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타이 언어의 동남아 전파 (1) 인도차이나 ~Indochine~

핏타야왓 핏타야폰 교수님이 2009년에 쓴 글 한 편을 번역합니다. 
아마 5부로 나눠서 번역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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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스트, 강, 악어 
- 타이 언어의 동남아 전파

출라롱콘 대학 교수, 
핏타야왓 핏타야폰 (미국 코넬 대학 언어학 박사, 2009)

광시성 좡족 자치구의 동부 산악지대에 위치한 진슈진(鎭)에서 버스에 올라타 다음 답사지 구이린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구이린은 경관이 좋기로 유명한 시골 마을이다. 넓고 느리게 흐르는 강물이 얽혀있는 녹색 대지 위로 기이한 모양의 대리석 봉우리들이 솟아있었다. 대리석을 깎아만든 지형에 흐르는 긴 강의 모습은 국경 너머에 있는 베트남 북부의 높은 산 깊은 골을 따라 흘러내리는 개울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그림 1] 타이 제어와 관련 언어의 대략적 분포


필자는 동남아시아와 중국에서 타이 제어(Tai languages,타이 諸語) 음성체계가 겪은 역사적 발달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중국-베트남 국경 지대로 답사를 가게 되었다. 그곳 사람들의 언어는 필자의 모국어인 태국어와는 상당히 다르면서도 그 시원(始原)을 같이한다는 것은 알아볼 수 있다.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 여태껏 해온 현지답사와 앞으로 해야할 연구를 생각하다보니, 자꾸만 떠오르는 물음표 하나가 있었다. 동남아시아의 타이 언어들은 어디서 왔을까? 필자는 머릿속에서 베트남과 중국을 오가며 답사 경험을 정리하려고 애썼다. 그렇게 고된 답사 여정이 나날이 이어지던 차에 어느덧 눈 앞이 탁 트였다. 광시성의 지형을 보니 필자의 궁금증에 대한 답이 뻔히 나와있는 것이었다. 


"동남아시아의 타이 언어들은 어디서 왔을까?"


타이 제어는 비유적으로 친척관계라고 불리곤 한다. 타이 조어(Proto-Tai, 타이 祖語)라는 조상님 한 분으로부터 내려오는 언어 가족인 것이다. 오늘날의 타이 제어에 대한 비교 연구 덕분에 우리가 타이 조어에 대해 아는 바도 늘어나고 있다. 이 언어 가족은 작은 지파(支派)들로 이뤄져있다. 언어학자들은 여전히 타이 언어의 족보를 어떻게 그려야하는지를 두고 논쟁하지만, 일반적으로 3개의 큰 지파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 세가지는 북부 타이, 중부 타이, 서남부 타이 언어이다. (Li 1977)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동남아시아 내륙부에 자리잡은 타이 언어들은 서남부 타이어에 속한다는 것이다. 태국어, 샨 방언, 타이 위안(Tai Yuan, 북부 태국어 Northern Thai), 라오 방언, 루에 방언, 검은 타이어, 흰 타이어 등이 그렇다. 동남아 반도 상에서 중부 또는 북부 타이 언어를 구사하는 인구는 소수다. 이들 중 거의 전부가 중국과 접경해있는 베트남 북부에 산다.

동남아시아 타이 언어의 근원지를 찾기 위해서는 우선 서남 타이 언어가 어디서 처음 쓰이기 시작했는지를 찾아내야 한다. 우리 시대에는, 동쪽으로는 베트남, 서쪽으로는 인도의 아삼, 북쪽으로는 윈난과 광시, 남쪽으로는 말레이시아에까지 이르는 광대한 영역에서 타이 제어가 쓰인다. 그러나 몇 세기 전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타이 제어의 기원지는 아마도 중국 남부의 시(Xi) 강 유역이다. 시 강은 베트남 홍하의 북쪽 지류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타이 조어가 쓰이던 시기와 (아마도 10세기 경) 서남 타이어가 동남아시아 내륙부로 퍼지기 시작한 시기 사이의 1,000년이라는 기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알고있지 못하다. (Diller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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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청동북을 녹이려 했다? 인도차이나 ~Indochine~

제가 작년 연말에 영어로 썼던 글을 다시 한국어로 풀어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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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청동북을 녹이려 했다?

리암 켈리 교수님의 글에 "대해서" 제가 글을 쓰는 것은 처음이네요. 저는 여태껏 켈리 교수님의 블로그에서 60여편의 글을 번역했습니다. 한국인들이 베트남사에 관한 (전문 역사학자가 쓴) 좋은 글을 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건데요.

