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일본인 기독교 신자들 전부와 백인 교황쟁이들 중 몇 명이 배교하고 "일본인"이 되었다 용틀임하는 동아시아 근세

역사관심 님의 그러자 총독이 웃으면서 "틀렸다, 이 사람은 코레시안(Coresian)이다."라고 했습니다.를 읽고나니 제가 알고 있는 관련 사료들을 한 번 나열해보고 싶었습니다. 17세기 중반 동아시아 그리고 유럽(동아시아의 유럽인?)의 정체성(identity)을 다루는 문장 2 개를 소개합니다.

1. 우선 적륜 님의 포스팅, 1655년 비극의 남이안(南二安), 그리고, 1666년 미스테리 남만요리사에서 따옵니다.

니콜라스 비천(Nicolas Witsen)의 북부 및 동부 타르타르(Noorden en Oost Tartarije)를 읽어보면, 본국(네덜란드)으로 송환된 하멜 일행과의 인터뷰 기록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공식적으로는 조선에서 사망한 것으로 보고된) 얀 클라에천(Jan Claeszen)에 대해 다음과 같은 증언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결혼도 하고 절대로 기독교인이나 네덜란드인으로 보이지 않겠다고 맹세하고(Hij was aldaer getrouwt en gaf voor geen hair aen zijn lyf meer te hebben dat na een Christen of Nederlander geleek)” 조선에 그대로 남기로 했다는 것이죠.

여기서는 조선에 남는 것이 "기독교인"과 "네덜란드인"이라는 두 개의 정체성과 상반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조선인이 되는 것은 단순히 네덜란드인이기를 포기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종교활동을 못할테니) 기독교인도 포기하는 것이죠. 


2. 역시 적륜 님의 (...) 1643년 북태평양의 모험 - 금섬과 은섬을 찾아라? 에서 미처 못 다룬 이야기!

이 포스팅에서는 금섬과 은섬을 찾아나선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의 브레스켄스 호 선원들 이야기를 다뤘지요. 이들 선원은 현재 일본 이와테현에 속해 있는 야마다 만(灣)에 정박했다가 쇄국령을 어긴 죄로 체포됩니다.

야마다(山田)는 이곳! 

네덜란드 선원들이 정박했던 섬은, 네덜란드 섬(オランダ島)라는 이름마저 붙었습니다. 
(이미지들은 클릭하면 커집니다.)

이 포스팅에서 적륜 님께선, 
"하필이면 조금 일찍 예수회에서 일본에 잠입하려던 선교사들이 계속 발각되어 처형, 고문, 배교 등의 온갖 최악의 상황을 겪던 중이라 이들 역시 나가사키가 아닌 에도와 가까운 지역에 밀입한 키리시탄으로 간주되어 미인계를 사용하여 체포가 된 것이었습니다. 이들의 이후 이야기는 실은 이번에는 다루지않겠습니다."
라고 하셨는데, 바로 이 다음 이야기를 제가 이어나가겠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동인도회사 선원들은 영 좋지않은 타이밍에 일본 해안에 정박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일본 막부는 이들도 과연 밀항해서 들어온 키리시탄인지 확인하기 위해, 한창 고문받고 있던 포르투갈의 예수회 선교사들과 같은 감옥에 집어넣거나, 같은 취조실에서 대면시킵니다. 
다만 네덜란드 선원들은 고문하지 않습니다. 일단 네덜란드인이라는데, 우호국가의 국민을 함부로 고문했다가 나중에 무고한 것으로 판명나면 일본정부의 입장이 곤란해질테니 말이죠. 대신 끈질기게 심리적 압박을 줍니다. 
처음에는, 예수회 선교사들과 따로 대화하기를 원하냐고 묻기도 하고,
나중에는 노골적으로, "너희도 유일신 믿고 부활절 기린다며? 얘네(예수회)랑 같은 종교 아냐?"같은 식으로 찔러보기도 합니다.
여기에 VOC 선원들도 마찬가지로 과장된 리액션을 보입니다.
포르투갈은 네덜란드의 적국인데 무슨 말이냐며,
"우리 중에 네덜란드-포르투갈 전쟁에서 싸운 참전용사도 있습니다!"하고 전투에서 입은 상흔을 보여준다던가,
"기회만 주신다면 직접 저 교황쟁이 놈들을 우리가 직접 쳐죽이겠소!"하는 격앙된 반응을 보였죠.
(살기 위해선 뭔들...)
급기야 고문을 받고 초췌한 몰골의 선교사들에게 침을 뱉고 발길질을 하며, 우리는 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극명히 드러냅니다.
일본측 취조관들이 만족할 때까지 말이죠.

결말을 말씀해드리자면, 네덜란드 선원들은 풀려나고 포르투갈 선교사들은 고문에 지쳐 죽거나 배교합니다.
아래는 취조에서 풀려나 숙소로 돌아간 VOC 선원들이 들은 소식입니다.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숙소는 적륜님의 또다른 포스팅 1712년 정월, 역관 김현문의 우연한 조우....에 등장하는 "나가사키야"입니다.)

"We were also informed (by sign language) that all the aforementioned Japanese Christians and some of the white papists had apostatized and become 'Japanese' (because of the dreadful tortures they had suffered)."
Bijlvelt Schaep Debriefing Report (ARA VOC 1148, tols. 355-392), 23 September 1643

우리에게 또한 (몸짓으로) 말해주기를, 앞서 언급한 일본인 기독교 신자들 전부와 백인 교황쟁이들 중 몇 명이 배교하고 "일본인"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이들이 겪어야했던 끔찍한 고문의 결과입니다). 

여기서 배교를 하는 행위는 곧 "일본인"이 되는 행위로 직결됩니다. 그러나 문장의 구조를 엄밀히 살펴보면 다소 이상한 것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배교하고 일본인이 되었다(had apostacized and become 'Japanese')는 서술어가 가리키는 대상이 일본인 (출신) 기독교인들(Japanese Christians)과 백인 교황쟁이들(white papists)을 양쪽이라는 것입니다. 
그저 포르투갈인(백인)이었던 가톨릭 선교사들이 일본인(황인)이 된 것이 아니라, 일본인 가톨릭 신자들도 일본인으로 되돌아갔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니까 일본인이 유럽의 종교를 받아들이면 유럽인이 되었다가, 배교를 하면 다시 일본인이 되는 건가요...?
물론 아직 네덜란드어 원문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만, 제가 인용한 책의 저자 Reinier H. Hesslink는 번역에 대해 굉장히 까다로운 태도를 보이는 분이신지라 원문도 저 의미가 맞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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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한 책과 페이지는 Reinier H. Hesselink, Prisoners from Nambu (Honolulu: University of Hawai'iPress, 2002), 69. 입니다.
이 책은 적륜님의 또다른 포스팅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왜 조선을 디스했을까요?에서도 언급된 적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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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역사관심 2017/06/11 17:04 # 답글

    핑백글 감사합니다. 제대로 적륜님의 글도 읽어봐야하겠지만, 첫 글과 두번 째 글은 미묘하게 종교와 정체성에 대한 바운더리가 갈리는 군요. 흥미롭습니다.
  • 남중생 2017/06/13 00:23 #

    좋은 글감을 제공해주셔서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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