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RECIPES PROJECT 원문 게재 순서 Recipes Project: 사후약방문

인도차이나 ~Indochine~ 항목에서 처럼 여기서도 원문 게재 순서대로 목록을 작성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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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2012년 11월 5일 - 로마밥 이야기 (1)


2013년 7월 11일 (2018년 8월 21일 재게재) - 연금술사가 투잡을 뛰면 생기는 일!

타라 알버츠(Tara Alberts) 교수님 연재

다니엘 트램바이올로(Daniel Trambiolo) 교수님 연재


몰리 존스-루이스 교수님 연재

클레어 게리니(Claire Gherini) 교수님 연재


2016년 7월 28일 - 잉카 미이라 만들기


2017년 1월 31일 - 로마밥 이야기 (3)

2017년 7월 19일 - 뇌피셜과 갈리아 전기
2017년 12월 14일 - 19세기 중국의 불임치료


마리에케 헨드릭센(Marieke Hendriksen) & 루벤 페르발(Ruben Verwaal)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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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 미이라 만들기 Recipes Project: 사후약방문

Recipes Project 블로그의 How to Make an Inca Mummy를 번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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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 미이라 만들기

크리스토퍼 히니


잉카 문명이 있기 전부터 안데스 지역에서는 미이라를 만들어왔다. 여기서 미이라란 인공적으로나 환경적으로 보존된 상태의 죽은 사람을 의미한다. 그러나 16세기 유럽의 식자층은 미이라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다. 대체로 멈미(mummy) 또는 모미아(momía)는 고대 이집트 사람의 건조된 사체를 갈아만든 약재를 지칭했기 때문이었다. 잉카인을 이집트인과 동일한 반열에 놓는다는 것은 당대 인정받는 한도 보다 한참 멀리까지 의료 기술과 문명의 범주를 확장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앙드레 테베라는 프랑스 박물학자는 Les vrais pourtraits et vies des homes illustres grecz, latins et payens (1584)라는 책을 통해 끌로드 귀샤르가 기록한 장례 풍습 중에서 안데스 지방에 "미이라"가 난다고 한 것을 반박했다.

리옹의 시장에서 거래하는 상인들에게 물어보기를 미이라 중에 이곳[페루]에서 나오는 것도 있냐고 문의를 한다면 (그게 아니고서야 필자가 생각하기에, 그가 알았더라면, 그런 거짓말을 책으로 내지는 않았으리라 본다) 미이라는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을 들을 것이며 [귀샤르 본인의 고향] 라니외에서 볼 수 없는 것만큼이나 당연하다.

테베가 보기에, 미이라는 이집트에서만 나오는 것이었다.

▲우이아나 카팍 잉카의 시신. 키토에서 쿠스코로 운반되는 중이다. 펠리페 구아만 포마, 새로운 왕권과 좋은 통치 (Nueva corónica y buen gobierno, 1615). 출처: Det Kongeliege Bibliotek

다시 말해, "고대 페루인"이 어떻게 미이라를 만들었는지에 관한 종교적인 동시에 의학적인 향토 레시피를 살펴보기 전에, 유럽인이 어떻게 미이라를 페루의 것으로 만들었는지를 이해해야한다. 후자의 레시피는 수세기에 걸쳐 제조되었는데, 두 가지 주재료가 있다. 16세기 스페인의 역사기록가와 자연사학자가 잉카 장인들이 어떤 방식으로 방부처리된 황제의 시신(엠발사마도스embalsamados)을 만들었는지 연구한 것이 하나고, 대서양 양안에서 그 비법을 노래한 잉카 혼혈인 역사기록가, 영국 번역가, 프랑스 백과전서파 학자들이 엠발사마도스를 미이라로 만들었다는 것이 다른 하나다. [1]

