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가 필리핀을 지배했다면? (부제: 뒤끝 있는 레오폴 2세) 해외 논문 번역

이글루스에 티모시 브룩을 검색해봤다가, 연성재거사 님의 역사적 사건의 설정놀음에 관하여 를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도 북토크 자리에 있었지요. (후후)
저는 브룩 교수님께 "용"에 대해 좀 더 질문을 드려보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당첨되지 않았습니다. ㅠㅜ
연성재거사 님의 질문에 대한 티모시 브룩의 답변과 상당히 흡사한 말을 베네딕트 앤더슨이 했기에 번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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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가 필리핀을 지배했다면? (The Philippines under Belgium?)
Inquirer지, 2016년 6월 24일자. 
필리핀 역사가 Ambeth Ocampo의 정기투고 사설.

역사적 상상이나 추측을 보면 역사학자들은 자연스레 눈쌀을 찌푸리게 되는데, 이런 상상이나 추측은 1차 사료에 보이는 사실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이다.
떼오도로 아곤시요(Teodoro Agoncillo)는 내게 필리핀 역사의 가상 시나리오(what-if)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조언한 적이 있었다. 아곤시요는 "도대체 왜 일어나지 않은 일과 일어날 뻔한 일을 생각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이미 일어난 일을 확정짓기도 어려운데..."라고 짜증을 내곤 했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내게 정반대의 조언을 했다. "실제로 일어난 일보다 일어났을 수도 있는 일이 더 재미있을 때도 있기 때문이지!"라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인자한 미소를 띤 베네딕트 앤더슨, "더 재미있을 때도 있기 때문이NGEEE!!!"

1762-1764 연간에 영국이 스페인령 마닐라를 점령한 사건을 다룬 최근 칼럼을 두고 열띤 대화와 토론이 벌어진 페이스북 글타래에서 볼 수 있듯이, 역사는 좋은 떡밥이다. 누군가 벨기에 국왕 레오폴 2세의 필리핀 식민지배 계획을 발굴해낸다면, 여기에 또 하나의 가상 시나리오를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호세 리살(Jose Rizal)의 소설 "체제전복(El Filibusterismo)" 벨기에에서 초판이 인쇄된지 125주년 기념 강연을 하기 위해 올해 9월에 벨기에를 방문할 때, 브뤼셀 왕궁 근처에 있는 중국 누각(Chinese Pavillion)을 다시 한 번 방문하고 싶다. 이 누각에는 19세기 중국과 일본의 미술을 전시하는 작은 박물관이 있다. 나는 1980년대 초에 처음으로 이 박물관에 가보았는데, 벨기에의 왕 레오폴 2세가 지은 것이라고 들었다. 레오폴 2세는 동양뽕에 흠뻑 빠진 나머지 스페인으로부터 필리핀을 구입할 생각까지 했다는 것이다.

(동양뽕이요...)

레오폴 2세는 왕위에 오른 1865년, 필리핀을 시작으로 해서 동양에 미치는 벨기에의 영향력을 확대할 계획을 구상했다. 필리핀은 시장성이 아주 좋아보였는데, 중국과 일본 양쪽으로 진입로를 제공하는 전략적 위치 때문이었다. 안타깝게도 벨기에 정부(특히 의회)는 레오폴 국왕만큼 식민지를 갖는데 열정적이지 않았는데,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식민지에서 벨기에의 국익을 수호하려면 좋은 장비를 갖춘 해군과 육군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더 복잡한 문제는 벨기에의 소위 "중립국 선언"이었다. 이 선언으로 인해 벨기에는 해외 식민지를 두고 겨루던 영불독 삼국의 경쟁구도에 끼어들 수 없었다.
▲ 레오폴 2세입니다.

1866년 레오폴 2세는 스페인 주재대사에게 왕명으로 지시를 내렸는데, 스페인 여왕에게 필리핀을 양도할 것을 제안하라는 것이었다. 벨기에 대사는 지시사항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다. 벨기에 의회가 필리핀 양도 계획을 승인하지 않을 것이고, 스페인 여왕은 그 제안을 듣고 비웃으리라는 것을 충분히 잘 알았기 때문이다. 대사의 불복종 행위를 알아차린 레오폴 2세는 그를 다른 직위로 이전시키고 자신의 비밀계획에 동참할 만한 사람을 앉혔다.
의회에게 승인을 받기는 커녕 알리지도 않은 상태로 레오폴 2세는 1억 5000만 프랑(약 2조원[1]) 상당의 비자금(이 금액은 필리핀 식민지의 1년치 운용비용에도 미치지 못했다)을 국고에서 빼돌린 뒤, 여러 영국 은행으로부터 빌린 돈으로 돌려막기를 시도했다. 노력은 가상했지만 이 계획도 실패했다. 벨기에 정부가 아니라 레오폴 국왕이 동양뽕에 취해 추진한 계획이라는 걸 눈치챈 은행들이 이를 재정적으로 뒷받침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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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당시 벨기에와 프랑스는 모두 프랑(franc)화를 금본위제로 고정해서 쓰고 있었다.  
타국의 "전통"을 존중하는 것은 왜 나쁜가 - Matt Matusda의 Empire of Love의 주석 [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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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8년 스페인 여왕 이사벨 2세는 왕좌에서 쫓겨났다. 이 기회를 틈타서 레오폴 2세는 스페인의 신정부와 필리핀 매매 협상에 들어갔다. 레오폴 국왕에겐 자금이 충분치 않았기 때문에, 이 또한 실패했다. 
레오폴 2세가 구상한 세번째 계획은 필리핀을 벨기에 국왕이 다스리는 독립국으로 두는 것이었다. 필리핀은 해외 회사가 운영하는데 90년 조차(租借) 계약 하에 한시적으로 권리를 보유한다는 계획이었다. 외교권과 재정권은 벨기에 왕국이 담당한다.
▲ 레오폴 2세입니다. 지팡이처럼 보이는 건 왕홀(scepter)입니다.

