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은... 하야마? 하야메? 하야우오? 橘南谿의 서유기(西遊記)

페이스북 사진첩을 보아주십시오. 奈多おくんち(早魚行事)라고 제목이 붙어있네요.

이것은 북큐슈의 나다(奈多) 지역 쿤치의 사진들입니다. 쿤치는 지역축제를 일컫는말입니다.


早   魚

이를 조   물고기 어

그렇다면 이 한자어는 일본어로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하야사카나? 하야우오? 소우교?

정답은 "그때그때 달라요"입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하야마"입니다.

이 "하야마" 행사에 대해서는 다음 블로그
포스팅에 잘 설명되어 있으니, 그대로 번역하겠습니다.

하야마신사(早魚神事)에 대해 들었습니다。

「또한 11월 19일~20일에는 早魚신사(神事)가 있는데 『하야마』라고 읽습니다.

한겨울 밤에, 이 아래 바다 물로 목욕재계(禊)를 한 젊은이들이, 계단을 달려올라가서,
경내에서 옷을 갈아입고는, 선주(網元)의 집에 가서 신사(神事)를 지냅니다.

 지금에는 그것(공간)이 너무 좁아서, 공민관(公民館)으로 바뀌었습니다.
공민관에서는 저녁 7시부터 카구라(神楽)를 연주하고, 신사(神事)를 모십니다.
무대에는 두 마리 큰 도미가 놓이고, 두 명의 청년에 의해, 손질됩니다.
그렇게 해서, 어느쪽이 신에게 먼저 봉납하는지를 겨루는 신사(神事)입니다.」

「도미의 비늘을 떼어내는 건가요?」
「네, 그래봤자 겨우 두 마리에요. 눈깜짝할 새 끝나죠.」
「그리고, 어떻게 하죠?」
「신관神官이 있어서, 그 사람에게 어느 쪽이 먼저 봉납하는지를 겨루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어부가 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사람이 적어져서, 근처의 청년단이 하고 있습니다.」
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신사神事에서 내년의 어장漁場이 정해지니까, 공평하게 하기 위해, 
그날 밤만 리허설을 해서, 제비로 정한다고 합니다.


백문이 불여일견! 동영상으로 봅시다. (https://www.youtube.com/watch?v=mdMa9ZHSVDQ)

이 전통행사가 어떤 것인지는 둘째 치더라도, 일본인인 블로거 분께도 "하야마"라고 읽는 것은 다소 의아했나 봅니다.

「早魚」를「하야마はやま」라고 읽는 것이 재미있네요.
필자는 사실, 이것을 봤을 때「하야유はやゆ」라고 읽어버렸습니다.
고전문학古文
수업에서「魚」를「이오いを」또는「이유いゆ」라고 읽었던 것을 기억하시나요?
나라奈良시대에는「하야이유はやィゆ」라고 읽었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은, 중국어를 3년전부터 배우고 있었습니다만, 「魚」의 발음은 어렵습니다.
입을「이い」와「에え」를 발음하는 모양으로、「유ゆ」를 말하는 겁니다.
뭐야、이건 옛날(
古文)
발음이잖아.
일본어로 쓰려고하면, 「이오いを」「이유いゆ」「우오を」「유ゆ」라고 밖에 쓸 수 없는것입니다.

현대인도 발음이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부족마다 말이 달랐을 먼 옛날,
「하야이유はやィゆ」라고 들으면「에? 에?」하고 되물었겠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분명「에? 하야마?」라고 되묻는걸요.

그래서 제사지내지는 신(御祭神)들 중 한 분,「하야마히메葉山姫」의「하야마はやま」와 관련있게,
「까짓것 하야마」、가 된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P.S.
카고신사(
籠神社)를 조사해보니, 笑原魚居신사(神社)라고 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에바라마나이」라고 읽습니다.

