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10. 제갈공명의 진태고 (나가사키) 橘南谿의 서유기(西遊記)

"기다려. 당황하지마라. 이것은 공명의 진태고다."



一〇 孔明の陣太鼓 (長崎)

10. 공명의 진태고 (나가사키)

 

唐土、当代になりて清朝と国号をあらため、世々賢明の帝王出で給いて、年々月々に四海太平の化をたのしめるに付きて、これまで埋もれ居たりし種々の奇書、珍器出ずるに。其中に、諸葛孔明、南蛮の孟獲を征伐の時、かの地にて用いられし陣太鼓八つの内、なかば既に官府に集まりぬ。猶のこれるを、天下に(みことのり)をくだしあまねくさぐり求め給いしかど、いずれの所にかくれたるやしれざりしかば、委敷図写して、日本の地長崎までも尋来たりしに、其頃全盛の唐通事職()河間(かわま)氏の家に、年頃久しく炭取(すみとり)となし用い居たり。かかる珍器とはしらずして台所の用につかい居たりしが、此図を見るに付けてつくづくとおもえば、我家の炭取こそよく似たりとて、洗い清めてくわしく見るに、胴の裏に篆書の銘有り。皮は唐金の如き金を薄く打延ばして張りたり。獣皮は用いず。是は南蛮温湿の地ゆえに獣皮は用いがたきゆえにやという。其外胴の模様一々清朝よりたずね来たりし図に寸分も違わざりければ、大いに驚き、はからずも希代の名器を得たりと珍重ただならず。此事唐人に聞えければ、早速彼方へいい送り、価は何程にても望み次代に出だすべく、且又朝廷へ申おくりつれば、のぞみの品は何にてもわきまうべければ、此太鼓所望したき由、唐人よりしきりに乞求めしかども、河間(かわま)大いに秘蔵して、此太鼓(わが)手に有る事天より我にあたえ給いしなり。むなしく清朝へかえさんは我のみならず日本の恥辱なりと、千万金をもかえり見ず、強く申切りてさし置ぬ。


중국은, 요즘 들어 청나라(清朝)라고 국호를 고치고, 대대로 현명한 제왕이 납시어, 매년 매월 사해(四海)가 태평함을 즐기게 되니, 지금까지 묻혀있던 각종 기이한 책(奇書), 진기한 물건(珍器)이 나오게 되었다. 그 중에, 제갈공명이 남만(南蛮)의 맹획(孟獲)을 정벌할 때 그 땅에서 썼던 진태고(陣太鼓) 여덟 개 중, 태반이 이미 (청나라의) 관청(官府)에 모인 것이었다. 나머지를, 천하에 조서를 내려 샅샅이 찾았지만, 어느 곳에 숨겨져 있는지 알지 못하니, 상세히 그림을 베껴서, 일본 땅 나가사키까지도 찾아왔는데, 그 무렵 전성기의 당통사(唐通事職)(1) 카와마(河間) 씨의 집에, 여러 해 동안 오래도록 숯 그릇으로 쓰이고 있었다. 이러한 진기(珍器)라는 것은 알지 못한 채 부엌 용으로 쓰고 있었는데, 이 그림을 보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 집 숯 그릇과 쏙 닮은 지라, 깨끗이 씻고 자세히 보건대, 몸통 안에 전서(篆書)로된 명문()이 있었다. 가죽(皮, 북의 두드리는 부분)은 당금(唐金)[1]같은 금속을 얇게 펴서 늘렸다. 짐승 가죽은 쓰지 않았다. 이것은 남만이 온습한 땅인 까닭에 짐승가죽은 쓰기 어려운 까닭이라고 한다. 그 외에 몸통의 모양 하나하나도 청나라에서 건너온 그림과 한치도 틀리지 않으니, 크게 놀라, 의도치 않게 희대의 명기(名器)를 얻었다며 소중히 여기기 그지없었다. 이 일이 중국인 귀에 들어가니, 조속히 카와마 씨에게 말을 전하기를, 값은 얼마든지 원하는 대로 내겠다 하고, 또한 (중국) 조정에 말씀을 올리면, 원하는 물건이라면 뭐든지 바꿔와서 값을 치룰 수 있다고 하는데, 이 태고를 간직하고 싶은 연유로, 중국인 쪽에서 끝까지 갈구하더라도, 카와마는 대단히 몰래 숨겨놓고, “이 태고가 내 손 안에 있는 것은 하늘이 내게 준 것이다. 허망하게 청나라에 돌려주는 것은 나만이 아니라 일본의 치욕이다라고, 천만금을 뒤돌아보지도 않은 채, 강하게 잘라 말하고 무시했다.

