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베트남의 노자(獠子) 인도차이나 ~Indochine~

Liam Kelley 교수님의 Lạo Tư in Giao Chỉ를 번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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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14세기에 쓰인 안남지략(安南志略)을 살펴보던 중 노자(獠子)에 대한 구절을 보았다. 노자란 당시 중국 서남 지역에서 북서부 베트남과 동부 라오스에 걸쳐 살던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노()"는 베트남어는 리에우(Liêu), 중국어는 랴오(Liao)라고 발음할 수 있다. 그러나, 남서부 중국에서 베트남-라오스 국경 지대에 걸쳐 생활한 사람들을 일컬을 때는 대개 "라오(Lạo/Lao)"로 읽는다. 

이들을 "라오"라고 부르는 것이 편리하겠으나, 아마도 이 말은 라오 족, 검은 타이 족, 심지어 타이 어족에 속하지 않은 언어를 구사한 민족까지 포함해 여러 민족을 지칭했을 것이다.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안남지략은 노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노자(獠子)는 만자(蠻子)의 다른 이름이다. 많은 노자가 호광(湖廣)과 운남(雲南)에 노예로 있다. 교지(交阯)에 복역하는 노자도 있다.* 또한 이마에 (문신을) 새기고 이빨에 구멍을 뚫는 자들도 있다. 종류가 아주 많다. 옛 기록에 실려있기를, 두형노자(頭形獠子), 적곤노자(赤裩獠子) 비음노자(鼻飲獠子)가 있다.** 모두 바위 동굴과 다락집(橧巢)에 살고 갈대로 술을 마신다(蘆酒). 적과 싸우기를 좋아하고, 동고(銅鼓)를 울린다. 높고 큰 북이 귀한 북이다. 처음에 (북을) 만들면 뜰 한가운데에 놓고 동족(同類)을 부른다. 사람이 와서 문까지 (뜰을) 가득 채운다. 부호(豪富)의 딸(女子)이 금과 은으로 만든 비녀로 북을 두드리고는 주인이 갖게 내버려둔다. 혹은 말하기를 동고는 제갈량이 남만(蠻)을 정벌하던 징(鉦)이라고 한다."

[獠子] 獠子者蠻子異名也。多隸湖廣雲南、有服役於交阯、又有雕題鑿齒者、種類頗多、周載有頭形獠子、赤裩獠子鼻飲獠子、皆居岩窟或橧巢、飲蘆酒、好戦敵、撃銅鼓、以高大者為貴、鼓初成、置庭中、設酒招同類、来者、盈門、豪富女子以金銀釵擊鼓竟即留與主或云銅鼓、乃諸葛亮征蠻鉦也。





*"호광(湖廣)"은 오늘날 후난성과 광시성에 해당하는 지역을 가리킨다. "교지(交阯)"는 홍하 삼각주 지대의 옛 이름이다. "복역(服役)"은 노역을 말할 수도 있고 군역일 수도 있기 때문에, 노자가 어떻게 교지에 "복역"했는지는 불확실하다. 

** "두형노자(頭形獠子)"라는 호칭은 아마도 "비두노자(飛頭獠子)"의 오기일 것이다. "비두노자"는 중국 사료에 나오는 노자의 한 종류고, 나머지 노자의 이름도 중국 사료에서 언급한다. 

이건 레 딱(Lê Tắc 黎崱)의 안남지략, (사고전서, 1333) 1/20a에 나오는 내용이다. 아래의 베트남어 번역은 이본을 참조한 것인데, "적과 싸우기를 좋아해, 동고(銅鼓)를 울린다." 대신 "노()를 많이 다루며, 동고(銅鼓)를 울린다."라고 되어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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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 포스팅은 2011년에 쓰였는데, 약 2년 뒤 베트남 민족사에 있어서 청동북은 무관하다? 포스팅을 쓸 때는 호전성, 청동북, 노를 모두 언급하는 안남지략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전기 공학은 어느 경전에서 나왔을까? 인도차이나 ~Indoch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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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고를 통해 근대 세계에서 살아남기 