Le Minh Khai 블로그에서 제가 가장 최근에 번역한 글은 "베트남의 청동북에 왜 한자가 써있을까?"입니다. 켈리 교수님께서는 이 글을 2015년에 쓰셨으니 지금은 이 주제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고 계실 가능성도 있겠네요. 그럼에도 워낙 재미있는 주제라서 감히 첨언을 하고 싶어졌습니다. 


우선, 켈리 교수님께서 쓴 내용을 요약해보겠습니다.

1) 한문이 새겨진 "베트남" 청동북이 몇 개 있는데, 개수 상으로는 매우 적다.

2) (교수님께서 글에서 언급하시는) 북 2개에 적힌 한문은 특정한 형식을 따른다. 지명과 북의 무게를 기록한다는 것.

3) 지명이 새겨진 청동기는 일반적으로 제사용이고, 2개의 북에 적힌 지명은 오늘날 베트남의 지명을 가리킨다.

4) 청동기의 무게를 기입한 것은 이상한데, 무게추로 이용한 청동기에만 그런 명문이 새겨져있기 때문이다.

5) 그러므로 이 북은 2가지 서로 다른 성격의 정보를 담고 있다. 지명(제사용 목적)과 무게(실용적 목적).

6) 켈리 교수님은 이 북은 "녹여서 다른 것으로 주조하기 위해 가져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7) 어쩌면 이 북들은 마원(馬援) 장군이 오늘날 베트남 북부에 해당하는 지역을 정복한 뒤 청동북을 녹여서 말 동상으로 만들었다는 한대(漢代)의 전설과 연관이 있을 수도 있다.

8) 해당 전설은 기존 힘의 상징인 청동북을 정복자가 자신의 힘의 상징으로 재주조하는 행위로 해석할 수 있다.

9) 그렇다는 것은 이 2개의 북은 녹여서 재주조하는 과정에서 운 좋게 살아남은 몇 안되는 케이스다. 


제가 처음으로 이 가설에 대해서 읽고는 굉장히 신이 났습니다. 불가사의한 명문이 새겨진 청동북, 상징적 힘 사이의 갈등, 문명의 파괴, 유물을 통해 증명해내는 전설... 흥미진진하죠!

그래서 저는 청동북에 새겨진 명문에 대해서 더 알고 싶었습니다. 켈리 교수님께서는 고고학자 응우옌 비엣 박사님의 웹사이트로 이어지는 링크를 제공해주셨더군요. 여기서 응우옌 박사님의 일부 논문을 읽어볼 수 있었습니다. 


2개의 청동북은 아래와 같은 명문이 새겨져있습니다. (여기서는 편의상 A와 B라고 부르겠습니다.)

A)
回河州 / 鼓 / 重量千百八十
지명 / 용도 / 무게

B)

玖甄 / 重六均五斤八 / 名曰富 / 第未十一

지명   /   무게    /    이름    /    번호

네, 북 두 개 모두 지명도 적혀있고 무게도 적혀있네요.

그런데 응우옌 박사님에 따르면 이것과 아주 유사한 형식을 따르는 한문이 적힌 청동 유물은 2개가 더 있다고 합니다. 단지 이번에는 청동북이 아니라 청동 항아리입니다.

응우옌 박사님은 명문을 아래와 같이 해독했습니다.

C)
龍縣 / 重六 (衡) / 名曰果 / 第未五十二 / 容一廿一斗七升半升
지명  /  무게   /   이름   /   번호   /   용량    

D)
累樓  /  壺  / 容 一石 / 名曰萬歲 / 第未十六
지명 / 용도 / 용량 / 이름 / 번호  


제가 보기에 가장 이상한 점은 항아리 용량(얼마나 되는 부피를 담을 수 있는지)을 기재한 부분입니다. 

물론 청동 "항아리"도 상징적 제사 도구였을 수 있습니다. 사실, 중국의 청동기 중에는 항아리(솥)이 정말 많죠.

그리고 이 청동기들을 모두 재주조하려고 했다면, 무게를 기록하는 것은 말이 됩니다. 켈리 교수님께서 주장하셨듯이, 이걸 녹였을 때 청동을 얼마나 얻게 되는지를 기록하기 위함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용량을 기재하는 건 녹인다고 할 때 무슨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보기에는 실용적인 정보 (무게와 용량)이 새겨졌다고 해서 이 청동기들이 파괴될 운명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D를 보면, 무게 정보는 없고 용량만 기재되어있기도 하죠.

그러니 보다 유력한 해석은 아마도 새로 획득한 물건에 여러가지 치수를 적어놓은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이 명문을 새긴 사람들은 이 물건들에 대해 더 잘 알고 싶었던 거죠. 이름, 용도, 어디서 왔는지, 등등.

