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5. 비파의 달인 (카고시마) 橘南谿의 서유기(西遊記)


五 琵琶の妙手 (鹿児島)

5. 비파의 묘수 (카고시마)

 

都の琵琶は、只平家物語をうたうに、其声の調子を引出だすために琵琶を用ゆ。又雅楽の琵琶は、太鼓にるいして、畢竟は拍子のみなり。律は糸の事なれば有りうちともいうべし。只此二種あれども、もて遊ぶ人稀にして、感ずる人も又稀なり。俗間には絶えてなし。九州には琵琶法師というもの夥敷有りて、琵琶弾じ、路頭に立ちて米をもらう。其うた、其律、かまびすしくして聞くに堪えず。又、琵琶は地神経(ちじんぎょう)をひく。三味線法師などの賤しき者によわいすべきものにあらずなど、おこがましくいいののしりて、竃祓(かまどばらえ)するも有り。薩摩、大隅二国もっとも

교토의 비파는, 그저 헤이케모노가타리(平家物語)를 노래하는데, (노래)소리의 가락(調子)을 뽑아내기 위해서 비파를 쓴다. 또 아악()의 비파는, 태고(太鼓)와 유사하여, 결국은 박자 뿐이다. 선율()은 실()을 말하는 것이니 흔하다고 할 만하다. 그저 이 두 가지가 있지만, (비파를) 다루는 사람이 드물어서, 감상하는 사람 또한 드물다. 세간에는 (그 맥이) 끊어지지않았다. 큐슈에는 비와호우시(琵琶法師)[1] 라는 자가 많이 있어서, 비파를 켜며, 길가(路頭)에 서서 쌀을 받는다. 그 노래, 그 선율이, 떠들썩해서차마 들을 수가 없다. , 비파는 치진쿄우(地神)[2] 을 켠다. 샤미센호우시(三味線法師) 따위의 천한 자에 뒤질 만한 것이 아니라는 둥, 건방지게 지껄여대며, 조왕굿(竃祓)[3] 을 하기도 한다. 사츠마, 오오스미, 두 지역에 가장 많다.


[1]  법사(法師)는 연주자라는 뜻으로 쓰인다. 본래 불교 승려가 악기를 연주하면서 포교활동을 한 데에서 유래한다.

[2]  비파로 연주하는 곡의 일종
[3]  카마도바라에, 부엌 신을 모시는 행사

されども此二州なるは他国とは大いに異なり。其形も平家琵琶などよりはちいさく、(ばち)黄楊木(つげのき)にて作り、甚だ大にして扇をひらけるがごとし。年若き武士皆琵琶をもて遊ぶ。彼二州は名だたる勇猛の風あるに、裾高くかかげ、長き刀を十文字に横たえたる荒おのこの、夜な夜な琵琶ひきあるく其風情おもいやるべし。其調正しく其うた雅にして、他の国の琵琶とは似もよらず。殊に大隅国には池田甚兵衛(いけだじんべえ)という人有りて、当時第一の名人なるよし。夜ふけ月清きに、独琵琶を弾ずれば、浦千鳥集まり来たる事常のことなりと聞くにぞ、其人ゆかしくて彼地に尋ねいたり見るに、始羅(しら)(ごおり)(いさご)清き浦にほとりして、(がや)軒端(のきば)物さびしく住なせり。かくといい入るれば、とく迎え入れて相見る。其人むそじにあまりて温潤の質也。打つけに琵琶のぞみたれば、遠くたずね来たりしにかんぜしにや、又好める道ゆえにや、いなめる色もなく、木の下という名器を取出だして、ひとつふたつ弾ぜり。其たえなる事はさらにもいわず。誠にいにしえ但馬守(たじまのかみ)など((平経生))堪能(かんのう)の名を得て水神も感ぜしなどいうを、今の京都の琵琶に思いくらべてはいぶかしく疑しかりけるが、今日此国の琵琶を聞きて、はじめて水神の感ぜしも(ことわり)なりと覚え、年ごろのうたがいは皆はれにき。京都のむかしの声は皆此あたりに伝わり残りて、今にてはかえって京都はむかしの声たえたりとこそしらるれ。又、過ぎし年江州竹生島(ごうしゅうちくぶしま)に詣でし時、経正(つねまさ)((平))(ひき)給いし琵琶の(ばち)なりとて見侍りしが、水牛にて作り、(もと)のかたはくりて、末は三味線の撥のごとく、広さ纔かに弐三寸には過ぎざりし。此国の撥とは天壌の相違なり。竹生島にあるは後世の偽物なるべしやとおもう。予もあまりめずらしさに、撥一つ求得て都のつとに持帰り、人に見すれば、皆目を驚かせり。