20세기 초 베트남의 응우옌 조정 입장에서 쓴 글을 읽어보면 당시에도 서양에 대한 정보를 많이 접할 수 있었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그러니 전통 집권층은 바깥 세상에 대해 무지했던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전통 집권층에 속한 이들 중에는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유럽과 아메리카를 알고 있었고, 근년에 구미에서 일어난 발전상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역경에 대한 1910년 전시(殿試)의 모범답안은 변화를 원치 않은 사람들의 시점을 명백히 보여주는 사례다. 서양 학문과 개혁파 신서 모두가 유교 경전에 이미 기록된 내용을 담고 있을 뿐이라며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팜 꽝 산(Phạm Quang Sán) 같은 응우옌 왕조의 개혁파 조정관료가 직면한 도전과제는 전통 집권층 내부의 보수주의자들이 변화를 받아들이도록 설득할 방안을 찾는 것이었다. 

팜 꽝 산은 책학신선(策學新選)이라는 책에서 문답형식을 통해 이를 해내고자 했는데, 우선 모든 지식의 근간은 고전에 있다며 보수적 집권층의 의견에 동의했다. 또한 서양 학문도 고전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보수적 집권층과 동의했다. 그러나 팜 꽝 산은 서양인들은 고전에서 새로운 사상을 발전시킨 반면 아시아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아시아와 서양의 발달 수준 차이를 설명한다는 것이었다.  

팜 꽝 산은 "복고(復古)"할 것을 촉구했다. 이는 옛 경전으로 돌아가서 현재를 살아가는데 고전을 지침으로 삼으라는 것이 아니라, 경전에 처음으로 나타난 개념에서 당시 서양에서 발전한 양상까지 좇아가기를 원한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비로소 사회적 다윈주의의 경쟁 세계에서 아시아 사람들이 서양과 승패를 겨룰 수 있을 것(可與泰西爭勝)이라고 팜 꽝 산은 주장했다. 


팜 꽝 산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시했다. 


泰西諸國,電學重學化學礦學光學聲學,與夫天文地理,算法機器,莫不各造其極。其源流有可攷歟。有謂中國為西學之祖,於何可證。自今視之,何以相形見絀,有志新學者,如何而可。

태서(泰西)의 여러 나라는, 전학(電學), 중학(重學), 화학(化學), 광학(磺學), 광학(光學), 성학(聲學)과 더불어 천문과 지리, 산법과 기기를, 각기 그 극한으로 만들지 않은 것이 없다. 그 원류는 궁리할 수 있는 것인가? 중국이 서학(西學)의 원조라는 말이 있는데, 어떻게 고증할 수 있는가? 지금에 보기에, 어째서 형상이 못나 보이는가, 신학(新學)에 뜻을 둔 자는,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팜 꽝 산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는 4가지 질문을 던진 것이다. 
서양 학문의 원류는 규명할 수 있는가? 중국은 서양 학문의 원조인가? 아시아가 서양에 비해 부족한 부분은 무엇인가? 신학(서양 학문)을 하는 사람들은 현 상황에 대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답변에서 팜 꽝 산은 서양 학문의 원류는 분명 규명할 수 있다는 것을 보였다. 예컨대 전학(電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泰西自十八世紀以來,文化驟進,新理日出,幾有各造其極。然有學術之結果,必有學術之造因。談所新學者,不可不溯其遠因也。試原原本本而觀之,美人福蘭課倫騐乾電之理,意人凱烈佛創濕電之說,英人造電灯,美人造電報,電學之功用著矣。而溯其原則始於希臘太利司之摩擦琥珀。

태서는 18세기 이래, 문화가 약진(驟進)하고, 새로운 이론이 나날이 나와, 각기 그 극한으로 만든 것이 여럿 있다. 그러나 학술의 결과가 있으려면, 반드시 학술의 원인(造因)이 있어야 한다. 신학문을 이야기하자면, 멀리있는 그 원인을 거슬러올라가지 않을 수 없다. 

이 근원과 근본을 살펴보자면, 미국인 프랭클린(福蘭課倫)은 건전(乾電)의 이치를 실험했고, 이탈리아인 갈바니(凱烈佛)는 습전(濕電)의 설을 세웠다. 영국인은 전등을 만들었고, 미국인은 전보를 만들었으니, 전학(電學)의 공용(功用)은 뚜렷한 것이다. 그런데 그 근원으로 거슬러올라가보면, 처음에 그리스의 탈레스(太利司)가 호박(琥珀)을 마찰한 것이다. 


