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장화홍련이 사또를 찾아오는 이유는? - Judith Boltz의 Not by the Seal of Office Alone! (上) 뇌법! 鬼를 울리는 천둥소리

구양(歐陽) ()응천부(應天府)에 부임한  3일이 되었을 때, 어느 묘(廟)지기가 찾아와 오랑묘(五郞廟) 매우 영험하다고 아뢰며, 치성을 올리기를 청하였다. 그러지 않는다면 저주가 내린다는 것이었다. () 이를 거절하였다.[1]

하루는 그가 밥을 먹던 도중 젓가락이 사라졌는데, 다음날 (오랑묘의) 토우(土偶)의 위에 젓가락이 얹어져 있는 것이었다. 명을 내려 사당에 빗장을 채우고, 유수(留守) ()으로 봉하였다. 경계하며 말하길: “내가 이곳을 떠나면, (그제서야) 비로소 있게 하여라.” 그런 뒤로는 그에게 아무런 탈도 없었다.

위의 에피소드는 방작(方勺, 1066-1141+) 직접 목격한 사건과 소문을 모아 집성한 10권 짜리 박택편(泊宅) 등장한다. 편집자가 예상한 독자층은 주인공의 이름이 완전치 못하다고 해서 (그가 누구인지) 혼동하지는 않았으리라 여겨진다.

만약 아무런 근거를 제공하지 않더라도, 방작동시대인들은 이야기 속의 응천부사가 유명한 문인 구양수 (歐陽脩, 1007-1072)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의 약력을 보면 구양수10507월에서 10523월까지 실제로 남경 유수 동시에 응천부사 지냈다는 것을 있다. 이 사건에 대한 뒷바침은 구양수를 다룬 어떤 전기(傳記) 그가 직접 글들에도 나오지 않는다. 진실여부가 의심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일화들은 () () 사이의 영원한 영역싸움 대한 역사 자료를 보충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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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록 Boltz의 영문 번역에는 "declined"라고 쓰여있지만, 적어도 제가 확인한 원문은 "公頷之"입니다. 가운데 頷자는 고개를 끄덕인다는 뜻이니까 "공은 이를 수락하였다." 라고 번역하는 것이 맞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구양수가 "치성을 올렸는데도 감히 나한테 이런 장난을 쳐?!"하고 화가 나서 사원을 봉인한게 되니 카리스마보다는 다소 찌질한 모습이 되어버리긴 하네요...

歐陽公知應天府三日,謁廟史白有五郎廟甚靈,請致禮,不然且為祟,公頷之。一日,食,夾子輒失之;明日,夾子在土偶手中。遂命扃其廟,以留守印封之,戒曰:「予去此,則可開。」然亦無他異。

(박택편 권6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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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글은 중국 종교 (특히 도교) 연구자인 Judith Boltz의 NOT BY THE SEAL OF OFFICE ALONE: NEW WEAPONS IN BATTLES WITH THE SUPERNATURAL(결재 도장만으로는 부족할 때: 초자연과의 싸움에서 쓰이는 신무기)의 첫 페이지를 번역한 것입니다




슈퍼내추럴과의 싸움이라니 마치 무슨 이능력 배틀물 라이트 노벨 제목 같지만, 실은 마찬가지로 저명한 중국학자 Patricia Ebrey가 편집을 맡은 Religion and Society in Tang and Sung China(당송대 중국의 종교와 사회)에 실려있는 글이죠.

