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뇌법술사가 또오... 청천벽력! 鬼를 울리는 천둥소리


▲웹툰 호랑이 형님 中 (역사관심 님의 포스팅에서도 도움 받은 바가 많음)



중국 남부와 중부의 빽빽한 삼림은 호랑이의 서식지이기도 했는데, 호랑이는 지나가는 나그네를 포함해 여러 목숨을 앗아가는 주범이었다.[89] 때때로 이는 인간의 반격을 유발했다. 19세기 중반에 화약을 이용한 한 이례적인 경우는 석달개(石達開)의 회고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석달개는 청나라에 대항하는 태평천국 운동의 지도자급 인물이었다. 동지들로부터 떨어져나온 뒤, 석달개는 병사를 이끌고 1857년에서 1863년까지 기나긴 행군을 통해 중국 서부로 향했으나 궁극적으로 청나라 정부군에 의해 격멸당했다. 남시(南施)[90] 근처의 마을에서는 석달개의 정탐병(探地兵) 여럿이 호랑이에게 당했는데, 이곳 마을 사람들은 남문 바로 밖에 나있는 언덕 진 숲에 짐승이 살고 있는 것을 두려워해 여름철에는 종종 남문을 닫아놓는다는 것이었다. 이에 석달개는 왕씨 성을 가진 폭파 기술자에게 숲의 일부를 실험적으로 폭파하도록 명했다:[91]

나는 비석 위에 올라가서 멀리 바라보았는데, 자욱한 연기가 모든 것을 덮는 것을 내 눈으로 보았다. 홀연히 천둥소리가 한 차례 들리더니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졌다.' 산봉우리의 작은 부분이 초토화된 채로 무너져내렸다. 나무뿌리가 뽑혀나왔고 이리저리 흩날렸다. 산짐승은 정신없이 달아났다. 어느 것이 호랑이, 표범, 승냥이, 이리인지 알아 볼 수 없었다. 폭파 기술자 왕 아무개는 화력을 최소한으로 사용한 것이라고 말하였다. 만약 충분한 화력을 보름 동안 쓴다면 전지역이 산 건너편으로 바로 통하는 평탄한 도로가 될 것이고, 맹수와 독사의 굴은 하루아침에 깨끗이 정리될 것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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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중국 남부의 롄저우(連州)에 대해서는 원환런(文焕然, 1919~1986), 중국 역사시기 식물과 동물 변천 연구(中国历史时期植物与动物变迁研究), 81쪽 참조.

[90] 오늘날 후베이 성의 언시(恩施)다. 북위 30도 20분, 동경 109도 30분으로, 중국 중부에서 서쪽으로 치우친 이 마을의 이름은 남교(南郊)였다.

[91] 천롱(陈嵘, 1888~1971), 중국삼림사료(中国森林史料), 52-3.
又石达开日记略云:往南郊〈湖北施南县之南郊)视察,有探地兵云,为虎所伤,诘其详,  则南山有一峰如屏障, 恶木阴翳, 虎狼踞之, 故当夏日草木长茂之时,往往南门不启,予军中有湘人王某,能制火药,造就试用,乃将炸药放置妥贴,予登碑遥望,已睹浓烟四冒,忽霹雳一声,天崩地裂,山峰一小部分,已纷然下坠,树木拔根飞舞,野兽狂奔乱跑,不辨其为豹豺狼也。王某言,此特最小之炸力耳,半月后,当用大炸力去全部分,可令此间变为坦途,直通后山,而猛兽毒蛇之窟,一旦扫除尽净云云。可知该时因驱除野兽,而被毁之森林,当亦非鲜少矣。至西北森林,在清季以回疆之变摧毁为甚,而最著称之秦岭森林,亦于斯时罹于 ...


출처: Mark Elvin, The Retreat of the Elephants: An Environmental History of China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2004), 34-35.




"어느 것이 호랑이, 표범, 승냥이, 이리인지 알아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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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이런 포스터입니다... 메타블로그

▲원래 포스터는 이렇습니다.


▼그걸 제가 이렇게 바꾼거...


잘 보면 석쇠에 불고기를 구워먹고 있지요...


"불고기"는 평양 방언이 전국적으로 퍼진 경우라고 합니다.
서울 방언으로는 "너비아니"였다가 거의 사멸한 셈이죠.

그리고 불고기와 너비아니가 분화되기 전에는?



난로회, 쟁식, 벙거짓골 요리 등으로 불렸지요.
(예의바른 혼밥 포스팅 참조!)


어... 그런데 이분들 말입니다.

네, 맨 앞에 계신 두 분이요.




남들은 자기 젓가락으로 잘만 먹는데 왜 이러는걸까요?

아마 젓가락 갯수가 부족했나봅니다...

반미는 얼마나 오래되었을까? 인도차이나 ~Indochine~


반미, 좋아하시나요? 저는 좋아합니다.
이렇게 반밍아웃(?)을 했으니, 오늘은 반미 관련 포스팅을 해보겠습니다.