서양 학문 여러 분야의 근원을 살핀 뒤, 팜 꽝산은 두번째 질문을 묻는다. 중국은 서양 학문의 원조인가?

1910년 전시의 역경에 대한 시험 답안과 같이, 팜 꽝 산은 서양 학문의 모든 분야는 그 근거를 옛 중국 문헌에서 찾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전학(電學)을 예로 들자면, 팜 꽝 산은 기원전 6세기의 관윤자(關尹子)라는 문헌을 인용해 "돌이 맞부딛히면 불에서 빛이 나고, 천둥번개는 연기(緣氣)에서 나온다. 이것으로 전학의 시작을 삼을 수 있지 않은가?"

(石擊火生光,雷電緣氣而生,可以為之,非電學之始乎。)


팜 꽝 산은 나아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凡西人所稱絕學者,無非出於中國經籍之中。所謂東亞為西學之祖,於與可證矣。夫泰西之學,皆發原於亞洲,則亞洲乃孕育文明之祖國也。

무릇 서양인들이 절묘한 학문(絶學)이라 칭하는 것은, 중국 경전(中國經籍) 속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없다. 동아(東亞)를 서학(西學)의 시조라고 함은 여기서 더불어 고증할 수 있다. 무릇 태서(泰西)의 학문은, 모두 아주(亞洲)에서 발원하였으니, 아주야말로 문명을 낳고 기른 조국(祖國)이다. 


세번째 질문으로 넘어가자면, 아시아가 서양에 비해 부족한 부분은 무엇인가? 팜 꽝 산의 주장에 따르면, 아시아가 서양에 비해 뒤쳐진 이유는 비록 아시아는 모든 지식의 산실이지만 서양은 그 지식을 계속해서 개발해나갔기 때문이다.

설명은 다음과 같다.

惟墨守成法,不能推之以盡其精微,有肇造之基礎,而無進取之精神,即人文明矣,而我猶半開,人過渡矣,而我猶停頓。相形見絀,蓋以歐人得其緒,而亞人失其傳也。

"성립된 법칙(成法)만을 고수한 나머지, 이것을 미루어 그 정밀함(精微)을 다하지 못한 것이다. 창조(肇造)하는 기초는 있었으나, 진취(進取)하는 정신이 없었으니, 곧 남들이 문명(文明)하는 동안, 우리는 오직 반개(半開)한 것이고, 남들은 뛰어넘었으나, 우리는 여전히 제자리에 머무른 것이다. 형상이 못나 보이는 것은, 대개 유럽인은 그 단서를 얻었으나, 아시아인은 그 전수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네번째의 마지막 질문으로 이어진다. 서양 신학문을 장려하고자 하는 학자들은 현 상황에 대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팜 꽝 산은 여기에 다음과 같이 답한다.

有志者可不以學術為急務哉。蓋今日之日,乃學術競爭之日也。智與智爭,腦與腦競,非競爭不能以生存。況西人之所謂新學者,實皆我亞洲所固有之國粹。即不必侈言西學也。今[?]曰復古而已。

오늘날로 말할 것 같으면 학술이 경쟁하는 시대다. 지식(智)과 지식이 다투고, 두뇌(腦)와 두뇌가 겨루니, 경쟁하지 않고서는 생존할 수 없다. 무릇 서양인이 말하는 신학문은, 사실 모두 우리 아주(亞洲) 고유의 국수(國粹)다. 그러니 구태여 서학이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이제 복고라고 말해도 될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문헌이다. 팜 꽝 산의 서양 지식과 서양 학문 이해는 놀라울 만큼 폭넓고 깊으며, 동포들이 그 지식을 수용하고 배우기를 원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위해선 보수적인 관료들에게 신지식을 수용해도 된다고 설득해야 했고, 결국 팜 꽝 산은 1) 서양학문이 궁극적으로 중국에서 유래했으며 2) 동아시아의 고전에 담긴 내용을 동아시아 사람들은 확장하지 못했으나 서양인들은 해냈기 때문에 베트남인은 서양인이 생산한 지식을 배울 필요가 있다는 것을 보여야 했다.

여기서도 볼 수 있듯, 20세기 초 응우옌 조정 집권층은 서양에 대해서 몰랐던 것이 아니다. 되려 많이 알고 있었다.