그리고 번호까지 붙여서 기록한거죠. 11번 물건은 북, 16번 물건은 호리병, 52번 물건은 항아리, 하는 식으로요. 하지만 모든 청동기에 번호를 매기지는 않았습니다. 어쩌면 처음에는 이런 물건을 몇 개만 수집할 생각이었다가 너무 많아졌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니까 저도 이 물건들이 현지인들에게 상징적인 물건이었다는 점에는 동의합니다. 그러니까 부(富), 만세(萬歲), 결실(果) 같은 강력한 상징적인 이름들을 갖고 있던거겠죠.

그리고 베트남 북부 현지에 대해서 잘 모르는 (정복자는 아니더라도) 강력한 외부인이 수집했다고 생각합니다. 
(응우옌 박사님도 명문에 "이름"이 기재되어있는 점에 대해 비슷한 주장을 합니다.)

하지만 이 물건들이 파괴된 뒤에 다른 물건으로 재주조될 계획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항아리를 보면 계속해서 쓸 목적의 정보가 기입되어있거든요. 예를 들자면 이 호리병에는 물을 얼마나 많이 담을 수 있나, 같은 거요.

또 어쩌면 "외부인"이 새롭게 획득한 물건의 문화 역사적 지식의 일환으로 기록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생각나는 유사 사례로는 15세기 중국인이 고동(古銅)에 대해 쓴 글이 있습니다.

참칭자 진우량의 후손들은 황주(黃州) 지역에 흩어져 살았고 모두 비루한 사람들이다. 그 중 한 집안이 유(卣, 돔 모양의 뚜껑이 달린 술주전자)를 갖고 있었는데 그 제도가 몹시 오래되었다. 나의 벗 오원벽이 황주부(黃州府) 판관으로 부임했을 때, 채단(彩段) 한 단()을 주고 바꿔왔다. 좁쌀이 한 말(斗)이나 들어갈 만큼 크고, 안팎으로 황토색이 많은데, 간간이 붉고 푸른(朱翠) 색이 들어갔다. 금은동(金銀銅)으로 도금되어 있었다. 이미 변해 있었는데, ()자형 글자가 많이 새겨져 있었다. 참으로 상()대의 물건이다.

主陳友諒之苗裔,散處於黃,皆樸魯之人。有一家藏一,其制甚古,吾友吳元璧判府,以彩段一端易之。大可容粟,內外多黃土色,間有朱翠,錯以金銀銅之質。已化矣,文多丁字,商物也。

크레이그 클루나스의 장물지(pp. 99)에 인용된 구절입니다. 


마지막으로, 켈리 교수님께서는 식자층이 "정보를 기록하려는 학구열이 넘쳐서" 무언가를 기록했다는 생각을 싫어하신다는 걸 알지만, 또 모르는 일이죠. 어쩌면 외부 침입자들이 그날따라 특히 기분이 좋았는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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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조선의 물담배... 그리고 안동소주! 용틀임하는 동아시아 근세

앞서 소개드린 오주연문장전산고 인사편-용기류 마당에는 피클드 헤링과 훠로우 만드는 법만 실려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도 이규경이 변증하는 재미난 물건을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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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아래와 같은 1910년 베트남 과거시험 전시(殿試) 문제와 모범답안을 소개드린 적이 있습니다. 기억하실런지요.

[문제]
역경(易)이라는 책은 광대하고 두루 갖추었다. 13괘를 상상(尙象)해서 제기(制器)하였으니, 계사(繫辭)에서 말한 바가 상세하다. 지금 역경을 공부하는 자는, 64괘에서 취해서 제기(制器)하는 정심(精心)을 볼 수 있는가? 근래 신서에서는 묵적(墨翟)을 중국 격치가(格致家)의 시초(初租)로 밀고, 역경은 다루지 않는다. 그리 말하는 것은 타당한가? 부당한가?


[모범답안 中]
서양인이 말하는 이(理)는, 사행(四行)보다 정밀한 것이 없으니, 선천정위(先天正位)한 음양사상(陰陽四象)의 괘입니다. 서양인이 말하는 기(氣)는, 십자(十字)보다 정밀한 것이 없으니, 하도오수(河圖五數)의 종횡십자(縱橫十字)의 설입니다. 이를 미루어보면, 건(乾)이 말하는 바는 '하늘의 운행은 굳셈'(天行健)이니, 곧 천문으로 고증할 수 있고, 곤(坤)이 말하는 바는 '두텁게 물건을 실음'(厚載物)이니 지리에서 관찰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칭(稱)은 '물건을 고르게 펼침'(物平施)이니 중학(重學)의 시초이고, 리(離)는 '겹친 빛이 이어서 비춤'(重光繼炤)이니 광학의 시초이며, 물과 불에는 기제(旣濟)와 미제(未濟)가 있으니 또한 화학의 시초가 아니겠습니까? 


