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9. 냉난옥 (오오이타) 橘南谿의 서유기(西遊記)

 

九 冷暖玉(大分)

9. 냉난옥 (오오이타)

 

もろしこ玄宗皇帝の御時、日本より黒白自然の碁石を献ず。其石冬は暖かにして夏はひややかなり。故に冷暖玉といいう。日本に手談池という有り、其池中に集真島有り、其島上に凝霞台有り、此台辺皆此冷暖玉なり。帝も希代の珍宝なりとて甚だ是を愛し給うと云う。此事、八紘訳史()など、其外唐土(もろこし)の書籍に多く見えたり。

중국 현종 황제 때, 일본에서 흑백 색을 띤 자연의 바둑돌을 헌상했다. 그돌은 겨울에는 따뜻해지고 여름에는 시원해졌다.고로 냉난옥(冷暖玉)이라고 불렀다. 일본에 수담지(手談池)라는 곳이 있는데, 그 못 한가운데에 집진도()라는 섬이있고, 그 섬 위에 응하대(凝霞台)라는 곳이 있는데, 이 대()주변은 전부 이 냉난옥이다. 황제도 희대의 진보(珍宝)라고 해서 이것을 몹시 좋아했다고 한다. 이 일은, 팔굉역사(八紘)(1) 따위나, 그외 중국의 서적에 많이 보인다.

予が九州に遊びし時、豊後に其所有りと聞きて、すなわち行きて見る。佐賀の関より東南の方に入る。木こりの山路いと荒れて、行先おぼつかなきに、藤、山吹ちり残りて、いと深く霞こめたり。妻木こる山がつに道をたずねて、日影もはや午に過ぐる頃、山を皆のぼりつくして、はじめて朗かなる所に出でたり。遙かにむこうの山の麓に藍をとけるがごとくいと清らかに青み渡りたるは入海なり。海に添うて漁村あり。磯なれし小松の間に漁夫の住家軒を並べたり。行かう人は豆のごとく、つなげる舟は木葉に似たり。しばらくこれに対すれば、げに画中に心地して、又人間の世界にあらず。それより山を下れば、黒の浜、白の浜という所あり。山二つ三つを隔てたり。白きは雪のごとく、黒きは漆のごとく、海辺皆かくのごとくにして色異なるをまじえず。海底までもかくのごとくにて、白の浜は潮までも白きように見え、黒の浜は又黒みわたれり。掘りうがちても砂土なし。其きよらかなる事たとえんものなし。唐土の書籍に手談池といえるは此入海をいうなるべし。集真島といえるは出崎の山をいうなるにや。凝霞台は出崎の山の絶頂に、肥後候より異国賊船の遠見に置かれたる番所あり。渺漫たる大海に突出でて、高く聳えたる山のいただきに築き立ちたるは、誠に凝霞台ともいいつべし。やや久敷見めぐりて、黒白の石をひろいつつふくろに入れて携え帰りしかど、百千里の長途なれば荷重きに僕つかれて少しずつすつるに、京に帰り着く頃はようように十斗りぞ残れり。