여기서 "문제"는 집권층 내에서 보수적인 편에 속하는 이들이 이미 접한 신지식을 수용해도 된다고 설득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팜 꽝 산이 하려 했던 것은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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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가 투잡을 뛰면 생기는 일! Recipes Project~열띤 연재中~

Recipes Project의 "열띤 연재"에서 또 번역합니다. 이번에는 정규 기획의 일부는 아니고, 2013년 7월에 올라왔던 게시물인데 "열"과 관련 있다며 블로그 운영진이 다시 띄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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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가 투잡을 뛰면 생기는 일

틸만 타페(Tillmann Taape)

근세 연금술 비법서를 살펴보면, 현대의 보건 및 안전 요원들이 진저리 칠 만한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 놀라곤 한다. 르네상스 시대의 연금술사들은 유리나 금속이 녹아내릴 정도의 고온을 놀라우리 만큼 두려워하지 않았고, 밀봉한 유리 용기 안에 불안정한 가연성 액체를 가열할 때는 때는 각별히 조심해서 다루지 않으면 깨질 위험이 있다고 그들 스스로 인정했음에도 유리 용기를 자주 권했다. 이와 같은 실험은 분명 손가락에 화상을 입거나 펄펄 끓는 알코올을 뒤집어 쓰는 등의 사고로 이어졌을 것이 분명하다. 

동시대 풍자문학에서 그린 전형적인 연금술사를 보면, 사고는 일상 업무의 일부처럼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독일의 인문학자이자 풍자문학가 세바스챤 브란트의 바보배(1494)는 중세 시문학 전통의 연장선 상에서 연금술사를 묘사한다. 여기서 연금술사는 욕심 많고 무모한 바보인데, 위험하고 무모하게 실험을 하다가 상처 입고 파산한데다 눈까지 멀었다는 이야기다.[1] 물론 풍자문학을 사료로 쓸 때는 상당히 회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러나 명시할 만한 점은 오늘날의 보건 안전 기준이 도입되기 한참 전에도 근세인들은 연금술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을 보았다는 것이다.

반면 연금술로 인해 사고가 일어났다는 직접적인 근거는 상당히 드물다. 이 글을 읽은 독자들이 반대 근거를 제시해준다면 필자는 기쁘게 입장을 변경하겠으나, 지금까지 본 바로는 비록 연금술사들이 폭발로 이어질 것 같은 비법을 자주 적었음에도, 실제로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안타깝게도 묵묵부답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침내 연금술 실험 중 사고가 일어났다는 직접적인 사례를 발견했을 때 필자는 뛸듯 기뻤다. 증류기는 폭발하고, 연금술사는 밀려 넘어지는 총체적 난국 말이다.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의사 겸 약사 히에로니무스 브룬스윅(과거 포스팅 여기여기 참조)이 1512년에 초판한 증류대전(Liber de arte distillandi de compositis)이라는 700페이지 분량의 저서는 다음과 같은 교훈성 일화를 수록하고 있다. 

브룬스윅은 송지유에서 물을 빼내기 위해 증류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수분이 거의 다 증류되었을 즈음해서 불청객이 찾아왔다. 

"환자를 보러 가느라, 기름이 물 속으로 흘러들어갔다. 돌아왔더니 물 위에 유막이 생겨있었다. 위에 뜬 기름만 서서히 따라부었으면 되었을 것을, 전부 다 새로운 플라스크에 부어넣고는 증류를 통해 수분을 추출하기로 했다. 그런데 또 환자에게 불려가야 했고, 그 동안에 물이 기름으로부터 증발하였고, 일부는 플라스크 한 쪽에 맺혀 기름 속으로 다시 떨어졌다. 플라스크 속의 기름은 요동쳤고, 연기가 뿜어져나와, 알렘빅이 날아갔다." [2]

▲브룬스윅의 증류대전에 나오는 증류기 그림
© Wellcome Images

브룬스윅이 밤 늦게 돌아와서 현장을 조사하러 왔을 때는 더 큰 사고가 일어났다. 시종에게 횃불을 가져오라고 했는데,

"불을 내오자, 기체가 불에 닿아 화염이 사방으로 폭발했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다시 꺼졌는데, 그래도 시종과 나는 머리카락, 옷가지, 눈썹이 불에 타버렸다. 우리는 땅바닥에 넘어져 겨를이 없었으나, 머지 않아 다시 일어나서는 같은 일이 또 일어나지 않도록 닫힌 등롱을 가져왔고, 화로에 재를 던져넣어 불을 껐다."[2]