그렇지만이 두 주()는 다른 지역과는 크게 다르다. 그 모양도 헤이케 비파 따위보다는 작고발목()[4]은 황양목(黄楊木)으로 만들어, 몹시 큰 것이 부채를 부치는것 같다. 나이 어린 무사는 모두 비파를 가지고 논다. 그두 주()는 이름 높은 용맹의 풍속이 있는데, 옷자락을 높이 휘날리며, 긴 검을 십자로 비껴 찬 거친 사내가, 밤이면 밤마다 돌아다니며 비파를 켜는 그 풍정(風情), 헤아릴 만 하다. 그 가락이 올바르고 그 노래가 우아하여, 다른 지역의 비파와는 전혀 다르다. 특히 오오스미(大隅) 국에는 이케다진베에(池田甚兵衛)라는 사람이 있어, 당대 제일의 명인이라고한다. 밤 깊고 달 밝은데, 홀로 비파를 켜니, 우라치지마(浦千鳥)로 (사람들이) 몰려오는 것이 흔한 일이라고 듣고서야, 그 사람(이케다 진베에)이 궁금해서 그 땅에 찾아가 보니, 시라(始羅) 군의 모래가 깨끗한 나루에 인접해서, 띠풀로 이은 처마 (아래서) 호젓하게 살고 있었다. 이리 말 올리니, 맞아들여 만나 뵈었다. 그 사람은 예순을 넘어서 성격이 온윤했다. 막무가내로 비파(연주)를 청하니, 멀리서찾아온 데에 감동했는지, 또 원체 좋아하는 까닭인지, 거절하는기색도 없이, 키노시타(木の下)라는 명기(名器)를꺼내서, 한 두 곡을 켰다. 그 절묘하기로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참으로 지난 날 타지마노카미(但馬守)[5]따위가 달인(堪能)이라는 이름을 얻어 수신(水神)도 감동하게 한다는 것을, 지금 교토의 비파에 견주어 생각해보건데 수상하다며 의심스러워하지만, 오늘이 지방의 비파를 듣고서, 수신이 느껴도 이치에 맞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으니, 때맞추어 방문하는 것은 모두 잘 된 것이다. 교토의옛 소리는 모두 이 주변에 남아서 전해지고 있고, 지금에는 오히려 교토에서 옛날의 소리가 끊어졌다고알려져 있다. , 지난 해 고우슈(江州) 치쿠부시마(竹生島)에 찾아갔을 때, 츠네마사(経正)[6]가탔던 비파의 발목()이라고모시는 것이, 물소 (뿔)로 만들어, 본래의 모양이 망가져, 결국은 샤미센 발목 같고, 너비는 겨우 두 세 치를 넘지 않았다. 이 지방의 발목()과는 하늘과 땅 차이가 난다. 치쿠부시마에있는 것은 후세에 만든 가짜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너무 드물게 여겨, 발목() 하나를 구해서 교토에 선물로 가지고 돌아가, 사람들에게 보여주니, 보는 사람마다 놀랐다.