내가 큐슈에 놀러 갔을 때, 봉고(豊後)에 그곳(응하대)이 있다고 듣고, 곧장 가 보았다. 사가(佐賀)의 고개에서 동남쪽으로들어갔다. 나무꾼의 산길은 험해, 행선이 불안한데, 등나무(), 황매화(山吹) 꽃이 아직 지지 않았고, 한결 깊숙이 안개가자욱했다. 아내가 나무하는 산사람에게 길을 물어, 햇볕이 어느새 정오를 지났을 즈음, 산을 모두 다 올라서, 처음으로 탁트인 곳이 나왔다. 아득한 건너편 산 밑에 쪽빛을 풀어낸 듯이 한결 깨끗하고 파랗게 번지는 것은 내해(內海)였다. 바다 곁에 어촌이 있었다. 물가가 있고 작은 소나무들 사이로 어부의 거처를 늘어놓았다. 지나가는 사람은 콩 같고, 매어놓은 배는나뭇잎을 닮았다. 잠시 이런 풍경을 마주하니, 실로 그림 속에 들어온 기분이지, 인간 세계가 아니었다. 거기에서 산을 내려가니, 검은 바닷가, 흰 바닷가라는 곳이 있다. 산 두 세 개를 사이에 두고 있다. 흰 것은 눈 같고, 검은 것은 옻 같은데, 해변이 모두 이처럼 되어있어 다른 색이 섞이지않는다. 바다 바닥까지도 이와 같아서, 흰 바닷가는 바닷물까지도 흰 것처럼보이고, 검은 바닷가는 또 검어 보인다. 구멍을 파도 모래가 없다. 그 깨끗하기가 비할 데 없다. 중국의 서적에 수담지라고불리는 것은 이 내해를 말하는 것이다. 집진도라고 불리는 곳은 데사키(出崎)의 산을 말하는 것이다. 응하대는 데사키의 산정상에, 히고(肥後)의 영주()가 이국의 해적선을 감시하려고 설치한 초소가있다. 끝없이 넓은 대해로 튀어나와있는, 높이 솟은 산꼭대기에쌓아 올린 것은, 정말 응하대라고 부를 만 하다. 찬찬히 오래도록 둘러보고서, 흑백의 돌을 주워 주머니에 넣어서 챙겨갔지만, 백천리의 긴 여정 동안 무거운 짐에 지친 하인이 조금씩 버려서 교토에 돌아왔을 때는 겨우 열 개쯤남아있었다.

国々に皆名高き奇石、名玉も多し。紀州那智の浜に数里が間黒白自然の碁石有り。一説には、唐帝へ献ぜしは那智の石なりと云う。是亦豊後の産におとらず。

나라마다 모두 이름 높은 기석(奇石)과 명옥(名玉)이 많다. 키슈(紀州) 나치(那智)의 바닷가에 몇 리() 사이에 흑백 색을띠는 자연의 바둑돌이 있다. 일설에는, 당나라 황제에게 헌상한 것은 나치의 돌이라고 한다. 이것 역시 봉고(豊後) ()보다 못하다.

豊後国には其色雪のごとき白砂あり。他国には無き品なり。盆石を好む人は、此白砂を珍重す。盆石の砂には備後に限れりという。

봉고국에는 그 색깔이 눈 같은 흰 모래가 있다. 타국에는 없는 물건이다.분석(盆石)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 흰 모래를 소중히 여긴다. 분석의 모래는 히고(備後) 뿐이라고 말한다.

赤馬関(あかまがせき)(すずり)石は世の人皆知れる所なり。土佐にも此石に似たる有り。其色青きもの上品なり。赤馬よりは細密にして潤沢有り、上品とすべし。然れども密に過ぎて、小硯にはよけれども、大文字などの書用には墨おりがたくして又あしきにや。

아카마가세키(赤馬(あかまがせき))의 벼룻돌은세상 사람 모두 아는 바이다. 토사(土佐)에도 이 돌과 비슷한 것이 있다. 그 색깔이 푸른 것이 상품(上品)이다. 아카마(赤馬)에서는 세밀한 윤택함이 있다.상품(上品)이라 할 만 하다. 그렇지만 (크기가) 너무자잘해서, 작은 벼루에는 좋아도, 큰 문자 따위의 글에 쓰기에는먹을 담기 어려워서 나쁘다.

長崎の山より、近き頃蠟石を出だす。新渡の唐蠟石よりは潤沢ありて上品なり。しかれども、出ずる事少なくして、世間の用には足りがたし。

나가사키의 산에서, 근년에 납석이 난다. 외국에서 수입하는 당납석(唐蠟石)보다 윤택한 상등품이다. 그렇지만, 산출량이적어서, 세간의 쓰임에는 부족하다.

大隅国の石は密なれども甚だ柔かなり。(かの)国石燈籠、或は手水鉢、石碑、仏像等皆此石を用う。いかようの巧なる細工にても施すべし。又よく水気をふくむゆえに苔むして、其うえ数百年の久しきにもたゆべし。彼地にて五百年に近き石塔を見たり。薩摩国、琉球国等、皆石碑には此石を用う。予も彼地にて老母の石塔を造らせ、琉球の毛瑞鸞(もうずいらん)が手跡にて碑面の文字を()り、船につみて京へのぼせたり。三百余里の海上をへて、恙なく京へ着きぬ。老母を葬りし黒谷に建起きぬ。その石やわらかなりといえども、是をうてば(けい)()の音あり。珍石也。