베트남 전통 음식 반미는 그 유래가 얼마나 오래되었을까요?

최초의 반미 기록은 없지만, 1941년까지 베트남 현지의 재료로 바게트를 굽는다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현지의 밀을 제분한 밀가루로 빚은 빵도 없었죠.
(베트남에 제빵소야 있었겠지만, 아마도 밀가루를 전부 프랑스에서 수입해온게 아닐까 싶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과 인도차이나의 경제적 '협력'이 일방적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인도차이나의 프랑스인 관료들은 본국의 재화(연료부터 와인과 빵에 이르기까지)가 없다고 불평했는데, 이는 일본과의 일방적인 독점 교역의 결과였다. (프랑스 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통킹의 유럽인들도 식료품 카드를 배급받았다.) 식민지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임시방편이 재빨리 개발되었다. 그리하여 1941년 통킹 보고에서는 현지의 밀을 갖고 여러 차례 제빵 실험을 한 결과, '몹시 만족스러운 결과'가 마침내 달성되었다고 밝혔다. "
Eric Jennings, Vichy in the Tropics: Pétain’s National Revolution in Madagascar, Guadeloupe, and Indochina, 1940-1944 (Stanford: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1), 140.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보고서"는 CAOM, RSTNF 6282, “Situation politique.”입니다.
CAOM과 RSTNF는 각각 Centre des Archives d'Outre- Mer(식민지 문서보관소)과 Résidence Supérieur du Tonkin, Nouveau Fonds(통킹 총독부, 신 문헌군)의 약자라고 하네요.

위키피디아 등을 살펴보면 반미(저는 "바잉 미"라고 표기하는 것을 선호합니다)는 1950년대 남베트남에서 팔기 시작했다고 하더군요...;;



▲인도차이나의 플랜테이션 및 광산 지도. 쌀 후추, 차, 커피, 고무나무는 있지만 밀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 상당히 흥미로운 기록을 보았습니다!
Liam Kelley 교수님의 French Foreign Legionnaires and their Indochinese Sexual Partners 포스팅에서 소개하신 내용인데,


에드먼드 머레이(Edmund Murray)라는 프랑스 외인부대 소속 영국인의 인터뷰 회고록으로, 머레이는 2차대전 당시 인도차이나에서 복무했다고 합니다.

앞뒤 맥락을 볼 때 1943년의 일인 것 같습니다.


Murray:
"I had a concubine, and you know, instead of going to the brothels and that sort of thing... (cough) It was an economic measure, really. Because you went to your [??] every evening, and she was available for anything you wanted, and what's more you knew you were going to get it when you got there, then you had a chicken sandwich or a cooked chicken and you had vegetables and things like that, and vegetables that she had bought with your money that you paid her every month, and also vegetables and herbs and things like that that she'd been out to collect.

Most of the money that I paid... Thi Sach [?}, that was her name. Nguyen Thi Sach."

"[저는 그때] 현지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시겠지만, 유곽에 가거나 그러는 대신... (기침) 정말 경제적인 이유에서였습니다. 왜냐면 매일 밤 하숙집으로 돌아가는데, 이 아이는 제가 하자는대로 다 받아줬거든요. 더 좋았던 것은 제가 집에 가면 항상 동침할 상대가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닭고기 샌드위치나 닭고기를 먹고, 또 채소도 먹었습니다. 매달 내가 그녀에게 준 돈으로 사온 채소였죠. 이 아이가 밖에서 따온 채소나 약초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낸 돈의 대부분은...[녹음이 끊긴 것 같다?]
그 아이의 이름은 티 사익(Thi Sach)이었습니다. 응우옌, 응우옌 티 사익(Nguyen Thi Sach).


"닭고기 샌드위치" (바잉 미 팃 가...)는 채소와 마찬가지로 사먹었던 걸까요? 아니면 집에서 만들어 먹었을까요? 아니면 머레이의 아이디어였을까요...?
확실한 것은 1943년에 빵을 구해먹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았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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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초기(19세기 말) 인도차이나의 현지처 현상에 대해서는 여기 참조!

잡동사니(雜同散異) 항목의 포스팅 목록 雜同散異 Superfluous Things


Craig Clunas, Superfluous Things: Material Culture and Social Status in Early Modern China (Honolulu: University of Hawai'i Press,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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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ce Rusk, Antiquarianism and Intellectual Life in Europe and China, 1500-1800, Chapter 6, "Artifacts of Authentication: People Making Texts Making Things in Ming-Qing China", (Ann Arbor: The University of Michigan Press, 2012), 180-198.



머릿말(序)
1. 장물, 그 이후의 연구 (pp. 180-181)


전국새(傳國璽)


신우비(神禹碑)
4. 태고의 달인! (pp. 187-189)
5. 하치 이야기... (pp. 189-190)


선덕로(宣德爐)
8. 선덕제의 청동 향로 (pp. 194-196)


맺음말(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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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릿느릿] 유구의 여신들 그 나라의 이름은, 유리 구슬


관음보살의 성전환에 대해서는, 이전 포스팅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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