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8. 석감당 橘南谿의 서유기(西遊記)

八 石敢当 

8. 석감당


鹿児島かごしま城下町々の行當り或は辻街つじちまたなどには必たかさ三四尺斗なる石碑せきひあり。石敢当といふ。文字をほり付していかなるゆへそと所の人に問ふに「昔より致し来れなるにていかなるゆへといふ事を知らずといふ。後に輟耕録てつこうろくを見しに此事出たり。其文曰 今人家正門適当巷陌橋道之衝 立一小石將軍或 植一小石碑 鐫其上曰石敢當薩州ハ日本の極西南に在りて唐土に近くむかしはふねの往来も自由なりしかバ彼地にてかやうの事も見及び来りて此地に作り直しにや。又田畠でんばたの中に石にて衣冠いかんぞうを彫りて据へたり。田夫に問へバ田の神なりといふ。是も彼の輟耕録に見へたる石将軍のるひにして日本の衣冠の像に作りたるものにや。皆他国にては見ざる物也。伊勢などには石を將基の駒の形に作りて山神と彫付て村里の出口には必あり。是も他国にはあまり多く見ざるものなり。石敢当は京高辻天満宮の社前に昔はありしといひし人あり。今はなし。


사츠마주 카고시마 성아랫마을(城下町)마다 막다른 골목 혹은 갈림길 따위에는  반드시 그 높이 3~4척 정도 되는 비석이 있다. 석감당이라고 하는 문자를 새겨넣었다. 어찌된 까닭인지 주변 사람에게 물으니, 옛날부터 전해내려온 것으로 어찌 된 까닭인지는 모른다고 말하였다. 후에 철경록(輟耕録)을 보니 이 기사가 나왔다. 

其文曰 今人家正門適当巷陌橋道之衝 立一小石將軍 或 植一小石碑 鐫其上曰石敢當云.

그 글에 적혀있기를, "지금 인가(人家)의 정문이나 적당한 항맥(巷陌)과 교도(橋道)[1]모퉁이에 작은 돌 장군을 세우거나, 혹은 작은 석비를 세우는데 그 위에 석감당이라고 새긴다.

사츠마는 일본의 극서남에 있어 중국에 가깝고, 옛날에는 배의 왕래도 자유로웠으니 그 (중국)땅에서 이런 것을 보고 와서 이 (일본)땅에서 새로 만드는 것이랴.[2] 또 논밭 한가운데에 돌에 의관의 모양을 깎아서 박아놓았다. 밭일하는 사내에게 물으니 밭의 신이라고 한다. 이것도 그 철경록에 보이는 돌 장군의 류(類)로, 일본의 의관의 모양으로 만든 것이랴. 모두 다른 지방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다. 이세(伊勢) 등지에서는 돌을 장기 말 모양으로 만들어 산신(山神)이라고 새겨 넣었는데 마을(村里) 출구마다 반드시 있다. 이것도 다른 지방에서는 그다지 많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옛날에는 교토의 타카츠지(高辻) 텐만구우(天満宮) 신사 앞에 석감당이 있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지금은 없다.

-----------------------------------------------------------------------------------------------------------------------


[1] 길거리, 골목, 다리, 큰길

[2] 사츠마가 중국과 가깝기 때문에 중국 문화가 전파되었을 것이라는 논리 전개는 아래 기사에서도 보인다.

"(사츠마는) 중국에 가까운 지방이니 (소싸움도) 그 풍속일 것이다." (67. 소싸움 中)



P.S. 

중국의 원조(!) 석감당에 대해서는 Esperos님의 글, 태산석감당 이야기를 참조. 


서유기 순서 상, 석감당 기사의 차례는 한참 지났는데, 이제야 소개하는 이유는 저 포스팅을 읽기 전에 그 부분 진도를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Esperos님의 블로그에서 석감당 이야기를 읽을 때 무렵에는 서유기에 석감당이 나온다는 걸 이미 까맣게 잊어버렸기도 했고요.ㅠㅜ


핑백

덧글

  • Esperos 2016/06/23 23:17 # 답글

    제가 참고한 논문에서 일본에 태산석감당을 신체로 모신 신사가 있다는 구절이 있어서 포스팅하면서 그 부분만 짧막하게 서술했는데, 가고시마...규슈 지역에 석감당이 흔하게 있었군요. ^^a 이 글을 읽으면서 좀 놀랐습니다.
  • 남중생 2016/06/23 23:38 #

    중국인들이 가는 곳이라면 있는, 그런 것들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