오오스미(大隅) 국의 돌은 자잘하면서도 몹시 부드럽다. 그 나라의 석등롱, 혹은 손 씻는 그릇, 비석, 불상 등은 모두 이 돌을 쓴다. 상당히 정교한 세공으로 다뤄야 한다. 또 물기를 잘 머금는 까닭에 이끼가 끼어도, 그대로 수 백 년의 세월에도 끄떡없다. 그땅에서 오백 년 가까이 된 석탑을 보았다. 사츠마 국, 유구(琉球)국 등지에서는, 모두 비석에 이 돌을 쓴다. 나도 그 땅에서 나이 드신 어머니를 위한 석탑을 짓게 하고, 유구(琉球) 모서란(毛瑞鸞)[1]의 글씨로 비면(碑面)에 문자를 새겨,배에 실어서 교토로 올려 보냈다. 삼백여 리의 바다를 지나, 탈없이 교토에 닿았다. 어머니를 무덤에 모시고 쿠로다니(黒谷) (비석을) 세웠다. 그 돌이 부드럽다고는 해도, 이것을 두드리면 편경(2) 소리가 난다. 진귀한 돌 이다.

摂州のみかげ石は、その石()なりといえども堅き事にいたりては日本第一というべし。故に長崎或は薩州は石密にしてやわらかなり。すべて南国は石皆やわらかにして、いわば下品なり。琉球の石などは殊にやわらかにして用うるにたらずという。

셋츠()의 화강암은그 돌이 거칠다고 해도 단단하기로는 일본 제일이라 말할 만하다고로나가사키 혹은 사츠마는 돌이 자잘하고 부드럽다대개 남쪽 나라는 돌이 모두 부드러워서하등품(下品)이라고 말해진다유구(琉球)의 돌 따위는 특히 부드러워서 쓸 수 없다고 한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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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毛瑞鸞: 16세기 유구(琉球, 오키나와)의 귀족.

당명(唐名, 중국식 이름) 은 毛瑞鸞(もうずいらん、모우즈이란/ 모서란)

야마토나(大和名, 일본식 이름)는 야카사토(山里) 페친(親雲上) 세이보우(盛房).  

유구국의 국가적 차원의 족보라고 할 수 있는 씨집(氏集, うじしゅう, 우지슈우)에는,
1590,十三番,元祖 毛国鼎 中城 按司 護佐丸 盛春,十世渡嘉敷親方盛憲,支流四子毛瑞鸞山里親雲上盛房,,毛氏,山里P親雲上

이라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 元祖 毛国鼎 中城 按司 護佐丸 盛春이라 함은,

"중국식 이름은 모국정(毛国鼎)인, 나카구스쿠(中城, 구스쿠=유구 언어로 성이라는 뜻)의 성주,아지(按司, 유구국 왕족), 고사마루 세이슌(護佐丸 盛春)을 조상(원조)로 두었다는 뜻이다.

모국정은 유구국 5대 성(五大姓) 중 하나인 "모 씨 토미구스쿠(豊見城)"의 시조이다. 5대 성에 모 씨는 둘이기 때문에 모씨 토미구스쿠와 모씨 이케구스쿠(池城)로 구분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안동 김씨와 김해 김씨 같은 것이겠지만 성씨와 지역명의 순서를 거꾸로 쓴다.)

기록의 나머지 부분은 이 고사마루(모국정)로부터 10대손 되는 渡嘉敷 웨카타(親方, 유구국 귀족) 세이켄(盛憲)의 넷째 아들(支流四子), 모서란(毛瑞鸞), 야마사토(山里) 페친(親雲上, 유구국 귀족 작위) 세이보우(盛房)라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그의 아버지 渡嘉敷 웨카타(親方) 세이켄(盛憲)의 기록을 보면,
1522,十三番,元祖国鼎中城按司護佐丸盛春,九世運天親雲上盛憑,支流三子毛思哲渡嘉敷親方盛憲,,毛氏,兼本

로, 시조는 고사마루, 9대 운텐(運天) 페친(親雲上) 성빙(盛憑)의 셋째 아들로, 중국식 이름은 모사철(毛思哲), 일본식 이름은 渡嘉敷 웨카타 세이켄이며, 모 씨 겸본(兼本)가의 시조(系祖)라고 되어있다. 모 씨 겸본가는 우리나라 족보로 따지면 무슨 파로 나뉘는 것과 유사하다.