거기서「마나」로 사전을 찾아보니「真魚」를「마나まな」라고 읽고,
요리가 된 상태를, 그렇게 말한다던가. 
「이오いを」는 살아있는 물고기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하야마早魚」는「하야마나はやまな」또는「하야나はやな」라고、
말한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역시, 까짓것「하야마」…?
인 것 같네요.

다시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첫번째 가설
물고기 어(魚) 자의 중국어 발음 yú는 일본인이 발음하기에는 상당히 어렵기 때문에
예로부터 "이오", "이유", "우오", "유" 따위로 다양하게 표기되었는데,
그럴 바에야 "하야+魚"를 차라리 "하야마"라는 확실한 발음으로 통일시키는 방향으로 표기되었다는 것이 블로그 주인장의 이론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하야"마"인 것인가?
신사에서 제사지내는 신들 중에 한자는 다르지만 발음은 얼추 비슷한 "하야마히메葉山姫"라는 분이 있으니, 거기에 맞추었다... 는 것이죠.
두번째 가설
교토에 위치한 카고신사의 별칭인 "笑原魚居"는 에(笑)바라(原)마나(魚)이(居)라고 읽는데, 魚가 "마나"라고 읽히는 것에서 착안한 겁니다. 일본어에서 생선요리를 "마나"라고 하는데, "생선을 빨리(早) 손질한다/요리한다"에서 하야마나(早魚)=>하야마/하야나(?)로 발음이 간소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느 가설이 맞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문제는 早魚라는 한자는 다르게 읽힐 여지가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비슷한 예로, 테즈카 오사무의 만화시리즈에 등장하는 여성캐릭터 이름 速魚는 "하야메"라고 읽습니다.

물론, 제가 애초에 여기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물론, 귤 선생님의 "라누이" 기사 때문입니다.
早魚라고 쓰고 "하야우오"라고 읽기 때문이죠.
"하야우오(早魚)라고 한다."

그리고 이 경우에는 "하야우오"가 맞습니다. 후쿠오카, 쿠마모토 등지의 북큐슈 지역에서는 청새치를 지금도 "하이오(ハイオ)"라는 방언으로 읽는다는군요. 그러니 같은 큐슈 북부에서도 신사를 말할 때는 "하야마", 물고기를 말할 때는 "하야우오" 혹은 "하이오"입니다. 

유만주의 흠영과 "낭독회" 기타




이미 mori님진냥님께서 이번 전시 관련된 큼직큼직한 볼거리는 다뤄주셨으니, 저는 그저 사소한 덕질을 하겠습니다.
저는 우연한 계기로 이번 전시(1784, 유만주의 한양)가 열리기 전에 "흠영"을 접할 계기가 있었는데, 제게 굉장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따로 있었습니다. 전시에서는 이 11월달 패널에서 한 줄 만 언급했는데, 제가 비하인드 스토리를 덧붙여보죠.

"한글 소설을 읽어 주던 소녀"


추사 김정희의 어머니가 되시는 이 "소녀"는 유만주에게는 조카입니다. 유만주(兪晩柱, 1755-1788)의 일기장인 흠영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한글소설 낭독이 꽤나 일상적인 풍경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흠영에는 이 소녀 (기계 유씨) 뿐만 아니라, 다른 조카(女)에게도 한글 책을 읽히고, 그걸 들으며 감상한 기록이 자주 보입니다.

아래 인용문들은 김하라 교수님의 논문, "통원(通園) 유만주(兪晩柱)의 한글 사용에 대한 일고(一考)"가 출처입니다.
-김하라 교수님은 mori님 포스트에서 소개하신, 현대어역 흠영 선집 <일기를 쓰다> (총 2권)의 역자십니다.-


"<흠영>에서는 질녀(姪女)가 한글소설이나 한글로 번역된 연행록(燕行錄) 등을 낭독하는 것을 수시로 경청하고 숙모와 질녀, 형수 등과 편지를 주고받는 유만주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201 pg)

(소설 뿐만 아니라 연행록도 수시로 읽혔습니다...)