조차 기간이 만료되면 회사는 필리핀을 벨기에에게 양도하고, 이로써 식민지화 및 합병 절차는 문제 제기되는 일 없이 은근슬쩍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단순한 문제를 지나치게 복잡하게 풀려고 한 감이 있는데, 이 계획도 실현되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레오폴 2세는 아프리카로 눈을 돌렸고, 식민지 확보의 꿈은 이곳 아프리카에서 이뤄졌다. 1885년 "콩고 자유국"이라는 이름의 아프리카 식민지는 레오폴 2세의 개인 식민지로 여겨졌다. 이후, 중부 아프리카에 위치한 이 식민지는 1908년에서 1960년까지 "벨기에령 콩고"로 명명되었고, 현재는 콩고 민주 공화국이다. 

이 단편적인 역사는 더 많이 연구할 만도 하지만, 안타깝게도 레오폴 2세가 필리핀 계획에 관한 모든 문서를 파괴하라고 명령했기 때문에 어렵게 되었다. 우리가 그나마 알 수 있는 소량의 정보는 아직 프랑스어에서 영어로 번역되지 않은 책 “독립국가의 구상: 레오폴 2세와 필리핀 (A La recherché d’un Etat Independent: Leopold II et les Philippines)”에서 나온 것이다. 1962년에 초판된 이 책은 레오폴 국왕의 개인 식민지 사업에 주요 교섭가로 활동한 쥘 그라인들(Jules Greindl) 백작이 작성한 문서가 실려있다. 그라인들 백작이 벨기에령 콩고 사업을 담당하러 파견된 1875년 이후의 문서 기록은 없다.
마드리드에 위치한 스페인 외교부 서고에서 독일 주재 스페인 대사가 스페인 총리에게 작성한 극비 보고서가 발견되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1888년 그라인들 백작이 사임하고 벨기에령 필리핀 계획이 보류되었다는 상황판단에도 불구하고 레오폴 2세는 필리핀 식민지를 확보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다고 한다. 도대체 레오폴 국왕은 필리핀의 어디가 마음에 들었길래 그토록 집착에 가까운 소유욕을 보였는지 궁금해진다. 낙관주의자인 레오폴 2세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L’affair que je porsuis irrealisable aujourd-hui, peut-etre faisable une autre fois. (내가 추구하는 계획은 지금은 불가능하지만, 언젠가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벨기에 국왕 레오폴 2세의 계획이 성공해서 필리핀이 벨기에 국왕령이 되었다면 필리핀은 어떻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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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추구하는 계획은 지금은 불가능하지만, 언젠가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 유체이탈 화법의 선구자, 벨기에 국왕 레오폴 2세(1835-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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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후기]
어떻게 되긴요... 루손섬에 손목이 나뒹굴었겠죠.


영국식 불교 - 홍차 같은걸 끼얹나? 용틀임하는 동아시아의 근세

17세기 초, 영국 동인도 회사는 일본과 무역을 시작하기로 합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죠. 일본 현지의 시장 조사가 안 돼있었으니까 정작 뭘 팔아야할지를 몰랐다는거죠.
그래서 회사의 높으신 분들은 '세계 어딜 가든 무난하게 잘 팔릴 상품'을 싣고 가는걸로 결정하는데,
그렇게 생각해낸게 헐벗은 여자 그림입니다.
물론 명색이 공기업인데 대놓고 포르노를 팔 수는 없으니까, 그리스-로마 신화를 소재로 한 누드화를 싣고가기로 하죠.

그리고 그 결과...

"신분 높은 여인 여럿을 선장실에 들어오도록 했다. 캐빈 내부에는 굉장히 '야하게' 그려진 비너스 그림이 커다란 액자에 담겨 걸려있었는데, 그 여인들은 그 앞에서 경건하게 엎드려 기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그림을 성모상으로 여긴 것이었다. (신자가 아닌, 그들의 동행이 듣지 못하도록) 자신들이 기독교도라고 내게 속삭여 말했는데, 이로써 우리는 이들이 포르투갈인들이 만든 교황쟁이들이라는걸 알 수 있었다."
-존 사리스(John Saris) 선장의 일본 항해기,1613.-
네... 뭔가 단단히 착각을 한 카쿠레 키리시탄들이 성지순례를 옵니다.

