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네덜란드 사람, 숲 사람, 그리고 서구 지식과 토속 지식 사이의 (흐릿한) 경계 예티와 인의예지!

이 포스팅의 경우에는 특별히 "예티와 인의예지" 카테고리에 추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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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최근에 보르네오 섬의 사바(Sabah) 주를 방문했는데, 누군가가 필자에게 말해주기를 코주부원숭이의 현지(말레이어) 이름은 "블란다"(혹은 "오랑 블란다")로  "네덜란드인"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필자는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코주부원숭이와 네덜란드인의 닮은 모습이 연상되어 웃음을 터뜨렸는데... 한편으로는 어떻게 이러한 용어가 쓰이게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오늘날 많은 이들은 보르네오 섬의 말레이어 화자들이 과거 어느 시점부터 해당 지역을 점령하고 식민지로 삼는 유럽인들의 힘에 "저항"하거나 "반항"하려고 코주부원숭이를 "네덜란드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을 것이라고 상상하곤 한다. 

그러나 서양에서의 오랑우탄에 대한 서술과 표현의 역사를 다룬 훌륭한 신간을 읽으면서, 필자는 코주부원숭이가 "네덜란드인"이라고 불리게 된 정황은 아마도 이보다 훨씬 복잡했으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보르네오의 야생 인간: 오랑우탄의 문화사 (하와이 대학교 출판사, 2014)라는 제목의 이 책은 역사학자(로버트 크립), 연극문화 학자(헬렌 길버트), 탈식민주의 이론과 문예 연구 학자 (헬렌 티핀)이 공동 저술하였다. 다방면의 전문가들이 모여 혜안을 종합한 만큼, 이 세 명의 학자는 흥미진진하게 풍부하고 조명되는 책을 펴냈다. 

저자들은 오랑우탄에 대한 다량의 서술이 지난 몇 세기 동안 이뤄졌다고 밝히는 동시에, 정작 "오랑우탄의 본고장인 열대성 보르네오에서는 서양인들이 보인 관심에 비해 원주민들은 오랑우탄에게 훨씬 적은 관심을 보인 듯하다." (5) 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지나친 것으로 들릴 수 있겠으나, 말레이/인도네시아어로 "숲 사람"이라는 뜻인 "오랑 우탄"(혹은 "오랑 후탄")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한 저자들의 논의는 이 사안에 대해 필자가 생각에 잠기는 계기가 되었다.

저자들은 "오랑우탄"이라는 이름의 연원이 17세기 네덜란드 학자들까지 거슬러올라간다는 것을 발견하였으며, 오랑우탄의 고향에서 이 이름이 쓰이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으리라고 주장한다.[1] 예를 들자면 저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이전에는 인도네시아 군도의 말레이어 구사자들이 이 유인원을 부르는 이름으로 '오랑 우탄'이나 이와 유사한 이름을 사용했다는 문헌 상의 기록이 없다."

"호주 국립 대학교에 위치한 인터넷 상의 말레이 연합 프로젝트는 '오랑 후탄'에 대한 많은 용례를 포함하고 있으나, 19세기 중반 이전까지는 그 용례가 모두 (종종 깔보는 투로) 숲에 사는 인간을 가리킨다..."

"사실, 유인원을 지칭하는데 오랑 후탄과 유사한 말레이 용어가 쓰인 기록에는 이 용어가 서양의 용어라고 밝히고 있다. 1840년대에 저술된 히카얏 압둘라(Hikayat Abdullah)에서 회고하는 바에 따르면, '삼바스의 지도자가 래플스 씨에게 영국인들이 오랑-우탕이라고 부르는 유인원 두 마리를 선물했다.'고 한다."



말레이어로 "오랑우탄"이라는 용어가 유인원을 의미하는 것으로 쓰인 최초 용례가 히카얏 압둘라에 등장했다는 점을 필자는 특히 흥미롭다고 여긴다. 히카얏 압둘라는 믈라까 출신 학자 압둘라 빈 압둘 카디르(Abdullah bin Abdul Kadir, 1796~1854)의 저술인데, 압둘 카디르는 서양 지식에 통달했고 서양 사상을 소개함으로써 말레이 구사자들의 지적 세계를 변화시키기 시작한 인물로 알려져있다. 