其後、河間氏幾程もなく身上不如意に成りしかば、此太鼓を質物となして、銀子三拾貫目を借り得、又年久しく過ぎぬ。其後河間氏もいよいよおとろえて、此太鼓は久敷長崎の質屋(しちや)にありしが、先年東より下向し給いし御人、大金を出だして此太鼓を質屋よりうき出だし、東都に携え帰りて、今にては御秘蔵となれりと、長崎の人おしみ語れり。誠にめずらしき事なり。河間氏、利に迷わざりしによって、かくのごとき珍宝も長く日本の物とは成れり。

그 후카와마 씨는 얼마 안 되어, 신상이 여의치 않게 되니, 이 태고를 전당포에 맡기고, 은자(銀子)30()을 빌려서, 또 여러 해를 지냈다. 그 후 카와마 씨도 점점 가난해져, 이 태고는 오래도록 나가사키의 전당포에 있었지만, 전년에 동쪽(에도)에서 내려오신 분께서, 큰 돈을 내고 이 태고를 전당포에서 받아내어, 에도(東都)에 가지고 돌아가서, 지금으로써는 몰래 숨겨져있다고, 나가사키 사람들은 안타깝게 이야기한다. 참으로 드문 일이다. 카와마 씨가, 이익에 망설이지 않음으로써, 이처럼 진귀한 보물도 오래도록 일본의 것이 되었다.


()長崎に居住した幕府の中国語の通訳係

(1) 나가사키에 거주하는 막부의 중국어 통역관


[1] 청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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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포스팅, 9. 냉난옥  중에서 특히, 

"長崎の山より、近き頃蠟石を出だす。新渡の唐蠟石よりは潤沢ありて上品なり。しかれども、出ずる事少なくして、世間の用には足りがたし。"

"나가사키의 산에서근년에 납석이 난다외국에서 수입하는 당납석(唐蠟石)보다 윤택한 상등품이다그렇지만산출량이 적어서세간의 쓰임에는 부족하다."

부분과 평행선을 달리는 내용입니다.
일본을 통일된 국가로 의식하면서 중국의 수입품과 일본의 국산품의 대비가 보이고, 천하의 진품을 일본(나가사키나 에도라는 지역과 상관없이)에서 소장하는 것에 큰 가치를 두는 등, "경제 민족주의" 의식의 발현이 보이는 내용들입니다.

서유기 중에서도 특히 나가사키를 배경으로 한 글에서 이런 주제가 많이 읽힙니다. 아무래도 쇄국시대 일본의 유일한 무역항이자 중국 상인들의 거주지가 있던 탓이 아닐까 싶습니다.

앞으로 연재할 일련의 글들도 나가사키가 배경인 것이 많습니다. "나가사키 시리-즈"라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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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동기에 글자가 새겨져있으면 더 비쌀까? 포스팅에서 연결합니다. 밑줄 그은 부분들을 읽어보시면 연결고리가 보이실 겁니다.

ㅇ제갈공명이라는 과거 인물(소유주)에 대한 언급 

ㅇ명문의 내용에 대한 무관심

ㅇ물건 자체의 역사성 보다 소유욕(desirability of owning them)에 의해 결정되는 물건의 가치

네, 서유기는 18세기 후반 일본의 사건을 기록한 글임에도 불구하고, 클루나스(Craig Clunas)에 따르면 위와 같은 고동(古銅) 소비는 15~17세기 중국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편 18세기 중국이라면 금문을 판독하고, 유물로 역사를 밝혀내는 고증학적 소비를 보인다고 하는군요.


16세기 명나라의 (일본 수입품을 향한) "탈역사적 소비심리"에 대한 클루나스의 주장은 여기를 참조.

탈역사적 소비심리 - Craig Clunas의 Superfluous Things (2017.06.25)


조선 후기의 (일본 수입품을 향한) 탈역사적 소비심리에 대해서는 여기를 참조.

임진왜란 전후로, 일본도가 여전히 사랑받았던 이유 (2018.06.03)


또, 블로그 이웃 적륜 님께서는 "조선의 니우암스테르담" 시리즈에서

19세기의 부산 - 조선의 니우암스테르담??

조선의 니우암스테르담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만 - 완결 

19세기 초 김해, 부산 지역에서 이와 유사한 "탈역사적 소비심리"가 보인다고 하셨습니다.



***이 공명의 진태고라는 물건은 제가 여태껏 (이 포스팅을 올린 뒤로도) '그런 물건이 있었나보다~'하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훨씬 구체적이고 많은 이야기거리가 있는 물건이었습니다. 앞으로 여기에 관련된 포스팅들을 이어나갈 생각입니다. 이번엔 "청동북 시리-즈"입니다. (2017.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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