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37. 메가네바시 (나가사키) 橘南谿의 서유기(西遊記)

三七 眼鏡橋 (長崎)

37. 메가네바시(나가사키)

 

長崎の橋はすべて唐風の作りようなり。両岸より切石(きりいし)を畳上げて、橋杭なしにかけ渡せる石橋なり。他国の石橋というは一枚石にてかけたるものなるに、長崎の石橋は小さき石を切りて、石がきのごとく畳みて両方より合わせたるなり。長き橋はふた筋に水を通ずるなり。是を目がね橋という。唐絵にえがく所の橋は大かた此風なり。下より水溢るれば崩るる事もあれども、上よりはいか程重き物をのするといえども動き破るる事なしという。誠に大河にはなるまじけれど、長崎の川は大かた京都の堀川(ほりかわ)程の大きさなり。万代不壊(ばんだいふえ)の橋なり。もとは唐人来たりて作れりという。彼地は柔らかなる石たくさんなるゆえにや。京などにても此ごとき橋を作らば破損の憂なくしてよかるべきものを。


나가사키의 다리는 모두 중국풍으로 지어졌다. 깎은 돌을 양쪽 강변에서 쌓아 올려, 다리를 바치는 기둥 없이 건너지른 돌다리다. 다른 지방의 돌다리라는 것은 장의 돌로 걸친 것을 말하는데, 나가사키의 돌다리는 작은 돌을 잘라, 돌담처럼 쌓아 양쪽에서 합친 것이다. 기다란 다리는 줄기로 물을 통과시키는데 이것을 메가네(眼鏡, 안경) 다리라고 한다. 중국 그림 다리는 대개 이런 식이다.[1] 아래에서 물이 넘쳐흘러서 무너지는 일은 있더라도, 위에서는 아무리 무거운 물건을 올려도 무너져 내리는 일은 없다고 한다. 정말 강에는 지을 없겠지만, 나가사키의 냇물은 대개 교토의 호리카와(堀川) 정도 크기이다. 만고불변의 다리이다. 원래는 중국인이 와서 지었다고 한다. 땅은 부드러운 돌이 많은 까닭(이렇게 다리를 짓는 )이다. [2] 교토()같은 곳에서도 이처럼 다리를 지으면 파손될 걱정이 없어 좋을 것을...



[1] 타치바나 난케이가 떠올렸을 법한, "중국그림" 속 아치형 다리들은 이런 게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1. 이전 포스팅, 서유기에 실려있던 "네덜란드" 삽화의 원본?에서 직접 소개한 두루마리에 포함된 그림들 중 하나. 네덜란드인들이 망원경으로 보는 "중국"의 풍경.




















2. 1806년, 오카다 교쿠잔(岡田玉山)이 그린 당토명승도회(唐土名勝図会) 중, 건륭제의 코끼리들을 목욕시키는 장면.

세상(洗象)에 이런 일이...

(우측 하단에 아치형 다리가 보임.)
















[2] 남방의 부드러운 성질에 대한 언급은,

9. 냉난옥 (오오이타), 84. 기기 (네덜란드) 참조.



--------------------------------------------------------------------------------------------------------------------------------------------------------------------

P.S.

이번 번역/포스팅을 하면서 정말 놀랐던 것은, 아치형 구조물을 묘사하는 타치바나 난케이의 어조입니다. 다른 지방에는, 아니 일본을 통틀어서 이런 다리를 본 적이 없다는 듯이 말하고 있지요. "이건 나가사키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거야..."

참 이상한 일이죠. 우리나라만 해도 국보, 보물 1호인 동대문과 남대문은 모두 거대 아치형 건축입니다. 타치바나 난케이도 위에서 이미 말했듯이 중국은 말할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일본만 유독 아치가 없었다??
여기서 호기심이 동해서 조사를 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네, 일본은 실제로 1800년대 이전에 지은 아치가 없다시피 합니다.


????!!!


물론 이건 아치를 어떻게 정의하냐에 따른 문제이기도 합니다.

제가 "일본에서는 1800년대 이전에 지은 아치가 없습니다", 혹은 "아치를 지을 수 없었습니다" 라고 강하게 말하지 않는 이유는, 킨다이바시(錦帯橋, 1673년, 아래 그림) 같은 케이스의 "목조 아치"는 꽤 여러 개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무로 짜여진 이런 둥근 다리들은 마치 큰 북처럼 생겼다고 해서 타이코바시(太鼓橋)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건축사에서 (로마인들의 상징인) "아치"를 이야기할 때는, 돌다리를 이야기하는 것이죠. 그리고 이렇게 돌로 만든 아치는 일본에서 "메가네바시' 그러니까 "안경다리"라고 불립니다. 바로 위에서 소개드린 나가사키의 다리(1634)가 너무 임팩트가 강해서 이후로 만들어진 모든 다리들의 이름이 된 것 같습니다. 호치케스나 클리넥스처럼 말이죠.