잉카를 포함한 여러 안데스 사람들이 죽은 귀족을 방부처리해서 이야파(illapa) 또는 말뀌(mallqui) 즉 신성한 살아숨쉬는 선조로 만들었다는 점은 잘 알려져있다. 안데스 지방에 다다른 최초의 스페인 사람들도 여기에 호기심을 보였기 때문이다. 1533년, 최초로 쿠스코에 간 2명의 스페인 사람은 잉카 제국 최후로 논란 여지가 없는 황제, 우아이나 카팍과 (그의 본처, 코야 쿠시리마이로 추정되는) 또다른 시신을 보았다. 이를 본 스페인인들은 "시신을 방부처리한 방식으로 된 두 인디언"이라고 묘사하였다. 1550년대 후반에 이르자, 역사기록가 후안 데 베탄조스는 (아마도 자신의 아내, 앙헬리나 쿠시루마이 오크요로부터) 우아이나 카팍의 신하들이 "그를 해부해, 살을 제거하고, 치장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의 아내는 원래 잉카 황제 아타우알파의 약혼녀였다. 여기서 치장에 해당하는 단어, 아데레잔돌레(aderezándole)는 것은 어떤 물질을 사용했다는 것을 시사하는데, 

'그리하여 어떤 손상도 끼치지 않고, 뼈 하나도 부러뜨리지 않은 채; 그의 몸을 햇볓과 바람에 버무리고 치장한 뒤, 다 마르고 버무려진 뒤, 값비싼 옷을 입히고 가마 위에 앉혔다.' [2]  

후대의 스페인인들은 이 과정이 방부처리(embalming)라고 주장하였고, 이렇게 특정지음으로써 잉카 의술의 전문성을 인정하였다. 또한 이렇게 하여 오늘날에도 페루 발삼(balsam of Peru)이라 불리는 신대륙 발삼을 선전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1559년 스페인인들은 이야파를 압수하고, 가장 보존상태가 좋은 것은 리마에 위치한 유럽 치료의학과 식물학 지식의 중심지, 산 안드레스 병원에 전시하였다. 그곳에서 예수회 박물학자 호세 데 아코스타가 이들을 연구하였고, 일종의 수지(樹脂)나 역청을 사용한 덕분에 "놀라운" 수준의 보존이 가능했다고 결론지었다. (1590) 여기서 아코스타는 이집트의 사자(死者)와 연관지어 쓰이는 베툰(betún)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썼다.

11번째 달. 아야 마르까이 키야(Aya Marq'ay Killa), 사자를 옮기는 날. 펠리페 구아만 포마, 새로운 왕권과 좋은 통치 (Nueva corónica y buen gobierno, 1615). 출처: Det Kongeliege Bibliotek

그러나 잉카의 방부처리 된 황제(엠발사마도스)가 미이라가 된 것은 그의 혼혈 후손들이 기울인 노력과 영국, 프랑스인들이 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가능해진 것이다. 1609년, "엘 잉카(El Inca)"라는 별명의 가르실라소 데 라 베가는 자신의 큰할아버지, 우이아나 카팍의 손가락을 만져본 기억을 적었다. 그 손가락은 "마치 목각 인형처럼 딱딱하고 뻣뻣했다." 가르실라소는 아코스타의 주장을 반영하여 베툰과 건조한 안데스 환경이라는 조합을 잉카인들이 활용하여 "시신을 온전히 보존해 마치 숨이 붙어있고 건강하게 보이도록 하였다. 단지 말만 못할 뿐이라고 속담에서는 일컫는다."고 언급하였다. 1688년, 가르실라소의 말을 영어로 옮긴 번역가는 엠발사마도스를 한결 더 높이 치켜세우며, "이들 시신은 미이라 보다도 온전하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서 미이라란 이집트 미이라를 말한 것이었다. 1749년, 프랑스의 박물학자 장-마리 도방통은 아예 잉카 문명의 시신을 이집트 미이라와 함께 미이라 항목에 기재했다. 