"물과 불에는 기제와 미제가 있으니 또한 화학의 시초가 아니겠습니까?"


이때 설명드렸다시피, 주역에서 미제는 불이 위에, 물이 아래에 있는 상태를 일컫고, 
기제는 그 반대로 불이 아래, 물이 위에 있는 상태입니다.

미제 상태에서는 위로 타오르는 불과 아래로 흐르는 물이 제각각의 성질만을 따라서 화합이 이뤄지지 않고,
기제 상태에서는 불과 물이 화합을 이루는 좋은 상황이라는 것인데요.

수증기가 올라가 구름이 되어 비를 내리고...
이렇게 물의 순환이 이뤄짐으로써 만물이 소생하는 현상을 "기제"의 가장 직관적인 형태라고 설명하기도 하더군요.



오늘 소개하고 싶은 기록은 바로 이 "기제" 현상에 대한 글입니다.

이름하야, 오주연문장전산고의 수화기제로변증설!


다만 잘 띄어 읽으셔야 합니다.

수화기_제로_변증설이 아니라, 수화_기제_로_변증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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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물학(名物學)에서는 아무리 작고 지엽적인 것이더라도 군자가 하나라도 모르는 걸 부끄러워 했으니, 곧 상세하지 않으면 쓸모없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수화기제로(水火旣濟罏) 같은 것이 있다. 의서(醫書)를 보면, 후대 사람이 무슨 기구인지 몰라서, 제약(製藥)하는 자는 이것을 버리고 익히지 않았다. 

서충(徐充)의 <난매유필(暖妹由筆)>에서 이르기를, "우리나라(國朝, 명나라)에서 만든 기물 중에 이전 시대에 없었던 것들은, 유건(儒巾), 난삼(襴衫), 접선(摺扇, 쥘부채), 위병(圍屛, 두르는 병풍), 풍령(風領, 추울 때 두르는 옷), 주반(酒盤), 사방두건(四方頭巾), 망건(網巾), 수화로(水火罏)이다."라고 하였으니, 수화기제로(水火旣濟罏)가 황명(皇明)에서 만들어져 나왔음을 누가 알았으며, 또 수화로(水火罏)가 우리나라(我東)의 속칭으로 고리(高里)라는 것을 누가 알았겠는가? 

일찍이 옛날 중국에서는 어찌 이런 제도가 없었겠는가? 단지 제도와 모양과 명칭이 조금 달랐을 뿐이다. 수화로(水火罏)는 생각컨대, 옛날의 솥(鼎) 종류로 내(鼐)와 자(鼒) 따위이다. <삼재도회(三才圖會)>에는 "솥(鼎) 중에 큰 것은 내(鼐)라고 부른다. 둥글게 위에 덮는 것(圜弇上)은 자()라고 부르는데, 위를 덮는 것으로 주둥이가 작은 솥이다. 바깥에 달린 손잡이는 익(釴)이라고 부른다." 또 복(鍑)이라는 것이 있는데, 가마(釜)와 비슷하나 주둥이가 좁다. 주둥이 위에 덮어놓는 역()이 있다. 복(鍑)은, 위로는 증(甑)처럼 구울 수 있고, 밑으로는 역()처럼 삶을 수 있다. 

(...중략...)

서현호 광계(徐玄扈 光啓, 서광계)가 쓴 <감저소(甘藷疏)>는 다음과 같다. "고구마 술로 만드는 소주법. 고구마 술을 냄비에 넣는다. 주석 투구를 덮는다. 찐다."

웅삼발(熊三拔, 사바티노 데 우르시스)의 <태서수법(水法)>에는, 약을 증류하는 법(取藥露法)이 있다. "먼저 구리 냄비를 만드는데, 바닥은 평평하고 주둥이는 똑바르게 한다. 아래로 갈수록 넓어지고, 위로 갈수록 좁아진다. 크기는 상관없고, 전체 높이는 4~5 촌이다. 다음으로는 주석 투구를 만든다. 주석(錫)을 쓰거나 은(銀)을 쓰는 것이 가장 좋다. 투구처럼 만들어, 위에는 손잡이(提梁)가 달렸고, 밑에는 주둥이가 있다. 

(...중략...)
  