이 글에서 Boltz는 유명한 송대 문인이자 관리인 구양수가 등장하는 이야기를 소개한 뒤, 이것이 어떤 역사적인 실제를 반영하고 있는지 설명하고 있죠. 다시 말해, 새로 부임한 사또에게 장화&홍련 귀신이 찾아오는 이유는 사실 귀신으로 대변되는 토착세력과 중앙에서 파견된 관료의 암투!!를 그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단 조선시대를 생각해봅시다. 당신은 한 마을에서 오래 산 "어르신"입니다. 벼슬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당신과 당신 친구들 (그러니까 마을의 장로들이라고 할 수 있겠죠)은 지역사회에서 꽤 영향력있는 집단을 이루고 있죠. 장로들의 연륜에서 우러나오는 조언들은 가벼이 들을 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을에 새 사또가 부임한다고 하네요. 얼굴이나 구경해보려고 찾아가 봤더니 나이는 한참 젊은 녀석이 거만하게 당신과 친구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고 있습니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당신의 조언도 듣는둥 마는둥, 다 자기가 알아서 하겠답니다.

일단은 계급사회니까 마을 장로들도 파릇파릇한 사또 "나으리"한테 대놓고 불만을 표현할 수는 없고, 대신 챔피언을 내세워서 싸우게 하는건 어떨까요? "저희 고을에서는 이러이러한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오랜 전통이 있습디다~"하면 평생 유교경전만 달달 외운 신참 사또는 "어허! 공자께서는 괴력난신을 말하지 말라 하셨거늘!"하고 나왔다가도 좀 시간이 지나면 이 고을에서 물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게 되면서 "아... FM(경전)대로 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구나;;"하게 된다는 것이죠.

물론 구양수는 이미 베테랑 목민관이라서 저런 트릭에 눈깜짝하지 않고 강행처리를 합니다만... Boltz가 이후에 논의하는 다양한 케이스에서는, 고을 수령이 귀신을 무찌르지 않고, 잘 구슬리거나, 오히려 말 안 들었다가 큰코다쳐서 뒤늦게 후회하는 이야기도 있다고 합니다. 이 경우에는 마을 풍습에 동화되는 중앙관료의 모습이 드러나겠죠. 

이 해석을 따르자면 우리나라의 배비장전과 장화홍련전, 그리고 춘향전?은 모두 중앙관료가 지방으로 파견되고, 그 지역과 소통/갈등하며 임기를 채우고, 떠나고, 이게 돌고도는 전근대 동아시아의 통치제도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모티프를 갖고있다는 겁니다. 재미있는 해석이네요.

그리고 신참 관료가 신고식을 무사히 치르느냐에 따라서 THE GOOD(장화홍련전) THE BAD(춘향전) THE UGLY(배비장전)같은 결말이 나오는거겠죠.

제게 익숙한 레퍼런스를 쓰다보니 한국 고전에서만 예를 들었는데, 오히려 중앙관료와 지방토착세력 간의 거리감과 갈등으로 말할 것 같으면 조선의 케이스는 "양반"이라고 할 만 합니다. 광활한 영토의 명청제국을 생각하면 벌써 눈앞이 깜깜해지지 않나요? 조선은 아무리 멀어봤자 제주 목사로 부임하면 "목사 나으리, 혼저 옵서예~ 귤 좀 드심꽈?"하는 정도겠지만, 중국에서 같은 언어가 아니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사투리를 구사하는 지방에 가서 목민관을 한다는 것은... 그래서 실제로 사투리 통역관도 있었다고 합니다.

아무튼, 제가 오늘 포스팅을 하기로 한 이유는 전근대 동아시아에서 지방으로 발령받은 관료들이 얼마나 답답함을 느꼈을지를 이야기하려고 한게 아닙니다.


Boltz가 인용한 첫 에피소드에서는 구양수가 카리스마 있게 폴터가이스트 사원을 봉인!함으로써 뒷탈을 막아내는데 성공합니다만... 이것은 "by the seal of office alone" "결재 도장만으로" 사건을 처리한 케이스고, 오히려 대부분의 경우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을 것이다는 것이 Boltz의 글에서도 말하고 있는 바입니다. 

그렇다면 결재 도장만으로는 충분치 못할 때 사용하는 "신무기"란 무엇일까요? 이건 바로 다음 포스팅에서 이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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