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자라 인간(鱉人)이라 불린 19세기 조선의 해표지증 환자 창작물의 원형을 찾아서~

역사관심님의 17세기 조선, 멧돼지 인간 요괴 기담을 읽고 나니 생각나는 기록이 있었습니다.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실려있는 기사입니다. 전근대의 사람들은 기형아를 보고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죠.

무릇 온 천하의 인아(人疴)를 이루 다 헤아릴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 들은 별인(鱉人 자라와 같이 생긴 사람)은 고금에 듣기 어려운 것이기에 또한 한 번 변증한다.
금상(今上 조선 철종(哲宗)을 가리킴) 4년(1853) 청(淸) 나라 함풍(咸豐 청 문종(淸文宗)의 연호) 3년에 내가 마침 호서(湖西) 청풍부(淸風府) 노잡리(蘆雜里) 성주동(成住洞)의 종인(宗人) 이 능소(李能沼)의 집에 묵고 있었는데, 그 집에 성은 김씨(金氏)로 헤어진 망건(網巾)을 때우는 공인(工人)이 와서 이야기하기를,
“경기도(京畿道) 삭령군(朔寧郡) 소재지 안에 장별인(張鱉人)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으니, 그가 곧 군교(郡校)의 아들로서 집안이 조금 넉넉하였는데, 별인을 낳고서부터 부모(父母)가 다 죽고 가세(家勢)도 점점 기울어갔답니다. 그런데 별인이 막 태어났을 때에 머리는 크고 목은 긴데, 사지(四肢)는 다 죽고 좌우(左右)의 견갑(肩胛 어깨뼈)만이 겨우 살았을 뿐이며, 두 손의 손가락은 모두 한 치[寸]를 넘지 못하고 형체만 갖추어졌을 뿐이며, 볼기[臀]옆 양쪽 가에 발[足]의 형태가 있는데 겨우 발가락이 있을 뿐이어서 마음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니, 대저 자라[鱉]와 다름이 없기 때문에 세상에서 ‘별인’이라 칭한답니다. 그가 다닐 때는 포복(匍匐)을 하되 벌레가 기어가듯이 배[腹]를 깔고 기어가며, 음식을 먹을 때는 땅에 바짝 엎드려 입으로 주워먹으며, 얘기를 잘하고 술도 썩 좋아한답니다. 그의 경물(莖物 자지)과 고환(睾丸 불알)은 보통 사람과 똑같은데, 또 색욕(色慾)이 있으므로, 창녀(娼女)들이 혹 그의 돈을 탐내어 가끔 접근하는 일이 있답니다. 그의 나이는 지금 35~36세쯤 되었답니다.”
하였으니, 이는 또 무슨 인아(人疴)인가. 이것이 혹 자라서 정기(精氣)가 빌미되어 앙갚음을 하기 위해서 화생(化生)한 것인지 모르겠다. 이 괴(傀)야말로 비록 사람의 탈을 쓰고 능히 말을 한다 할지라도 점어(鮎魚)의 괴이함에 무엇이 다르겠는가.《오잡조(五雜組)》에 이르기를,
“송(宋) 나라 건도(乾道 남송 효종(南宋 孝宗)의 연호) 연간에 행도(行都)의 북관(北關)에 검은 빛의 점어(鮎魚)라는 물고기가 있었는데, 배[腹] 밑의 양방(兩旁)에 사람의 손[手]이 나와 있고 다섯 손가락이 갖추어 있었다.”
하였으니, 별인과 비교하면 겨우 낯[面]만 없을 뿐이다.

여기서 말하는 별인(鱉人), 즉 자라 인간은 해표지증(海豹肢症, phocomelia) 환자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순우리말로 "바다표범손발증"이라고도 불리죠.
불완전한 팔다리를 갖고 태어나는 기형(奇形)인데, 닉 부이치치, "오체불만족"의 오토타케 히로타다 등이 해표지증을 갖고 태어난 분들입니다. 영화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에 코푸스 콜로서스(Corpus Colossus, 이모탄 조의 첫째 아들)로 출연한 쿠엔틴 케니핸(Quentin Kenihan) 씨 역시 해표지증 환자죠.