지금 수화로(水火罏)의 제도를 생각컨대, 놋쇠와 구리로 만드는 것을 상(上)으로 치고, 그 다음은 자기(瓷)로 만드는 것을 중(中)으로 치고, 그 다음은 오자(烏瓷), 석간(石間), 주자(硃瓷)를 하(下)로 치는데, 도기(陶土)로 빚은 것을 최하(最下)로 친다. 또는 떡갈나무(堅木)와 느티나무(黃楡)로 만드는데, 속칭으로는 귀목(龜木, 느릅나무)이라고 한다. 대개 옛날의 유목언(柳木甗, 버드나무 언)의 제도를 모방한 것이다. 우리나라(我東)에서는 고리(高里)라고 부른다. 그 모양은 위아래로 머리가 둘 달렸는데, 크기는 항아리(甁腹)만하다. 그 허리는 꿀벌 허리처럼 가늘다. 그 속은 위아래로 구멍이 뚫려 서로 통하게 되어있다. 그 허리 중간에는 대롱을 달아놓아 비스듬하게 흘러나오는데, 이름을 병도(柄道)라고 한다. 곧 이슬이 나오는 관이다. 대개 바깥에서 이것을 보면, 장고언(杖鼓甗) 같다. 즉, 요고통(腰鼓桶)이다. 가운데 허리가 미세하게 바깥을 향해 굽어있어서, 편하게 이슬(露)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소주를 증류할 때, 수화로(水火罏)를 쓰는 것은, 온갖 약을 증류하고자 할 때, 주석 투구를 쓸 수 있는 것과 같다. 


중원(中原)에도 수화로(水火罏)라고 칭하는 것이 있다. 곧 담배 피우는 통(煙盃)이다. 통(盃) 아래에 물그릇(水盒)을 놓는데, 그 기구는 모두 황동(黃銅)으로 만든다. 얼핏 보면 소총(小銃頭)을 닮았다. 형상이 심히 기이(弔詭)하다. 일본인 겐타쿠 오오츠키(玄沢大槻)의 저서 <언록(蔫錄)>에 실려있는 바에 따르면 무굴 제국(大莫臥兒國)의 물담배 기구와 서로 견주어 변증하니, 서로 혼동해서 오인하면 안 된다. 듣기로, 중원(中原)의 갈보집에서 이 제도를 많이 쓴다고 한다. 우리나라(我東)에서도 어쩌다 나온 적이 있다. 그래서 나도 볼 수 있었다. 한번 빨아보았는데, 평소에 쓰는 것보다 나을 바가 없었다. 

(번역은 제가 했기 때문에, 오역은 모두 제 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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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록은 재미있는 점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예수회 선교사들이 소개한 증류법, 소총처럼 생긴 청나라의 아편 파이프와 무굴 제국의 물담배, 그리고 일본 난학자 오오츠키 겐타쿠의 이름은 왜 거꾸로 썼는지...ㅋㅋ

하지만 하나만 뽑아서 이야기해보자면, 
이규경이 (과거에도 비슷한 원리의 기구는 있었겠지만) 수화기제로를 "황명"의 발명품이라는 점에서 감동하고 있고, 이것을 조선의 소줏고리와 직결해서 이해한다는거죠. 

반청복명 의식과 조선의 향토 문화에 대한 인식, 일본과 예수회를 포함한 더 넓은 세계로부터 지식을 얻고자하는 갈증... 이 모든 것에 대한 열망이 부글부글 끓다 못해 수화기제로 변증설 속에 자욱하게 맺혀있는 듯 하네요.


제가 과거에 이 블로그에서 이야기한 여러가지 로(爐/罏)도 있었는데요.

명나라 선덕 황제가 주문제작했다는 설정의 가짜 유물 "선덕로(宣德爐)"는 청나라 골동품 시장에서 대유행했다고 하지만, 명나라의 유물이라는 이유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조선인들도 선덕로를 수집했습니다.

한편 이규경 같은 호기심 넘치는 학생도 안전한 화학실험을 할 수 있도록 만든 네덜란드인의 화로, 포이로(布爾爐)도 있었지요. 

저는 수화로(水火罏)도 이 두 화로와 함께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덕로처럼 명나라에 대한 그리움을을 불러일으키는 "유물"이면서도 동시에 실생활에 유용한데다가 과학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도구"이기도 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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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그리고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구글도 이규경 선생님과 동의한다는 겁니다.ㅋㅋㅋㅋㅋㅋ



P.S. 2 
안동소주와 소줏고리에 대해서 더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필로테스 님의 <소주> 이야기
등의 글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불고기 로드 3편] 19세기 조선의 피클드 헤링과 "가짜" 불고기! 용틀임하는 동아시아 근세


