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의 "전통"을 존중하는 것은 왜 나쁜가 - Matt Matusda의 Empire of Love 해외 논문 번역

"당시에는 엘리트 계급의 남성들과 성적/문화적 서비스 제공자로 연명했던 여성들의 관계가 대체로 용인되었다."

"여성의 가격표가 기록으로 남아있다는 사실 자체가 (...) 흔히 있는 일이었다는 것을 강력히 뒷받침한다."

지난 포스팅 상품화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 Craig Clunas의 Superfluous Things에서의 마지막 몇 문장이 프랑스의 동남아 식민지배에 관련된 또다른 책(Matt Matsuda의 Empire of Love)을 연상시켰습니다. 일부를 발췌해 번역해 봅니다.

('친구가 될 수 밖에 없는 관계'나 '마음 사로잡기'에 조금 더 맥락을 부여하기 위해 아래 발췌문 이전 부분도 번역했습니다. 죽이지 못할 바에야 사랑하라! - Matt Matsuda의 Empire of Love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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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대와 80년대의 군인이자 모험가였던 남자들이 19세기 말부터 '인도차이나'의 행정관료와 식민통치 세력이 되면서, 20세기에 들어서는 프랑스와 안남(Annam)이 '친구가 될 수 밖에 없는 사이(natural friends)'라는 개념이 복잡해지는 동시에 더욱 친밀한 것이 되었다. '마음 사로잡기(possession of the native)' 계획은 공식적으로 발전했고, 식민지에서의 통치 정책이나 인종간 결혼/연애가 일어날 가능성을 통해 널리 시도되었다.

1870, 80년대의 이야기들은 기본적인 상품 교역에만 치중했다. 예를 들어, J. L. 듀트뢰유 드 랑(Dutreuil de Rhins, 1846 – 1894)의 1879년의 안남 지역 여행기 및 민속지를 보면 거의 의무적으로 보이는 거래가 언급된다. 듀트뢰유 드 랑은 강가에 위치한 숙소를 제안하는 거간꾼에게 "여자도 살 수 있는 걸로 알고 있다만?" 하고 묻는다. 그러자 거간꾼은 기다렸다는 듯이 "물론입죠. 여자는 100-150 프랑[1]입니다."라고 응수하면서도 "하지만 향수, 보석 사주는데 돈이 열 배는 더 들겁니다."라고 경고한다. 여자는 언제든지 '꽁까이(congaï)' 신분으로 전락할 수 있었는데, 이는 폴리네시아의 푸페(poupée)나 바히네(vahine), 혹은 일본의 무스메(musumé)와 마찬가지로 유럽 남성의 애인 역할이었다.

1900년대에 들어서자, 민사소송과 '식민지' 문학작품 모두 (인종 간) 결혼이라는 주제를 훨씬 더 조심스럽게 다루기 시작했는데,  이런 결혼은 프랑스 남성이 인도차이나 식민지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

인도차이나의 프랑스 남성들은 식민지 내 프랑스 여성의 존재를 떨떠름한 태도로 받아들였다. 이들 남자가 식민지에서 우위를 차지하게끔 만들어진 계획에 가정적인 모습은 포함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알베르 드 푸부르빌(Albert de Pouvourville, 1861-1939)이라는 학자는 유럽 여성들이 물심양면으로 지나치게 세심히 따지는 바람에 식민지배를 망쳐버렸다는 의견을 냈는데, 이는 프랑스가  20세기에 들어 정식으로 식민지를 경영하는 제국이 되면서 고리타분한 논쟁거리가 될 주장의 시초였다. 드 푸부르빌의 주장은 "프랑스 여인들의 여성스러움이 우리 남정네들의 거친 성질과 상스러운 영혼을 곱상하고 아기자기한 매력으로 덮어버렸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이 여인들은 남자들이 '책임지지 않는 자녀들'을 문제 삼기 시작했다. 프랑스 여성들은 혼혈아를 몹시나 싫어했는데, 드 푸부르빌에 따르면 이런 반감은 '안남의 전통 법률에 따르면 환매(還買)할 수 있는 한시적인 혼인관계는 합법이라는 것을 무시하는'[2] 것이었다. 시바스-바론(Clotilde Chivas-Baron, 1876-1956)은 그녀의 작품에서 "백인 여성은 ... 혼혈 여성을 사근사근하게 대하지 않는다. 몇몇은 심지어 무서울 정도로 질투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적었다. 알베르 드 푸부르빌은 '마음 사로잡기' 계획이 실패했음을 지적하며  "우리가 맡은 임무 하나가 통째로 날아갔다. 심지어 쉬운 임무도 아니었다. 이제 백인과 황인 사이에는 ... 깊은 골이 파였는데, 아름다운 우리 프랑스 여인들의 질투심 때문에 이 골은 하루가 다르게 깊어진다."라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1] 100프랑 = 금 29그램 = 현재 한국에서 약 132만 원

        100~150 프랑 = 132~198 만원

[2] Albert de Pouvourville,L’Annamite aujourd’hui, (Paris: Ed. de la Rose, 1932),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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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Matt Matsuda, Empire of Love: Histories of France and the Pacific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5), chapter 6, “Indochina,” 148-152.


이 포스팅과 지난 포스팅에서 다룬 일들이 반드시 과거에만 한정된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santalinus 님의 포스팅 인도잡담 34. 주재원과 아야(매우 불쾌한 주제)링크 걸어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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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santalinus 2017/06/20 12:52 # 답글

    말씀하신 것처럼 오늘날에도 벌어지는 일 이지요...인도에선 남성 무슬림에 한해서 다수의 배우자를 두는 것이 허용이 되는 법이 있긴 합니다만, 이 역시 현실에서 실행에 옮기는 간 큰 놈들은 많지 않으며, 개인의 종교와 무관한 "Uniform Civil Code" 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전...씁쓸합니다....
  • 남중생 2017/06/20 18:59 #

    한국인 주재원들을 논외로 하더라도 다종교/다문화 국가인만큼 인도는 어려움이 많겠군요...
  • santalinus 2017/06/20 19:20 #

    네... 이걸 억지로 통합하려고 하면 더 큰 문제가 생기겠지요. 이미 지금 그러고 있긴 합니다만...
  • 지나가던과객 2017/06/20 20:48 # 삭제 답글

    자기한테 유리한 건 전통과 유리된 것이라도 수용하고 그렇지 않으면 전통적인 것이라도 무시해버리는군요.
    캬~ 내로남불은 인류가 존재하는 곳 어디서나 존재하는구나!!!!
  • 남중생 2017/06/20 23:10 #

    참으로 내로남불의 제국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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