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의 모자, 그리고 조상님들의 스타킹 사랑? HOTA! HOTA! 스타킹은 HO..

영국 해군 대위, 바실 홀(Basil Hall, 1788 – 1844)은 그 당시 잘 알려지지 않은 조선과 루추(지금의 오키나와)를 탐험하고 돌아오는 길에 세인트 헬레나 섬을 방문했습니다. 1817년, 그곳에서 그를 맞이한 건 한 때 유럽의 황제였지만 지금은 유배지에서 쓸쓸한 말년을 보내고 있던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었죠.
홀은 나폴레옹을 접견하고 루추와 조선이라는 이국의 풍물을 이야기합니다.
예컨대,
"루추 사람들은 전쟁이라는 걸 알지 못할 정도로 평화롭게 삽니다." 라고 하자,
"전쟁을 안 한다고?!"라며 나폴레옹이 발끈하는 식이죠. (ㅋㅋㅋ)

또 조선 이야기를 하면서 여러 스케치를 함께 보여주자, 나폴레옹은 그 그림들 중 하나를 집어들고는 유심히 훑어보며,
"이 노인은 아주 큰 모자를 썼구만, 수염은 참 희고 긴걸, 하! 긴 담뱃대를 손에 들었군, (중략.) 옆에 있는 남자는 글을 쓰고 있고, 모두 아주 잘, 뚜렷하게 그렸어."라고 혼자 중얼거리더니, 조선 사람들이 입는 각종 옷이 어디서 만들어지고 또 그 가격은 어떻게 되는지를 물어봅니다. 
(Voyage to Loo-Choo, and other places in the eastern seas in the year 1816, Interview with Buonaparte, pg. 316-317)
물론 홀 대위가 그런 것까지는 알지 못했지만, 나폴레옹이 조선인의 의복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는건 명백히 보입니다.
(스스로 한 벌 장만하고 싶어할 정도로...)

▲홀 대위의 항해기에 실려있는 그림입니다. 나폴레옹이 혼잣말로 한 묘사와 일치하죠?
나폴레옹이 부러워한 저 흰 수염의 노인은 당시 홀 대위 일행을 조사한 현감 이승렬이라고 합니다.
1811년, 45세의 나이에 장원 급제를 했다니, 홀 대위를 만났을 당시에는 50세였겠군요.(http://people.aks.ac.kr/front/tabCon/exm/exmView.aks?exmId=EXM_MN_6JOc_1811_011744&curSetPos=2&curSPos=0&isEQ=true&kristalSearchArea=B)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폴레옹은 갖고 싶어하던 조선 모자(갓)를 구하지 못했을 겁니다. 1821년에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죠.


한편 나폴레옹의 트레이드 마크라고도 할 수 있는 그의 "모자"는 며칠 전에 한국인이 구입했다는군요.
몇몇 해외 언론들은 South Korean Chicken Mogul Buys Napoleon Hat for his "Spirit."같은 식으로 센세이셔널한 제목을 써서, 나폴레옹의 호크룩스를 모아 강령 의식이라도 하려는 코리언 재벌의 기이한 행각?! 처럼 보이게 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읽히던데...

또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몰고 나가자면,
그럼 조선인들은 홀 대위의 옷에 관심을 가졌는가? 혹시 모자를...? 
하는 호기심이 들기도 합니다.

실제로 홀 대위의 일행이 조선 땅에 상륙하자마자 작은 무리의 사람들이 그들을 구경하러 몰려옵니다.
구경꾼들은 말이 통하지 않는 두 이방인에게 담배를 권한 뒤, 그들이 입고 있는 희한한 옷을 한겹한겹 벗겨서 살펴보는데 (어째 야해지네요...) 호기심 많은 조선인들을 가장 흥분시킨(!) 것은 바로 스타킹이었습니다. 

No part of my dress excited so much interest as the stockings. Holding them up to one another, they shouted, "Hota! Hota!" upon which we took down the word Hota in our vocabularies as the Corean for stockings; but in the next minute we heard the same word applied to several other things, which made us suspect the word meant good, or wonderful. 
(Voyage to Loo-Choo, and other places in the eastern seas in the year 1816, pg. 107)

[번역]
내 옷가지 중에서 스타킹 만큼 그들을 흥분시킨 것은 없었다. (스타킹을) 서로 집어들어 보이면서, "호타! 호타!"라고 외치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 "호타"라는 단어를 스타킹을 뜻하는 조선어로 받아적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단어가 다른 것들에도 적용되는 것을 보고는, "좋은" 또는 "훌륭한"이라는 뜻일 것이라고 추측하게 되었다. 