그리고 압둘 카디르는 정치와 사회에 대한 다양한 서양 사상을 소개한것으로 유명한 한편, 그는 독자들에게 "서양" 용어인 "오랑우탄"도 소개한 셈이다.


이리하여 다시금 "네덜란드인" 이야기로 돌아온다. 필자는 코주부원숭이가 어떻게 하여 "네덜란드인"이라 불리게 되었는지 전혀 모르지만, 보르네오의 야생 인간에 서술된 "오랑우탄"의 연혁에 대해 읽고나니, 필자는 "네덜란드인"도 마찬가지로 복잡한 과정을 거쳤으리라 추측하고 싶다. 

결국, 필자가 여기서 중요하다고 보는 부분은 바로 "서양" 지식과 "토속" 지식 사이의 경계선이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만큼 선명한 경우가 드물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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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자들은 '오랑우탄'이라는 이름의 연원이 17세기 네덜란드 학자들까지 거슬러올라간다는 것을 발견하였으며, 오랑우탄의 고향에서 이 이름이 쓰이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으리라고 주장한다."

  
어쩌면 오랑우탄이 (본고장 밖 중국 등지에서) 한문으로 기록되는 연혁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볼 수 있다.





이 성성(猩猩)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이시진은 성성이가 사람의 모습을 했지만 앞에서 본 미후와 함께 짐승(獸部)으로 분류되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성성을 분류하는 것은 이시진에게 난제였다. 이시진이 인용한 주요 문헌, 이아익(爾雅翼)에 따르면, 성성은 머리카락이 길고 무릎이 없는 벌거숭이, 맨발 야녀(野女)와 매우 흡사했고, 무리를 지어 이동했다. 많은 사람들이 성성이를 "야인(野人)"이라고 불렀다. 이 기록에 따르면, 성성이는 야녀(野女) 또는 야파(野婆)와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이시진은 적었다. 야녀와 야파는 본초강목에서 성성의 다음에 실렸다. 

원문: Carla Nappi, "On Yeti and Being Just" in Aaron Gross and Anne Vallely, eds., Animals and the Human Imagination: A Companion to Animal Studies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2), 62.


원문 포스팅의 댓글을 보면, 오랑우탄 화석에 대한 박사학위 논문을 쓴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의 고인류학 교수 Gerrell Drawhorn이 "오랑우탄이 보르네오의 다약 원주민에게는 Mias라고 불렸으며, 보르네오를 오고가는 상인 집단이 수출품목으로서의 오랑우탄에 비즈니스용 이름을 붙였을 수도 있다는 가설을 제기하고 있다.

이 가설에 이어서 생각해보자면, "오랑 후탄"이나 "야인"은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고민하는 중국과 서양의 근세인/근대인에게)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광고문구/브랜드명이라는 것이다...

인도차이나 카테고리의 포스팅 목록 및 순서 (목록화 진행중) 인도차이나 ~Indochine~

제가 하도 자타 블로그에 링크를 정신없게 걸어놓아서, 이런 '읽기 순서' 정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Matt Matsuda, Empire of Love: Histories of France and the Pacific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5), chapter 6, “Indochina,” 137-160.

원문 순서.

(원주민 사로잡기, 마음 사로잡기)

(여자는 100-150 프랑입니다. 하지만 향수, 보석 사주는데 돈이 열 배는 더 들겁니다.)

(미래의 배우자를 "알아간다는 것"은 대개 경찰 조사 보고서를 읽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식민지 프랑스인들은, 원주민과 한 지붕 아래서 사는 누이들을 차별했다.)

*149페이지는 식민지 시대의 문학 작품 만을 다뤄서 번역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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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loan Hill, "Strangers in a Foreign Land: Vietnamese Soldiers and Workers in France during World War I," in Nhung Tuyet Tran and Anthony Reid, eds., Viet Nam: Borderless Histories (Madison: University of Wisconsin Press,2006)

원문 순서.

