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미술사학자 크레이그 클루나스(Craig Clunas)의 Superfluous Things에서 발췌/번역한 내용입니다.
Superfluous Things라는 제목은 명대 화가이자 수집가인 문진향(文震享, 1585–1645)의 장물지(長物志, 영어로는 Treatise on Superfluous Things)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바로 이 장물지가 이야기하고 있는 명나라의 수집문화에 대한 책이죠.
책에 대한 책 이야기를 하는 김에 재미있는 테스트 하나를 소개드리자면 Page 99 Test라는 것이 있습니다. 읽어보려는 책을 집어들고 99페이지를 펴서 읽기 시작하면, 그 책이 얼마나 잘 쓰였는지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 테스트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바로 꽤나 다양한 주제를 조목조목 다루고 있는 책인 Supefluous Things에서 이전 포스팅10. 제갈공명의 진태고 (나가사키)와 연관지어 인용할 만한 부분이 바로 99쪽 언저리에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이 Page 99 Test가 나름 잘 들어맞는다고 할 수 있을까요?^^
한편, Clunas의 또다른 책은 Page 99 테스트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http://page99test.blogspot.kr/2017/03/craig-clunass-chinese-painting-and-it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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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진향(文震享, 1585–1645)이 고동(古銅)을 다루는 방식은 주로 등급을 매기는 것이다. 얼마나 소유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고동인지(desirability of owning them)에 따라 유형별로 분류하는 방식인데, 앞서 말한 '구별 짓기'와 일맥상통한다. 소유주가 누구인지에 중점을 두고있고, 고동이라는 물건 그 자체가 상고시대의 증거물로서 갖는 가치는 관심 밖의 일이다.
[…]
그러므로 유물에 글이 새겨져 있다는 사실이 그 물건의 가치를 더해준 것으로는 보인다. 새겨진 내용을 대체로 해독하지 못 했더라도 말이다. 엄숭(嚴嵩, 1480–1567)이 소유했던 1127 개나 되는 고동에 대한 카탈로그를 보면, 그중 어느 하나도 금문(金文)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당히 학식 있는 명나라 엘리트들조차 금문에 쓰인 옛 글자를 못 읽었던 것으로 보인다. 금문이 중요하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굳이 해독하지 않은 것이다. (98)
전형적인 사례로는 쑤저우 지역에서 명대 중기에 활동한 작가, 왕기(王錡, 1433-1499)의 필기(筆記)[1]가 있다. 이 청동기에 대한 묘사는, 원나라 말에 명태조와 패권을 두고 겨루다가 밀려난 군벌 진우량(陳友諒, 1320-1363)[2]과의 연결고리 하나로 일원화 되어있기 때문이다.
偽主陳友諒之苗裔,散處於黃,皆樸魯之人。有一家藏一卣,其制甚古,吾友吳元璧判府,以彩段一端易之。卣大可容鬥粟,內外多黃土色,間有朱翠,錯以金銀銅之質。已化矣,文多丁字,真商物也。
참칭자 진우량의 후손들은 황주(黃州) 지역에 흩어져 살았고 모두 비루한 사람들이다. 그 중 한 집안이 유(卣, 돔 모양의 뚜껑이 달린 술주전자)를 갖고 있었는데 그 제도가 몹시 오래되었다. 나의 벗 오원벽이 황주부(黃州府) 판관으로 부임했을 때, 채단(彩段) 한 단(端)을 주고 바꿔왔다. 좁쌀이 한 말(斗)이나 들어갈 만큼 크고, 안팎으로 황토색이 많은데, 간간이 붉고 푸른(朱翠) 색이 들어갔다. 금은동(金銀銅)으로 도금되어 있었다. 이미 변해 있었는데, 정(丁)자형 글자가 많이 새겨져 있었다. 참으로 상(商)대의 물건이다.
여기서는 유(卣)[3]에 새겨진 금문이 실제로 무슨 내용인지 궁금해하는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런 태도는 18세기라면 지나치게 무관심하다고 여겨졌을 것이다. 실제로 18세기부터는 유물이 금석문에 따라 분류되었다. 예를 들자면 대영박물관의 대표 유물인 강후궤(康侯簋)[4]가 있다. 더 이상 패망한 군벌 진우량 같은 이전 소유주와의 짤막한 연결고리는 분류기준에 들지 않았다. (99)
출처: Craig Clunas, Superfluous Things (Honolulu: University of Hawai'i Press, 2004), 9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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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왕기의 우포잡기(寓圃雜記)를 말한다.
[2]후손들이 지금의 후베이(湖北) 성에 속하는 황주에 살고 있었다고 하는데, 정작 진우량의 아들과 그 직계 후손은 조선에 가서 살았다.
태종실록 1권, 태종 1년 윤3월 18일 정미 2번째 기사 (1401년)
진왕(陳王)에게 전지(田地)를 주었다. 진이(陳理)는 진우량(陳友諒)의 아들인데, 명나라에 항복하니, 태조 고황제(太祖高皇帝)가 봉(封)하여 순덕후(順德侯)를 삼고, 홍무(洪武) 5년 임자에 황제가 이(理)와 명정(明貞)의 아들 승(昇)으로 하여금 각각 가속(家屬)을 거느리고 고려(高麗)에 가서 한가로이 살게 하였는데, 나라 사람들이 진왕이라고 불렀다. 이때에 이르러 임금이 진왕의 생활이 매우 어렵다는 말을 듣고, 의정부에 명하여 주휼(周恤)할 방법을 의논하게 하니, 정부(政府)에서 전지를 주자고 청하여, 그대로 따른 것이었다.
(http://sillok.history.go.kr/id/kca_10103118_002)
[3]지난 번 커여운 토토로 보고가세요. 포스팅에서 소개한 녀석도 유(卣, you)입니다. 호랑이 모양이니까 호유!

[4] 금문이 적혀있는 강후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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