ事其時天ぐきたりてまさんこのミをさまざまにへんじさせこれをくわせわかてにつけんとたくむこれをしよくしたる人ㇵ天ぐの手したとなりてみないぬへりのにおつるといふ事又七年もたちて三年のあいた田ばたㇵもちろんよもの山々までよくみのりてだいほう年いうらんのミよ。此せつ悪をすて善になづきてきたるべしたすけゑさせんとの事。
又三年もたちけれㇵ天日地火一とにわかふし三ち嶋くろうすの木もへきれしを水ㇵあぶらとなりてもへのほりくさ木ㇵしみのこどし十二ヶ所ゟ火ゑんほのふともへのほるこそすさましくこれをみてちくるいてうるいしやうあるもの人間にふくせられたすかりなんとぞさけびけるといふ事次第にほのふやけのぼろ三時のあいだにやけしまいてそめつしけり其やけあとひた一めんのしらすなとなり其時三とうすとろんのかいをふきたてたまへㇵ御さくの人間まへまへゟししたるものいま又やけしせしもののこらずここにあらわれいで此時てうすはかりなき御ちからをもつてあにまもとのしき身によみかやらせたもふといふ事。
評に曰此時にゆきまようあにまあるといふ事何ゆへかと尋に此かいにてさいごの時火葬におふたるもののあにま。まつせまてまようてうかぶ事これなしといふ事。たとへどそう又ㇵ水そうにてしがいをちくついてうるいきよるいにくわるるといへともやけめつしたる時ㇵそれぞれにもとのごとくにまいるへしといふ事人間にふくせられししき身ㇵ又又きたらざる。此ゆへをもつてみいらのくすりのまざる。
かくて天帝ㇵ大きなるごいかう御いせいをもつてあまくだらせたまいてみちを御踏わけ御はんをうけしもの三時の間に御ゑらめ右左りとわけさせたもふかなしいかなや左りのものばうちすまうさつからざるゆへ天ぐとともにへんぼうといふ地ごくにそおちけらㇵ御ふういんぞなされけり此所にをちたるものㇵまつ代うからすといふ事又ばうちすもふさつかりし右のものㇵてうすの御ともしてみなはらいぞへまいりけるはらいぞにてぜん悪多少を御あらためありてそれそれのくらいそかふむりけり此所にてふつたいをうけまつせまつだいしよう。しざいゑてあんらくのくらしをするこそたのもしきあんめいぜすす


이 세계가 난리를 겪다

이 하나의 세계가 멸각(滅却)에 이르렀을 때, 큰 해(大日), 거센 바람(大風), 큰 비(大雨)와 벌레 따위 그리고 각종 환란이 7년간 끊임없을 것이다. 이런 까닭에 먹을 것이 대단히 부족해져 부유한 사람의 음식도 제멋대로 탈취해 이마저도 먹어치운 다음에는 서로 잡아먹게 될지어다.[1] 그 때 텐구[2]가 내려와 마산 과일[3]을 제각각 변신시켜 이를 먹여 자기편으로 끌어들일 꾀를 부릴 것이다. 이를 먹는 사람은 텐구의 수하가 되는 것이요, 모두 이누헤리노(Inferno)에 떨어질지어다. 또 7년이 지나면 3년 간은 논밭은 물론 사방의 산에서까지도 잘 영글어서 대풍년이 날 것이다. 이 시절에 악을 버리고 선을 쌓아서 구원을 얻을지어다. 

또 3년이 지나면 하늘에 뜬 해와 땅에 타는 불이 하나되어 산치시마(三ち嶋)[4]의 십자수(十字樹)가 불타버릴 것이다. 바닷물이 기름으로 변해 타오를 것이고, 초목은 얼룩지듯이 열 두 곳에서 화염이 활활 타오르니 거침없노라. 이를 본 들짐승과 날짐승, 목숨 붙어있는 모든 것들이 인간에게 먹힘으로써 구원받고자 비명지를 것이다. 점점 불기둥이 활활 타올라 세 시간(三時) 만에 다 타버려 소멸할지어다. 그 불난리 다음에는 그저 흰 모래벌판이 될지어다. 그때 산토우스(三とうす)께서 토론(트럼펫)의 소라를 높이 불으시면 최초로 만들어진 인간, 한참 전에 죽은 자, 이제 막 불타죽은 자 빠짐없이 이곳에 나타날 지어다. 이때 데우스(Deus, 하느님)께서 무한한 권능으로 영혼(아니마)을 원래의 몸으로 되살리실 지어다.  

