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30. 선인 (仙人) 橘南谿의 서유기(西遊記)

三〇 仙人 (熊本鹿児島)

30 선인 (구마모토카고시마)

 

おおよその人皆才徳の事に限らず、もし長生を得んと(ほっ)せば、深山に入り、飲食を()ち、思慮をやめ、淫事を断じ、衣服を除きて、生命を養う時は、下凡の人といえども、二三百歳の寿は保つべし。

무릇 사람이란 모두 재덕의 일에 한정되지않고, 혹여나 장수하게 되기를 바라니, 깊은 산 속에 들어가, 음식을 끊고, 생각을 그치며, 음사(淫事)를 끊고, 의복을 없애서, 생명을 기를 때는, 낮고 평범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삼백 세의 수명을 보존할 수 있는 것이다.

当時、霧島山に一人の仙人有り。其名を雲居官蔵(うんこかんぞう)という。もとは武士にて平瀬甚兵衛といいしが、聊か不平の事ありて、官禄を捨て、世をのがれ、此山奥に隠れて人にまみえず。其後数十年へて、霧島山に住めりということ親属の方へも聞こえ、甥の得能武左衛門という人はるばると霧島山に尋入り、数日尋もとめて、ようようにめぐり逢いたり。其形、木の葉の衣に、髪髯おのずからに生い茂り、人のごとくには見えず。されど武左衛門も厚く心にかけて尋入りたる事なれば、言葉をかけて近付寄り、今一たび世に返り、人の交わりもあれかしと理をせめていいしかど、さらにうけがう色無く、「はや世を逃れて幾年かへぬ。近き頃は仙術もやや成就して、姓名も雲居官蔵と改めたり。よそながらにも世の人に相見る事我道の妨げなり。まして再び世に出でん事思いも寄らず。此後はいかなる事ありとも尋来たる事なかれ」とて走り去れり。武左衛門も是非なく別れ帰りぬ。其後は山深く住居て、ほのかにも人にまみゆる事を嫌えり。まして言葉をかわす事などはさらに無し。山に入りて後も、今まで既に百何十年という上に成れり。されど行歩建(ぎょうぶすこや)かにて、老いたるとも、若きとも知れず。彼辺にては人皆仙人なりと敬い、飛行自在其外種々の奇妙多しといえども、其事は知らず。誠にきりしま山は天下の名山にして、高き事雲に聳え、麓のめぐり三拾六里、中に薬草、奇玉多く、大なる池数十、又火燃る谷有り。仙術修練の地是に過ぎたる所有るべからず。予も此山中に三日在りしが、百分が一も見つくさず。一月ばかりも籠りて見ぬぐらば、猶奇所を尋ね得べく、残り多かりしかど、いまだ仙骨を得ず、むなしく帰りぬ。

당시 키리시마산(霧島山)에 한 명의 선인(仙人)이 있었다. 그 이름을 운거관장(雲居官蔵(うんこかんぞう))이라고 한다. 원래는 무사로서 히라세 진베에(平瀬甚兵衛)라고 하는데, 조금 불만스러운 일이 있어서, 관록(官禄)을 버리고, 세상을 등진 채, 이 산 구석에 숨어서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 그 후 수 십 년이 지나, 키리시마산에 살고 있다는 것이 친척에게도 알려져, 조카인 도쿠노 부사에몬(得能武左衛門)이라는 사람이 키리시마산까지 먼 길을 찾아 들어와, 며칠을 물어 다녀서, 겨우겨우 만났다. 그 형체로 말 할 것 같으면, 나뭇잎 옷을 걸치고, 머리카락과 수염은 절로 무성하게 자라, 사람처럼 보이지를 않았다. 그런데 부사에몬도 단단히 마음을 먹고 찾아온 바인지라, 말을 걸며 가까이 다가가, 지금이라도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 사람들과 교제도 있었으면 하고 이치를 따져 말하여도, 조금도 받아들이는 기색 없이, “일찍이 세상을 등지고 나서 여러 해가 지났다. 근년에는 선술도 점점 성숙해져, 성명도 운거관장이라고 고쳤다. 조금이라도 세상 사람과 만나는 일은 우리 도()에 방해가 된다. 더욱이 다시 세상에 나가는 일은 마음이 끌리지도 않는다. 차후에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찾아오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고 하고는 재빨리 사라졌다. 부사에몬도 하릴없이 헤어져 돌아갔다. 그 후는 산속 깊이 살면서, 얼핏 사람을 만나는 것도 싫어한다. 게다가 말을 주고받는 일은 더욱이 없다. 산에 들어간 후로, 지금까지 이미 백 몇 십 년 이상 되었다. 그런데도 걸음걸이가 튼튼하여, 늙었는지, 젊었는지도 알 수 없다. 그의 주변 사람들이 모두 (그를) 선인이라고 존경하며,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는 (飛行自在) 등 그 외 각종 기묘함이 많다고 하지만, 그 일은 알지 못한다. 참으로 키리시마산은 천하의 명산이어서, 높기로는 구름 위로 솟아있고, 기슭의 둘레는 삼십육 리, 산속에는 약초, 기옥(奇玉)이 많고, 커다란 못이 수 십, 또 불타는 계곡[1]이 있다. 선술을 수련하는 땅으로 이보다 나은 곳이 있을 리 없는 것이다. 나도 이 산속에 삼 일을 있었는데, 백분의 일도 다 보지 못하였다. 한달씩이나 칩거하며 둘러본다면, 또한 명소(奇所)를 찾아낼 법한데, 안타까움이 많지만, 아직 선골(仙骨)을 얻지못한 채, 하릴없이 돌아갔다.