전근대 동아시아 문화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꽤 유명하고 흥미를 돋구는 이야기인데요.
구글북스에 올라와 있는 (페이지 순서는 같지만) 서로 다른 두 권의 "사리스 선장 항해기"를 보아도, 해당 부분에 방점(?)이 찍혀있다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죠.

이 비너스 이야기가 제대로 소개된 것은, Timon Screech의 아래 논문이 최초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뒤로 동 저자의 책에도 등장하고, 이후에는 Timothy Brook같은 중국사 전문가의 책에도 등장하지요. (맨 밑, 참고문헌을 달아놨습니다.)

원래 영어로 쓰인 사리스 선장의 항해기는 더 큰 규모의 여행기모음집에 포함되어서 출간된 이후, 프랑스어로 번역되고, 또 이 프랑스어 번역본은 네덜란드어로... 그리고 이쯤 되면 눈치 빠른 분들은 알아채셨겠죠? 네덜란드어 번역본는 일본 난학자들의 손에 들어갑니다.

이렇게 유럽 순회를 하고 온 일본여행기가 다시 일본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거의 200년이 지나있었습니다.
한때 네덜란드와 영국 두 나라의 동인도 회사(VOC & EIC)가 상관장을 세웠던 히라도(平戸)는 국제도시로서의 번영을 잃은지 오래였죠.

당시 히라도 번주(藩主) 마츠라 세이잔(松浦靜山, 사리스 선장이 만난 히라도 번주의 5대손)은 이 책의 소식을 접하고는,
위대한 상고사 복원하자!며,
☆조상님들의 찬란했던 과거사☆를 빛내기 위해 네덜란드어에서 일본어로 번역하도록 명합니다.

그런데 마침 지나가던 이영돈 PD 시바 코칸(司馬江漢)이 "네덜란드 책... 저도 참 좋아하는데요."
하고는 자기 일기장에다가 한 줄 요약을 해놓습니다.
물론 시바 코칸의 눈길을 끈 내용 역시 영어권 독자들이 밑줄 쫙, 체크, 별표, 방점 달아놓은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其の中にイギリス船平島に入津したる事を誌す、其の頃松浦法眼と云ふ人居して政事を取る、或時婦女をへ、イギリスの船にる、船の内数品の額あり。其の中にありけるを、婦人是を熟視せずしてす。イギリス人おもへらく、「頃吾法、此の日本にる事あり。其ならん事を思ひてするかと。」

책 속에는 영국 배가 히라도(平戸) 섬에 입항한 일이 적혀있었다. 그 당시에는 마츠라 호우겐(松浦法眼)이라는 사람이 은거하면서 정권을 잡고 있었는데, 여인들을 데리고 영국 배에 올라탄 적이 있었다. 배 안에는 액자가 여러 개 걸려있었는데, 그 중에는 춘화(画)도 있는 것이었다. 여인들이 이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삼가는 모습을 보이니, 영국 사람이 생각하기를, "옛날 우리나라의 불법(法)이 이곳 일본에 들어온 일이 있었는데, 그 때 일을 떠올려서 춘화를 섬기는 것인가."

이 일기장이라는 건 바로 적륜님께서 시바 코칸을 다룬 포스팅(어두운 방, 그리고 빛이 만들어 내는 그림...)에서 소개하신 
“슌파로-힛키(春波樓筆記)"입니다. 春波樓筆記는 그 서문이라는 뜻이죠.

그런데 "영국 불교(法)"라는 건 도대체 뭐죠?
유럽의 기독교(그것도 맥락상 가톨릭)를 말하는 것일 겁니다.
그러니까 18세기 난학자도 기독교는 "영국식 불교"로 인식했다는 것이죠.


"영국식 불교? 물 같은 걸 끼얹나...?"


- 카쿠레 키리시탄과 불교의 관계를 다룬 포스팅, 구원받기 위해서 먹으면 안되는 것 - 텐치하지마리노코토 참조.
- 적륜님의 포스팅 쇼미더 트루스! 최척의 인생유전 이야기(상편)에서는 비록 문학이지만, 고니시 유키나가 휘하에 있던 나가사키의 무역상인 돈우(頓于)가 섬기는 "부처님"도 언급됩니다. 
- 일본 기독교와 불교는 아니지만, 상당히 비슷한 사례인 가톨릭과 부두교의 관계도 이선생 님의 블로그에서 참조.
(같은 날에 같은 짤방을 올리다니 우연도 이런 우연이!!)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타이먼 스크리치가 시바 코칸의 기록을 다시 영어로 번역함으로써 "영어-프랑스어-네덜란드어-일본어-영어" 루프가 완성되지요.