그러나 도방통이 살던 시대의 사람들에게 이 사안은 신념의 문제였다. 잉카 문명의 이야파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던 것이다. 아마도 리마의 습한 기후로 인해 부패하여 병원 어딘가에 묻혔으리라. 그들의 뼈가 언젠가 발견되리라는 희망은 남아있지만, 새로운 고고학 연구를 통해 시신의 보존법이 발견되기 전까지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잉카 미이라 제조법은 향토적인 만큼이나 식민주의적이고 대서양을 통한 교류에서 유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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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글은 필자의 학위논문, "The Pre-Columbian Exchange: The Circulation of the Ancient Peruvian Dead in the Americas and the Atlantic World" (박사학위 논문, 오스틴 텍사스 대학교, 2016), 제 4장.

[2] 후안 데 베탄조스, Suma y Narración de los Incas, María del Carmen Martín Rubio 편저 (Lima: Universidad Nacional Mayor de San Marcos, 2010 [Cuzco:1557]), 235 [1557:Pt. I, Ch. 48].



로마밥 이야기 (3) - 맛없는 영국요리를 지켜내자! Recipes Project: 사후약방문

Recipes Project의 Cookery, Ancient and Modern을 번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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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요리, 현대 요리

헨리 파워


이 글은 18세기 초에 출판된 "레시피 같은 책" 2종에 대한 것이다. "레시피 같은 책"이라고 하는 이유는 두 권 모두 요리 관련 개념으로 가득하지만 어느 한 권도 부엌에서 쓰인 적이 없어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두 권의 책을 함께 보면 18세기 초의 문화 경쟁구도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도판: 마틴 리스터가 출간한 아피키우스 (제2판. 1709) 속표지 그림. 18세기 부엌과 로마 시대 부엌을 뒤섞어놓은 듯한 풍경이다. 책(codex)으로 된 레시피가 펼쳐진 채 놓인 것이 가장 명백한 18세기적 요소다. 캘리포니아 주, 산마리노의 헌팅턴 도서관 제공. 

1705년, 마틴 리스터는 로마 시대 요리사 아피키우스의 레시피를 출간했다. 이 책을 읽은 독자 중에는 아이작 뉴턴, 한스 슬론, 크리스토퍼 뤤, 캔터버리 대주교 등이 있었다. 훌륭한 위인들의 책꽂이에 자리할 운명을 타고난 책이었던 것이다. 이 책의 제목에서부터 "앤 여왕의 수석 의원"이라고 밝혀놓았듯이, 리스터의 본업은 의사였다. 반면에 아피키우스는 폭식과 탐욕의 대명사였다. 리스터는 라틴어로 긴 서문을 써서 아피키우스가 폭식가라는 오명을 씻어내려고 하였다. 또한 아피키우스의 레시피에 건강에 도움이 되는 요소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하였다. 수 세대에 걸쳐, 도덕주의에 입각한 역사학자들은 로마가 몰락하게 된 데에는 지나친 식도락 풍습이 기여한 바가 있다고 주장해왔다. 리스터는 정반대의 입장을 취했다. 야만인들이 로마를 침략하는 바람에 로마인들이 몸에 좋고 건강한 양념과 소스를 발달시켜오던 것이 중단되었다는 것이다.

리스터는 당대에 "모던(Modern)"하다고 불리는 축에 속했다. 모던하다는 것은 인류의 지식이 고대로부터 끊임없이 진보해왔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또한 리스터는 현대(modern)의 학문 방법론을 고대 문헌에 적용하는 것을 옹호했으며, 학교와 대학에서 기존에 가르치던 편협한 고전 경전을 넘어 광범위한 문헌과 주제를 연구해야한다고 보았다. 리스터가 출간한 아피키우스는 이런 원칙에 철저히 기반해있다. 리스터의 아피키우스는 당대의 최첨단 연구 방법론을 총동원해 가장 외면되고 이름없는 축에 속하던 고전 문헌을 선보인 책이다. 또한 아피키우스의 지식에 추가 지식을 더하기도 했다. 리스터의 과학적 지식을 아피키우스의 레시피에 접목시키는 것이다.