"기계 유씨는 16세이던 1781년 6월 12일에 <흥양정씨차혼기>(興陽鄭氏借魂記)라는 한글소설을 소리내어 읽었는데 유만주는 이 때 그 자리에 있으며 이 소설을 들었다.25) 이후 기계 유씨는 첫아들을 낳은 뒤에 한동안 친정에 머물러 있었던 듯한데,26) 유만주는 종질녀의 첨종(添腫: 산후 부기인 듯함)을 문병하러 왔다가도 <수제신설>(壽第新說)이라는 장회체 소설로 추정되는 어떤 읽을거리의 1회를 듣고 갔다고 적고 있다.27)
그리고 유만주가 종질녀 기계 유씨의 낭독으로 접한 한글 문헌은 소설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1784년 11월 10일의 기록을 보면 허봉(許篈,1551~1588)과 고경명(高敬命, 1533~1592) 등이 편집한 만력(萬曆) 임오년(1582) <원접일록>(遠接日錄)의 한글 번역을 종백녀가 읽었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28)"  (212 pg)

(연행록 뿐만 아니라, 반대로 중국사신 맞이하는 기행문도 읽었습니다... 한글로 된 재미난 글은 다 읽혔습니다... 산후조리할 때도 읽혔습니다;;;)

"○내중애(內仲愛)가 내문(內文) 연기(燕記) 읊는 것을 듣다. 기록한 자는 영종(英宗) 정미년(1727)에 하지 겸 사은사(賀至兼謝恩使)를 따라 간 사람이다. 연경에 갔을 때 옹정제가 등극해 있었는데, 옹정제 때 쓴 연기로는 처음이라 한다. 배표(拜表: 사신을 파견하는 의식)할 때 영의정은 이광좌(李光佐), 좌의정은 조태억(趙泰億), 우의정은 심수현(沈壽賢)이었으며, 대제학(大提學)은 윤순(尹淳), 평안병사(平安兵使)는 이사성(李思晟)이었다. ―1784.5.839)
○내문 연기를 이어서 듣다. ―1784.5.940)

유만주는 내종질녀 안동 김씨가 한글 연행기 읽는 것을 이틀에 걸쳐서 듣고 있다. 이 때 내종질녀가 읽은 연행기는 영조 정미년 ‘하지 겸 사은사’를 따라간 이가 쓴 것이라 했는데 정확히 어떤 작품을 가리키는지는 아직 미상이다."
(217 pg)

(너무 길면 이틀에 걸쳐서 시리즈로 읽혔습니다...)

물론, 조선시대에 글을 읽는 방식은 소리내어 읽는 "낭독"이 일반적인 것이고, 남이 글 읽는 소리를 옆에서 듣는게 그다지 이상하지 않다는 맥락도 고려해야 합니다...만


이거 완전 낭독회잖아!! 아가씨는 진짜였어! 읍읍!!

(최근에 본 영화가 너무 강려크해서 헤어나오질 못하겠네요...@@)


19세기 조선의 해표지증 환자, 자라 인간(鱉人) 기타

역사관심님의 17세기 조선, 멧돼지 인간 요괴 기담을 읽고 나니 생각나는 기록이 있었습니다.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실려있는 기사입니다. 전근대의 사람들은 기형아를 보고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죠.