지난 글, 불고기 로드 1편에서 아래 내용을 읽고, 정말 불+고기, 火+肉는 없는걸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원로 국어학자 이기문 서울대 명예교수가 쓴 논문 <‘불고기’ 이야기>(2006)에서 관련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이 교수는 이 논문에서 “‘불고기’는 옛 문헌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없다. ‘블火’과 ‘고기肉’는 한글 창제 초기와 그 뒤의 여러 문헌에서 볼 수 있으나 이들의 복합어인 ‘블고기’, ‘불고기’는 중세어, 근대어의 어느 문헌에서도 볼 수가 없다. 19세기 말엽에 간행된 ‘한불사전’과 ‘한영사전’에서도 심지어는 1938년에 간행된 문세영의 ‘조선어사전’에서도 ‘불고기’라는 표제어는 볼 수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이 교수에 따르면 ‘불고기’라는 단어가 사전에 등재된 것은 1950년에 발행된 한글학회의 ‘큰사전’이 처음이다.


다행히도, 2006년에는 활성화되지 않았던 사료 데이터베이스가 우리에게는 있죠. 



두근두근...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 19세기 백과사전,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오주연문장전산고, 인사편-용기류, 주각빙주(廚閣氷廚) 변증설 中

[이상생략]
                                                                                                  
"화한삼재도회"의 "생선 식해(魚醋)" 장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남만지(南蠻漬) 만드는 법. 식초(醋酒) 따위를 한번 끓인다. 구운 소금을 조금만 넣고 병을 가득 채운다. 얇게 저민 날생선을 병 안에 넣는다. 하루 낮과 밤이 지나기를 기다린다. 존맛탱이다. (한번 피클드 헤링을 만든 병에) 두번째 넣어도 맛있다. 아무리 날이 더워도 5~7일을 상하지 않는다. 회를 대신하는 좋은 방법이다.

가짜 화육(假火肉) 만드는 법. 날고기에 소금을 문질러 스며들게 한 뒤 종이를 2,3겹으로 잘 감싼다. 식은 아궁이 잿더미 속에 넣는다. 1, 2일이 지난 뒤 꺼내 먹는다. 화육(火肉)이나 다를 바 없다. 불에 쪼인 고기에 콩기름(豆油)을 바르면 파리가 안 꼬인다.

《和漢三才圖會ㆍ魚醢》。 南蠻漬法。醋酒等分一沸。入燒鹽少許盛甄。以鮮魚肉䐑入其中。經一晝夜。味極美。復次加入亦佳。雖極暑。五七日不餒。以代膾良方。
假火肉
法。鮮肉將盬擦透將紙二三層包好。入冷竈灰內。過一二日而取出食。與火肉無二。曬火肉。以豆油抹之。不引蠅子。

[이하생략]

오오! 가짜 火肉이 있다면 진짜 火肉도 있다는거겠죠?
하지만, 여기서 잠깐.

오주연문장전산고는 여러 문헌을 인용한 백과사전이고, 저 붉은색으로 표시한 "가짜 화육 만드는 법" 부분도 역시 앞선 문헌에서 인용한 문구입니다. 

그리고 그 문헌은 바로...



고금비원(古今秘苑)이라는 청나라 책입니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는 이 책을 18번이나 인용한다고 하네요. (아마 이규경의 할아버지 이덕무 씨가 연경에서 가져왔거나 그랬겠죠?ㅋㅋ)

그러니까 이건 "불고기"가 아니라 중국 음식 "화육" 만드는 법을 설명하는 글입니다. 

"화육(火肉, 훠로우)"은 중국식 햄이라고 합니다. 소금에 절인 다음에 아궁이 속에서 훈제한다는 설명에서도 알 수 있죠.



현재 고전DB에 검색되는 화육(火肉)이라는 단어의 용례는 고금비원의 해당 구절을 인용한 오주연문산전산고의 기록이 전부입니다. 또, 농정회요(農政會要)라는 책에 화육(훠로우) 만드는 법이 기록되어 있다는데, 이 책은 이규경의 좋은 친구 최한기가 쓴 책입니다.ㅎㅎ

그리고 여기서 잠정적으로 추측을 해보자면 조선시대에 불고기를 의미하는 단어로 火肉이라는 표현이 쓰이지 않은 이유는 바로 옆나라 중국에서 "햄"이라는 의미로 쓰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네요. 그렇다면 일제시대보다 이른 시기부터 "불고기"라는 표현이 있었음에도 "炙, 炙肉" 등으로만 꾸준히 표기되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주연문장전산고의 기록이 아쉽다기 보다는, 19세기 조선의 식탁이 얼마나 다국적일 수 있는지... 여기에 감탄하고 싶습니다.

중국식 햄과 네덜란드인의 피클드 헤링을 (중국의 백과사전, 삼재도회를 모방한) 시마데라 료안의 화한삼재도회를 통해서, 19세기 조선의 오주연문장전산고를 통해 읽을 수 있다니!