당대의 독자 중에는 위와 같은 노력을 소모적이라며 비웃는 이도 있었다. 고작 멸치 소스와 겨울잠쥐 요리에 대한 책을 연구하는데 지나치게 지적 자원을 낭비한다는 것이었다. 옥스포드 대학교 크라이스트 처치 교수였던 윌리엄 킹은 확실히 '옛날 사람(Ancient)'에 속했다. 킹은 요즘 사람(Modern)들이 경전의 내용을 무시하고 저평가한다는 사실을 한탄하곤 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호메로스와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를 무시한다는 것이었다. 리스터의 아피키우스는 요즘 사람들의 우선순위가 얼마나 편향돼있는지 보여주는 증거였다. 그래서 킹은 이 책을 완전히 풍자하기로 마음 먹었다.

1708년, 킹은 "요리의 기술(Art of Cookery)"이라는 책 한 권 길이의 시를 출판했다. 짧은 제목만 봐서는 흔한 요리책 같지만, 길게 달린 부제를 보면 이 책에는 문학적인 배경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호라티우스의 '시론(詩論, Art of Poetry)'을 모방한 것으로, 리스터 박사에게 쓴 편지 및 기타 내용이 있으며, 리스터 박사가 출간한 고대인의 수프와 소스에 관한 아피키우스 코엘리우스의 저작의 제목에서 착안함." 킹 교수의 "요리의 기술"은 18세기 풍자문학 중에서도 가장 괴작으로 손꼽히는데, (고전 문학 비평의 정전인) 호라티우스의 "시론"을 재구성하여 시에 대한 의견이 나오는 구절마다 하나도 빠짐없이 요리에 대한 의견이 대신 등장하는 것이다.

일례를 들자면, 시는 매혹적인('달콤한') 동시에 아름다워야한다는 호라티우스의 주장은 패스츄리에 적용된다. 

바닥에 달달함이 깔려있지 않는 한,
파이의 잔주름을 뉘 신경쓰리오?
Unless some Sweetness at the Bottom lye,
Who cares for all the crinkling of the Pye? (p. 71)

이 시에서 킹이 풍자하고자 한 바는 리스터 같은 사람들이 기존에는 사소하다고 여겨져왔던 문헌을 중요시한다는 것이었다. 호라티우스가 시론을 쓴 것은 후대 작가들이 호메로스와 베르길리우스의 대서사시를 모방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그러한 신성한 가르침이 이젠 고작 요리에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서문에 리스터에게 쓴 편지 중에는 킹이 학교에서 요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한탄하는 것도 있다.

우리나라의 신사들은 웨스트민스터, 이튼, 윈체스터 등 명문 학교에 아들을 보내는데, 휴일이 되어 양고기에는 소금만 치고, 로스트 비프에는 식초만으로 먹는다면 학문의 진보에 그 어떤 희망을 걸 수 있겠습니까? 그들의 영혼에 무슨 깊이가 있겠습니까? ... 그리고 소스로 말할 것 같으면, 깊은 무지에 빠져있을 뿐입니다. (pp. 3-4)

킹은 또다른 풍자 대상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요리의 기술"은 18세기로 넘어가면서 영국인의 식단이 크게 확대되어가는 풍경을 특유의 괴이한 문체로 그리고 있다. 킹은 종종 영국 식탁에서 볼 수 있는 음식의 가짓수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노골적으로 지적한다. 예컨대 호라티우스가 시에서 신조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내놓은 조언에 대응하는 아래 구절이 그러하다.

옛 상차림을 바꿀 땐 신중을 기하게나
그런 변화는 드문 것이 좋으니
영국의 교역으로 신선한 별미가 알려졌고,
이제 계속해서 쓰여 익숙해졌건만은;
옛 귀인 중에 누가 주방장더러
망고, 포타르고 소스, 송이버섯, 캐비어를 주문했겠나?
Be cautious how you change old Bills of Fare,
Such alterations should at least be Rare
Fresh Dainties are by Britain's Traffick known,
And now by constant Use familiar grown;
What Lord of old wou'd bid his Cook prepare,
Mangoes, Potargo, Champignons, Cavare? (p. 61)

