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막부 말기의 일본에서 수입 대모갑(玳瑁甲)을 국산화하려던 시도 橘南谿의 서유기(西遊記)

이전에 23. 바다거북 포스팅에서 "일본의 전국 방방곡곡에서 나는 국산품으로 중국의 수입품을 대체하려는 경제 민족주의 의식"이라는 말로 맺은 적이 있습니다.

玳瑁南方蛮夷海中じて、(こう)阿蘭陀人持渡り、婦人り、こうがいとなして、高値(こうじき)なる事金玉れり。日本にも此玳瑁あり。肥前島原領海中其外薩州南海大隅垂水(たるみ)海中にもあり。(わず)かに(わたり)壱尺にしてそれよりなるものなし。其甲甚りがたし。只手箱などのりにゆ。


바다거북(대모, 玳瑁)남쪽 만이() 바다 속에서 나는데, 등껍질을 네덜란드인이 갖고 건너와, 부인의 머리 장식, 비녀로 만드는데, 값이 금이나 보다 더하다. 일본에도 대모가 있다. 히젠(肥前) 시마바라 령(領) 바다 , 사츠마의 남쪽 바다, 오오스미(大隅) 타루미(垂水) 바다 속에도 이것이 있다. 거북은 너비가 겨우 1 남짓으로, 그보다 것은 없다고로 등껍질도 매우 얇아서 빗으로 만들기는 어렵다. 그저 작은 상자 따위의 장식에 쓰인다.


바로 이 금이나 옥 보다도 값나간다는 대모갑을 뭔가 국내에서 찾을 수 있는 재료로 대체한다는 이야기였는데요. 

여기서 더 이어나갈 만한 흥미로운 이야기거리를 찾아서 포스팅해보고자 합니다.


때는 바야흐로 1877년, (마침내?!) 쇄국의 빗장을 거둔 메이지 일본에 파견된 영국 외교관 Ernest Satow는 임진왜란 때 포로로 잡혀온 조선인들의 후손이 살고 있다는 나에시로가와 마을을 찾습니다. 네, 76. 고려의 자손들이 살고 있는 그 마을이 맞습니다!

거의 100년 전(1783)에 이곳을 방문한 타치바나 난케이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 마을의 도자기 산업단지 가마들을 구경하면서 안내인의 설명을 듣습니다. 이후에 그는 이 방문기를 일본 아시아 협회(Asiatic Society of Japan)에서 발표하게 되는데, 그가 남긴 기록 중에서 제 관심을 끄는 부분은 이거죠. 

Until fourteen years ago a ware called betsukafu (pr. Pekko) yaki was made at this village, the colours of which were intended to imitate tortoise shell. It was a commonware, and used to be exported to Nagasaki in large quantities.(Satow, 200)

"14년 전까지만 해도 벳코-야키라고 하는 도자기가 이 마을에서 만들어졌었다. 그 색깔이 거북이 등껍질을 흉내내도록 만들어졌다. 이는 흔한 도자기로, 나가사키에 대량수출되곤 하였다." (200쪽)


마치 공업용 플라스틱으로 차를 만들듯이... 아니,이렇게 말하면 너무 하이테크 신소재 공학 같나요?^^ 그렇다면 명품 가죽가방을 모방한 짝퉁 가방을 비닐로 만들듯이, 짝퉁의 역사는 이토록 유구한 것입니다ㅏㅏㅏㅏ.

(Satow의 글이 실려있는 Transactions of the Asiatic Society of Japan, Vol. VI는 여기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벳코-야키(거북이등껍질구이) 이야기는 200 페이지 맨 밑, 문단 마지막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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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Barde 2016/01/19 01:59 # 답글

    '공학자를 찍어내는' 조선의 공돌이 수출의 역사는 유구하네요. 이것만 연구해도 논문이 몇 편은 나올 것 같습니다.
  • 남중생 2016/01/20 00:10 #

    이 경우에는 납치지만 말이죠... ㅠㅜ 확실히 재미있는 사료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짝퉁 거북이등껍질 이야기는 아주 단편적인 일부를 제가 소개한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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