[4] 비파 따위의 현악기를 탈 때 쓰는 납작한 도구. 기타의 피크와 비슷하다. 

[5] 타지마(但馬) 지방을 다스리던, 타이라노 츠네마사(平 経正)를 일컫는다.

[6] [5]와 같다.

又、鹿児島にありし時、森本見流なる人の家に招かれ、種々馳走の上、宝生といえる法師をよびて琵琶をひかせり。遠近(おちこち)、五輪、花の香、小町、玉章(たまずさ)似我(じが)墨絵(すみえ)老曾(おいそ)の森、鴦鴛(おし)の夢、などいううた数々ひけり。先ず其うたの名も雅にして、其章もまた(ふる)めかし。其音のひききは、春の鳥の(かすみ)の中に(さえず)るがごとく、谷の清水の岩おにむせぶに似たり。其しらべ高きは冬の嵐の(かれ)残る松に渡るがごとし。京都などにて聞きつる平家琵琶などには似もよらず、彼白楽天(はくらくてん)琵琶行(びわこう)はじめて思い合わせり。又(くずれ)というものあり。是は薩州のむかし、伊東、大友などと、合戦の事を語るにて、其声もはげしっく琵琶の手も繁手なり。はじめのうたとは格別に異なるものなり。もっとも是は新敷聞こゆ。はじめのうた殊にめずらしく覚えて、只京都に此声無き事の口おしければ、予も壱つふたつ習い帰りて京都にも伝えんとおもいしかど、殊にむつかしく、たやすく習い得べくもあらねば、残多かりしをもだしぬ。此夜の雅興すてがたくて、別に琵琶行壱篇を作りて日記にしるせり。又、彼うたの章をも書写して帰りぬ。のぼりて((上代))世の事に心あらん人は、彼琵琶京都にも伝えよかしと思うのみ。

, 카고시마에 있을 때,모리모토 켄류(森本見流)라는 사람의 집에 초대되어, 온갖 대접을 하고는, 生라는 법사를  불러서 비파를 연주하게 했다. 오치코치(遠近)고린(五輪)하나노카()코마치(小町)타마즈사(玉章),지가(似我), 스미에(墨絵),오이소노모리(老曾),오시노유메(鴦鴛)따위로 불리는 노래들을연주했다. 먼저 그노래의 이름도 우아하고, 그 장() 또한 예스럽다. 그 음이 낮기로는, 봄 새가 안개 속에 지저귀는 것과 같고, 골짜기의 맑은 물이 바위틈에울부짖는 것과 닮았다. 그 음률이 높기로는 겨울 바람이 시들지 않는 소나무로 건너가는 것 같다. 교토 따위에서 들은 헤이케 비파(平家琵琶) 따위와는 전혀 다르고, 그 백낙천(白楽天)의 비파행(琵琶行)[7]과 처음으로 견주어볼 수 있다.  또 쿠즈레()라고 하는 것이 있다. 이것은 사츠마의 옛날, 이토(伊東), 오오토모(大友) 따위와, 전투를이야기하는 것으로, 그 목소리도 격하고 비파의 손도 화려하다. 첫노래와는 각별히 다른 것이다. 이것은 매우 새롭게 들린다. 첫노래는 특히 드물게 외워서, 그저 교토에 이 소리가 없는 것이 안타까우니, 나도 한 두 가지 익혀 돌아가교토에도 전하려고 생각했지만, 유난히 어려워서, 손쉽게 익혀낼수도 없으니, 안타까움이 많이 남음을 묵념한다. 이 밤의 아흥(雅興)을 버리기 어려우니, 따로 비파행 한 편을 지어서 일기에 적으리. , 그 노래의 장도 베껴 써서 돌아갈 것이다. 상고 시절의 일에마음이 있는 사람은, 그 비파를 교토에도 전하라고 생각할 뿐이랴.

[7] 당나라 시인 백거이(易, 자: 낙천)의 시, 비파행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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