학계의 관심이 아피키우스와 같은 인지도 낮은 저자에게로 쏠리는 현상이 호메로스나 베르길리우스 등 경전을 저술한 저자들의 지위를 위협했듯이, 버섯과 망고와 같은 색다른 미식에 환호하는 대중은 로스트 비프와 양고기로 대표되는 평이한 전통 영국 요리를 위협했다. 그러한 불안감은 18세기 영국에서 자주 볼 수 있었는데, 킹의 사례에서 흥미로운 점은 자신이 목격한 식단 변화라는 현상을 새로움을 무엇보다도 우선시하는 근대적(Modernizing) 경향과 연관지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킹에게는 리스터의 아피키우스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고대인의 수프와 소스"야말로 모던함의 궁극적 상징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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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대청은 중세시기에 몇몇 영국 수도원이 재배하던 중요한 작물이었고 16,17세기에는 영국의 핵심작물이었다. (국내 시장을) 잠식하는 외래 상품에 대항하는 방법으로, 자랑스러운 "토종" 대안 상품의 문화적 중요성을 강조하기 만큼 좋은게 또 있을까? Vitrum을 대청이라고 번역하는 것이다."
(뇌피셜과 갈리아 전기 中)




Li Tana. (1998). 또다른 베트남? 17, 18세기의 응우옌 왕국 [캄보디아 병탄기]

Tana Li 교수님의 1998년 논문, An Alternative Vietnam? The Nguyen Kingdom in the Seventeenth and Eighteenth Centuries의 결론부를 번역합니다.

이전 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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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베트남? 17, 18세기의 응우옌 왕국


결론

베트남 남부(당 쫑)라는 지역에 특화된 베트남 정체성(localized Vietnamese identity)이 발달한 것은 새로운 환경에 성공적으로 반응한 결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남부의 베트남 사람들이 비(非)베트남적으로 변했다는 것이 아니라, 키스 테일러가 제안하였듯, 이 지역에서는 "베트남의 과거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는 특징 하에 놓인 베트남성"의 대안적 버전이 나타날 수 있었다. 특히 북부에서는 바로 전 시대인 레 왕조 때부터 작동해온 유교적 모델로부터 자유로웠다. 남부인 특유의 성격이 두 세기 동안 이어진 응우옌 시대에 형성되었고, 여기에는 새로운 물건과 사상에 대한 호기심과 포용성, 보다 개방적이고 즉흥적인 성향, 역사와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자 하는 정신 등이 포함되었다. 이 시기에 일어난 변화가 베트남 문화에 건설적인 역할을 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변화는 공동체적 연대감에 파열을 일으켜, 해당 시기에 대한 관찬 역사서를 작성한 19세기 베트남 문인들이 보기에는 인정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노이 한놈 연구원에 소장된 문서에 따르면 명명제 2년 (1820), 황제는 국사관(國史官)에게 나라의 역사를 집성할 것을 명하면서, "양식, 표현방식, 사실을 기록하기 전에 가늠하고 살필 것"을 명시했다. 많은 정보가 이 과정에서 생략되었다. 19세기의 역사가들은 노예제 그리고 참인, 일본인, 크메르인과의 접촉 등 당 쫑 사회의 비(非)유교적 요소를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분명 황제가 바란 수정과 균형을 이루고자 하는 시도였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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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밥 이야기 (2) - 로마인은 (무슨) 쥐를 먹었나? Recipes Project: 사후약방문

Recipes Project 블로그의 Wot's fer dinna luv? Yer favrit stuffed dormouse!를 번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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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은 (무슨) 쥐를 먹었나?
토니 크리스티

대영박물관이 폼페이 전(展)을 새로 열면서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고전학자이자 스타 강사 메리 비어드는 영국의 각 신문에 이 전시에 대해 흥미로운 소개글을 기고하고있다. 더 썬(그 타블로이드지가 맞다)에 기고한 글에서 비어드는 로마인이 겨울잠쥐를 먹었다는 것을 언급한다. 로마인이 겨울잠쥐를 별미로 여겼다는 것을 처음 듣는 영국인은 대부분 녹갈색 겨울잠쥐(학명: Mucardinus avellanarius)를 떠올릴 것이다. 이 녀석은 주로 모자장수가 벌인 다과회에서 차 주전자에 담궈지는 모습으로 발견된다.