평하건대, 이 때 헤매는 영혼(아니마)이 있는 것은 어찌하여 그러한가 살펴보면 이 세상에서 마지막의 순간 화장(火葬)한 자의 영혼이다. (이들은) 말세까지 헤매고, 승천하는 일은 없을지어다. 만약에 땅에 묻히거나, 수장(水葬)되거나 시체가 들짐승, 날짐승, 물고기 밥이 되었더라도 불로 멸하는 시대에는 각자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지어다. 인간에게 먹힌 몸은 (원래대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이 까닭에 미이라 약을 먹지 않는 것이다.[5] 

이리하여 데우스(天帝)께서 어마어마한 위광(威光)과 위세(威勢)를 떨치시며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걸어가며 길을 내시고, 인을 받을 자를 세 시간(三時) 사이에 고르셔서, 오른편과 왼편으로 가를 것이다. 아아 슬프도다. 왼편에 선 자들은 바우치스모-(Baptismo)[6]를 받지 못한 전차로 텐구(天狗)와 함께 벤보(Limbo)라고 하는 지옥으로 떨어져서 봉인될 것이다. 이곳에 떨어진 자는 말대까지 승천하지 못한다고 한다. 또 바우치스모-를 받아 오른편에 선 자들은 데우스께서 함께 하시어 모두 파라이조(Paradiso)에 들지어다. 파라이조에서 선악의 많고 적음을 심판하여 각자 등급을 받는다. 이곳에서 불체(佛體)를 받아 말세말대까지[7] 있는 것이다. 죽어서 안락한 생활을 함이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안메이 제스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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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근대 동아시아의 기근과 식인행위에 대해서는,
 "진(眞) 소의 목" 이야기 中 "쓰러진 말에 이빨을 박고 날고기를 먹으며, 굶주려 쓰러진 시체를 들개나 새가 와서 뜯어먹는다. 부모와 자식 형제간에도 비정하게 음식을 서로 빼앗아 그야말로 축생만도 못한 상황이다"


[2] 天狗, "악마"의 번역어로 쓰였다. (서유기에서 언급된 텐구, 19. & 22. 산에 사는 요괴; 텐구, 야마와로, 야마온나?)

[3] 사과, 서양의 사과와 동아시아의 능금은 다른 과일이라고 인식되었기 때문에 포르투갈어 maça가 (와전되어) 쓰였다.

[4] Santissima. "가장 거룩한 (삼위일체)"라는 말이 와전되어 키리시탄의 세계관에서는 "산치-섬"이라는 가상의 지명이 되어버렸다. 그 섬에는 선악과 나무에 대응하는 십자가 나무가 자란다.

[5] 전근대 동아시아 문헌의 (약용) 미이라에 관해서는 아래 두 포스트를 참조. 

[6] 세례

[7] 불교와 카쿠레 키리시탄의 관계에 대해선 영국식 불교 - 홍차 같은걸 끼얹나? 참조.

[8] 아멘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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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후기]

일단, 먹는 행위에 대한 반복된 강조가 흥미로웠습니다. 가톨릭 유럽과의 교류가 끊긴 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제나 성물, 성당이 사라지면서 타종교와의 구분지을 수 있는 방법은 식습관의 통제가 중요한 축을 차지한 것 아닐까요?
우선 육식은 당시 일본에서 굉장히 생소한 식습관인데 키리시탄은 육식을 긍정하면서 '이건 동물들의 성불 구원을 돕는 거야.' 라고 정당화했다는 거죠. 기독교 교리가 불교적인 논리로 풀어진 느낌입니다.

화장(火葬)을 금하는 구절도 재미있습니다. 식습관, 장례의식 같이 눈에 띄지는 않지만 끊임없이 각인되는 행위를 통해 불교와 키리시탄을 구분지은 것입니다.

한편, 불교와의 혼합도 보입니다. "말세(말대)" 같이 드문드문 보이는 불교용어도 있지만, 가장 충격적인 것은 파라이조에 가서 "불체를 받는다"는 구절이죠. 마리아 관음상 같은 물건에서 보이듯이, 불교의식과 혼합된 키리시탄의 종교를 불교로 숨긴 기독교로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불교와 기독교를 대립하는 두 종교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는 흔히 "산치시마", "파라이조" 같이 와전된 라틴어/포르투갈어를 강조하죠. 

하지만 그게 아니라 "불교가 된 기독교"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일본인들에게, 키리시탄에게 기독교는 새로운 종교가 아니라 (선불교 처럼) 기존의 불교와 다른 불교 아니었을까요? 


- 비슷한 사례로 이선생 님께서 소개해주신 가톨릭과 부두교의 관계를 읽어보면,

"그렇기 때문에 아이티인 집 곳곳에서는 십자가, 성모마리아 조각상 등의 다양한 가톨릭관련 상품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로아를 숨기기 위한 가면 이나 연막이 아니고 그 성인들과 동일시되는 자애로운 로아로 믿고 있는 것입니다."


- 아래는 연암 박지원이 1800년대 조선에서 천주교도들에게 형벌을 내릴 것이 아니라 교화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한 글(바로 적륜 님께서 근사한 세계, 환(幻)의 세계: 시리즈 마지막편에서 소개하신 글과 동일)의 일부입니다. 조선에서 천주교가 유교의 일종인 "서학"으로 받아들여졌음을 생각해보면 한층 더 의미심장하네요. 