(전장에서 미국인의 존재가 베트남인의 사기를 회복시켜주었다)

(남자는 군사재판은 면했지만 "감히 프랑스 소녀와 사랑에 빠졌다"는 이유로 15일 간 구금되었다.)

3. To be continued...


(마르세유 항에 도착한 베트남 군인들,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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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Minh Khai Blog 번역 (하와이 대학 Liam Kelley 교수님의 블로그)

원문 순서 (Kelley 교수님 블로그에 게재된 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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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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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othy Brook, Mr. Selden's Map of China, (New York: Bloomsbury Press, 2013).


2.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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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에서 보이지 않는 남베트남. 인도차이나 ~Indochine~

넷플릭스에 다큐멘터리 "베트남 전쟁 10부작"이 올라왔더군요.
여기에 대한 베트남 역사학자 Liam Kelley 교수님의 감상평, The Absence of South Vietnam in "The Vietnam War" and in the American Consciousness를 번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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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px "굴림","Gulim"; text-align: left; text-transform: none; text-indent: 0px; letter-spacing: normal; text-decoration: none; word-spacing: 0px; display: inline !important; white-space: normal; orphans: 2; font-size-adjust: none; font-stretch: 100%; float: none; -webkit-text-stroke-width: 0px; background-color: transparent;'>"베트남 전쟁"과 미국인의 의식 속에 보이지 않는 남베트남의 존재



필자는 켄 번스와 린 노빅이 제작한 "베트남 전쟁" 10부작 다큐멘터리 시청을 마쳤다. 1화는 (지나치게 축약 및 단순화되었기 때문에)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뒤로 갈수록 만듬새가 훨씬 좋아졌다.  

궁극적으로, 이 다큐멘터리는 "베트남"에 대한 영화라기보다는 "미국"에 대한 영화다. 번스와 노빅이 보이고자 한 것은 오늘날 미국 사회를 분열시키고 있는 깊은 간극의 유래를 베트남 전쟁 시기까지 추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당시에 어떻게 분열되었는지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번스와 노빅은 미국 내/출신의 특정 개인이나 단체를 호의적으로 비추지 않으려고 한다. 각 개인 및 단체의 복합성을 보여줌으로써 이를 달성하는데, 그리 함으로써 제작진은 매체에서 흔히 비춰지는 방식과 다르게 이 시기를 조명한다. 예를 들어, 번스와 노빅이 반전운동 역사 상의 유명 사건을 거론할 때마다, 거의 매번 잇달아 미국인들이 반전 시위대 보다 경찰 및 기존질서의 행동을 선호했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보여준다. 

이를 보수 세력의 "팩트" 왜곡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겠으나, 다큐멘터리의 목표가 왜 미국이 이토록 분열되어있는지를 설명하기 위함이라면 반전 운동을 이런 방식으로 맥락화하는 것은 효과적이다. 

"이를 보수 세력의 "팩트" 왜곡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겠으나..."


그러나, 미국인들이 보인 다양한 시각의 복합성을 보려는 노력에도 유독 눈에 띄지 않는 주제가 하나 있다. 남베트남과 남베트남 사람들이다. 18시간 길이의 다큐멘터리 중 인터뷰에 응하는 미국인들과 나레이터는 남베트남과 남베트남 사람들에 대해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이게 미국인들과 미국인의 생각에 대한 다큐멘터리일지언정, 베트남 전쟁은 남베트남을 보호하는 전쟁이라는 명분 하에 치뤄졌다. 남베트남은 미국의 동맹국이었다. 그렇다면 미국인들은 남베트남과 남베트남인들에 대해 뭐라도 할 말이 있지 않을까?

이 다큐멘터리에서 남베트남에 대한 유일한 언급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남베트남 정부는 부패했고 남베트남 군대는 무능했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미국인들은 남베트남과 남베트남인들에 대해 뭐라도 할 말이 있지 않을까?"


필자는 뿌리깊은 인종차별과 이중잣대가 이 다큐멘터리에 18시간 장장 묻어난다고 느끼며, 이는 베트남 전쟁에 대해 미국인이 집합적으로 갖고 있는 인식과 시각을 반영한다고 본다.