"It contained the story of the arrival of the English ship at Hirado. At that time government was under the control of Matsura Hogen [actually, Hoin, or Shigenobu], though he was nominally in retirement. On one occasion he took his ladies aboard the English vessel, where many framed pictures were hung. One was a shunga [see below]. The ladies stared at it intently, and worshiped it. The English thought to themselves, “Now, Buddhism arrived in their country of Japan some while ago, so how peculiar that they should venerate shunga!

그러나... "우리나라의 불법"을 그냥 불교(Buddhism)라고 번역하는 바람에, 오히려 오역이 되어버렸습니다. ㅠㅜ
영국인들의 생각이 "일본은 색즉시공 공즉시색 클-린 불교의 나라인데, 어찌 춘화를 섬긴단 말인가!"으로 변해버린것입니다. 
이렇게 번역에 중역을 거치다보면 로뎅이 오뎅이 되는 수 밖에 없는 법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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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Timon Screech의 Sex and the Floating World: Erotic Images in Japan, 1700-1820. (Honolulu: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99) 102-103 페이지.
Timon Screech의 "Pictures (The Most Part Bawdy)": The Anglo-Japanese Painting Trade in the Early 1600s. 
The Art Bulletin  Vol. 87, No. 1 (2005년 3월호), 52-54 페이지. 
Timothy Brook의 Mr. Selden's Map of China: Decoding the Secrets of a Vanished Cartographer. (New York: Bloomsbury Press, 2013) 71 페이지.

Timon Screech의 다른 책들은 
등에서 소개되었습니다.


역장 고양이 이전에 박물관장 고양이 ~창작물의 원형을 찾아서~

Purr 'n' Furr의 Black Jack, Mike and the British Museum을 번역한 글입니다. 

추모시를 제외한 거의 모든 내용을 번역했습니다. 복제금지된 사진은 원문 링크를 따라가서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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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잭, 마이크, 대영박물관

런던에 위치한 대영박물관에는 고양이에 관련된 역사가 있다. 최초의 고양이들은 세월의 안개에 가려졌지만... 1828년에서 1866년까지 필사본과 직원 관리직을 역임한 프레드릭 매든(Frederick Madden) 경은 고양이 두 마리를 길렀다. 두 마리 모두 프랑스에서 수입한 고양이였는데, 프레드릭 경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자유로이 거닐 수 있었다. 보다 상세한 기록이 남아있는 고양이는 블랙잭이다. 블랙잭은 실제로 주인이 있었는지는 불확실하나, 박물관을 지낼만한 곳으로 여겼고 자주 방문했다. 굉장히 잘생긴 고양이였는데, 수염이 몹시 길고, 흰 털이 난 가슴과 발을 제외하고는 새카만 녀석이었다. 독서실 책상에 앉는 것이 블랙잭의 버릇이었는데, 나가고 싶을 때는 항상 독서 중인 방문객에게 접이식문을 열어달라고 요구하곤 했다.


덜미 잡힌 잭

어느 일요일, 블랙잭은 실수로 신문 보관실에 갇혔고, 심심해지자 신문을 묶은 책에다 발톱을 갈아대는 바람에 상당한 피해를 입혔다. 그를 옹호해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블랙잭은 도서관 출입을 금지당했고, 심지어 박물관 수리 담당 직원은 블랙잭을 없애라고 지시받았다. 그러나 블랙잭은 은밀하게 자취를 감췄다. 2인의 지지자가 그를 안전한 곳으로 운반해서 음식과 우유를 제공한 것이다. 공식 발표 상으로는 블랙잭이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나왔다. 신문은 복구되었고 시간은 흘렀다. 그러나 몇 주 뒤에 블랙잭은 다시 나타났다. 모두들 블랙잭의 귀환을 기뻐하는 듯 했고, 추가 질문은 없었다. 


마이크와 만나다

1909년의 이른 봄 [1908년이나 1910년이라고 하는 기록도 있다. — 편집자주] 당시 이집트 유물 관리인으로 대영박물관의 이집트 고양이 미이라를 관리하던 어네스트 월리스 벗지(Ernest Wallis Budge) 경은 아침에 집을 나서던 중 입에 무언가를 물고 있는 블랙잭과 마주쳤다. 현관 계단을 올라오더니, 물고있던 물체를 벗지 경의 발치에 내려놓고는, 담담하게 아무말 없이 걸어갔다.  (왼쪽 만평 참조). 어네스트 벗지 경에게 블랙잭이 갖고온 것은 자그마한 새끼 고양이였다! 벗지 경은 새끼 고양이에게 마이크라는 이름을 붙였고, 데려다 키웠다. 다행스럽게도 마이크는 벗지 경이 이미 집에서 키우고 있던 고양이 두 마리에게도 인정받았다. 이 사건으로 블랙잭은 역사적 사명을 다했고, 이후 그의 행적에 대해 알려진 것은 없다.