장별인이 살았다는 “경기도(京畿道) 삭령군(朔寧郡)"은 현재 휴전선 이북에 있습니다. 행정 상으로는 "연천군 중면"에 해당하지만, 이 "중면"은 휴전선으로 반토막이 나있고, 옛 삭령군이 있는 지역은 북한에 있습니다. 역사관심 님께서 소개하신 "멧돼지 인간" 사건도 금강산 근처에 위치한 고성군(高城郡)에서 일어난 것과 비슷한 정도의 산골이죠.

다만 옛 지도에선 찾아볼 수 있습니다.

위 지도의 출처는 1871년에 출간된 삭녕지 혹은 삭녕군읍지라고 불리는 지리지입니다. 위 기록과 동시대의 것이라고 할 수 있죠. 이규경은1853년에 당시 35, 6세인 "장별인"에 대해 들어보았다고 하고 있으니, 장별인은 1810년대에 태어났겠군요.

다만 의아한 점이 있습니다. 이 지리지의 "성씨" 항목에는 장(張) 씨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장별인 이후로 대가 끊겨서 그런걸까요? 하지만 1842년의 지리지에도 장 씨가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장별인이라는 이름은 "장씨 성을 가진 자라 인간"이라는 뜻이 아니라 "늘어나는(張) 자라 인간"이라는 뜻이었던 걸까요? 기사의 제목이 "별인에 대한 변증설"인것으로 보아, 그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아버지는 찾아낼 수 있을까요?

"장별인(張鱉人)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으니, 그가 곧 군교(郡校)의 아들로서"

군교(郡校)의 뜻은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 군교(軍校)의 오기(誤記)가 아닌가 싶습니다. 군교(軍校)는 조선 시대, 지방 관아에 속하여 군사 및 치안 업무를 맡았던 아전입니다. 이 군교가 일을 했을 관아는 당연히 삭녕읍에 있었겠지요. 지도 왼쪽 아래에 큼직하게 "읍(邑)"이라고 써있는 곳입니다.
반면에, 혹시 이 삭녕군(郡)의 향교(校)를 말하는 것이라면 지도에서 보이다시피 관아가 있는 읍에서 동쪽으로 약 5리 거리에 있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삭녕군 아전의 아들 장 씨"에 대한 정보는 더 찾아낼 수 없었습니다.
한편, 이규경이 오잡조에서 찾아낸 "검은 빛의 점어(鮎魚)라는 물고기"는 뻘에서 기어다니는 망둥어나 짱뚱어 종류가 아닌가 싶습니다. 



P.S.
이쪽은 도시 전설이지만, 일본의 근대 초기(20세기 초)를 배경으로한 기형아 괴담, 료멘스쿠나도 링크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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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흑범 2017/02/08 06:49 # 답글

    그 지역에서 대대로 산 사람이 아니고, 비교적 가까운 시대에 처가살이를 온 사람의 후손이라면, 데릴사위가 아버지나 할아버지 대라면 말이죠. 그럼 읍지나 향토서에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 남중생 2017/02/08 15:28 #

    아전이라면 그 지역에서 꽤 오래살고, 지역 물정도 잘 알아야 할것 같은데, 꼭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나보군요...
  • 역사관심 2017/02/09 03:04 # 답글

    확실히 전근대 시대의 많은 이야기는 현대의 관점으로 보면 흥미로운 해석과 추정이 가능한 것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예전의 이놈도 그중 하나: http://luckcrow.egloos.com/2255644
    잘 읽고 갑니다!
  • 남중생 2017/02/09 16:09 #

    오오, 전근대에 희귀한 동물을 어떻게 "고증"해냈는지도 관심사 중에 하나입니다. 포스팅 소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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