일본에 "아치"라는 기술이 비교적 최근에 나가사키로 전파되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은,
바로 이 전파루트를 꽤 구체적으로 고증하는 글들도 있다는 데서 알 수 있습니다.

 そして、このアーチの技術が日本に伝わってきたのは16世紀のことだといわれる。ローマからシルクロードを通る中国経由の陸路からと、アフリカの喜望峰を経た海路の両方から長崎に伝来したと考えられる。
그리고, 이 아치 기술이 일본에 전해져 온 것은 16세기의 일이라고 말해진다. 로마에서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을 경유한 육로와, 아프리카의 희망봉을 지나는 해로의 양쪽에서 나가사키에 전래되었다고 생각된다.
(アーチ石橋に秘められたドラマ-橋本勘五郎と肥後・種山石工の偉業- 
아치 석조에 숨겨진 드라마 - 하시모토 진고로와 히고・타네야마 석공들의 위업-)


그리고 나가사키에 메가네바시가 지어진 다음에도 이런 다리가 큐슈 밖으로 나가는 일은 드물었습니다. 

일본 돌다리 지키미 협회(日本の石橋を守る会)에 따르면 일본 전국의 메가네바시가 큐슈 지역에만 89.4%가 몰려있다고 합니다. 구마모토 현 웹사이트에 따르면 96%라고도 하네요.

실제로 위의 "아치 석조에 숨겨진 드라마" 글은 나가사키의 메가네바시를 보고 아치를 연구해 이 "신기술"을 터득한 하시모토 진고로(橋本勘五郎)라는 특정 인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만... 이 사람은 으흑... 1822년에 태어난 사람이라고요 ㅠㅜ

그렇다면 일본에서 아치의 전파(혹은 발명)이 이렇게 유독 느렸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단 애초에 아치 건축이 정착하기 어려웠다는 걸 말하는 분들은 환경결정론 쪽의 주장을 택하시는 것같습니다.
그러니까 지진, 지진, 지진! 일본의 모든 것을 설명하기 위한 지진!
이 때문에 초기 단계의 아치가 실험적으로 발달하기 어려웠다는 거죠.

여기서 재미있는 건, 독자적인 왕국을 수립했던 오키나와의 경우에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훨씬 더 오래된 석조 아치 구조물(다리를 포함한)이 상당히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도 전쟁의 여파로 많이 깨지긴 했습니다...






















1502년에 만들어진 텐뇨바시(天女橋)입니다. 오키나와 아치의 특징은 "키스톤"이라고 불릴 만한 부분이 없고, 4개의 돌로 이루어져있다는 것입니다. (역시 섬은 달라도 뭔가 달라...)

아무튼 신기합니다. 일본은 1800년대까지 자체적으로 석조아치를 만들 기술이 보급되어있지 않았다, 라니...
마치 시드마이어의 문명에서 초창기에 기술 테크트리 하나 안 찍고 계속 달린 느낌이랄까요?

P.S. 2. 혹시라도 건축사나 일본사에 조예가 있으셔서 여기에 첨언해주실 수 있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핑백

  • 남중생 : [타치바나 난케이의 맛집 탐방] 에도시대 일본에서 흑돼지 흑염소를 찾으려면 어디로? 2016-06-17 21:37:23 #

    ... -------------------------------------------------------------- [번역후기] 이번 기사도 지난 번의 37. 메가네바시와 마찬가지로 제게는 참신한 충격을 주었는데요. 바로 타치바나 난케이가 돼지를 묘사하는 방법입니다. 이 사람은 살아생전 돼지라는 동물을 한 번도 못 본 것 같 ... more

  • 남중생 : 17세기에 만리장성, 자금성, 한양 도성을 본 일본인들의 반응은? 2017-07-23 05:03:51 #

    ... 지난 37. 메가네바시 (나가사키) 포스팅에서 일본이 19세기 중엽이 되도록 아치 건축 기술이&n ... more

  • 남중생 : 9. 냉난옥 (오오이타) 2017-07-23 05:24:11 #

    ... 겠으나, 맥락상 수백년 뒤의 일본인들도 알아주는 명필이었던 것 같다. [2] 남방의 부드러운 성질에 대한 언급은, 37. 메가네바시 (나가사키) 中彼地は柔らかなる石たくさんなるゆえにや。그 땅은 부드러운 돌이 많은 까닭(에 이렇게 다리를 짓는 것)이다. 84. 기 ... more