무릇 온 천하의 인아(人疴)를 이루 다 헤아릴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 들은 별인(鱉人 자라와 같이 생긴 사람)은 고금에 듣기 어려운 것이기에 또한 한 번 변증한다.
금상(今上 조선 철종(哲宗)을 가리킴) 4년(1853) 청(淸) 나라 함풍(咸豐 청 문종(淸文宗)의 연호) 3년에 내가 마침 호서(湖西) 청풍부(淸風府) 노잡리(蘆雜里) 성주동(成住洞)의 종인(宗人) 이 능소(李能沼)의 집에 묵고 있었는데, 그 집에 성은 김씨(金氏)로 헤어진 망건(網巾)을 때우는 공인(工人)이 와서 이야기하기를,
“경기도(京畿道) 삭령군(朔寧郡) 소재지 안에 장별인(張鱉人)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으니, 그가 곧 군교(郡校)의 아들로서 집안이 조금 넉넉하였는데, 별인을 낳고서부터 부모(父母)가 다 죽고 가세(家勢)도 점점 기울어갔답니다. 그런데 별인이 막 태어났을 때에 머리는 크고 목은 긴데, 사지(四肢)는 다 죽고 좌우(左右)의 견갑(肩胛 어깨뼈)만이 겨우 살았을 뿐이며, 두 손의 손가락은 모두 한 치[寸]를 넘지 못하고 형체만 갖추어졌을 뿐이며, 볼기[臀]옆 양쪽 가에 발[足]의 형태가 있는데 겨우 발가락이 있을 뿐이어서 마음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니, 대저 자라[鱉]와 다름이 없기 때문에 세상에서 ‘별인’이라 칭한답니다. 그가 다닐 때는 포복(匍匐)을 하되 벌레가 기어가듯이 배[腹]를 깔고 기어가며, 음식을 먹을 때는 땅에 바짝 엎드려 입으로 주워먹으며, 얘기를 잘하고 술도 썩 좋아한답니다. 그의 경물(莖物 자지)과 고환(睾丸 불알)은 보통 사람과 똑같은데, 또 색욕(色慾)이 있으므로, 창녀(娼女)들이 혹 그의 돈을 탐내어 가끔 접근하는 일이 있답니다. 그의 나이는 지금 35~36세쯤 되었답니다.”
하였으니, 이는 또 무슨 인아(人疴)인가. 이것이 혹 자라서 정기(精氣)가 빌미되어 앙갚음을 하기 위해서 화생(化生)한 것인지 모르겠다. 이 괴(傀)야말로 비록 사람의 탈을 쓰고 능히 말을 한다 할지라도 점어(鮎魚)의 괴이함에 무엇이 다르겠는가.《오잡조(五雜組)》에 이르기를,
“송(宋) 나라 건도(乾道 남송 효종(南宋 孝宗)의 연호) 연간에 행도(行都)의 북관(北關)에 검은 빛의 점어(鮎魚)라는 물고기가 있었는데, 배[腹] 밑의 양방(兩旁)에 사람의 손[手]이 나와 있고 다섯 손가락이 갖추어 있었다.”
하였으니, 별인과 비교하면 겨우 낯[面]만 없을 뿐이다.

여기서 말하는 별인(鱉人), 즉 자라 인간은 해표지증(海豹肢症, phocomelia) 환자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순우리말로 "바다표범손발증"이라고도 불리죠.
불완전한 팔다리를 갖고 태어나는 기형(奇形)인데, 닉 부이치치, "오체불만족"의 오토타케 히로타다 등이 해표지증을 갖고 태어난 분들입니다. 영화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에 코푸스 콜로서스(Corpus Colossus, 이모탄 조의 첫째 아들)로 출연한 쿠엔틴 케니핸(Quentin Kenihan) 씨 역시 해표지증 환자죠.


장별인이 살았다는 “경기도(京畿道) 삭령군(朔寧郡)"은 현재 휴전선 이북에 있습니다. 행정 상으로는 "연천군 중면"에 해당하지만, 이 "중면"은 휴전선으로 반토막이 나있고, 옛 삭령군이 있는 지역은 북한에 있습니다. 역사관심 님께서 소개하신 "멧돼지 인간" 사건도 금강산 근처에 위치한 고성군(高城郡)에서 일어난 것과 비슷한 정도의 산골이죠.

다만 옛 지도에선 찾아볼 수 있습니다.

위 지도의 출처는 1871년에 출간된 삭녕지 혹은 삭녕군읍지라고 불리는 지리지입니다. 위 기록과 동시대의 것이라고 할 수 있죠. 이규경은1853년에 당시 35, 6세인 "장별인"에 대해 들어보았다고 하고 있으니, 장별인은 1810년대에 태어났겠군요.