그러니 증류대전의 독자들이여, 이처럼 송지유를 증류해서는 아니 되느니라! 이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처음 접한 뒤 흥분이 가시고 나니, 단지 눈으로 읽었을 때도 위험천만해 보였던 실험 절차가 실제로도 폭발로 이어졌다는 것을 기꺼이 확인하는 것 이상으로 이 일화에서 건질 수 있는 역사적 시사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특이한 사건에서 브룬스윅은 그의 일상생활과 작업에 대해 몇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내비친다. 근세 연금술사가 여러 개의 직업을 갖는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를 짐작할 수 있다. 약사와 의사 업무를 수행하면서 틈틈히 연금술 실험을 해야 했던 브룬스윅은 한밤중에도 예고 없이 환자를 돌보러 불려가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는 한 명 이상의 하인을 두고 있었으며, 밀폐된 작업공간에서 증류를 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탁 트인 공간에서 폭발성 기체가 축적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 일화는 무엇보다도, 브룬스윅의 책에 담긴 실험절차들은 그저 필사하고 수집해서 출간한 것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실험해본 것이라는 강력한 증거를 제공한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일화는 단지 재미를 주거나 철자법도 일관되지 않게 알자스 방언으로 쓰인 수백 페이지를 독해해낸 노고를 보상하는 것 이상이다. 특이 사안에 대한 묘사를 통해 우리는 연금술의 실제와 연금술사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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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근세 연금술사에 대한 선입견과 "성격"의 변화에 대해서는 타라 눔메달(Tara Nummedal)의 "신성로마제국의 연금술과 권력"(Alchemy and Authority in the Holy Roman Empire.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7, Ch. 2.)을 참조.

[2] 히에로니무스 브룬스윅, 증류대전. Strasbourg: Grüninger, 1512.


중세 처방전으로 보는 열과 여성 생식의 관계 Recipes Project~열띤 연재中~

제가 좋아하는 Recipes Project의 "열띤 연재" 그 두번째, 중세 처방전으로 보는 열과 여성 생식의 관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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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처방전으로 보는 열과 여성 생식의 관계

캐서린 라이더(Catherine Rider)

폭염 속에서 "열"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은 다소 모순적이라고 생각된다. 지금 영국에 사는 사람들 중 열기를 높이고 싶은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중세와 근세 시대에 걸쳐 의약학 제조법을 뒷받침한 체액설에 따르면 남녀가 아이를 갖고 싶을 때 열은 굉장히 좋은 요소였다. 체액설에서 말하는 열은 성기능과 생식능력을 모두 높여준다고 여겨졌고, '뜨거운' 음식과 약물은 여러 고대, 중세, 근세 의학 문헌에서 최음제 및 생식 보조제로 추천했다. 제니퍼 에반스는 여기에 대한 근세 시대의 사례를 보여주었다. (에반스의 책과 그녀가 2013년 레시피 블로그에 기고한 글 참조.)  그러나 열은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어떤 경우에는 지나치게 많은 열은 생식기능에 지장을 초래할 수도 있었고, 그런 상황에는 '차가운' 음식과 약물을 제안할 수 있었다.  

14,15세기 의학 제조법 책에 대해 조사하면서, 필자는 회임을 돕기 위해 체열을 높이거나 낮추는 여러 약방문을 볼 것으로 예상하였다. 약방문은 라틴어 의학 문헌 보다 덜 복잡한 언어로 쓰였고, 이론 보다 치료에 초점을 두었으나, 필자가 살펴본 문헌집에 실린 약방문들은 장문의 라틴어 의학 문헌에 출처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표면에 드러나지 않더라도 종종 체액설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그럼에도 웰컴 도서관, 대영도서관, 케임브리지 도서관을 필자가 초탐한 바에 따르면, 이보다 더 다채로운 그림을 볼 수 있었다. (미출간 중세 수고본 약방문의 수량을 생각할 때, 아마 총체적인 조사는 불가능하리라 생각하지만) 총체적인 조사는 아직 못 했고, 필자가 지금까지 찾은 회임 보조 약방문들은 다양한 원리로 작용한다.

