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죽이지 못할 바에야 사랑하라! - Matt Matsuda의 Empire of Love 인도차이나 ~Indochine~

'친구가 될 수 밖에 없는 사이'와 '마음 사로잡기'에 대한 맥락도 제공할 겸, 지난 포스팅(타국의 "전통"을 존중하는 것은 왜 나쁜가 - Matt Matusda의 Empire of Love)의 바로 앞 부분을 번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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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에 '아시아의 프랑스'라고 불리는 인도차이나에서 사랑을 정의하는 것은 식민지 상황에서 흔히 등장하는 고민 대상이었다. 입헌주의 운동가 응우옌 판 롱(Nguyễn Phan Long, 1889–1960)은 1921년에 소설 한 권을 써서 모리스 롱 총독에게 헌정했는데, 그는 "제 보잘 것 없는 글이 인도차이나 사람들의 운명을 좌우하시는 총독 각하께 도움이 되어, 각하께서 저희들을 보다 잘 이해하실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를 헌정한다고 썼다. 이 경우에 '사랑'은 특정한 양상을 띄었다. 응우옌 판 롱은 안남인 남성과 결혼하고 싶다는 어느 젊은 여성에게 조언하면서, "당신의 동포 프랑스 사람들이 당신의 모범을 따랐으면 하오. 당신처럼 결혼을 하는 것은 유럽의 위대한 프랑스와 아시아의 프랑스 간의 끊어질 수 없는 통합을 이룰 것입니다"라고 했다.
이처럼 결혼으로 프랑스와 인도차이나를 운명공동체로 묶는 사업은 인도차이나 식민지의 크기와 복잡함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프랑스의 오세아니아 식민지와 마찬가지로 인도차이나도 동떨어져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후진적이라고 조롱거리가 되었지만 '아시아의 프랑스'는 보다 작은 크기의 식민지에서 주로 벌어진 '원주민 멸종'이라는 줄거리의 희생양이 되지 않았다. '인도차이나'의 거대한 인구가 순순히 죽어나갈리는 없었다. 지리학자 오귀스탱 베르나르(Augustin Bernard, 1865-1947)가 이론에 따르면, "인도차이나의 안남인들은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는 바로 ... 안남인들이 야만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안남인들은 몇 가지 측면에서 미개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이것은 미개한 것과는 또다른 문제다." 로티(Loti)의 치명적인 이국취미가 사라지고 식민지 행정이 자리잡으면서, 인도차이나에서 제국주의와 통치권력의 흐름은 안남인, 통킹인, 크메르인, 라오인, 등 기타 민족의 점진적 소멸이 아니라 그들의 역사를 통합하는 방향으로 흘렀다.
(...)
쥘 블랑슈베(Jules Blancsubé, 1834-1888)는 통킹[1]에 군사적으로 개입할 것을 주장하면서 "우리가 따라야할 유일한 정책은 온전히 프랑스적이고 온전히 공화주의적인 노선뿐이다."라고 못박았다. 이 정책이란 바로 통킹인을 프랑스 공화국의 '친구가 될 수 밖에 없는 사이'(natural friends)로 보는 것이었는데, 즉 통킹인들이 안남인 관료(mandarin)들의 폭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용감하고 친절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육군에 속한 군함 선장 A. Bouinais도 열정적으로 연설하기를, "무력 정복이 끝난 뒤에는 더 어려운 정복 사업을 실행하는 것이 우리 몫으로 남아있다. 바로 원주민(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act of possession-that of the nativ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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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식민지화는 코친차이나(1862)-캄보디아(1863)-통킹(1885)-안남(1887)-라오스(1893) 순으로 일어났다. 현대 베트남 영토만 두고 말하면 코친차이나(남)-통킹(북)-안남(중) 순서로 합병하거나 보호령으로 둔 것이다. 이곳에 언급된 통킹에 대한 군사개입은 프랑스가 코친차이나(남)만을 식민지로 두고 있을 당시 통킹(북)도 침략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프랑스는 안남 왕국에 속했던 영토를 정복한 순서대로 세 지역으로 나누고, 또 세 민족으로 나눠서 통치했다. 중앙의 안남 지역은 안남 왕국의 수도가 있는 곳이기도 했는데, 안남 왕국의 응우옌 왕조는 토착민이 아니라 정복민족이고 통킹이나 코친차이나를 정복했기 때문에 이들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것이 프랑스 식민지배의 논리였다.   



출처: Matt Matsuda, Empire of Love: Histories of France and the Pacific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5), chapter 6, “Indochina,” 147-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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