아버지 모사철의 이름은 사료에서 이따끔 등장하지만, 아들 모서란의 이름은 족보 외의 기록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고로 딱히 글씨로 이름을 날렸는지는 모르겠으나, 맥락상 수백년 뒤의 일본인들도 알아주는 명필이었던 것 같다.


[2] 남방의 부드러운 성질에 대한 언급은,


37. 메가네바시 (나가사키) 中

彼地は柔らかなる石たくさんなるゆえにや。

땅은 부드러운 돌이 많은 까닭(이렇게 다리를 짓는 )이다.


84. 기기 (네덜란드) 中

すべて異国の人をみるに、唐土の人は衣服、言語違いたる(ばか)りにて、只情と其趣は日本に少しも替る事なし。もし此方の衣服を着せ、此方の言葉を習わしめば、此方の国に打交えたりとも分かつべからず。琉球は衣服も日本に似、詞も()く通ずるなり、然れども其性温柔に過ぎて、日本の人には似も寄らず。阿蘭陀は剛強にて少しも温和の風みえず、立まじわれば日本の人は殊にぬるきように見ゆ。其違を案ずれば、土地寒暖の気によりて其生ずるものおのおの差別ありと見えたり。唐土は北極星、地を出ずること三十五六度の国にして日本に同じく四季の気備われば、唐土、日本ともに人物、鳥獣、草木までも皆同じ蒸加減に出来る故に、其気象もわからざるなり。琉球は南方へ寄りたる国にて、雪氷の類もなき国とも云うべし。されば熱気はよく物を柔らかにする理にて、其気象までも(やわ)らか也。紅毛は大いに北へよりたる国故に夏なき国ともいうべし。寒はよく物をかたむる理にて、其気象も強きに過ぎたり。されば東西は数千万里隔てたれども、寒暖の気たがうことなければ、万物大方同じように生じ、南北は四五百里以上より千里も違えば気候大きに異なりて、天地陰陽の蒸かげん格別なるゆえ、万物其様子違いて、人の気象も夫に応じて異なりと見えたり。纔かに一二百里の違ある日本の地の内にても、南国と北国とは草木も格別にて、人の心もやや異なり。なして況んや、世界の広さにて、大いに千万里を隔たるをや。此理を推して見る時は、居ながらにして世界の気象も産物も大抵は知るべし。

대개 이국 사람을 보건데, 중국 사람은 의복, 언어가 다를 뿐으로, 그저 그 정취는 일본과 조금도 바뀌는 일이 없다. 혹시 우리의 의복을 입혀, 우리의 언어를 익히게 하면, 우리 나라로 뒤바꾸더라도 분별하지 못할 것이다. 유구(琉球)는 의복도 일본과 닮았고, 말도 능히 통하는데, 그렇더라도 그 성질은 온유함이 지나쳐, 일본 사람과는 닮지 않았다. 아란타는강인하여 조금도 온화한 풍이 보이지 않아, 함께 서있으면 일본인은 유난히 미적지근해 보인다. 그 경위를 생각하건데, 토지의 춥고 더운 기에 의해서 그 (땅에서) 나는 것이 각각 차별된다고 보인다. 중국은 북극성이 땅으로부터 35, 6 도에 뜨는 나라로 일본과 같이 사계절의 기를 갖추어, 중국, 일본 모두 인물, 금수, 초목까지도 모두 비슷하게 가늠할 수 있는 고로, 그 기상도 알 수 없다. 유구(琉球)는 남방에 치우친 나라로서, 눈과 얼음도 없는 나라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면 열기는 사물을 부드럽게 하는 이치로, 그 기상까지 부드럽게 하는 것이다. 홍모는 크게 북에 치우친 나라인 고로 여름이 없는 나라라고도 할 수 있다. 추위는 잘 사물을 굳히는 이치로, 그 기상도 지나치게 강하다. 그러면 동서는 수 만리 벌어져도, 춥고 더운 기가 어긋나는 일이 없으면, 만물은 대개 비슷하게 자라고, 남북은 사오백 리 이상에서 천리나 떨어지면 기후가 크게 달라서, 천지음양의 가감은 더욱 유별난 까닭으로, 만물의 모습이 달라서, 사람의 기상도 그것에 응해서 다르다고 보였다. 근소하게 일이백 리 차이가 있는 일본 땅 안에서도, 남쪽 지방과 북쪽 지방은 초목도 서로 다르고, 사람의 마음도 조금씩 다르다. 그런데 하물며, 세계가 넓기로, 크게 천만리가 벌어진 것은 말 할 것도 없다. 이 이치를 미루어볼 때, 집 안에서도 세계의 기상이나 산물도 대체로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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肥後国八代に白浜という所有り。皆大石にしてその色雪のごとし。海辺皆此石にて、遠くより望み見れば、布をさらせるがごとし。城下の町々にも皆此石有り。甚だ明徹潤沢にして玉の種類なり。俗に是を肥後瑪瑙という。瑪瑙してすべきものなり