체액 불균형이라고 진단되는 상태를 고치기 위해 열을 조절하고자 하는 처방도 있다. 예컨대, 출처를 알 수 없는 15세기 의학 잡서인 웰컴도서관 MS 541의 라틴어 약방문들은 이 점을 노골적으로 명시한다.

▲웰컴도서관 MS 541 中

'회임에 방해되는 요인'이라는 장에는 다음과 같은 약방문들이 실려있다.

차가운 체액 때문에 불임이라면... (Si sterilitas fuerit propter humores frigidos...)

지나친 습기가 회임을 방해한다면... (Quod si propter nimiam humiditatem conceptio impediatur...)

여자 몸의 열이나 건조함이 불균형해서 회임을 방해한다면... (Quod si calidatate aut siccitate fuerit distemperancia in muliere impediens conceptionem...)

매 사례에서 첫 단계는 과도한 체액을 배출하고, 특정한 목욕볍과 식물 요법, 좌약을 추천한다. (웰컴도서관 MS 541, ff. 137-r-v) 수고본 전체는 디지털로 웰컴도서관 웹사이트에 올라와있다. 

헨슬로우(Henslow)가 14세기 약방문 모음집에서 인용한 대영도서관 MS Harley 2378도 이와 유사하게 여성 불임의 원인으로 열 부족을 언급했고 열을 올리는 치료법을 제안했다. 

'피가 차서 아이를 갖지 못하는 여인은: 사혈을 하고, 트리산달리(trisandali)와 다이아펜디온(diapendion)을 섭취하되, 꿀과 함께 섭취함에, 매일 그와 같이 하여, 피를 뜨겁게 잘 유지하라.' (G. Henslow, 14세기 의학 (런던, 1899). p. 104.)

그러나 14,15세기 수고본에서 볼 수 있는 약방문은 많은 경우 열과 무관한 것이 명백하다. 대신 다수의 처방전은 남자, 여자, 혹은 둘다 동물의 특정 부위, 특히 성기를 먹으라고 한다. 이와 같은 처방전은 고대 세계까지 거슬러올라가는 또다른 이론적 틀에서 작용한다. 특정 물질이 생식 기관과 감응하는 성질을 가져서 생식기관을 자극할 수 있다는 사상이다. 예컨대 영어 처방전 모음집 Liber de Diversis Medicinis에 속한 몇몇 14, 15세기 수고본을 보면 동물 성기를 이용한 처방전이 있다. 남자 아이를 낳기 위해서는, 암토끼의 자궁과 성기, 수토끼의 고환, 돼지 눈알과 간과 같은 재료인 것이다 (캐서린 라이더가 The Palgrave Handbook of Infertility in History, Gayle Davis and Tracey Loughran 편저 (Basingstoke, 2017), p. 281에 기고한 '후기 중세 영국 남자들은 불임에 어떻게 대처했나'를 참조.)

이 약방문은 모두 모니카 그린이 편집한 라틴어로 된 12세기 여성 의학 집성, 트로툴라를 직간접 출처로 뒀는데, 전수 과정에서 변형된 것도 종종 있다. 트로툴라에서는 돼지 간과 눈알 대신 간과 고환을 추천한다.[1] (그린, p. 77 참조) 트로툴라에 나오는 이 약방문은 중세 영국의 약방문 모음집에 자주 등장한다. 돼지 고환은 웰컴도서관 MS 407 (f.61r), '불임 대책'에도 등장한다. 

그린이 제시했듯이, 트로툴라는 다양한 수고본으로 영국에 유통되었으며, 몇몇 수고본에서는 중세 영어로 번역되기도 했으니, 트로툴라의 처방이 종종 약방문 모음집에 나타나고 이상할 것은 없다. 동물의 특정 부위를 이용하는 처방전은 레시피 블로그에서도 종종 다뤘다. 일례를 들자면, 로렌스 토텔린은 2015년 기고문에서 최음제로 쓰이는 숫사슴 성기를 언급한 바 있다. 트로툴라에서도 지나치게 많거나 적은 열이 남녀를 불임으로 만들 수 있다고 논한 바 있다. (그린 번역, pp. 85-7 참조) 그럼에도 트로툴라가 보인 파급력과 트로툴라의 생식기-관련 처방이 유행했다는 것을 보면 열과 체액 이론에 기반한 치료법은 중세 영국 약방문 모음집을 읽는 독자가 접할 수 있는 유일한 회임 보조 요법이 아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향후에는 영국 의학 문헌에서 어느 회임 보조법이 특히 유행했는지, 이로써 이전 시기의 라틴어 의학 문헌에서 나온 전보의 전수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는지를 심도있게 알아보고자 한다. 그러나 지금 보기에는 열을 둘러싼 치료법의 양상이 다양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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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리고 바로 그 부분을 mori님께서 번역하셨다!!