박물관에서의 삶

일을 계기로 마이크는 대영박물관 역사상 가장 유명한 고양이가 될 뿐 아니라, 어네스트 벗지 경과 평생 친구가 될 운명과 마주친 것이다. 자라나면서 마이크는 박물관 정문 수위들과도 친분을 맺고 수위실에 자주 들리곤 했다. 수위실에서 그는 언제나 환대받았기 때문에 두집살림을 하는 셈이었다. 집 고양이 덕분에 마이크는 한 가지 흥미로운 게임을 배웠는데, 주로 일요일 아침에 주변에 몰려다니는 비둘기떼를 이용한 놀이였다. 마이크가 강아지가 그러하듯이 '지목'을 하면, 그의 '파트너'가 비둘기들을 조금씩 구석으로 몰아갔다. 두 마리 고양이는 각자 혼란에 빠진 비둘기를 한 마리 씩 덥친 뒤 안 다치게 해서 집으로 갖고 들어가면, 집사가 비둘기를 건네받고는 포상으로 약간의 우유와 작은 고기를 주었다. 비둘기는 옆 방에 두고는, 약간의 옥수수와 물을 먹였다. 평형감각을 회복할 즈음 열린 창을 통해 날아갔다. 고양이들은 더럽고 먼지투성이 깃털이 달린 비둘기를 먹는 것보다 익힌 고기를 먹는 것을 선호했다!

시간이 흐르고 마이크는 수위실에서 지내는 것을 선호했다. 밤이나 낮이나 마음대로 오갈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외풍으로부터 보호받는 특별한 선반 자리가 그의 취침용으로 마련되었다. 박물관 순찰 일은 계속했다. 고양이 미이라 관리인 벗지 경은 마이크가 제대로 돌봄 받도록 했다. 세계 1차대전이 한창이던 궁핍한 해에도 마이크가 먹고살수 있도록 주선하였다. 고양이로서 좋은 삶을 살았다. 저녁에는 흔히 다과실 웨이트리스가 주는 우유와 고기 조각을 받아먹곤 했고, 숙직 관리인들과 놀기도 하면서 말이다. 마이크도 그의 선배와 마찬가지로 독서실에 모습을 내비치길 좋아했다. 


마이크의 은퇴


15년 간 근무한 뒤, 마이크는 정식으로 은퇴하고는 1924년 부터 '연금 수여자'로 지정되었다. 은퇴한 뒤로도 박물관 앞마당에서 일어나는 일 큰 관심을 보인 마이크는 특히 이따끔씩 마당에 나타나는 떠돌이 개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곤 했다. 경찰관과 수위를 '비웃는' 개들도 평소보다 2배나 커 보이도록 털을 부풀린 마이크가 덤벼드는 것을 보면 겁에 질려 달아났다.  (왼쪽 만평) 마이크는 친구를 조심스레 사귀었고 낯선 이들을 반기지 않았다. 양산으로 툭툭 건드리는 여성 방문객들의 경우에는 더욱 그랬다. 그리고 사람이 쓰다듬는 것을 마이크가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한 이들에게는 처참한 응징이 돌아왔다! 마이크는 이러한 원치 않는 관심을 벗어나는 방법을 알았다. 풀쩍풀쩍 뛰어서 두 번 만에 사람 손길이 닿을 수 없는 수위실 문틀 위에 올라앉았다. 세월이 흐르고, 문틀은 마이크의 착지로 인해 맨들맨들해졌다고 한다.







건강 악화

어네스트 월리스 벗지 경 본인이 은퇴한 뒤로도 마이크를 만나러 오곤 했고, 매주 마이크 몫인 은화 한닢을 가져왔다. 마이크는 말년에 들어 치아가 썩으면서, 먹이주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다. 세 명의 수위가 마이크를 마치 '한 사람처럼, 형제처럼' 대해서, 교대로 부드러운 고기와 생선을 (격일로) 마련했다. 마이크는 '휘팅(whitting) 보다 가자미를 선호했고, 해덕(haddock) 보다 휘팅을 선호했고, 청어 보다 정어리를 선호했다고 한다. 반면에 대구(cod)는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 결국 마이크의 건강 상태는 밥을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고, 마이크를 '안락사시키는 것'이 인도적인 조치라고 판단되었다. 그리하여 유명 고양이 마이크는 1929년 1월 15일 약 2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많은 친구와 지인들이 '자기 관리에 철저했던' 고양이 마이크를 애도했다. 마이크는 런던 시의 작은 관광명소가 되어있었고 런던을 방문했을 때 마이크를 만난 적이 있는 전세계의 팬들은 마이크의 사망 소식을 듣고 슬픔에 잠겼다. 



추모 행렬

박물관 정문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마이크의 삶을 기념하는 비문이 새겨진 묘비가 세워졌다는 기사가 있었다. 그러나 여러 관계자에게 물어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이 비석은 흔적조차 없다. 일반적인 의견은 비석이 세워졌다는 말은 오보이며 애초부터 비석은 세워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마이크의 죽음 이후에 기록된 디테일의 수준을 보았을 때 다소 이상하다. '그레이트 러셀 스트리트의 박물관 입구 근처에 세워진 작은 묘비'에 다음과 같은 비문이 적혀있었다고 한다.  '1909년 2월부터 1929년 1월까지 대영박물관 정문을 지키는 것을 도움.' 비석이 정말로 세워졌는데 이후에 제거 및 파괴되었거나, 그 뒤로 보수공사를 하면서 덮여버렸다고 보는 것이 더 그럴듯 하다. 그러나 비석 건립을 담당한 대영박물관 인쇄본 부서 부보관사(assistant keeper) F.C.W. Hiley도 훌륭한 추모시를 지었다. 