"오늘날 소위 사교(邪敎 천주교 )를 금단하는 자들이 이런 어리석은 백성들 을 잡아 묶어다가 관청 뜰 아래 꿇리고 곧장 차꼬를 채우고 내려다보면서, “네가 왜 사학(邪學)을 했느냐?” 하면, 그자는 한마디로 가로막아 말하기를, “소인은 사학을 한 적이 없습니다.” 하지요. 그런데 명색이 관장이 된 자가 이미 그 학(學)이 어째서 사(邪)가 되는지도 모르니, 추궁하는 것이 조리가 없어서 먼저 스스로 알쏭달쏭하게 말하게 되며, 그들이 대답하는 바에 따라 우선 복종한 줄로 인정하고 억지로 다짐을 받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중 교활한 놈은 성실치 못하다고 도리어 비웃고, 어리석은 놈은 더욱 의혹이 불어나 마음속으로 말하기를 ‘내가 즐기는 것은 선행이요 공경하는 바는 하늘인데, 어떤 까닭으로 나의 선행을 막으며 나의 공경을 금하는가?’ 하게 됩니다. 이는 다름 아니라, 근원을 타파하지 못하고서 말류(末流)를 맑게 하고자 하며, 소굴만 찾을 뿐이지 스스로 길을 잃은 격입니다."


다시 말해, 기독교를 일본에서는 불교, 조선에서는 유교로 받아들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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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mori 2017/06/22 12:06 # 답글

    나가사키에서 마리아 관음상을 봤던 게 생각나네요. 어떨 때보면 저라는 개인이 다른 개인과 같은 종교를 믿으면서도 그게 정말 같은 건지 의문이 들 때가 있는데 집단이 오랜 기간동안 그렇게 종교를 발전시킨다면...! 육식 부분도 흥미롭구요! 적어도 중세에서는 가톨릭에서 건강 상의 이유 외에 육식을 긍정(?)하거나 응원(?)하는 사례는 아직 못 본 것 같은데요!! 재밌는 포스팅 감사합니다!!
  • 남중생 2017/06/22 14:18 #

    그쵸. 저는 mori님이 말씀하신 것을 다른 방향으로 확장하면, 내가 믿는 종교(기독교)와 남이 믿는 종교(불교)가 과연 다른 것인가? 종교성/영성이라는 것은 결국 하나로 통하는 게 아니겠는가... 하는 의문도 제시하고 싶었습니다. 마리아관음을 보면 누구는 "이 뒤에 십자가를 숨겨놓은 것을 봐! 이들은 관음상으로 자신들의 참된 종교를 숨겨놓았던거야."라고 할테고, 누군가는 "가톨릭 유럽과의 교류가 끊긴 뒤 마리아상을 만들 수 없다보니 관음신앙이 되어버린거야."라고 하겠지요. 결국 마리아=관음 신앙이 아닐까 싶습니다.
  • 迪倫 2017/07/04 23:23 # 답글

    마테오 리치가 처음 마카오에서 광동지역으로 진출했을 당시에는 중국의 불교사원에 기거하면서 불교적으로 접근을 했었습니다. 리치 역시 불교 조직이 카톨릭 조직과 유사하다고 생각했구요. 그러다 중국 사회에 대한 이해가 생겨나자 전면적으로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와의 접근을 찾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었습니다. 훗날 일본에서 추방된 예수회 선교사들이 마카오로 돌아와 중국으로 재배치된 다음 기존의 중국 선교사들과 선교 방침에 대해 심하게 충돌하였다고 합니다. 어쩌면 가쿠레 키리시탄에게 남은 불교적 요소가 이런 충돌의 영향으로도 해석 가능한 부분일지도 모릅니다.
  • 남중생 2017/07/07 00:22 #

    덧글 감사합니다.
    머리도 밀고 금욕하면서 집단생활을 하는 불교 승려들의 모습이 마테오 리치에게 익숙했고, 이를 따라하는 것을 초창기 중국 선교방침으로 삼았죠.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프란시스코 자비에르가 ('데우스' 이전에) 다이니치(大日)를 쓰는 등 불교 친화적인 선교를 했던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중국 예수회는 금방 '실수'를 깨닫고 노선을 바꾼 반면에 일본에서는 불교적인 뉘앙스가 그대로 남은 채로 추방령 때까지 이어진게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일본 예수회도 오해와 오역이 일어난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말이죠...
    아무래도 각 나라에서 불교가 갖는 위상에 따른 Realpolitik한 이유에 따른 차이 아닐까 싶습니다. 중국에선 '또다른 불교'라는게 굉장한 마이너스라면 일본에서는 꽤나 먹히던게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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