히고(肥後) 국 야츠시로(八代)에 흰 모래밭이라는 곳이 있다. 모두 큰 돌로써 그 색이 눈과 같다. 해변 모두가 이 돌로, 멀리서 바라보면, 천을 볕에 말리는 것 같다. 성 아래 마을 마다 모두 이 돌이 있다. 몹시 명철윤택(明徹潤沢)한 옥의 종류다. 세간()에서는 이것을 히고(肥後) 마노(瑪瑙)라고 한다. 참으로 마노에 닮아서 좋아할만한 것이다.

薩州の島々には水精多し。霧島山の峰にも水精多し。予も是を見る。霊山なるゆえに人皆おそれて取らず。同国大口村には黒水精あり。道路に皆これあり。信州和田(とうげ) 星石 によく似たり。

사츠마의 여러 섬에는 수정(水精)이 많다. 키리시마(霧島) 산의 봉우리에도 수정이 많다. 나도 이것을 보았다. 영산()인 까닭에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해서 가져가지 않는다. 같은 지방 오오구치(大口) 촌에는 흑수정(水精)이 있다. 모든 도로에 이것들이 깔려있다. 신주(信州) 와다(和田) 고개의 성석(星石)과 많이 닮았다.

肥前国大村には青黄赤白黒の五色の海石あり、甚だ美なり。大村領の寺院又は大家などは、其塀皆此五色の壱尺わたりばかりなるを積まじえ、しっくいにてつなぎ、高く築上げて、ねり塀となす。見事なるものにして、世間なり

히젠(肥前) 국 오오무라(大村)에는 청황적백흑(青黄赤白黒)의 오색 바닷돌이 있는데, 매우 아름답다. 오오무라 령()의 사원이나 부잣집 따위에서는, 모두 일척 남짓 정도 되는 이 오색 돌로 담을 쌓아, 회반죽으로 이어붙이고높이 쌓아올려서, 돌담을 만든다. 굉장한 볼거리로, 세간에 드문 일이다.

琉球の属島より(あられ)のごとき細石を出だす。うるおおいなく、只潔白にして奇品なり。備中より出ずる石是に似たり。

류큐에 속한 섬에서 우박 같은 자잘한 돌이 나온다. 축축해지지 않고, 그저 결백(潔白)한 기품(奇品)이다. 히츄(備中)에서 나는 돌도 이것과 닮았다.

其外、但馬国に臼石あり、肥前の佐夜姫の化石等、又世に珍敷ものなり。猶、深山、僻地に種々の奇石、珍玉あらざるもの有るべからず。今只其見る所をしるすのみ。

그외, 단마(但馬) 국에 우스이시(臼石) 있고, 히젠(肥前) 사요히메(佐夜)[3]가 변한 돌 따위도 세상에 진귀한 것이다. 또한, 깊은 산, 벽지에 갖가지 기석(奇石), 진옥(珍玉)이있을 것이다. 지금 그저 그것들을 볼 수 있는 곳을 일러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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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마츠우라 사요히메(松浦佐用姫). 현재의 카라츠唐津 시, 키비키厳木 쵸에 살았다고 하는 호족의 딸. 단순히 사요히메(佐用姫)라고도 불린다.