마이크가 사망한지 50년이 지난 1979년, 샤베르만(R. B. Shaberman)은 한정판 단편 'Jubilee Reminiscence'에서 마이크의 삶을 재연해냈다. 위 두 장의 만화는 이 작품에서 나온 것이다. 작가와 출판사 Arthur Page of The Bookshop, Bloomsbury, London를 명시해 놓는다.


그 뒤를 이은 고양이들

대부분 익명이지만 마이크의 후배 고양이들도 있다. 적갈색 수컷 고양이 이름으로는 흔치 않은 벨린다(Belinda)가 있었다. 인상적인 성격으로 유명했는데, 자동차 뚜껑 위의 온기를 좋아했다. 그 뒤를 이은 것은 숙직실에 이사온 뒤로 박물관 순찰을 한 차례도 놓친 적이 없는 암컷 흑백냥이 수지(Suzie).. 마이크와 달리 수지는 사람을 좋아했고 관람객과 직원 모두가 자주 볼 수 있었다. 수지는 1982년 5월, 16세의 나이로 사망했고, 박물관 측은 관내 게시판에 짧은 부고 기사를 붙였다. 그 뒤로는 메이지(Maisie)와 그녀의 자녀 피핀(Pippin), 포펫(Poppet), 핑키(Pinkie)와 수지 2세(Suzie the Second)가 있었다. 수지 2세는 관리실에서 직원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녀가 너무 나이가 들자 은퇴를 하고 개인 요양소에 들어갔다. 그러나 과거 한때 고양이 영토였던 여러 장소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대영박물관에는 더 이상 고양이가 없다.


 그림은 원문 링크로 가서 보시기 바랍니다.^^

1995년 프란시스 브룸필드(Frances Broomfield) 화백이 아기 고양이 시절 마이크를 묘사한 매력적인 그림을 그렸고, 이곳에 이미지를 게재할 수 있게 허락했다. 마이크가 박물관에 도착한 순간을 보여준다. 선행을 한 블랙잭은 뒷배경에서 사라지려는 참이다. 


위의 마이크 일대기는 그의 삶을 기념하기 위해 1929년 2월 '마이크의 친구들의 부탁을 받고'  어네스트 월리스 벗지 경이 쓴  팜플렛에서 따왔다. 팜플렛의 원 제목은 "마이크 - 1909년 2월부터 1929년 1월까지 대영박물관 정문 경비를 도운 고양이'이다. 출판사는  Richard Clay & Sons of Bungay, Suffolk. 타임(Time) 지는 마이크의 별세를 기록할 만한 사건으로 여기고 1929년 4월 부고를 작성했고, 이듬해 1월에는 벗지 경의 팜플렛 소식도 전했다. (링크는 모두 첫 페이지 몇 줄만을 보여주는 미리보기 화면으로 연결되며, 타임지 구독자는 로그인하시면 전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대영박물관에 대단히 감사를 드리며, 특히 우리에게 팜플렛을 보여주신 고대 이집트와 수단 부서의 명예 기록보관 담당자 패트리샤 우식 박사님 께 감사를 표하고 싶다. 또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마이크의 묘비를 찾으려고 지원을 아끼지 않은 런던시 및 국회의사당 가이드 엘리자베스 체이스(Elizabeth Chase) 박사님께도 감사드린다.


나가사키에도 나타났다! - 고양이 방해꾼 ~창작물의 원형을 찾아서~

2016년 2월 3일, 크리스티나 더피(Christina Duffy)는 대영박물관의 고문헌 디지털화 작업을 하던 중 흥미로운 발견을 합니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VOC)의 일본지사에 파견되었던 앵겔베르트 캠퍼(E. Kampfer, 1651-1716)가 소유했던 지도에 찍혀있는 앙증맞은 발자국들이었죠. (원본 트윗)

퍼렇게 보이는 이유는 자외선 촬영이기 때문입니다. (고지도에서 냥냥펀치를 찾아내기 위해선 고오급 기술이 필요합니다.)
그것도 교묘하게 데지마(手島) 바로 옆이군요@@
(아래 번역문에는 Deshima라고 되어있어 일괄 "데시마"로 번역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배를 대지마...라고 만든 섬이니까 데지마라고 부르는 것을 좋아합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대영박물관 공식 블로그는 정확히 2주 후, 2월 19일에 이에 대한 포스팅을 합니다. 
아래는 제 번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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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의 고양이
지도 위를 종횡무진한 그의 발자취...?

"일본 항구도시 나가사키를 그린 17세기 지도의 자외선 촬영에서 뜻밖에도 고양이 발자국이 나타났다."