  • 남중생 : "테크트리" 역사관(觀)의 위험성 2018-02-12 00:20:31 #

    ... 까 그랬겠죠 ^^) 그래서, 이 "아치" 말입니다. 제 블로그에서, 일본은 19세기까지 아치 건축 기술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이미 여러 번 했습니다.(서유기의 37. 메가네바시와 17세기 만리장성, 자금성, 한양 도성(사대문)을 본 일본인들의 반응은? 포스팅 참조!) 중국이나 조선도 오랫동안 (적어도 19세기보다는 ... more

  • 시드마이어의 문명5의 테크트리 – KOREASIC 2018-03-15 16:55:41 #

    ... ^^)   그래서, 이 “아치” 말입니다.   제 블로그에서, 일본은 19세기까지 아치 건축 기술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이미 여러 번 했습니다. (서유기의 37. 메가네바시와 17세기 만리장성, 자금성, 한양 도성(사대문)을 본 일본인들의 반응은? 포스팅 참조!)   중국이나 조선도 오랫동안 (적어도 19세기보다는 한~참 이전에) 아치 건 ... more

  • 남중생 : 태양의 구멍 2018-08-13 02:13:09 #

    ... "테크트리" 역사관의 위험성 (2018.02.12)- 17세기에 만리장성, 자금성, 한양 도성(사대문)을 본 일본인들의 반응은? (2017.07.23)- 37. 메가네바시 (나가사키) (2016.06.04) 전근대적 평면지구론에 대해서는,불교 신자는 평면 지구론을 믿는 걸까? 포스팅도 참조. ... more

덧글

  • 천하귀남 2016/06/05 09:38 # 답글

    기술적으로는 타이코바시라는 목구조 아치교 쪽이 교각간의 거리인 경간을 최대로 하기 좋고 내진면에서도 좋으니 굳이 석조 아치가 필요 없지 않나 합니다.

    석조는 일단 비용이 어마무지하게 들어가는데 지진에 취약한 부분도 있고 또 한가지 문제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여름철 장마에 물이 불어나는 수량은 갈수기의 200배라는 어마무지한 수량입니다. (유럽은 2~30배정도) 이러니 쓸려가도 다시 짓기 편하고 비용도 적은 쪽으로 지은것 아닌가 합니다.
  • 남중생 2016/06/05 14:52 #

    그쵸... 지진 때문에 목조주택이 유행했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다만 홍수 피해는 석조 아치가 더 잘 버텨주는게 아닐까 싶은 점도 있습니다. 타치바나 난케이도 그렇게 말하고 있고요.
  • 천하귀남 2016/06/05 16:03 #

    19세기 말 이후의 케이슨 잠함으로 바닥 기반암까지 파고 내려가 파일박고 철근 콘크리트로 올라오는 수준이면 몰라도 과거의 저런 석교는 제일 바닥 기반부는 나무말뚝을 박고 위에 돌로 기반 쌓은 것인데 이러면 한국이나 일본은 수십년주기 대홍수에서 버틴다는 보장이 안될겁니다.
    실례로 위에 언급한 긴타이교도 여지껏 3번이나 교각이 유실됬습니다. 대략 100년주기 홍수는 못버틴다는군요. 경주에도 돌로된 교각을 가진 다리가 있었지만 지금은 교각상부는 안남았습니다. 뭐 현대의 콘크리트 교각도 일부가 쓸려내려가는 경우가 있기는 합니다.

    그만큼 한국이나 일본의 장마철 수량이 어마무시합니다.
  • 남중생 2016/06/05 16:07 #

    오... 수십년 주기의 대홍수라는 것이 있군요. 흥미롭네요! 상세히 가르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 지오-나디르 2016/06/05 20:44 # 답글

    워낙 홍수 피해가 잦아서 나가레바시(流れ橋) 라고 아예 상판을 포기하는 구조가 있기도 합니다.
  • 남중생 2016/06/05 22:11 #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나가레바시에 대해서도 알아보겠습니다.
  • Barde 2016/06/07 00:44 # 답글

    윗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나가레바시는 여러 일본 문화에서도 등장합니다. 오랜만에 재밌는 포스팅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 남중생 2016/06/07 02:41 #

    그렇군요. 혹시 나가레바시가 등장하거나 언급되는 작품?을 가르쳐주시면 꼭 찾아보겠습니다.^^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