537년, 신라로 출정을 나가기 위해 이 땅을 방문한 오오토모노 사테히코(大伴狭手彦)와 사요히메는 연인 사이가 되었지만,결국 출정 때문에 헤어지게 되었다. 사요히메는 카가미야마(鏡山) 산의 정상에서 領巾(ひれ)를 흔들면서 배를 배웅했지만, 이별을 참을수 없어서 배를 쫓아 요부코(呼子)까지 가서, 카베시마(加部島)에서 일곱 날 일곱 밤을 울다가 결국 돌이 되어버렸다, 는 전설이 있다. 만요슈(万葉集)에는 이 전설에 얽힌 노래(和歌)가 수록되어있다. (출처: wikipedia)



()地理書。清の陸次雲撰 ()つり下げて、打って音を出す楽器。中国の秦・漢時代には板石を用う

(1) 지리서. 청의 육차운(陸次雲)이 편집했다. (2) 실에 매달아서, 치면 소리가 나는 악기. 중국의 진(),() 시대에는 판석을 썼다.


*혹시라도 유구 왕국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하고 있는 유구왕실보물전에 가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입장료는 무료입니다.



**이 글은, 다른 글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타치바나 난케이의 가족이나, 여행 규모에 대해 알 수 있는 단서를 많이 담고 있습니다. 


"妻木こる山がつに道をたずねて、"

"아내가 나무하는 산사람에게 길을 물어," 

 사실 이 문장의 의미를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전의 글에서는 "아내"에 대한 언급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츠마키(妻木)라는 나무 종류가 있는지도 찾아보고, 혹시 "나무하는 (나무꾼) 아낙네/ 나무꾼의 아내"라는 뜻은 아닐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妻(가), 木こる 山がつに, 道をたずねて、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니까 타치바나 선생님은 부인과 함께 여행을 다녔던거로군요. 

에도 시대의 여성은 여행을 하는데 있어서 남성보다 더 큰 제약을 받았습니다. 홀로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였고, 일본 내의 불교 성지(코야산 등지의) 순례를 하고 싶다면 그런 성지순례 단체여행을 주최하는 단체에 가입해야 비로소 가능했죠. 그나마 타치바나 부인 처럼 남편이 있고, 또 그 남편과 함께 여행을 하는거라면 관문을 지나갈 때 덜 까다로운 수속을 밟았을거라고 생각됩니다.

다만 약간의 조사를 해보니, 타치바나 난케이의 태어났을 때 이름은 사실 미야카와 하루아키라(宮川春暉)입니다. 타치바나는 아내의 성을 따른거라는 군요. 미야카와 씨도 250석의 소출을 자랑하는 다이묘였는데 아내의 성을 받아들인걸 보면, 처가가 상당히 영향력있는 집안이었나봅니다. 남계(난케이)는 호라고 합니다.


"やや久敷見めぐりて、黒白の石をひろいつつふくろに入れて携え帰りしかど、百千里の長途なれば荷重きに僕つかれて少しずつすつるに、京に帰り着く頃はようように十斗りぞ残れり。"

"찬찬히 오래도록 둘러보고서흑백의 돌을 주워 주머니에 넣어서 챙겨갔지만백천리의 긴 여정 동안 무거운 짐에 지친 하인이 조금씩 버려서 교토에 돌아왔을 때는 겨우 열 개 쯤 남아있었다."

타치바나 선생님은 상당히 부유한 여행객에 속하는 편입니다. 하인()을 거느릴 수 있었기 때문이죠. 다만 자신과 아내가 여러 명의 하인들이 메는 가마를 타고 다닐 정도로 호화로운 여행은 아니었던것 같습니다. 그저 짐꾼으로 부리는 하인 한 명 정도를 대동했던 것이겠죠.