만약 남자 아이를 갖고 싶다면 남편은 산토끼의 자궁과 질을 취해서 이것을 와인과 함께 갈고 마셔라. 그리고 동시에 아내는 산토끼의 고환을 먹는다. 그리고 그녀가 월경이 끝날 때에 남편과 함께 눕게 해라. 그러면 사내아이를 가질 것이다. 

또 다른 방법. 아내로 하여금 작은 돼지의 간과 고환을 먹게 해라. 그 돼지는 암퇘지 한 마리만 가졌던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말려서 가루로 만든다. 그리고 아이를 가지지 못했던 남자에게 먹이면 그가 아이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혹은 여성도 임신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 로마 및 이슬람 세계에서는 어떻게 열을 조절했나? Recipes Project~열띤 연재中~

제가 즐겨 읽는 레시피 프로젝트(Recipes Project) 합동 블로그에서는 이번 여름 들어 "열기(heat)"를 주제로 한 연재를 하고 있습니다. 전부 소개하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연재의 첫 게시물을 번역해봅니다.

레시피 프로젝트 블로그는 전에 "뇌피셜과 갈리아 전기"를 통해 소개드린 적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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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및 이슬람 세계의 의학에서는 어떻게 열을 조절했나?

에일린 R. 다스 (Aileen R. Das)

생기를 불어넣는 원리와 연관지어지거나 동일시 된 열(熱)은 고대 그리스와 이후 로마 및 중세 이슬람 세계의 인체 이론과 관리법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현존하는 고대 그리스 시대의 의학 문헌을 통해, 고대 의사들이 인체 생리를 이해한 방식은 세계를 구성하는 원소에 대한 철학적 사고에서 크게 영향받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우주에서 불이 주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 최초의 자연 철학자는 헤라클레이토스(기원전 500년 경 활동)인 것으로 보인다. 헤라클레이토스에 따르면 모든 것은 불에서 유래해서 다양한 변화를 겪은 뒤 우리 주변에 보이는 물질들이 된다. 헤라클레이토스의 글은 현재 산재되어 있는데 의학이나 생물학에 관련된 주제를 다루지는 않는다. 그러나 후대의 엠페도클레스(기원전 495-435)와 같은 "소크라테스 이전 학자들"(헤라클레이투스를 포함해, 소크라테스 이전이나 동시대에 활동한 사상가를 일컫는 현대 용어)은 불이라는 원소가 어떻게 몸에 작용하는지를 설명했다. 의사 겸 철학자였던 엠페도클레스는 흙, 물, 불, 공기가 우주를 구성한다는 4원소설의 창시자다. 엠페도클레스는 열이 성별을 결정한다고 주장했다. 엠페도클레스가 지은 철학시 "자연에 대하여(Περὶ Φύσεως)"에서는 "자궁의 따뜻한 부분에서는 남자가 태어나며, 그래서 남자가 더 색이 짙고, 남성적이며, 털이 난 것이다"(fr. 67)라고 말한다.  


히포크라테스 전집을 쓴 이들은 체내의 열이 성장과 소화 등 몸의 기초 작용을 유지한다는 관념 하에 몇몇 치료법을 개발했다. 열의 강도는 성별에 따라 (남성이 여성 보다 따뜻하다는 식으로) 다르기도 했지만 사람 마다 다르기도 했다. 그러므로, 치료 방향을 정할  때, 의사는 환자에게 자연적으로 있는 열을 지나치게 늘리거나 줄이지 않도록 해야 했다. 히포크라테스 요법은 주로 식이요법이었는데, 히포크라테스 전통을 따르는 의사들은 몸 상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여러 성질(차고, 덥고, 마르고, 습하고, 등등)을 음식에 붙였다. 예컨대 히포크라테스 문헌군에 속하는 "식이요법 II"에서는 속쓰림을 막고 잠에 들기 위해선 '뜨겁고 쏘는 맛이 있다'고 묘사한 고수풀을 먹는 것을 추천한다. 