스타킹을 들고서는 "호타! 호타!" 라고 외쳤다고 하는 군요. 
너무 좋아해서 처음에는 "호타"가 스타킹을 뜻하는 조선말인 줄 알았다고... (조상니뮤, 나니시떼루...)

이 일화, 그리고 "호타!"는 좋다/됴타 보다는 "好타!"일거라는 주장은 한영균 교수님의 논문:
"19세기 서양서 소재 한국어 어휘 자료와 그 특징"에 상세히 나와있습니다. 
http://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3324097

무엇보다 이 논문을 읽다보면,

‘스타킹’에 관심을 보이고 좋아했다는 것도 흥미롭지만, 아주 좋다고 생각하는 것에 사용하는 표현으로 ‘hota’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pg. 286)

안 흥미로워요! 아니 흥미롭지만, 왜 한국어 어휘 얘기를 하다말고 '스타킹'이 흥미로운건뎈ㅋㅋㅋㅋㅋㅋㅋ
'스타킹'은 왜 따옴표가 달린거얔ㅋㅋㅋㅋㅋ 왜때문에...

진정하고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이 사건은 조선 쪽 기록에도 남아있습니다. 
순조실록 19권 (순조 16년/1816년, 7월 19일) 기사를 보면,
"이재홍이 충청도 마량진 갈곶 밑에 이양선 두 척이 표류해 온 일을 보고하다라는 제목으로,

의복은 상의는 흰 삼승포[三升布]로 만들었거나 흑전(黑氈)으로 만들었고 오른쪽 옷섶에 단추를 달았으며, 하의는 흰 삼승포를 많이 입었는데 행전(行纏) 모양과 같이 몹시 좁게 지어서 다리가 겨우 들어갈 정도였습니다. 버선은 흰 삼승포로 둘러 쌌고, 신은 검은 가죽으로 만들었는데 모양이 발막신[發莫]과 같고 끈을 달았습니다.

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흰색 스타킹!! 헉헉!)
(http://sillok.history.go.kr/url.jsp?id=kwa_11607019_002)



이로부터 16년 후 (순조 32, 1832), 중국의 수도 북경에 사신으로 간 김경선(金景善)은 영국인을 보고는 이렇게 묘사합니다.

"영국인 버선[襪子]은 혹은 흰 左紗 혹은 흰 三升으로 만들었는데 등 위에 꿰맨 데가 없고
, 신[鞋]은 검은 가죽으로 만들어 發莫(마른신) 모양과 같다. 영국인이 머리에 쓰는 것은 子爵 胡夏米의 것은 푸른 緞으로 마치 족두리 같이 앞을 검은 뿔로 장식하였고, 그 밖의 것은 紅氈, 혹은 검은 三升으로, 더러는 감투[甘吐] 모양같이 하고 더러는 두엄달이(頭掩達伊; 두룽다리, 추위를 막기 위해 머리에 쓰는 쓰개) 모양같이 하고, 더러는 풀로 짠 氈笠 모양과 같이 하였다. 영국인 衣服은 羊布나 猩氈(성전)이나 三升으로 만들어, 저고리가 周衣 모양이나 狹袖 모양인데 띠를 붉은 緞으로 하였고, 衫은 團領 오른편 섶에다 金단추를 옷깃에 합쳐진 곳에 달았는데 그 소매가 넓거나 좁고, 바지는 우리나라 것과 모양이 같아 넓기도 하고 좁기도 한데 더러는 검고, 더러는 희며, 官爵이 있는 사람의 의복은 무늬 있는 緞이 선명하였다."


저기요.... 그러니까 신발 보다 스타킹을 먼저 묘사하는 사람이 이상한거에요. 암튼 이 경우에도 가장 급한 보고사항은 영국의 흰 스타킹!!

P.S.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하림 회장의 나폴레옹 모자 구입과 조선 모자를 갖고 싶어했던 나폴레옹의 연결고리를 본 건 저 혼자만은 아니었습니다. (http://www.dailycc.net/news/articleView.html?idxno=204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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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엘레시엘 2014/11/23 11:25 # 답글

    아니 왜 스타킹에 흥분을...다른 옷들은 형태는 달라도 이미 비슷한 복식이 있었기 때문일까요?;
    재밌게 봤습니다 ㅋㅋㅋㅋ
  • 남중생 2014/11/23 15:28 #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기쁘네요. 스타킹은... 좋은 것입니다.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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