네, 그리고 주각빙주변증설 항목에는 누가 뭐랄까봐 카스테라도 있습니다.
그런데 뭐, 가수저라는 너무 흔한 먹거리라서 별로 신기할 것도 없잖아요?

▲난반즈케


그나저나 화한삼재도회의  "남만지"라는 요리 말이죠. 비록 한자로는 南蠻漬지만 지금 일본의 "난반즈케"(생선튀김에 초절임을 얹어먹는 요리)보다는 이웃 블로거 적륜 님이 즐겨드시는 피클드 헤링과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만드는 방법은 헤링을 잘 손질해서 소금과 설탕을 탄 물에 담궈뒀다가 (이것을 큐어링 curing이라고 합니다) 훈연기에서 훈연을 한 다음 식초 소스에 담궈 병에 담는 것으로 끝입니다. 참 쉽죠?!"

아마 "불고기"도 이것과 비슷한 이름 따로~ 재료 따로~의 계보를 거쳐오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18세기 조선의 벙거짓골/전골 요리가 평양을 중심으로 한 북부에서는 간장 양념 석쇠구이 "불고기"가 되고, 기존의 "전골 요리"는 별개의 국물요리로 발달하고, 서울로 내려온 불고기는 평양에 두고 온 친척과는 별개로 (아마도 일제시대에) 다시 국물이 자박자박한 스키야키류의 음식이 되어버린게 아닐까요?


이름 따로, 재료 따로, 조리법 따로...

마치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족"과 "재일조선인"을 보는 것 같아서 많은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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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고기 로드 2편] 조선시대 의학 이론과 "구박"받는 불고기 용틀임하는 동아시아 근세

* 이번 글은 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불고기"라는 말의 용례를 추적하는 포스팅입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먹는 불고기의 요리형태를 다루지 않는 글임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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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자세히 보니 키니쿠...


 
이 글에서 18세기 후반, 홍역에 걸린 세자에게 약처방을 잘못 한 의원을 탄핵해야 한다는 내용의 상소문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을 살펴보았지요.


"비록 어리석은 아녀자라도 감히 감장(甘醬)이나 우육(牛肉)을 가까이 하지 못하는데 더구나 삼(蔘)이나 부자()이겠습니까?" (조선왕조실록, 1786년, 6월 1일 기사)

열병이니 홍역에 뜨거운 성질을 가진 인삼과 부자를 처방한 것이 잘못이라면서, "어리석은 아녀자는 감장(단 간장)과 소고기도 가까이 하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감장과 우육으로 만드는 요리가 인삼이나 부자를 능가할 정도로 뜨거운 성질을 연상시킬 만한 음식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마 "불고기"라는 음식 이름이 바로 이런 뜨거운 성질을 연상시킨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추정해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미 1786년에 "불고기"라는 표현이 이미 널리 쓰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이야기했는데요.

한편으로는, 과연 불고기가 당시 의학 이론 상으로 뜨거운 성질을 가진 음식이었을까... 하는 궁금증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또 찾아보았습니다.

고기의 의학적 성질!!


조선 전기의 야담집 필원잡기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조선 전기의 문신 이사철(1405~1456)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필원잡기는 1486년에 간행되었으니, 거의 동시대의 이야기로군요.
 
○ 문안공(文安公) 이사철(李思哲)은 몸집이 커서 음식을 남보다 유달리 많이 먹었는데, 항상 큰 그릇의 밥 한 그릇과 찐 닭 두 마리와 술 한 병을 먹었다. 등에 종기가 나서 거의 죽게 되었는데, 의원이 불고기(炙肉)와 독주(毒酒)를 금해야 한다고 말하니, 공이 말하기를, “먹지 아니하고 사는 것보다 차라리 먹고 죽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면서 여전히 술을 마시고 불고기()를 먹어도 마침내 병이 나으니, 사람들이 말하기를, “부귀를 누리는 사람은 음식 먹는 것도 보통사람과 다르다.” 하였다.