다큐멘터리 내내 우리는 남베트남 군대가 무능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들은 전쟁 내내 계속 무시되다가 구정 공세 때가 되자 갑자기 똑같은 남베트남 군대가 매우 효율적으로 싸워나가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미국이 북베트남과 여러 번 협상을 하는 동안, 남베트남 정부에게는 이 사실을 알리지조차 않았다고 다큐멘터리에서는 말하고 있다. 게다가 1965년 미 해병대의 상륙도 남베트남 정부에게 통보하지 않은 채 이뤄졌다고 말하고 있다. 

남베트남 정부가 피닉스 계획을 저평가한데에는 남베트남이 군대 차원에서 복수 살인을 했기 때문이라고 비춰진다. (그리고 연장선 상에서 미국 군대는 뻔히 훈련이 부족한 인원에게 이 계획 운용을 맡긴 것에 대해 비난받는다) 그러나 미군이 민간인을 대상으로 사격했을 때는... "어쩔 수 없는 전쟁이었다."

우리는 또한 적군은 지형을 알고 있었고 미군은 몰랐기 때문에 미군이 불리한 조건에서 싸웠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남베트남 사람들이 사는 지역에서 전쟁을 치뤘으며, 정작 그 지역 출신의 남베트남 장교와 병사가 있었을 것이다. 이들은 지형을 알았을 텐데, 아무도 이들과 상의하지 않은 것인가? 

영화 결말부에 가면 우리는 미국인 참전자들이 과거의 적과 화해하는 모습을 본다. 그러나 참전자들이 과거의 동맹과 그 어떤 형태의 대화나 교류를 하는 장면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같은 맥락에서 남베트남과 남베트남 사람들에 대한 무시는 반전 운동 측에서도 마찬가지로 했으리라는 것이 분명한다. 반전 운동의 소속원들은 베트남 전체의 무고한 민간인 살인에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동맹국 남베트남을 수호하는데는 관심이 적었고, 부패한 남베트남 정부와 무능한 남베트남 군대라는 묘사는 반전운동 세력의 전쟁 비판 논조와 딱 맞아떨어졌다.   


"아무도 이들과 상의하지 않은 것인가?"


18시간 장장 이어지는 다큐멘터리 중 필자가 여기서 말하는 사안을 지적하는 장면이 더러 있기는 하다. (아마도 8화 중) 한 장면에서 참전군인 토마스 발렐리는 미국인들이 남베트남의 무능함을 과장해서 자기자신들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고 말한다.

최종화(10화)에서, 전직 CIA 직원 프랑크 스넵과 전직 첩보 요원 스튜어트 헤링턴은 입을 모아 미국이 어떻게 동맹국을 팔아넘겼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두 인물 모두 1975년 사이공 함락 당시의 마지막 미국인 구출에 동참하였으며 직접 수 년 간 미국인과 협력해온 남베트남인들이 뒤에 남겨지는 것을 목격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몇 마디를 제외하면 남베트남은 거의 언급되지 않으며, 언급되더라도 부패하고 무능했다는 캐리커쳐를 그저 반복하기 위함이다.


"남베트남의 무능함을 과장해서 자기자신들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고 말한다."


"베트남 전쟁" 속 남베트남과 남베트남 사람의 부재는 켄 번스나 린 노빅의 편견 혹은 왜곡에 따른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제작진이 남베트남과 남베트남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음으로써 미국인이 베트남 전쟁을 보는 주류 시각을 포착해냈다고 필자는 주장하겠다.  

베트남 전쟁은 미국의 동맹국이 미국 사람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던 전쟁이었다.

왜 중요하지 않았을까? 여기에는 분명 복잡한 이유가 있지만, 확실한 것은 남베트남을 폄하하는 것이 미국인에게는 여러모로 편리했다는 것이다. 

당시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미국 정책이 성공을 거두지 못했을 때, 남베트남 정부가 부패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편리했다. 

남베트남 측과 상의하지 않은 채 미군이 단독으로 싸운 전투가 성공적이지 못했을 때, 남베트남 군인이 무능하고 자기 전쟁을 자기가 싸우지 않는다며 화를 내기란 편리했다. 