又、肥後国()王麻()(ごおり)の人吉の城下より十里ばかり奥に、たら木という所あり。此所に吉村専兵衛という百姓あり。年六十斗りの時、家業不如意にて、世の中うとましく、ふと仙術に志して、此たら木の山奥に入れり。城下だに深山のおくにて、他所より見れば仙境のごとき地なるに、又それより十里もおく、誠に人倫も稀なる地なるを、猶避逃れて深山に入れり。飲食は木の実などを食せし。只寒気には堪がたかりしにや、冬に至れば里に出でて綿入を壱つずつもらえり。春に成り暖気を得れば、脱捨て裸に成り、一年に一度ずつ衣類の為に里に出でしが、近き頃に至りては仙術も追々に成就せしにや、衣類も無くて住みけり。山に入りて後、予が球に遊びし年まで、凡そ四十年余といえり。是も近来は不思議の仙術多く、殊に百歳に余れる、行歩建(ぎょうぶすこや)かにて飛がごとし。

, 히고(肥後)국 쿠마(球王麻)[2] 고을의 히토요시(人吉)의 성 안에 십 리 정도 구석에, 타라키(たら)라는 곳이 있다. 이 곳에 요시무라 센베에(吉村専兵衛)라는 농부가 있다. 나이 육십 즈음 되어, 가업이 여의치 못해, 세상을 싫어하여, 문득 선술에 뜻을 두어, 이 타라키의 산 구석에 들어갔다. 성 아래마저도 심산의 구석에 있어, 다른 곳에서 보니 선경 같은 땅인데, 또 그곳에서 십 리나 두고는, 참으로 인륜(인적)도 드문 땅인 것을, 또다시 피해 도망가서 심산에 들어갔다. 음식은 나무열매 따위를 먹는다. 다만 찬 기운에는 버티기 어려우니, 겨울에이르면 마을로 나와서 솜누비()를 하나씩 받는다. 봄이 되어 온기를 얻으면, (옷을)벗어 던져 벌거숭이가 되고, 일년에 한 번씩 의류 때문에 마을로 나오는데, 근년에 이르러서는 선술도 점점 성숙해지니, 의류도 없이 사는 것이다. 산에 들어간 후, 내가 쿠마에 놀러 간 해까지, 대략 사십 년이 넘었다고 한다. 이것도 근래는 불가사의한 선술이 많고, 특히 백세 남짓의, 걸음거리가 튼튼하여 나는 듯 하다.

九州に此二仙人有り。中国辺にてはたえて無き事也。京都白川の山中には、白幽先生()ありしが、今は若州の山中に移れりという。仙術の事もろこしのみに限らず、き天下には種種の異人も多かりき。

큐슈에 이 두 선인이 있다. 츄고쿠 주변에서는 결코 없는 일이다. 교토 시로카와(白川)의 산중에는, 백유(白幽)선생(1)이 있는데, 지금은 와카사(若狭, 지금의 福井현 서부. 원문에는 若州)의 산중으로 옮겨갔다고 한다. 선술이란 것은 중국에만 한정되지 않고, 넓은 천하에는 종종 이인도 많은 것이다.[3]

() 正保三年(一六四六)生。石川丈山の弟子石川克之の弟。書家でもある。この時はすでに
(1) 쇼호 3 (1646) . 이시카와 죠잔의 제자, 이시카와 카츠유키의 동생. 서예가이기도 하다. 이 당시에는 이미 사망하였다.



[1] 온천 지형이나 화산 활동에 대한 타치바나 난케이의 언급은 나중에 등장합니다.

[2] 마(麻)에 구슬 옥 변을 붙인 글자인데, 王+麻 이렇게 붙이는 수 밖에 없는 것 같군요. 마치 근세기에 동아시아에서 유럽 국호를 발음만 따온 것이라고 표기하기 위해 영길리(英吉利)를 暎咭唎 등으로 표기하던 것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다만 일본에서 표기하는 지명에서는 구슬 옥자를 즐겨쓰는 것 같네요. 유구(琉球)라던가 말이죠.

타치바나 난케이가 이곳 "쿠마" 혹은 "쿠마고오리(쿠마 고을)"에서 견문한 것은 전에 이미 다루었습니다. 츠치노코의 고향이었죠. 현재의 지명인 쿠마모토(熊本)를 에도시대에는 쿠마, 혹은 쿠마 고오리 따위로 부르면서 표기도 다양했던 것 같습니다.

[3]이전의 포스팅에서는 타치바나 난케이의 글에서 민족주의적 성향을 읽어낼 수 있다고 이야기한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 (9. 냉난옥의 내용을 10. 진태고에서 한 번 이렇게 언급했었고, 이 둘을 23. 대모갑에서 다시 한데 묶어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막부 말기의 일본에서 수입 대모갑을 국산화하려던 시도에서 한 번 더 이야기했고요.)

지금까지의 포스팅들은 모두 물질/상품을 주제로 하는 글들이라서 더 이렇게 읽힐 여지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글에서도 역시 타치바나 난케이는 "선술이란 것은 중국에만 한정되지 않고, 넓은 천하에는 종종 이인도 많은 것이다."이라고 말함으로써 확실히 탈중화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다만 "넓은 천하(き天下)"의 범위가 어디까지 포함되는지는 궁금하네요.

또 비슷한 테마로 묵자면, 26. 수명에서도 무병장수할 수 있는 비결에 대한 타치바나 난케이의 관심을 엿볼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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