▲모자 장수의 다과회, 존 테니엘. 출처: 위키피디아.

영국의 겨울잠쥐는 일반적인 생쥐(Mus musculus)와 비슷한 크기지만, 갈색 털이 좀더 덥수룩하고 꼬리도 털이 부숭부숭하다. 가죽과 뼈를 제거하면 아무리 잘해도 예쁘장한 전채 요리(hors d'oeuvre)나 입맛 돋구기(amuse-bouche) 정도는 되겠지만 주 요리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이 모르는 점은 여러 종의 겨울잠쥐가 있다는 것이다. 

▲ 녹갈색 겨울잠쥐, (학명: Muscardinus avellanarius). 출처: 위키피디아.

그런데 필자가 사는 남부 독일에는 지벤슐래퍼(Siebenschläfer, 학명: Glis glis)가 많다. 직역하자면 7인의 잠꾸러기라는 뜻의 지벤 슐래퍼는 연중 7달을 겨울잠을 자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지벤슐래퍼는 작은 잿빛 다람쥐 같이 생겼고 배에 회색과 흰색 줄무늬가 나있고, 아주 길고 아주 북실북실한 꼬리가 머리 위까지를 우산처럼 덮는다. 녀석들은 아주 귀엽고 안아주고 싶게 생겼지만 쓰다듬으려 하면 안 된다. 몹시 사나운 탓에 손을 물릴 것이다.

▲ 먹을 수 있는 겨울잠쥐 (학명: Glis glis) 출처: 위키피디아.

식용 겨울잠쥐는 집에서 기르는 글리스 글리스 종이다. 살찌우면 300그램까지 무게가 나간다.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 사이에 쓰인 것으로 여겨지는 로마 시대 요리책 "아피키우스"에는 속을 채운 겨울잠쥐 요리가 실려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요리법은 아래와 같다. 

▲ 아피키우스. De opsoniis et condimentis (암스테르담: J. Waesbergios), 1709. 
마르틴 리스터 개인이 출판한 "아피키우스"의 제2판 속표지 그림. 출처: 위키피디아.

Liber VIII: Tetrapus

 IX. Glires

 Glires: glires: isicio porcino, item pulpis ex omni membro glirium, trito cum pipere, nucleis, lasere, liquamine farcies glires, et sutos in tegula positos mittes in furnum aut farsos in clibano coque.


제 8 권: 네발짐승

9. 큰겨울잠쥐

큰겨울잠쥐는 잘게 다진 돼지고기로 속을 채운다. 이때 고기의 양을 잘 가늠하여 거기에 맞는 양의 후추, 잣, 라저, 리쿠아멘과 섞어 넣는다. 속을 채운 큰겨울잠쥐를 꿰매어 벽돌 위에 올려 오븐에 굽거나 휴대용 오븐에 굽는다.[1]

리쿠아멘은 가룸이라고도 불리는 발효 피시소스인데, 로마 시대 거의 모든 요리에 쓰인 양념으로 오늘날 소금과 대체로 같은 역할을 했다. 라저는 실피움이라고도 하는데, 현재는 멸종한 로마 시대의 향신료 또는 허브다. 아사포에티다(asafoetida)와 비슷했다고 추정된다.[2]

이 기회에 이색 요리로 애인을 놀라게 하고 싶다면 글리스 글리스 종 겨울잠쥐 몇 마리를 준비해 다진 고기를 채워넣는 건 어떨까?


토니 크리스티는 개인 연구를 하는 과학사학자다. 크리스티의 블로그, Renaissance Mathematicus에서는 대체로 수학이라는 학문과 근세 시대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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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믿음 옮김. 데 레 코퀴나리아. 153쪽.
"이때 고기의 양을 잘 가늠하여" 부분이 게시글에는 "각 다리의 살도 모두 (돼지고기와) 함께"라고 되어있다. 이본을 참고한걸까? 

[2] 데 레 코퀴나리아 31쪽, 주석 42를 보면 상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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