자신이 징병 대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남베트남을 부패하고 무능하기 때문에 미국의 지원을 받을 가치가 없다고 묘사함으로써 전쟁 전체를 비난하기란 편리했다. 

남베트남 사람들이 동양인이라는 점이 이 모든 폄하를 하는 것을 한결 더 수월하게 만들었을까? 미국 내에 이 주장을 받아칠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필자는 베트남 전쟁을 이해하는데 이 점은 중요한 요소라고 확신한다. 


"확실한 것은 남베트남을 폄하하는 것이 미국인에게는 여러모로 편리했다는 것이다."


물론 남베트남 사람들과 긴밀히 협력한 미국인도 여럿 있었으며, 필자가 위에서 그린 넓은 범주에 들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은 소수였으며, 제작진이 충실히 재현한 것은 다수의 시각이다.   

최근까지, 남베트남은 학술계에서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10-15년간 역사학자들은 남베트남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미국인들이 여태껏 무시해온 세계를 조명하는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위의 책이 한 가지 예이고, 여기 또다른 예가 있다.) 그렇듯, 오늘날 미국인들은 수십년간 그들이 보인 전쟁관의 기반이 되어온 남베트남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를 넘어설 수 있으나, 이를 시도조차 하지 않는 편이 "미국의 경험"에 더 가까울 수도 있다.

필자는 이러한 평을 내림으로써 전쟁의 정당성이나, 전쟁을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었는지 등에 대한 논의를 재활성하고자 하는 바가 아니며, 필자는 다큐멘터리 "베트남 전쟁"에 제시된 관점과 생각을 비판할 의도가 전혀 없다.

필자는 제작진이 베트남 전쟁에 대해 이야기할 때 서로 다른 여러 미국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보여주는 훌륭한 작업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쩌면 제작진이 이 작업을 워낙 잘 했기 때문에, 미국인들이 베트남 전쟁 이야기를 할 때 "안" 생각하는 부분이 극명히 드러나는 것이리라. 

마지막으로, 모든 국가는 자국의 이익을 먼저 챙긴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으나, 이 사안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부패"하고 "무능"한 남베트남 사람들 중 많은 수가 결국 미국 국민이 되었다는 것이다. 제작진이 미국 사회 내의 분열이 처음 어떻게 등장했는지 시청자들에게 보여줌으로써 분열을 치유하고자 한다면, 남베트남과 남베트남 사람들을 계속해서 무시하는 것이 여기에 보탬이 된다고는 보기 어렵다. 

볏의 용도를 알 수 없는 스피노사우루스 용은 換骨하고 뱀은 奪胎한다

보레알로펠타, 데이노케이루스 포스팅과 같은 작가, 
츠쿠노스케(ツク之助) 님의 공룡 만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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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볏으로 그늘... 혹은 헤엄치는 용도라니 뭔가 이 계절에 어울리네요^^

바타비아 총독 관저를 습격한 아코번 낭인들! 창작물의 원형을 찾아서~



날씨가 더워졌네요.

그렇다면 작년 크리스마스 때 썼던 포스팅으로 잠깐 환기해보겠습니다. 




제가 이따끔씩 하는 "닮은 그림 찾기" 포스팅이었는데,

야스다 라이슈(安田雷洲)의 아코번 낭인들의 복수도(赤穂義士報讐図)와, 
네덜란드 화가 아르놀트 호우브라켄Arnold Houbraken(1660-1719)이 그린 신약성서 삽화 "목동들의 경배"였죠?


그런데 사실 츄신구라 사건을 다룬 서양화 트레이싱 그림은 또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블로거, 아케치 님의 이 포스팅을 보고, 문득 떠올랐는데요... 

1830,40년대 우타가와 쿠니요시의 「忠臣蔵十一段目夜討之図」


두번째 그림은 1682년 Johan Nieuhof의 Stats Meesters en Konstenars Woningen  (바타비아 관료와 예술가들의 집)입니다.


(나가사키를 제외한) 일본에는 흑인들이 저렇게 돌아다니질 않으니까 개로 바꿔놓았군요... 뭔가 찝찝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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