李文安公思哲體質豐大。飮食過人。每食一大器飯二蒸鷄一壺酒。患背腫臨絶。醫云宜忌炙肉毒酒。公曰與其不食而生。毋寧食之而死乎。飮酒啗炙如常。卒獲平善。人皆曰享富貴者。飮食亦異於常矣。


오... 그러니까 몸에 열/염증을 일으키는 증상에 불고기(炙肉, 적육)는 해롭다는 인식이 1400년대에 이미 있던겁니다. 
그냥 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는 것도 아니고 "구운" 고기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전문 의사도 그렇게 말하고, 서거정과 같은 지식인이 보기에도 타당하고, "사람들"이 보기에도 고기를 먹고도 병이 낫는게 이상하다고 여길 정도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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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관심 님이 과거에 소개하신 필원잡기 기록

특히 필원잡기에 등장하는 경주부의 빛나는 구슬 이야기는 여러 블로거 분들께서 다뤄주셨습니다.
이선생 님의 빛의 구슬(가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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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야담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조선 전기에도 먹었을 일반적인 고기구이를 의미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저 적육(炙肉)이라는 한자 표현만으로는 오히려 의원이 구이류는 전부 안 된다는 뜻으로 말했을 가능성이 높죠.

그러니까 고기구이 --> 뜨거운 성질 --> 먹으면 노노 인겁니다. 

딱 "불고기"라는 요리명으로 좁혀서 이야기하기 어려운 상황이네요...


그렇다면, 야담집 말고 실제 의서(醫書)에서는 어떻게 이야기할까요?
"술과 불고기"라는 조합은 피해야 할 음식을 이야기할 때 자주 언급됩니다.

특히 몸에 열이 나서, 몸이 건조해서 생기는 병일 때 그렇습니다.

다만 의서에는 "지지고 구운 음식" 전반을 가리키는 구박(灸煿)이라는 표현이 많습니다.
상대적으로 "불고기(구육灸肉, 또는 적육炙肉)에 해당하는 표현은 드물고요. 


1. 조선 중기 허준은 동의보감에서 다음과 같은 유행가(?)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소변은 꿀처럼 달고"라는 표현에서 예상하셨겠지만... 네, 당뇨병을 경계하는 노래입니다.

歌曰, 消渴消中消腎病, 三焦五藏生虛熱, 惟有膀胱冷似氷, 意中飮水無休歇, 小便晝夜不流通, 骨冷皮焦心肺裂, 本因飮酒炙煿多, 酒餘色慾勞無節, 飮水喫食日加增, 肌肉精髓轉枯竭, 漩甛如蜜滑如油, 口苦咽乾舌如血, 三消病狀最爲危, 有此仙方眞妙訣. 
노래에, "소갈ㆍ소중ㆍ소신병은 삼초와 오장에 허열이 나는 것이고, 오직 방광만은 얼음처럼 싸늘하다. 물 생각이 쉴새없이 나고 밤낮으로 소변은 나오지 않으며, 뼈는 차고 피부는 타며, 심폐는 찢어진다. 술 마시고 구운 음식(炙煿) 많이 먹고, 술 먹은 뒤 성생활을 하니 절제가 없다. 마시고 먹는 것이 날로 늘어나도 기육과 정수는 도리어 말라간다. 소변은 꿀처럼 달고, 입은 쓰고 목은 마르며, 혀는 피처럼 붉다. 삼소의 증상 제일 위급하니 이 선방은 진실로 묘결이다"라고 하였다.


2. 허준과 동시대에 활동한 의사 양예수의 의림촬요에서도 삼소문(위에서 말하는 소갈, 소중, 소신병)에 대해 비슷한 금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삼소36 〔三消門 三十六〕 
대기(大忌 크게 꺼리는 일)
음주(飮酒), 성교(性交)〔房事〕, 기름진 음식과 밀가루〔麵〕 음식, 달이거나 볶거나 굽거나 말린 음식[煎炒灸煿], 술지게미〔糟藏〕ㆍ짠 음식〔醎物〕ㆍ뜨거운 음식ㆍ오신(五辛).

3. 같은 책, 8권을 보면 다음과 같은 설명도 있습니다.  

"이 병의 원인은 모두 기름진 음식과 습열을 돕는 소주(燒酒), 불고기(灸肉) 등을 먹었기 때문인데, 이들이 몰리면 담(痰)이 생기고 담은 비토(脾土)의 기능을 방해한다." 

原其病由, 皆膏梁之味, 濕熱之物, 燒酒灸肉, 鬱遏成痰, 以致脾土受害.  


[중간 결론]

그러니까 술과 구운 요리(炙煿, 灸肉) 그리고 성행위 등은 모두 몸에 열을 높인다는 건데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앞서 제시한 상소문의 (감장+소고기 = 뜨거운 성질)이라는 언급에서 "불고기"라는 표현을 유추해내기는 힘들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미 당시에 난로회나 전골 요리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감장+소고기 구이요리가 있었기 때문에, "불고기"라고 불리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어리석은 아녀자가 꺼리는 뜨거운 성질의 요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더 재미있는 이야기가 남아있거든요!
이건 다음 글에 이어서 쓰겠습니다.ㅎㅎㅎㅎ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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