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조선의 오디세이아는 과연 어디로부터? (1부) 용틀임하는 동아시아 근세

예, 그렇다면 어떻게 조선의 야담집에 오디세이아의 일화가 수록되었을지 알아보죠.
우선 "대인도" 이야기가 실려있는 "해동야서"와 "청구야담"의 연대를 알아보겠습니다. 해동야서의 맨 끝에'갑자유월일취월필서()'라고 써있는데, 여기에서 1864년(고종 1)으로 연대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해동야서는 청구야담의 필사본으로 보는 것이 정설입니다. 그러니까 1864년 이전에 조선으로 전래된 이야기라는 것이죠.
이 "전래"되었다는 케이스를 우리는 몇 가지로 분류해볼 수 있습니다.

1. 서양에서 (그러니까 서양인이) 직접 조선으로 와서 이 이야기를 전래하였다.
2. (서양에서 전래된 오디세우스 이야기가) 중국을 거쳐서 조선으로 전래되었다.  
3. (마찬가지의 케이스가) 일본을 거쳐서 전래되었다.

일본과 중국을 제외하고는 간접 전래 루트로 필리핀이라던가 마카오를 생각할 수 있는데, 우선은 보다 가능성 있어 보이는 중국이나 일본만을 보도록 합시다.

처음에는 조선에 (혹은 한국에) 호메로스의 서사시들이 최초로 번역된게 언제인지도 알아보고 싶었습니다만, 사실 이건 크게 무게를 두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1864년 이전일 리는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오디세이아 전편이 완역되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디세이아 중 별미라고 할 수 있는 에피소드인 만큼 키클롭스 이야기만 따로 전래되었을 가능성은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사람들이 삼국지를 다 읽지 않아도 조자룡이 유비의 아들을 구한 이야기를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

이것은 일본이나 중국의 케이스도 마찬가지지만, 적어도 그곳을 거쳐서 전파되었다는 것을 확신하기 위해서는 근거가 필요합니다. 기록이 필요하죠. 일본이나 중국에서 먼저 구전되던 것이 조선인에게도 전래되었을 수는 있지만 먼저 일본/중국에서 구전이 되었다고 말하는 기록은 최소한 필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역시 이 가능성 보다는 역시 글로 써져서 전래되었을 가능성이 훨씬 높지요. 왜나고요? 동아시아는 문자사회였기 때문입니다. 중국인, 한국인, 일본인은 모두 다른 언어로 말했지만 같은 문자를 썼지요. 당장 이 대인도 이야기도 한자로 기록되어있지 않습니까.

우선은 예수회 선교사들이 대거로 문화전파 활동을 한 일본이 심증이 가는군요. 한번 찔러볼까요?
여기에 도움이 될만한 자료로는 "일본 서양고전학 문헌사: 키리시탄 시대에서 쇼와 20년까지의 저작문헌 연표"(日本西洋古典學文獻史: 切支丹時代から昭和二十年までの著作文献年表)라는 책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일반 상업출판으로 나오지 않은 학술서적이라서 제가 구해보지는 못했지만, 저자 와타나베 마사히로(渡邉雅弘) 선생님께서 이 책을 내시면서 쓴 에세이가 있더군요. 
일본서양고전학회 사이트에 올리신 "고전의 힘"이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확실히 "고전 중의 고전"인 호메로스의 서사시들을 언급할 뿐만 아니라, 이런 "서양 고전"을 본격적으로 일본에서 배우기 시작한 것이 예수회 선교사들이 활동한 키리시탄 시대(16세기 후반~17세기 전반)일 것이라고 추정은 하고 있지만...


소위 서양고전 중에서 고전 중의 고전은 호메로스의 2 서사시지만, 호메로스 혹은 그에 해당하는 무명의 기원전 9~8세기 문맹시인은, 세계적인 고전을 창조하는 의지를 갖고 "일리아드"와 "오딧세이아"를 읊은 것은 아닐 것이다.
いわゆる西洋古典の中で古典中の古典はホメロスの2叙事詩であるが、ホメロスあるいは彼に該当する無名の前9~8世紀文盲詩人は、世界的な古典を創造する意気込みをもって『イリアス』と『オデュッセイア』を吟じた訳ではなかろう。
(중략)
어쩌면 서양고전이 일본에 있어서 처음 본격적으로 학습된 키리시탄 시대(16세기 후반~17세기 전반)이 아닐까 하고 최근 생각하고 있다.
もしかすると西洋古典が日本において初めて本格的に学習されたキリシタン時代(16世紀後半~17世紀前半)ではないかと最近考えている。
(중략)
당시의 유럽에서는 물론 그리스 고전의 재발견이 꽤나 진행되고 있었지만, 일본의 예수회 교육 커리큘럼에서는 라틴어 고전만 다루고 있었다는 사실이 그대로 여기에 반영되어있다고 생각한다.
当時のヨーロッパでは無論ギリシア古典の再発見が可也進んでいたのであるが、日本のイエズス会教育カリキュラムではラテン語古典のみ扱われていたという事実がそのままここに反映されていると思われる。

예, 결론적으로 라틴어로 된 것만 배웠기 때문에 라틴어역 호메로스라면 또 읽었을지도 모르겠으나... 예수회에서 그렇게까지 해서 굳이 이교도 신들의 이야기를 가르쳤을 가능성은 희박했을 것 같군요. 