다만 의아한 점이 있습니다. 이 지리지의 "성씨" 항목에는 장(張) 씨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장별인 이후로 대가 끊겨서 그런걸까요? 하지만 1842년의 지리지에도 장 씨가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장별인이라는 이름은 "장씨 성을 가진 자라 인간"이라는 뜻이 아니라 "늘어나는(張) 자라 인간"이라는 뜻이었던 걸까요? 기사의 제목이 "별인에 대한 변증설"인것으로 보아, 그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아버지는 찾아낼 수 있을까요?

"장별인(張鱉人)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으니, 그가 곧 군교(郡校)의 아들로서"

군교(郡校)의 뜻은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 군교(軍校)의 오기(誤記)가 아닌가 싶습니다. 군교(軍校)는 조선 시대, 지방 관아에 속하여 군사 및 치안 업무를 맡았던 아전입니다. 이 군교가 일을 했을 관아는 당연히 삭녕읍에 있었겠지요. 지도 왼쪽 아래에 큼직하게 "읍(邑)"이라고 써있는 곳입니다.
반면에, 혹시 이 삭녕군(郡)의 향교(校)를 말하는 것이라면 지도에서 보이다시피 관아가 있는 읍에서 동쪽으로 약 5리 거리에 있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삭녕군 아전의 아들 장 씨"에 대한 정보는 더 찾아낼 수 없었습니다.
한편, 이규경이 오잡조에서 찾아낸 "검은 빛의 점어(鮎魚)라는 물고기"는 뻘에서 기어다니는 망둥어나 짱뚱어 종류가 아닌가 싶습니다. 

커여운 토토로 보고가세요. ~창작물의 원형을 찾아서~

한동안 포스팅을 못했네요.
연말 인사도 드릴 겸, 토토로 짤을 조공하겠습니다. (아무 상관 없습니다.) 

"짜잔!"


어떤가요?
제가 창작물의 "원형"에 관심이 있다는 사실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애벌레에 관한 포스팅에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었죠.

그러니까, 저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이 청동기(맨 위 사진)를 보고, 영감을 받아서 토토로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특히 애니메이션 속 아이들의 아버지가 고고학자라는 점도 있고요.
고대 중국의 청동기 유물인 이 그릇은 일본의 박물관에도 한 점 소장되어 있습니다.
(프랑스의 모 박물관에도 한 점 더 있다고 합니다.)

자세한 설명은 일본 교토에 위치한 "센오쿠 박고관(泉屋博古館)" 홈페이지에서 따오겠습니다.(http://www.sen-oku.or.jp/collection/col01/002.html)

상(商)왕조 후기 기원전 11세기
높이 35.7㎝

커다란 입을 벌린 호랑이가 뒷다리로 선 채로, 사람을 끌어안고 있다. 손잡이가 달린 이 그릇은 술을 따르는 용이다. 호랑이의 머리 위에 사슴이 있는데, 이것이 뚜껑의 손잡이로, 여기로 술을 따른다.

중국 상(商),주(周) 시대의 청동 용기는, 신에게 비는 제기로써 사용되어, 거기에 표현된 모티프는, 하늘의 여러 신(神)이나  신의 심부름꾼을 구체화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이 호랑이도 줄무늬가 아니라, 몸통의 뒷면과 옆면에 용(龍)이나 도철(饕餮)이라는 여러 동물 모습을 한 신(神)이 그려져, 신호(神虎)라는 특별한 존재에 해당한다.


음, 그러니까... 토토로는... 호랑이였던겁니다!


센오쿠 박고관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사이트(http://www.sen-oku.or.jp/kyoto/)를 참조하세요.