여성 여행객의 애로라던가, 하인을 대동하는 여행의 규모 따위에 대해서는, "에도의 여행자들"이라는 책을 추천합니다. 당대 여행객들의 목적, 경로, 채비, 비용 등 다양한 측면을 케이스 별로 현실감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予も彼地にて老母の石塔を造らせ、琉球の毛瑞鸞もうずいらんが手跡にて碑面の文字をり、船につみて京へのぼせたり。三百余里の海上をへて、恙なく京へ着きぬ。老母を葬りし黒谷に建起きぬ。"

"나도 그 땅에서 나이 드신 어머니를 위한 석탑을 짓게 하고유구(琉球모서란(毛瑞鸞)의 글씨로 비면(碑面)에 문자를 새겨배에 실어서 교토로 올려 보냈다삼백여 리의 바다를 지나탈없이 교토에 닿았다어머니를 무덤에 모시고 쿠로다니(黒谷) (비석을세웠다. "

타치바나 선생님의 어머니(老母)가 언급됩니다. 노모(老母)는 우리 말과 마찬가지로 일본어에서도 "나이드신 어머니"라는 뜻일 뿐, 돌아가셨다는 의미로는 쓰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타치바나 선생님께서는 서쪽을 유람하는 동안에는 어머니가 살아계신 걸로 알고있어서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를 대비한) 비석을 주문했다가, 교토에 돌아가보니 어머니의 부고 소식을 듣게 된걸까요? 참 애잔한 생각이 드는 구절입니다.

또 글에서 언급된 "쿠로다니"는 아마 교토의 쿠로다니 절을 말하는것 같습니다. 이 절의 본명은 콘카이코우묘우지(金戒光明寺, 금계광명사)지만 지역주민들에게는 친근하게 "쿠로다니 상"이라고 불린다고 하네요. 헤이안 신궁 근처에 있는 이 절은 1000년 가까이 되었고 절 안의 묘역에는 다양한 유명인사들의 무덤이 모셔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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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면서 표기도 다양했던 것 같습니다. [3]이전의 포스팅에서는 타치바나 난케이의 글에서 민족주의적 성향을 읽어낼 수 있다고 이야기한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 (9. 냉난옥의 내용을 10. 진태고에서 한 번 이렇게 언급했었고, 이 둘을 23. 대모갑에서 다시 한데 묶어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막부 말기의 일본에서 수입 대모갑을 ... more

  • 남중생 : 37. 메가네바시 (나가사키) 2017-07-23 05:40:15 #

    ... 승도회(唐土名勝図会) 중, 건륭제의 코끼리들을 목욕시키는 장면.세상(洗象)에 이런 일이...(우측 하단에 아치형 다리가 보임.) 9. 냉난옥 (오오이타) 中大隅国の石は密なれども甚だ柔かなり。彼(かの)国石燈籠、或は手水鉢、石碑、仏像等皆此石を用う。いかようの巧なる細工にても施すべし。又 ... more

  • 남중생 : 타치바나 난케이는 왜 박쥐를 몰라야만 했을까? 2018-04-13 19:55:39 #

    ... 난케이의 글에 "(경제) 민족주의"라고 파악할 만한 "신토불이" 혹은 "남의 것도 내 것으로" 정신이 엿보인다고 말한 적 있습니다. 9. 냉난옥 中나가사키의 산에서, 근년에 납석이 난다. 외국에서 수입하는 당납석(唐蠟石)보다 윤택한 상등품이다. 그렇 ... more

  • 남중생 : (느릿느릿 53) 유구의 조선어 통역관 2018-08-10 18:23:39 #

    ... 귀족계급을 일컫는 호칭인데, 치쿠둔페친은 하급 귀족으로서 영지가 따로 없었고, 왕부(조정) 관료로 발탁되는 경우는 과거시험에 합격했을 경우 뿐이었다군요. (서유기의 냉난옥 포스팅 주석 참조.) 아니, 그런데 사쿠모토 씨는 어떻게 조선말을 할 줄 알았던거야?!의외의 의외지만, 1800년대까지도 오키나와 본섬(유구 왕국)에는 조선어 ... more

  • 남중생 : 54. 웅담 2018-10-25 01:07:30 #

    ... 북쪽에서 온 비단옷매와 해달, 그리고 건너온 사람들(渡黨) [3] 타치바나 난케이의 열-체질 이론. "찬 바람은 돌과 사람 그리고 곰을 강하게 만든다." 9. 냉난옥 中 고로, 나가사키 혹은 사츠마는 돌이 자잘하고 부드럽다. 대개 남쪽 지방은 돌이 모두 부드러워서, 하등품(下品)이라고 말해진다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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