비록 정식 이름은 없지만 오랫동안 나가사키 에즈(長崎絵図, 나가사키 그림지도)라고 불린 지도 (BL shelfmark Or.75.g.25)는 원래 독일 의사이자 박물학자인 엥겔베르트 캠퍼(1651-1716)의 가족이 소유하던 것을 대영박물관의 '아버지'라 불린 한스 슬론(Hans Sloane) 경이 구입한 것이다. 캠퍼는 1727년에 출판한 유고작 일본의 역사(The History of Japan)의 저자로 유명하다. 이 책은 서양 독자들에게 일본을 소개한 초기 저작물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책으로 손꼽힌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 고용된 캠퍼는 1690~1692년 사이에 일본에 머물렀다. 그는 데시마 네덜란드 상관의 군의관으로 복무했다. 데시마는 무역허가를 받은 소수의 서양 상인들이 머무르도록 일본당국이 나가사키 만에 지은 인공섬이다. 일본에 머무르는 동안 캠퍼는 대량의 서적, 필사본, 회화, 식물 스케치, 물건을 수집한 뒤, 유럽으로 돌아와 책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책은 그가 죽은 1716년까지 미출간 상태에 있다가 1723년에서 1725년 사이 원고와 수집품이 모두 슬론에게로 넘어갔다. 슬론이 바로 '일본의 역사'의 영어 번역과 출간을 주선하였다. 슬론이 구매한 60개 품목 중 45개가 현재 판명되었다. 주로 지도, 사전, 여행안내서, 연대기, 주소록, 대중문학이다. 모두 당시 쉽게 구할 수 있던 인쇄물에 해당한다. 각 품목은 처음 인쇄되었을 때에는 보잘것 없었지만 이 작은 컬렉션은 유럽 최초의 일본 수집품으로 꼽힌다.

▲1680년 경에 인쇄된 것으로 추정되는 나가사키 에즈의 전체 모습 (British Library Or.75.g.25)
위 트윗의 사진(고양이 발자국이 발견된 부분)은 빨간 네모 부분

나가사키 에즈는 목판으로 인쇄된 다음 수작업으로 색을 입혔다. 지도가 만들어진 연도는 적혀있지 않지만 나카시마 강에 다리가 놓인 것이 보이는데, 이 다리는 1681년 이전에 건설된 것이다. 캠퍼가 이 지도를 손에 넣었을 당시에 이미 이 지도는 오래된 구석이 있었다. 캠퍼가 '일본의 역사' 원고에 베낀 지도에는 여기에 1689년에 지어진 중국 상인들의 거주지(唐人屋敷, 토진야시키)를 추가로 그려넣는 등 수정을 한 흔적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 지도의 사본은 '일본의 역사'에 '낭가사키 시내(Urbs Nangasaki)'라고 나와있다. 나가사키 에즈 원본은 도시와 항구의 세세한 정보를 보여주는데, 중앙부에는 부채꼴 데시마 섬이 있고 주변에는 네덜란드와 중국배의 모습과, 네덜란드 남녀 등 이국적인 인물상이 장식적으로 그려져 있다.

▲캠퍼의 책, '일본의 역사'에 실린 지도의 (고양이 발자국이 없는) 사본. 


색 합성 자외선 촬영기법을 통해 한 쌍의 발자국이 데시마 바로 밑에 찍혀있음을 밝혀냈다. 강이 나가사키 항으로 흘러나가는 유역 근처다. 안타깝게도 닌자 냥이의 정체는 밝혀낼 수 없었으며, 언제 어떻게 이 고양이가 지도 위를 거닐었는지도 모른다. 분명히 데시마에는 고양이 뿐만 아니라, 개, 소, 돼지, 염소, 닭, 앵무새, 원숭이가 있었고, 심지어 고슴도치와 화식조도 한 마리 씩 있었다. 이 동물들은 모두 네덜란드 상관장을 그린 그림에 등장한다. 캠퍼는 '일본의 역사'에서 일본 고양이에 대해 빼놓지 않고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일본인들은 유난히 예쁜 고양이를 기른다. [중략] 우리와 마찬가지로 집에서 기르는 동물이다. 흰 바탕에 큼직큼직하게 노랗고 검은 얼룩이 나있다. 꼬리는 마치 일부러 자르기라도 한듯 몹시 짧다. 이 고양이들은 쥐를 쫓는 일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대신 품에 안기거나, 쓰담쓰담해주는 것을 몹시나 좋아하는데, 주로 여자가 해줄 때 좋아한다." (일본의 역사. 1권 10장)




▲캠퍼가 그린 에도로 참근교대 가는 VOC 행렬 속 본인 모습.     ▲일본의 삼색 냥이 (mikeneko). 사진: Wikimedia Commons
(British Library Sloane Ms 3060 fol. 501) 

