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화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 Craig Clunas의 Superfluous Things 해외 논문 번역

지지난 포스팅(청동기에 글자가 새겨져있으면 더 비쌀까?) 보다는 20페이지 정도 뒤의 내용입니다.  

"하인들은 특징적인 이름을 갖고 있는데, 대개 하인이 맡은 일이나 사물에 빗대어 이름을 짓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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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제일 먼저 따져 보아야 할 것은 상품 후보군에 무엇이 포함되는지다. 상품 후보군이란 '어느 사회/역사적 상황에서 교환가능 여부를 정의하는 기준과 범주(상징적/분류적/윤리적)'를 말한다. 명나라 기준으로 상품이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상품이 될 수 없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가능성만 놓고 따져본다면 거의 모든 것이 상품화 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 다룬 공예품 뿐만 아니라 농업 용지, 유희, 성적 행위, 종교/주술 행위 등이 모두 여기에 포함되는데, 다른 문화권에서는 상품화 되는 것으로부터 철저히 배제된 것들이었다.

'사람에 대한 권리' 또한 상품이었다. 완전한 노비는 명대 사회관계에서 찾아볼 수 없지만,  몸종이나 (특히 농촌에는) 다양한 형태의 소작농이나 농노가 존재했고, 하인들은 다른 주인을 구할 수 있는 개인적 자유가 몹시 제한된 계약조건에 따라야 했다. 하인들이 갖는 한시적인 상품으로서의 지위는 이름에서도 드러났다. 명대 소설을 읽다보면 누가 하인인지 금방 알 수 있다. 하인들은 특징적인 이름을 갖고 있는데, 대개 하인이 맡은 일이나 사물에 빗대어 이름을 짓기 때문이다. 명대 사회에서는 심지어 여성도 상품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여성은 가족 간에 큰 돈이 오가는 거래의 대상이었는데, 후처(後妻)나 첩인 경우에는 더욱 그랬다. 이들 또한 물건의 이름을 갖곤 했다. 1640년대 초에 관리 공정자(龔鼎孶, 1615–1673)가 은자 1000냥을 주고 이름난 명기 고횡파(顧橫波, 1619-1664)를 아내로 들였다. 당시에는 엘리트 계급의 남성들과 성적/문화적 서비스 제공자로 연명했던 여성들의 관계가 대체로 용인되었다. (여기서 용인되었다는 것은 전자의 남성들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그러나 공정자와 고횡파의 사례가 그 당시의 낭만적 이상을 실현한 독단적인 경우라고 할 수 만은 없다. 여성의 가격표가 기록으로 남아있다는 사실 자체가 공정자의 대표 사례 외에도 흔히 있는 일이었다는 것을 강력히 뒷받침한다.

출처: Craig Clunas, Superfluous Things: Material Culture and Social Status in Early Modern China (Honolulu: University of Hawai'i Press, 2004), 117-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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