히포크라테스 전통의 작가들 중 음식물과 기타 자연 물질의 힘에 대한 대이론을 제공한 이는 없다. 이후 수 세기 뒤, 갈레노스(217년 경 사망)[1]라는 의사가 히포크라테스 전통과 더 이전의 철학, 고대 약학 문헌에 착안해 동물, 식물, 광물 물질의 성질에 등급을 매기는 체계를 만들었다. 고대(뿐만 아니라 중세)세계에서 음식과는 다른 약물에 해당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간하는 기준이 모호했기 때문에, 갈레노스는 식이요법 저술과 약학 저술 모두에 이 이론을 적용했다. 101가지 약재를 기록한 "단일 약재의 힘과 혼합에 대하여(De Simp. Medicament. Facultatibus)"는 가장 포괄적인 저서에 해당한다. 이 문헌에 따르면 모든 물질에는 동적인 (뜨겁고 차가운) 성질과 정적인 (마르고 습한) 성질이 4단계의 강도로 혼합되어있다. 예컨대, 지중해에 자라는 순결나무(vitex agnus-castus) 항목에서 갈레노스는 이 식물의 씨앗이 3단계로 뜨겁고 건조하다고 적는다. 의사는 약물의 성질과 강도를 확인한 뒤, 환자의 체내 불균형을 맞출 수 있는 적절한 요법을 고를 수 있다. 순결나무의 힘을 따지자면, 갈레노스는 순결나무 씨앗을 위 속의 바람을 해소하고 자궁통을 완화하는데 쓸 것을 추천하지만, 너무 뜨거운 나머지 두통을 일으킬 수 있다고 주의를 준다. 그러니 이 부작용을 피하기 위해, 순결나무 씨앗은 설탕 절임이나 기타 후식과 함께 섭취하라고 조언한다. 

▲순결나무

자연 약물의 능력에 대한 갈레노스의 이론은 고대와 중세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미쳤지만, 후대 의학자들은 갈레노스가 복합 약물의 재료 비율을 정확히 계산하는 법을 설명하지 못한 점을 보완하고자 하였다. 아부 야꿉 이븐 이스하끄 알킨디(801-866년 경)는 비록 의사는 아니었지만, 그리스 의학 문헌의 아랍어 번역을 후원했으며, 복잡한 산술 이론을 개발함으로써 예컨대 서로 다른 수준으로 뜨거운 약재를 혼합한 약물의 힘을 수량화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 이론에 따르면, 한 물질의 강도는 2의 제곱에 비례해 증가한다. 그러므로, 뜨거운 부분과 차가운 부분이 동일하게 함유된 '미지근한' 약재를 섭취하려는데 뜨거운 부분을 두 배로 늘린다면, 그 약은 1도의 뜨거운 성질을 띨 것이다. 뜨거운 부분을 4배로 늘린다면 약은 2도의 뜨거운 성질을 띨 것이다. 약을 처방하는 사람은 이 비율을 염두에 두고, 혼합약물에 들어가는 약재의 무게를 재서 원하는 강도를 낼 수 있다. 갈레노스의 약학에서 허점을 보완한 알킨디의 해답은 중세 이슬람 세계에서 뿐만 아니라 12세기에 라틴어 번역을 통해 이를 접한 유럽의 의사들 사이에서도 유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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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갈레노스에 대해서는 mori님의 글들을 참조!

"여자는 남자보다 불완전한데 그 중요한 원인은 바로 하나 여자는 더 차갑기 때문이다. 동물들 중에서도 더 따뜻한 것들이 더 활동적이고, 더 차가운 동물은 더 따뜻한 동물보다 열등하다. 두번째 원인은 해부할 때 보인다. 이 문제야말로 내가 방금 암시한 것인데 내가 설명하기는 어렵겠지만 지금 기회가 마침 되었으므로 나는 기록해야만 하며 지금 읽고 있는 당신은 내가 지금 설명하는 것들을 직접 보지 않은 이상 이 글에 대한 판단을 함부로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나는 그 신체 기관들을 보았기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에서 생략된 것을 덧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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