여기에 있어서는 동시대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마테오 리치, 알레니를 포함해서 이름만 대면 이미 유명한 명나라 때의 예수회 신부들도 자신들의 저서에서 호메로스를 언급하기는 했지만... 말그대로 언급만 하는데에 그쳤습니다.

중국에서의 호메로스 번역사(史)에 대한 연구는 최근 Sher-shiueh Li라는 대만 학자가 “Translating” Homer and his epics in late imperial China: Christian missionaries’ perspectives라는 논문에서 자세히 다뤘습니다. 유료논문이고 제 능력 내로는 기관접속도 할 수 없어서 초록 밖에 못 읽지만, 초록의 두번째 문장에서 벌써 실낱같은 희망을 단칼에 잘라버리시네요.

이 논문은 명청대 중국에서 가톨릭과 개신기독교 선교사들에 의해 묘사된 호메로스를 다룬다. 범신론에 대한 예수회의 반발로 인해, 호메로스의 이름은 명대 예수회의 저작에서 대부분 생략되었다. 
This paper discusses Homer as portrayed by Catholic and Protestant missionaries in late imperial China. Due to Jesuit opposition to pantheism, Homer’s name was omitted from most Jesuit writings of the Ming.
 

이 "범신론에 대한 반발"이 얼마나 심했는지는 다음 글을 읽어봅시다. 

옛날에 한 현자가 있었는데 이름은 하묵락(何默樂)이었다. 심오한 시 50여권을 지었는데, 노랫말이 풍부하고 그 뜻이 비밀스러워, 우언(寓言)이 매우 많았다. 끝내 그 뜻을 풀이하지 못하였는데, 도리어 큰 불행으로 후세의 어리석은 사람들이 장차 하묵락이 노래한 여러 형상들을 기꺼이 그 모양대로 주조해내고는, 큰 사당을 세워 거기에 빌면서, 그릇된 신을 머물게 하니, 이렇게 좌도(左道)가 처음으로 서양 땅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필달아(畢達我), 색가덕(索嘉德), 백랍다(白臘多) 같은 군자와 유학자들이 불현듯 노하여 이 폐단을 미워했을 뿐만 아니라 굴하지 아니하였고, 또한 한데 몰아서 멸하고 싶어하였다.
昔有一賢名曰何默樂,作深奧之詩五十餘卷,詞富意秘,寓言甚多. 終不得其解, 反大不幸後世之愚民, 將何默樂所謳之諸象欣欣然雕鑄其形, 不日功成大廟以供之, 邪神從而棲之, 而左道始入西土矣. 君子儒者如畢達我, 索嘉德, 白臘多等艴然怒而嫉其蔽, 非徒不爲之屈, 又欲驅而滅之.

이 글은 청나라 초기에 활동한 예수회 선교사 Joseph de Premare(중국명: 馬若瑟)가 쓴 "천학총론"의 한 대목입니다. 말할것도 없이 하묵락은 호메로스고, 오디세이아(24권)+일리아드(24권) = 대충 50권이고, 아래의 군자와 유학자들은 "피타고라스," "소크라테스," "플라톤"입니다. 아무튼 호메로스는 현자였지만, 그가 쓴 시의 비유를 그대로 믿은 멍청한 그리스인들이 다신교 신앙을 만들었다는 설명을 하고 있네요. ㄷㄷㄷ 
구체적인 물증이 없는 상태에서 심증마저 가지 않는 예수회 활동 시기(18세기 이전)에 희망을 두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중국이나 일본이나 "범신론에 대한 반발"을 가졌다는 예수회는 리스트에서 지워야겠군요.
하아... 어쩌면 희망에 부푼 나머지 너무 이른 시기를 잡아버린 걸까요? 1864년에 보다 가까운 시기를 살펴보면 어떨까요?
여기서부터는 또 다음 포스팅에 이어서 연재하게습니다.^^

-----------------------------------------------------------------------------------------------------------------------------------------------------------------------------------------
 
P.S. 일본에서 오딧세이아가 언제 최초로 전래되었는지를 찾아보면 유리와카다이진(百合若大臣. 유리 도령) 설화라는 녀석과 맞닥드립니다.  