지도 위 발자국의 주인공은 캠퍼의 고양이였을 것이라는 상상이 구미를 당긴다. 녀석은 아마 (모든 고양이 집사들에게 익숙한 방법으로) 캠퍼의 공부를 방해하려던 참이었을 것이다. 혹은 어쩌면 한스 슬론 경이 키우던 고양이가 그 집 '호기심의 방'으로 기어들어갔는데 마침 지도가 펼쳐져있었을 지도 모른다. 세번째 가능성은 (박물관 보안 측면에서는 우려되지만) 대영박물관에서 쥐를 잡기 위해 두었던 고양이 중 한 마리의 발자국이라는 것이다. (ʻ블랙잭, 마이크, 대영박물관ʼ 참조). 이들 중 가장 유명한 냥이는 마이크(Mike)였다. 마이크는 박물관에서 20년을 살고 1929년에 사망하였는데, 저녁일간지에 부고 기사와 추모시가 실리기까지 했다!

참고 문헌

Kenneth B Gardner, Descriptive Catalogue of Japanese Books in the British Library Printed before 1700. London: The British Library, 1993.  이 책은 캠퍼 컬렉션에 있는 모든 일본 서적들을 상세히 설명해놓았다. 

Yu-Ying Brown, “Japanese Books and Manuscripts: Sloane’s Japanese Library and the Making of the History of Japan”, in Arthur MacGragor (ed.), Sir Hans Sloane: Collector, Scientist , Antiquary, Founding Father of the British Museum. London: British Museum, 1994, pp. 278-290. 이 책은 슬론이 캠퍼 컬렉션을 구입한 경위를 설명해준다. 


동아시아 컬렉션 수석 학예사 헤이미쉬 토드 작성. 유물보존 부서의 크리스티나 더피에게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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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캠퍼와 조선 인삼(!)에 대해서는 적륜 님의 "Tsiozin Nizin"은 무엇인가? - 1690년 캠퍼르의 닌진 퀘스트 참조.

데지마에서 키우던 다양한 동물에 대해서는 또 적륜 님의 18세기 동아시아 크로스보더 파티장 - 왜관 그리고 데지마 (下) 참조.

(아마 윗 글에서 말한 "그림"이 바로 이 포스팅에 나오는게 아닐까 합니다.^^)


P.S. 2

역사적으로 인간의 일을 방해해온 고양이들의 흔적을 알아보려면,

일단 제일 유명한 사례로 mori님의 한땀한땀 정성들여 글을 썼더니 고양이가 지나갔눼?

그리고 그 밑에 적륜 님이 덧글링크를 달아놓긴 했지만, 가을 님의 [네타] 그 옛날부터 고양이님하는 인간이 하는 일을 방해해왔다
코토네 님의 방해하냥



서유기에서 다룬 동물들 (목록) 橘南谿의 서유기(西遊記)

포유류

파충류

3. 팽나무의 큰 뱀
4. 이노카쿠라(狩倉)의 큰 뱀

-악어-


조류

16. 바다를 건너는 학 (카고시마)

어류

가장 재미있는 것은, 이 선장이 "쿄우모 작살"(きょうも鉾)이라는 것을 써서 물고기를 잡는다는 것이다. 그 작살의 모양은 창과 같고, 자루의 길이는 3(), 끝은 철로 만들어서 세 갈래로 나뉘었고 톱니가 있는데길이는 1척 정도 된다.자루 끝에는 긴 밧줄을 달았다. 선장이 이 작살을 다루는 것이 신묘해서, 바다 위로 떠오르는 물고기는, 작은 것일지라도, 이를 꿰뚫는 모양이 마치 끈끈이 장대로 새를 잡는 것 같다. 배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커다란 물고기에게, 이 작살을 던지니, 화살을 쏘는 것보다도 확실하다. 쿄우모 작살을 들고 뱃전에 서서, 건너편 파도 사이로 검게 보이는 물체를 (향해), 앞서 말한 작살을 이윽고 내던지니,그 물고기가 높이 뛰어오르고는 도망쳐 간다. 선장은 득의양양한 얼굴로 그 밧줄을 길게 늘어뜨렸다. 배를 조종해서 그 물고기를 쫓아가, 잠시 뒤 조용히 밧줄을 끌어당기니, 그 물고기가 작살의 톱니에 꿰인 채로, 점점 배 가까이로 다가온다. 선장은 작살 자루를 집어 든 채로, 배 안으로 낚아올리니, 몸길이 8, 9척 남짓의 물고기가,길쭉하게 생긴 주둥이가 무시무시한데, 교토에서 사요리라고 하는 물고기 닮았다. 하야우오(早魚)라는 것이다. 주둥이 길이가 2 6치나되는데, 끝이 날카롭고, 껍질은 상어 같으며, 그저 짐승의 뿔 같으니, 물고기에게 (달려)있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그 우니코오루(一角)의 주둥이라는 것도 이 물고기를 보니 믿을 수 있다. 너무나도 드문 일이니, 선장에게 이 주둥이만 얻어서 돌아갔다. 고기는 기름을 취한다고 한다. 굉장히 큰 물고기이 까닭에 식용으로는 쓰기 어렵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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