유의하셔야 할 점은, 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청동기는 상시 전시 대상이 아니란 겁니다. 올해만 하더라도,


개관기간 (청동기 전시)
4월2일 ~ 5월15일

5월28일~7월24일

9월3일~10월23일

11월3일~12월4일

개관시간

오전10시~ 오후 5시 (입관은 오후 4시 30분까지)
월요일 휴관 (월요일이 공휴일일 경우, 화요일 휴관)


이니까 올해는 이미 끝났군요. 아마 내년 봄을 기약해야 할 듯 싶습니다.



8. 석감당 橘南谿의 서유기(西遊記)

八 石敢当 

8. 석감당


鹿児島かごしま城下町々の行當り或は辻街つじちまたなどには必たかさ三四尺斗なる石碑せきひあり。石敢当といふ。文字をほり付していかなるゆへそと所の人に問ふに「昔より致し来れなるにていかなるゆへといふ事を知らずといふ。後に輟耕録てつこうろくを見しに此事出たり。其文曰 今人家正門適当巷陌橋道之衝 立一小石將軍或 植一小石碑 鐫其上曰石敢當薩州ハ日本の極西南に在りて唐土に近くむかしはふねの往来も自由なりしかバ彼地にてかやうの事も見及び来りて此地に作り直しにや。又田畠でんばたの中に石にて衣冠いかんぞうを彫りて据へたり。田夫に問へバ田の神なりといふ。是も彼の輟耕録に見へたる石将軍のるひにして日本の衣冠の像に作りたるものにや。皆他国にては見ざる物也。伊勢などには石を將基の駒の形に作りて山神と彫付て村里の出口には必あり。是も他国にはあまり多く見ざるものなり。石敢当は京?辻天満宮の社前に昔はありしといひし人あり。今はなし。


사츠마주 카고시마 성아랫마을(城下町)마다 막다른 골목 혹은 갈림길 따위에는  반드시 그 높이 3~4척 정도 되는 비석이 있다. 석감당이라고 하는 문자를 새겨넣었다. 어찌된 까닭인지 주변 사람에게 물으니, 옛날부터 전해내려온 것으로 어찌 된 까닭인지는 모른다고 말하였다. 후에 철경록(輟耕録)을 보니 이 기사가 나왔다. 

其文曰 今人家正門適当巷陌橋道之衝 立一小石將軍 或 植一小石碑 鐫其上曰石敢當云.

그 글에 적혀있기를, "지금 인가(人家)의 정문이나 적당한 항맥(巷陌)과 교도(橋道)[1] 모퉁이에 작은 돌 장군을 세우거나, 혹은 작은 석비를 세우는데 그 위에 석감당이라고 새긴다.

사츠마는 일본의 극서남에 있어 중국에 가깝고, 옛날에는 배의 왕래도 자유로웠으니 그 (중국)땅에서 이런 것을 보고 와서 이 (일본)땅에서 새로 만드는 것이랴. 또 논밭 한가운데에 돌에 의관의 모양을 깎아서 박아놓았다. 밭일하는 사내에게 물으니 밭의 신이라고 한다. 이것도 그 철경록에 보이는 돌 장군의 류(類)로, 일본의 의관의 모양으로 만든 것이랴. 모두 다른 지방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다. 이세(伊勢) 등지에서는 돌을 장기 말 모양으로 만들어 산신(山神)이라고 새겨 넣었는데 마을(村里) 출구마다 반드시 있다. 이것도 다른 지방에서는 그다지 많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옛날에는 교토의 텐만구우(天満宮) 신사 앞에 석감당이 있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지금은 없다.


[1]길거리, 골목, 다리, 큰길


P.S. 

중국의 원조(!) 석감당에 대해서는 Esperos님의 글, 태산석감당 이야기를 참조. 

서유기 순서 상, 석감당 기사의 차례는 한참 지났는데, 이제야 소개하는 이유는 저 포스팅을 읽기 전에 그 부분 진도를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Esperos님의 블로그에서 석감당 이야기를 읽을 때 무렵에는 서유기에 석감당이 나온다는 걸 이미 까맣게 잊어버렸기도 했고요.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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