일본에 중세부터 전해져, 코우와카마이(幸若舞) 등으로도 만들어진 설화로 "유리와카다이진"이 있다. 이것은, 주인공 유리 도령이 전쟁에서 돌아오는 도중에 가신들이 배반하여 섬으로 유배당하는데, 그곳으로부터 고생하여 귀환한다는 스토리다. 유리와카는 귀가 후, 자신의 아내에게 구애하는 남자들을 활로 쏘아 죽인다. 위와 같이 정리해보면, "유리와카다이진"은 오딧세이아와 유사하다 (주인공 오딧세우스의 라틴어 이름 "율리시스"와 닮았다). 이 때문에, "유리와카다이진"은 "오디세이아"가 일본에서 번안된 것이라는 가설도 제창되었다. 저명한 제창자는 츠보우치 쇼우요우(坪内逍遥)나 미나카타 쿠마구스(南方熊楠)
(출처: 일본 위키피디아 오딧세이아 항목)

츠보우치 쇼우요우坪内逍遥는,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가 쓴 서사시 오디세이아가 무로마치시대에 일본에 전해져, 그것이 번안된 것이 "유리와카다이진"이라는 설을 1906년(메이지 39)에"유리와카 전설의 본원"이라는 제목으로 "와세다문학"에 발표했다. 오디세이아의 라틴어 발음 "율리시스"와 "유리"가 유사하다는 것이나, 주인공 오디세우스가 집을 비운 사이 독수공방하는 아내 페넬로페가 직물을 짜서 시간을 벌고, 구혼자를 피하는 일화가, 유리와카의 아내의 행동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이 설은 지지받은 때도 있었지만 페넬로페 형(型) 설화의 분포가 넓고, 우연의 일치라고 보는 회의적인 의견도 많다.
이노우에 쇼우이치井上 章一는 쇼우요우의, 남만시대에 전래되었다고 하는 설은 성립되지 않지만, 유라시아 대륙전체에, 선사시대에 퍼진 설화의 하나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고 있다.  
(출처: 일본 위키피디아 百合若大臣 항목)

제가 위에서 세 가지 케이스를 분류하면서 말하지 않은게 있는데, 바로 이 조선판 오딧세이아가 어쩌면 근세에 전래된 것이 아니라 그저 우연의 일치거나, 훨씬 더 오래된 인류공통의 문화유산에서 나온 것일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유리와카다이진이라는 일본에서의 유사한 케이스를 언급한 김에 이 가능성을 짚고 넘어가 보죠.
저도 물론 첫번째 포스팅에서 대인도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이쯤되면 오디세이아가 원전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는 식으로 강하게 이야기했지만, 실은 이 모든게 우연이거나 근세에 전래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다만, 직간접적으로 전래되었다면 그 루트를 파악하는 것이 흥미로운 작업일테니까 그런 가정을 깔고 글을 쓰고 있는 것이지요. 저도 일단 이 가정에 따라 글을 쭉 쓴 다음에 전래된 것이 아닐 가능성도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덧글

  • 迪倫 2016/04/11 04:58 # 답글

    남중생님, 해동야서의 이야기는 저도 읽어보지 못했던거라 정말 흥미있네요. 그런데, 일본에는 정확히 해동야사의 얘기와 같은 외눈박이 거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스토리는 선원 두명이 표류하다 섬에 물을 구하러 갔다가 눈이 하나인 거인에게 잡혀 동굴에 끌려갔는데 거인이 2명의 부부였고 동굴안에 동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거인이 일행 중 한명을 먹어치우고 술에 취해 잠든 틈에 눈을 칼로 찌르고 돼지 밑에 숨어 보이지않는 거인을 속여 빠져나와 돌아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18세기의 히라자와 교쿠잔(平沢旭山)이 그의 글 "瓊浦偶筆"에 자신이 "나가사키에 갔다가 그 선원에게서 들었다"며 옮겨둔 이야기 중의 하나입니다. 패턴이 해동야사와 완전 같습니다.

    현재 연구로는 히라자와가 나가사키에서 오란다통사들을 통해 네덜란드책의 단편 이야기들을 들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실제 그가 자신의 글에서 여러가지 오란다의 모험담을 읽었다고 밝히고 있다고 합니다.

    실은 히라가 겐나이의 풍류시도켄전이 걸리버 여행기와 관련이 있는지에 대한 조사를 하다가 이솝우화의 경우 예수회의 번역이 이후 에도시대에 재발견되어 시바고칸이 다시 소개를 한 것과 히라자와의 이 오딧세이 외눈박이 거인 이야기가 19세기 이전 일본에 전해진 유럽 이야기의 예로 알려진 것을 보았었습니다.

    "瓊浦偶筆"의 일본어본은 제가 볼 수 없어 Donal Keene이 "The Japanese Discovery of Europe, 1720-1830"에서 이 에피소드를 영어로 번역한 것을 참고했습니다.
  • 남중생 2016/04/11 19:37 #

    오오 과연! 감사합니다. 조선 판이 오히려 "양"(그리고 돼지)를 이야기하고 있어서 원본에 가깝다는게 흥미롭네요. The Japanese Discovery of Europe은 부분부분만 읽고 통독을 한적이 없었는데, 잘 되었군요. 찾아보겠습니다.ㅎㅎ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